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69화
46장 금색 별 마탑2
천영이 호수 아래에서 빠져나온 것 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카푸치 호텐은 안절부절 못하며 나 루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물속에서 천영이 올라오자마자 황급히 달려갔 다.
“괘,괜찮으십…… 떠헉!”
허나 기다림과는 별개로 호렌의 심 장은 여전히 약했다. 물기에 촉촉이 젖은 천영의 모습을 보자마자 호렌 은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속살이 희끗 비치는 새하얀 소복,매끈하게 빛나는 피부까지. 제정신을 유지하 기가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동 료가 진정시켜주지 않았으면 정말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뭐야,이 아저씨는 왜 이래?”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쥐어짜내며 은은하게 마법을 발동시킨다. 물기
가 서서히 증발하기 시작했다. 천영 은 굉장히 찜찜한 얼굴로 뒤따라 올 라오는 론두를 꺼내주었다.
“푸흐. 아무리 숨을 쉴 수 있다지 만 나는 물가에서 낚싯대 드리우는 걸로 평생 만족하겠네.”
“그건 못 잡는 물고기에요. 근데도 낚시는 계속 하시게요?”
“뭐,드래곤 블랙샤크를 잡는 게 내 평생의 목표였긴 하다만 사실 막 연한 목표이기도 했지.”
평생의 목표가 이루어질 수 없는 막연한 목표라는 것은 어떤 느낌일 까.
천영은 네청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 그대로 였다. 감정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불 안했다. 그렇다고 가서 괜찮냐고 물 어보기도 좀 그렇지 않은가?
-에휴,내가 볼 땐 아무렇지도 않 다니까? 괜히 주인만 신경 쓰는 거 야.
“원래 내가 A형이라 이런 거 신경 쓰여.”
-혈액형이랑 성격과는 관계가 전 혀 없어.
“……하여튼 그렇다고.”
천영은 슬쩍 용의 큐브를 어루만졌
다. 던전,반전 세계 속에 머물던 이무기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처음 에는 그 이무기를 어떻게 설득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모두 무의미한 고민이었다.
오랜 세월 끝에 이무기는 자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용이 되지 못한 존재가 몇 천 년이라는 세월을 버티 기에는 크나큰 무리가 있었다. 그렇 게나 오랫동안 살 수 있는 생명체는 용이 유일하다. ……네청의 설명이 었다.
“그…… 이무기가 왜 이걸 들고 있 었을까.”
-어딘가에 쓸모가 있었으니까 그
랬겠지 아니면…….
전대 골드 드래곤 레가로스가 어떠 한 이유 때문에 줬다던가.
하지만 거기까지는 완벽하게 알 수 없었다. 파트라슈의 기억이 불완전 한데다가 심지어는 그녀가 잠들었을 때 일어난 일인 것 같다고 한다.
“근데 파트라슈.”
-응.
“……만약 내가 그리픈을 떠나면 넌 나에 대해서도 잊게 돼?”
파트라슈는 입을 다물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나는 정 신체야. 지나치게 방대한 지식과 정 보,경험과 추억은 견딜 수 없어. ‘뇌’라는 중추신경계가 없는 건 꽤 나불편해.
“그렇구나……
-뭐,무슨 생각을 하는 진 알겠는 데 신경 쓰지마. 나는 내가 용을 보 좌하기를 원해서 태어났고,영원한 세월 동안 용을 보좌하기 위해서는 나약한 정신체의 몸을 가지고서 기 억을 계속해서 리셋 하는 수밖에 없 었으니까.
“용을 보좌하길,원했다고?”
-응,사실 태어난 지 너무 오래돼 서 이유는 잘 몰라. 하지만 내가 원 해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알 수 있어.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고.
결국 파트라슈도 이미 사라진 기억 속의 본능에 의존하여 지금까지 살 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천영의 생 각에 그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 었다.
천영의 초등학교 시절 꿈은 대통령 이었고 고학년 때는 과학자였으며 중학교가 되어서는 우주비행사로 바 뀌었다. 어린 시절과 정령을 비교하 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삶의 목표라
는 건 이리도 쉽게 바뀐다.
하지만 결국 파트라슈의 일일 뿐이 다. 천영은 더 이상 코멘트를 달지 않았다.
용의 큐브를 만지작대던 천영은 무 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것을 들고 네 청에게 다가갔다.
“네청 님.”
“왜 그러느냐.”
“이걸 맡아주세요.”
왜 이것을 네청에게 줬는지는 천영 본인도 모른다. 그저 파트라슈처럼 본능이 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네청 은 그것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파트라슈는 그러한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룰 렌 평야에 살아가는 거대 부족 은 참으로 많았지만,그 중 세력이 가장 큰 부족을 꼽자면 세 군데가 있었다.
악어들의 일족,느왕루.
두꺼비들의 일족,각껍.
닭의 일족,윙윙.
이 세 부족에는 하나의 전설이 내
려온다.
그들을 모조리 죽여라. 그러면 하 늘에서 용이 내려와 그대들을 천상 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여기서 말한 ‘그들’이란 당연하게도 자신들 을 제외한 상대 두 부족일 것은 뻔 했다.
몇 백 년 간 이들 세 부족 사이에 서는 분쟁이 끊이질 않았고 아무리 화해를 하려 해도 서로에 대한 감정 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더 이 상 돌이킬 수 없었다.
“하아……
백화연은 이 세 부족의 사이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느왕루, 각껍,윙윙 부족의 사이를 왕복해가 며 서로의 갈등을 해결해보려 했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을 너무나 도 짧았고,결국 세 부족이 각자의 핵심 병력을 일으켜 맞부딪히기 위 해 모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절벽과 절벽,강과 강 사이. 세 부 족의 우두머리들이 나섰다.
악어 대왕, 두꺼비 두목,위대한 날개.
각각 최대한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의견을 피력하였다.
항복하여라. 그러면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죽여주겠다.
“저게 뭐야……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도 아니고 아프지 않게 죽이겠다니. 자 존심만 강한 무식한 놈들이었다. 결 국 싸우는 것을 막을 길은 없어보였 다. 하다못해 백화연의 힘이 저들보 다 강하면 모를까. 악어 대왕과 두 꺼비 두목,위대한 날개의 무력은 하나하나가 꽤나 위협적인 수준이었 고 심지어 그 휘하의 부하가 무려 만 단위이다. 덤벼봐야 개죽음이다. 아무리 백화연이라지만 낄 곳 아닌 곳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남의 일 에 신경써주다가 죽는 것 만큼이나
허무한 죽음도 없다.
“흥! 바보 같은 놈들. 우리의 배려 를 결국 거절하다니. 너희들은 내 기필코 사로잡아 사리를 전부 뜯어 버리고 기둥에 묶은 채 그것들을 불 에 구워서 먹어버리겠다!”
“요새 악어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잘 되었지. 이 꼬챙이 보이나? 네 대가리를 꽂아놓고 뱃살을 구워먹겠 다.”
“끄끄끄. 너희들끼리 실컷 신경전 해서 뭐하나? 어차피 다 죽을 텐 데.”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어린애만
도 못한 신경전이었다. 보다 못한 백화연이 슬쩍 끼어들어 진정시키려 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했다.
“저리 가라,살색 동물! 아무리 네 가 위대한 전사라도 우리의 일에 끼 어들면 용서할 수 없다!”
“은색 털 달린 인간아. 물러나 있 거라. 이 뒤로는 위험하다.”
“어허,감히 인간 따위가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를 도 와주기에 봐줬지만 이 이상은 허락 할 수 없다.”
빠직.
백화연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문득 전부 베어버리고 싶다는 충동 에 휩싸였지만 참았다. 아무리 싸가 지가 없어도,그래도 막상 돌이켜보 면 자신의 부족을 위해 싸우는 홀륭 한 우두머리들이었다. 또한 전략의 기초 중,상대방을 도발하는 병법 또한 있지 않던가? 그들은 그 방법 을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뭐라! 죽여 버린다!”
“하! 대가리가 돌았나보군!”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아니다. 이들은 진짜로 입씨름 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아,제발 진정 좀……
백화연이 반쯤 울상을 지은 채 그 들에게 달려들어 말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세 부족장이 모두 입을 다물 었다.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낀 백화연 역시 움직이던 입을 멈추었다. 익숙 한 기운이 하늘에서 느껴진다.
고개를 올리자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는 하늘 위에서 어떤 거대한 검은 색의 몸체가 내려오고 있었다. 자신 의 몸통보다도 거대한 날개, 금색의 뿔,검은색의 아름다운 몸.
천영이었다.
“어,천영이다.”
마침 잘 됐다.
천영은 이런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전문가나 다름없다. 그의 능 력이나 힘 또한 굉장히 뛰어나 단순 히 힘으로 찍어 누르는 사건에도 아 주 유능했다. 그리고 혀를 놀리는 기술 또한 굉장히 일품이라 이들을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 었던 것이다.
후응,후응!
거대한 날개가 펄럭이며 화연이 있 는 곳까지 내려오자 화연이 환한 얼 굴로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여기!”
천영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화연은 세 부족장의 안색을 살폈다. 어찐지 그들은 눈동자를 쟁반처럼 커다랗게 뜬 채 천영을 올려보고 있었다.
“뭔 일이이:?”
“이분들이 자꾸 싸우려고 해서 말 리고 있었어.”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지들끼리 치고 박고 지랄하는데 왜 화연이 나서서 말려?”
“그냥 몇 백 년 동안 싸우기만 했 다잖아. 조금 불쌍해.”
슬쩍 그들의 얼굴을 살핀다. 악어, 두꺼비,닭. 정말 기묘한 조합의 이 종족들이 었다.
‘아,그러고 보면 이 근처에 살고 있는 가장 큰 부족들이라고 했던 가.’
이야기는 들은 적 있다. 론두와 함 께 낚시를 하다보면 룰 렌 평야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들 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 여 천영은 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대 락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천영은 갈 길이 바쁘다.
“신경 끄고 돌아가자.”
“그래도……
“왜?”
“그만 싸웠으면 좋겠어.”
어쩐지 천영이 하늘에서 날개를 펄 럭이고 있자 세 부족장이 서로의 눈 치만을 보고 있었다. 그 반응을 본 천영은 피식 웃었다.
“야,거기 셋.”
“예!”
“말씀만 하십쇼!”
화연에게는 냉랭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세 부족장은 천영에게
굉장히 깍듯했다.
“뒤질래? 누가 대가리 꼿꼿이 세우 고 쳐다보래? 대가리 박아.”
“아,알겠습니다!”
“꼬끼오!”
“요,용이시여. 저는 신체 구조상 대가리를 박기가 힘든……
“그래서? 하늘로 따라오기 싫은 모 양이지?”
“아닙니다!!”
쿵!
불만을 제기한 악어 대왕이었지만 천영이 눈을 한번 부라리자 결국 대
가리를 박았다.
“뭐야,잘 하네.”
“감사합니다!”
“아니지. 잘 한다고 꼭 칭찬이라는 뜻은 아니야,악어 대왕. 그렇게 잘 하면서,네가 투덜거렸다는 게 문제 야. 너는 그 자세 그대로 뒷짐 진 다. 실시.”
“시,실시!”
결국 신체 구조가 가장 불리한 악 어대왕 혼자서 가장 힘든 자세를 취 하자,남은 두 부족장이 대가리를 바닥에 박은 채로 시선을 슬쩍 돌려 피식 비웃었다.
“응? 남은 두 놈도 안 시킨다고는 안 했다. 실시.”
“실시!”
그렇게 해서 난데없이 만 단위의 부족들을 이끌고 있는 세 부족장은 자신의 부하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얼차려를 받게 되었다.
물론 천영은 그들에게 심한 얼차려 를 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배운 얼차려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신체 구조에게만 통했고 저들에게는 불가 능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정신 교육은 똑똑히 시킨 모양이다.
“앞으로 조용히 좀 살자? 내가 이 근처에 적당히 숨어 살 계획이거든? 나중에 승천할 때까지 너희 쥐 죽은 듯이 안 지내면…… 확 씨. 알지?”
“예,예! 알겠습니다!”
“저희는 조용한 것이 가장 좋습니 다!”
“지금 당장 병력을 빼겠습니다!”
악어 대왕,두꺼비 두목,위대한 날개가 후다닥 도망쳤다.
화연은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하다는 눈빛을 감출 수 없었다.
“처,천영……
“대체 저 부족장들이랑 무슨 관계 야?”
“별 관계 아닌데.”
그저 그들에 관한 전설을 알고 있 었을 뿐이다.
“재들도 용 믿는 원시 부족이거든. 실제 용이 나타나서 지랄했으니 당 분간은 무서워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할 걸?”
“그으렇구나……
자신이 해결하려고 아무리 노력해 도 소용이 없던 것을 천영은 가뿐하
게 해치워버렸다. 용이 되어 하늘 너머 어떤 세계로 위대한 전사들을 데려간다는 그런 미신은 모두 거짓 이었지만 천영은 그런 원시적인 미 신을 완벽하게 이용해먹 었다.
“돌아가자. 금색 별 마탑에서 자꾸 나 찾는다.”
“그래?”
“응.”
천영은 절벽 위에 내려선 다음,휴 먼 폼으로 돌아왔다. 아직까지도 인 밴토리에 있는 금색 테두리 코팅의 편지가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금색 별 마탑의 마탑주 레이븐. 그
가 천영을 다급히 호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