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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67화 (166/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67화

카푸치 호렌의 직업은 상인이다. 규모가 큰 상단에 속해있지는 않지 만 나름 오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유젠카’ 상단에 속해있어 벌 이가 꽤나 잘 되는 편이다.

물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 다. 유젠카 상단에 속한 상인들은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워낙 극한 직업이다 보니 꽤나 돈이 되는 상단 임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낮았다.

덕분에 카푸치 호렌 같은 경력이 없 는 상인도 뽑힐 수 있었을 것이다.

모험이나 탐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라면 이 유젠카 상단에서의 일이 꽤 나 잘 맞을지도 모른다. 허나,그런 부류의 사람은 모험가를 하겠지 유 젠카 상단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여긴 정말 언제 와도 똑같네.”

“변함없는 게 매력이니까요.”

카푸치 호텐은 반쯤 풀린 눈으로 방랑객의 작은 오두막을 바라보았 다.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 답 지 않게 굉장히 거대한 구조물이 호

수 위에 떠있는 모습은 아무리 여행 을 싫어하는 카푸치 호렌이라도 처 음엔 조금 신기했으나 이내 볼 것이 저것밖에 없고 또한 몇 년이나 찾아 왔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질렸다.

룰 렌 평야에는 겨울이 없다. 사계 절 내내,여름이다. 아무것도 변화가 없는 곳인데 심지어 계절마저도 그 대로이니 질릴 대로 질렸다.

철퍽!

호수 아래에서 거대한 두꺼비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카푸치 호렌 일 행을 맞이하기 위해 방랑객의 작은 오두막에서 보내주는 탈것이다. 처 음 이곳에 왔을 때 물 공포증이 있

던 부하 중 한 명이 꽃을 밟고 호 수를 건너다가 빠져서 죽을 뻔한 이 후로 방랑객의 오두막에서 이러한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물론 빠져 죽을 뻔한 그 친구는 그 후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는다.

두꺼비 한 마리의 등에다가 짐을 잘 묶은 뒤,남은 두 마리의 등에는 각각 세 명씩 총 여섯 명이 나뉘어 서 탑승했다.

두꺼비는 혹여나 손님들이 빠질 새 라 아주 천천히 방랑객의 오두막을 향해 헤엄쳐갔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이 곳 사람들은 신선이 아닐까 싶을 정 도로 신비로웠다. 언제나 일은 하지 도 않고 놀고먹으며 콧노래나 홍얼 거리면서 돈 씀씀이는 또 한 번 굉 장했다. 어디서 돈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걸까.

‘혹시 이 주변에 비밀 금광이라도 묻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 주변을 훑어보아 도 별 것도 없다. 애초에 금광이 있 더라도 그것을 내다팔 곳이 필요한 데 이 근방에는 작은 마을 하나 보 이지 않는다. 언제나 상인들 사이에 서는 미스테리였지만 구매자의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 물어볼 만 큼 카푸치 호렌은 입을 가볍게 놀리 는 남자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방랑객의 오 두막 중심 광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중앙 마루에서였다.

늙은 노인네와 청년 몇 명이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100년 전에나 유행했을 법한 구식 카드 게 임. 요새는 카드 게임에도 마법이 접목되어 저런 단순한 게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어이쿠,청년. 오랜만이여?”

“하핫,예. 두 달 만이군요. 그 동

안 잘 지내셨습니까?”

“끌끌. 우리가 못 지내는 게 이상 하지.”

카푸치 호텐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 았다. 당최 뭐 때문에 이들이 행복 한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이들은 도시에서 나오는 술을 즐겨할 뿐 놀 음거리 같은 것들도 하나 없다.

“이번에 크랭츄리 후작이 야심차게 시장에 풀어놓은 술입니다.”

“오오,크렝츄리라면 와인의 명가 아니던가! 어서 보여주게나.”

호텐은 속으로 혀를 찼다.

‘크랭츄리 가문이 와인계에서 몰락

한지가 벌써 50년은 더 됐수,이 양 반들아.’

속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기 에,이미 싸구려로 전락해버린 와인 또한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다. 심 지어는 평범한 물건조차 이곳에서는 100배의 가격을 칠 수도 있어서 이 곳에 와서 크렝츄리 가문처럼 과거 의 영광밖에 남지 않은 물건을 팔아 치우는 것은 거의 1,〇〇〇배 혹은 10,000배 이상의 이윤을 남긴다.

유젠카 상단이 돈을 잘 버는 이유 는 바로 이곳에서 나온다.

“자자,맛보기로 이것들 한 잔씩 해보셔유.”

호텐과 함께 온 상인 중 한 명이 술 한 병을 꺼내들어 자그마한 잔에 따르더니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 했다. 저것들을 한번 맛보면 관심이 없다가도 홀딱 빠져들게 된다. 물론 도시에서 온 호렌 일행에게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술이었지만.

“좋군. 이거 30병쯤 주게나.”

“그렇게나 많이요? 보관하기 힘드 실 텐데……

“홈? 그런가?”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번에 와인 회사의 마법부가 개발한 이 간이 와 인 창고만 있으면 문제 없다구요!”

“오호라. 신기한 게 있구먼. 그럼 그것도 주게나.”

“하하,감사합니다.”

이렇듯,이들은 돈 씀씀이가 아주 대인배라 조금만 귀를 흔들면 바로 구매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아직 방 랑객의 오두막의 초입임에도 꽤나 짭짤한 거래를 성사했다.

그렇게 카푸치 호렌 일행은 조금씩 방랑객의 작은 오두막을 돌며 집 안 에 틀어박힌 사람들을 찾아가 거래 를 했다. 그들이 필요한 생필품을 꽤나 많았다. 신선처럼 사는 것과는 다르게 술이나 담배 등을 굉장히 좋

아했으며 도시에서 나오는 신기한 물건이라면 일단 냅다 지르고 보는 자들도 있었다.

“휴우,이번엔 느낌이 좋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여기에서 사흘 은 머물 생각 하고 왔는데 이거 원 내일 돌아가도 되겠는데요?”

어느 새 가지고 온 물건도 반 밖 에 남지 않았다. 그들이 왔다고 해 서 바로 물건을 구매하려고 하지는 않으니 시간을 조금 더 두고 설득해 야만 했다.

고작 사흘이지만 ‘지금 저희가 가 면 언제 다시 올지 모릅니다요.’라

는 마법의 단어를 쓰기만 하면 결국 그들도 지갑을 열게 되어있다.

“난 잠깐 쉬었다 오지.”

“예,호렌 님은 조금 쉬십시오. 나 머진 저희가 하겠습니다.”

카푸치 호텐은 짐을 벗어던지고 홀 가분한 마음으로 나무다리를 건녔 다.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에 이렇듯 이 어져 있는 다리만이 이 오두막에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호수를 자유자재 로 밟고 이동한다지만 영 호텐에게 는 불편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호숫가로 내 려가던 호렌은 문득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응? 누구지?’

웬 자그마한 소녀가 호숫가의 끝자 락에 있는 나루터에 드러누운 채, 새하얀 다리를 들어 올려 나뭇가지 를 툭툭 건들거리고 있었다. 꽤나 어린 나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무심 코 시선을 빼앗기게 만드는 황홀한 각선미 였다.

순간 자괴감이 든 호렌은 잽싸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허억.”

덜컹.

심장이 내려앉았다.

호텐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 검은 머리칼의 소녀에게 빨려 들어 갔다. 지루한 듯한 얼굴로 입에 나 뭇잎 하나를 문 채 자리에 드러누워 서 멍하니 낚싯대를 쳐다보고 있는 그 모습은 정말 별 것도 아닌 자세 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에서 나름 유명한 모델의 느낌이 나 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기품이었 다.

그야말로 빛이 나오는 둣 했다. 맨

발을 들어서 지척에 있는 나뭇가지 를 발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던 그 소 녀는 입가의 나뭇잎을 후 불더니 하 품을 했다.

사람이 가장 못생겨 보일 때는 재 채기를 할 때와 하품을 할 때일 터 였는데 저 소녀는 하품을 하는 모습 조차도 사랑스러웠다.

호텐의 심장이 쿵쾅대며 미친둣이 진동하였다.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홀딱 빠져버린 것이라고.

‘저,저런 아이가 이곳에 살고 있 었나……?’

분명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와보니 이곳 에 완벽하게 적응한 신선처럼 여유 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흡!”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호렌의 심장이 및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 아오르고,손이 덜덜 떨리며 유창하 게 흘러나오던 말문조차 간단히 틀 어 막혔다. 그 소녀는 별빛 눈동자 로 호텐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갑자 기 환하게 미소 짓는다.

“야. 나도 와인 하나 살……

“죄,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 것일까.

호텐은 갑작스레 덮치는 알 수 없 는 부끄러움에 그 자리에서 황급히 벗어나고 말았다.

“호렌 씨. 정신차려요.”

“어,어? 응.”

호텐은 정좌에 멍하니 앉아 있다 가,들려온 어떤 여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황급히 차렸다. 피부가 살짝 그을린 그 여인은 이 방랑객의 오두

막에 거처하고 있는 주민이었다.

“오스렌 양,물어볼 게 있습니다.”

호텐이 묻자 오스텐이 고개를 갸웃 했다.

“뭔가요?”

“그,저…… 혹시……

꾸물대던 호렌은 오스렌을 슬쩍 힐 끗거리며 말했다.

“여기에 그,열 넷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던데…… 이,이름 아 십니까?”

“음…… 글쎄요?”

오스렌도 잘 모르는 둣 고개를 갸

웃했다.

“온지 얼마 안 된 아이입니까?”

“그건 아녜요. 이곳에 온지는 한 달쯤 됐을 텐데. 하여튼 이름을 물 어보니까 자신을 ‘사랑과 정의를 낚 는 낚시꾼’이라고 소개했거든요.”

“……그게 뭡니까.”

꽤나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역시 애는 애였나 보다.

“유치한 이름이죠? 근데 낚시꾼들 은 다 저런 호칭을 가지고 있어요. 이곳에서 가장 능력 있는 낚시꾼인 론두 씨도 ‘위대함을 낚는 낚시꾼’ 이고요. 아,저기에 저분 보이시

호텐은 시선을 돌렸다. 낚는 족족 팔뚝만한 물고기를 낚으면서도 그냥 돌려보내는 늙은 노인이 있었다.

“저분은 ‘세월을 낚는 낚시꾼’이에 요. 이곳의 모든 낚시꾼은 이렇듯 호칭을 붙여 자신만의 신념을 드러 네요.”

“그럼 그 아이는 사랑과 정의가 신 념이란 말입니까?”

“모르겠어요. 그 애 말로는 어렸을 적 첫사랑이었던 마법 소녀가 만날 저 구호 외치고 다녔다던데…… TV 에서 나오질 않아 결국 이뤄지지 못

했다고 하더라구요. 무슨 소린지 이 해를 할 수가 있어야 말이죠.”

하여튼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소녀 의 이름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호텐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모습 에 오스텐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호렌 씨,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

요.”

“무, 무슨 소립니까 그게.”

“못 먹을 감은 바라보지도 말라고 했어요. 그 아이,평범한 꼬마는 아 니에요.”

“예?”

평범하지 않다는 게 대체 무슨 뜻

이란 말인가. 호텐이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오스텐이 어깨를 으쪽했다.

“이 근처에 현자나 신선들이 숨어 들어서 사는 거 알죠?”

“물론이죠.”

그들 또한 자신의 주요 고객이 될 수도 있어,정보를 긁어모았기 때문 에 모를 리가 없다.

“저 아이도 신선이에요.”

“……네?”

“그러니까. 어지간해서는 빨리 마 음 접는 게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오스텐은 가버렸다. 호렌의 눈에서 힘이 사라졌다. 평범 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 었지만 설마하니 신선이라니.

그들은 절대 속세의 무언가와 사랑 에 빠지지 않는다. 같은 그리픈에 살고 있다고 해서 똑같은 그리픈의 생명체인 것은 아니다. 신선이라는 존재는 이미 그리픈이라는 작은 세 계의 틀을 벗어나 또 다른 어딘가를 여행하는 그런 자들이다.

진리를 깨우치고,세상 그 너머를 바라보는 자들. 그런 신선이 고작 호렌 같은 장사치를 바라봐줄 리 없 다.

호텐은 그렇게 한참이나 멍하니 정 좌에 앉아있었다. 다른 동료들이 와 서 어깨를 툭툭 쳐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고작 1분. 아주 잠깐 봤을 뿐이지 만. 그는 그 소녀에게 푹 빠져버리 고 말았다. 그리고 이뤄질 수 없다 는 마음에 압도적인 상실감이 찾아 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에휴……

내가 지금 이게 무슨 꼬라지인지. 스스로 자괴감이 들어 그렇게 중얼 거려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하다못 해 말이라도 걸 수 있다면.

‘아니,근데 나한테 뭔가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

툭.

그때 누군가가 호텐의 어깨를 쳤 다. 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아 까 보았던 그 아이가 정좌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호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히,히익!”

철푸덕!

“……뭐 하냐,너?”

“크으옥.”

갑작스레 코앞에 나타난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호렌은 기겁하여 바닥 에 자빠지고 말았다.

툭,가볍게 정좌 옆에 있는 난간에 착지한 그 아이는 무릎을 쪼그린 채 싱글벙글 웃었다. 새하얀 동양풍 옷 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너 장사꾼이지?”

“예,예,

“그래,방금 할아버지들한테 한 잔 얻어 마시고 왔어.”

“……예?”

그러고 보니 소녀의 오른손에는 빈

와인병이 들어있었다. 할아버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이라면 저 소 녀가 가서 한잔 달라고 해도 좋다며 건네줬을 것이다.

“그 술은 미성년자한테…… 그러다가 오스렌의 말이 떠오른다.

‘신선이라고 했던가……

즉 겉모습은 저럴지라도 실제의 나 이는 많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도 살래. 남은 술 좀 있어?”

“아직 많습니다.”

“드래곤 브레스는 없나?”

“그게 뭡니까?”

“하긴 싸구려 술이라 너희가 들고 다니며 팔지는 않겠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남은 술 내가 다 살게.”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시고 하는 말씀이십니까? 거의 오백 병은 넘 게……

“생각보다 별로 없네? 어쨌든 다 줘. 나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할지 모르니까 최대한 많이 필요해.”

할 것도 없는데 술이라도 마셔야 지.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카드 하나를 툭 던졌

다.

“여기다 달아놔. 레이븐 생텀. 알 지? 금색 별 마탑.”

“그,이건……

“응.”

소녀는 상쾌하게 웃으며 아주 당연 하다는 듯이 말했다.

“거기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결제 할 거야. 술이나 가져와.”

천영은 나룻터에 앉아 짧은 다리를 흔들거리며 와인을 병째로 들이켰 다.

낚싯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론 두를 비롯해 다른 낚시꾼들을 보면 쉽게쉽게 잘만 낚던데,어쩐지 천영 의 낚싯대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 다. 심지어 낚시 게임을 하다보면 그 흔하게 걸린다는 깡통이나 신발 도 없었다. 쓰레기가 없는 청정구역 이니 당연하지만.

호렌은 슬쩍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천영을 홈쳐보았다. 어린 아이의 외 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 인을 병째로 마시는 모습이 꽤나 잘

어울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호텐은 또 다시 심장이 두근 댔다.

“너희 와인 괜찮네. 적당히 싸구려 에,적당히 내 입맛에 맞아. 가격 후려친 건 봐줄게.”

싸구려,후려치기. 상인의 자존심을 후벼 파는 말이었지만 맞는 말이었 기에 호텐은 얼굴을 푹 숙였다. 상 인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싸 구려 와인을 가지고 몇 배나 되는 가격에 내다팔다가 걸리는 것만큼이 나 프라이드가 상하는 일은 없었으 니까.

“그나저나 여기서 낚시는 왜 하시

는 겁니까?”

“그러게.”

와인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 신 천영은 다음 와인병을 꺼내들려 다가 말았다. 이 이상 마시면 취한 다. 벌써 세 병째다.

“사실 내가 낚는 건 물고기가 아니 야.”

“그야 그렇겠죠. 사랑과 정의 의……

“어허,그 신성스러운 단어는 함부 로 입에 올리는 게 아니야.”

“아,알겠습니다.”

갑작스레 천영이 드러누웠다. 낚시 가 꽤나 지겨운 모양이다.

“휴우,한 달째 여기서 궁상떨고 있긴 한데 말이야. 너도 여기 소문 들어본 적 있어? 엄청 커다란 물고 기.”

“아…… 그 론두 씨가 낚고 싶어 한다는 블랙 드래곤……?”

“아니,드래곤 블랙 샤크. 물론 별 명이야. 실제 이름은 아무도 모르 고.”

물론 그런 전설 속 동물의 이름은, 먼저 짓는 사람이 임자다. 헌데 드 래곤 블랙 샤크의 이름은 아무도 짓

지 않았다.

“그걸 낚으시려는 겁니까?”

설마 농담이겠지 싶어 카푸치 호렌 은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천영은 전혀 웃음기를 띄지 않고 진지한 표 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낚아야지.”

“……그걸 왜 낚으시려는 겁니까?”

그러자 천영이 고개를 슬쩍 돌렸 다. 그 눈동자가 너무나도 순수하여 그대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본능이 시켜 서 하고 있어.”

“본능이 말입니까?”

“그래,본능. 언제부턴가,그냥 하 고 있어.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 데 계속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강하 게 들거든. 원래 나는 이런 귀찮은 짓 절대 안 하는데 말이야.”

천영은 자신이 여태까지 모은 용의 큐브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여태 까지 왜 그렇게도 열심히 그것들을 모았을까. 정체도 모르고 실제로 자 기가 쓸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 저 용의 물건이라는 사실 하나만을 알고 있을 터인데.

“그래서 그런 거야. 그냥 갖고 싶

어서. 그게 전부야.”

“그렇군요. 멋진 목표입니다.”

“이게 멋져?”

“당연하죠. 특별한 이유 없이,본능 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이 세상 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삶입니 다.”

“그렇구나. 너 이제 보니 말빨 좀 산다? 인정해줄게. 내가 기분 좋아 졌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천영이 웃자,호렌 도 같이 웃었다. 그는 천영을 따라 서 같이 나룻터에 드러누웠다. 이렇 게 하늘을 여유롭게 쳐다본 것이 대

체 몇 년 말인가. 고개를 들어 올릴 틈조차도 없이 호렌은 바쁘게 살아 왔다. 꽤나 멋있지도 않고 아름답지 도 않은 삶이었다.

여유라는 것은 이미 멋지고 아름다 운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니까.

문득 호텐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저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호수가 생각난단 말이죠?”

“뭐야 그게.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 면 하늘이 생각나야 정상 아냐?”

“그건 그런데…… 뭔가,호수에 하 늘이 비춰지는 게 아니라 하늘이 호 수가 비춰지는 것 같단 말이죠. 여

긴 참 신기한 곳이에요.”

그 말에.

천영이 벌떡 일어났다.

“뭐?”

“예,예? 제가 뭔가 잘못 말했

“아니,아니야.”

뭔가 당황한 둣,천영은 낚싯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 그보다 더 깊은 곳. 호수의 밑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왜 물고기가 호수에만 살고 있다 고 생각한 거지……

천영의 금색 눈동자가 선명해졌다. 이윽고,당황하고 있는 호렌의 양손 을 덥썩 쥐더니 마구마구 흔들었다.

“고마워! 네 덕분에 좋은 걸 알았 어!”

“그,그렇습니까? 그거 다행……

“그럼 안녕!”

풍덩!

“……입니다?”

채 작별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천 영은 호수 속으로 뛰어들어버렸다. 호렌은 천영과 악수하던 자세 그대 로 한참이나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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