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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170화 (169/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70화

돌아갈 때는 생각보다도 쾌적하게 이동하였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두 번이나 이용 하였고,열차를 세 번 갈아탔으며, 비행선을 두 번 정도 탑승하자 금색 별 마탑이 있는 ‘스텔라아우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이동편이 딱딱 시간이 들어맞 았다. 운이 좋다고나 할 수 있었다.

천영은 금색 별 마탑에 복귀하자마 자 가장 먼저 백하란을 찾아갔다.

“오,잘 지냈어?”

“아뇨…… 요새 마나 리포트 건의 개발에 전혀 진척이 없어서 죽을 맛 이에요.”

“벌써 또 뭔가를 연구하고 있는 거 야? 한 달 전까지도 대사막에서 뭐 하다오지 않았어?”

“뭐,할 일이 많으니까요.”

“그,그래.”

할 말이 없었다. 천영은 금색 별 마탑의 임무는 제대로 수행하지도

않은 채 그저 명함만 들고 다니면서 놀고먹을 뿐이었으니까.

그 다음으로는 하성을 찾아갔다. 그는 아예 녹초가 되어버린 채였다. 그러나 천영이 찾아오자 눈물을 펑 펑 흘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어흐흑,천영. 나 죽을 것 같 아……

오로지 천영 하나만을 바라보고 금 색 별 마탑에 들어왔는데 최근에는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으니 하성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짐작하기가 어 려웠다. 그래서 하성이 들러붙어 가

슴팍에 머리를 마구 문지르는 것도 참아줬다. 고급 인력을 부려먹으려 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만 했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자 서류더 미에 파묻혀있는 로서진이 보였다.

“서진 씨…… 괜찮아요?”

그러자 로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허나 서진의 앉은 키보다 서류가 더 욱 높아서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없 었다.

“아! 천영 님,돌아오셨군요!”

그녀는 환한 얼굴로 그를 반겼다. 또 일거리에 파묻혀 죽어가지는 않 을까 걱정했는데 어찐지 팔팔한 얼

굴이었다. 그렇다고 일이 적은 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보이는 서류만 해도 천영보다도 키가 컸다.

“후후,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돼 요. 저 체력 엄청 좋아졌거든요.”

“그래요?”

“네,요새 운동 엄청 열심히 해서 요.”

그러고 보니 로서진의 몸에서 조금 씩 기운이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마 법도 거의 하급 수준에다가 신체 능 력 또한 꽝이었는데 고작 한 달 좀 넘는 시간 사이에 그녀는 아주 많이 뒤바뀌어 있었다.

-저게 재능이란 거야.

‘……나는 저런 거 꿈도 못 꿨는 데.’

암만 운동해봐야 그저 잔근육이 살 짝 붙을락 말락이었고 넥스트에서 마법을 열심히 공부해봤자 재능과 운 있는 자들의 특별한 마법에 비해 뒤떨어질 뿐이었다.

비록 지금은 드래곤으로 탈태를 하 면서 모든 재능을 극복할 수 있었지 만 여전히 선천적인 재능이라는 것 은 부럽기 그지없었다.

“어라,그러고 보니…… 몸에서 은 은하게 오러 레이션이 일고 있는 것

같은데……?”

천영은 그리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말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마나 서 클이 생긴 마법사는 신체에 오러를 부여하는 오러 레이션을 할 수가 없 다.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그녀 의 몸에는 지금도 꾸준히 오러가 활 성화되고 있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조금씩. 마치 온몸에 항시 오러를 두르고 있는 나이트처럼.

“아,얼마 전에 마검사를 만났거든 요. 그 분한테서 배웠어요.”

“……잠깐. 마검사를 만났다구요? 이름은 알아요?”

“네,제이나 씨한테 들었어요. 웨지 스턴이라고 엄청 대단한 마검사래 요.”

순식간에 천영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 놈이 해코지는 안 했어요? 혹시 서진 씨 다치게 하거나 그랬어 요? 그런 거 있으면 빨리 말해요. 지금 당장 찾아가서 죽여버릴……

“아,아뇨! 저는 그런 거 없어요! 오히려 도움만 받았는걸요.”

“예?”

천영이 무슨 소리냐며 되묻자 로서 진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법 논문 발표회에 참여한 이후, 갑작스레 열린 게이트와 멸망 직전 까지 다다른 도시. 그러나 로서진과 제이나는 죽기 직전 웨지스턴의 도 움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또한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호위를 받아 마침내 마법사들을 끌 어 모아 게이트를 봉인할 수 있었다 고 한다.

천영의 얼굴이 굉장히 미묘하게 변 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천영은 웨지 스턴에 대한 분노가 식지 않았다. 자신과 안면이 있었던 자들을 모조 리 죽여 버렸던 그 웨지스턴이다. 친하지도 않고 서로의 이름도 제대

로 기억 못하는 사이였지만 그런 이 유 하나만으로 천영의 분노를 사기 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파트라슈가 말렸다. 웨지스 턴을 반드시 살려야만 한다고. 자신 의 눈에는 그것이 보인다고.

그래서.

천영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를 살 렸다. 마치 하늘이 도운 둣 웨지스 턴과 천영의 사이가 갈라지며 그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워낙 웨지스 턴의 상처가 깊어 어딘가에서 비명 횡사라도 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지 금도 당당히 살아서 그리픈을 활보 하고 있단다.

……그것도 로서진을 도울 정도로 어딘가 마음이 뒤바뀐 채로.

“파트라슈,……넌 대체 그 자식한 테서 뭘 본 거야?”

그러자 파트라슈가 대답한다.

-자신을 지옥까지 밀어 넣으려는 끝없는 죄책감.

그것은 꽤나 어려운 말이었다. 그 러나 어쩐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웨 지스턴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이다. 어설픈 정의감으로 움직이 는 같잖은 것들과는 달리 웨지스턴 에게는 확고한 기둥이 있었다. 그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절대로 흔들 리지 않을 굳건한 기둥. 그 죄책감 이라는 기둥에 묶인 채 웨지스턴은 스스로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멈추 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면.

죄책감에 의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친다면.

-결국 그 놈은 좋은 최후를 맞이 하긴 힘들 거야. 그럴 운명이었어.

“그래……

고개를 젓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 려고 온 것이 아니다.

“커피나 한 잔 할래요?”

“음,그게……

로서진이 뭔가 곤란한 둣 서류를 만지작댄다. 거기에는 ‘핵심 마법 전략 본부 보고서’라는 소제목이 언 뜻 적혀져 있던 것 같기도 하다.

‘뭐지? 원래 마법사의 비서가 저런 것도 관리하나?’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노크 소리 가 들렸다.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남

자가 나타났다.

“마탑주 님께서 지금 바로 와달라 고 요청하십니다.”

“나 참. 안 그래도 커피 한 잔 하 고 바로 가려고 그랬는데.”

잠깐 숨 돌릴 틈도 없다. 레이븐, 정말 시간 하나는 알뜰살뜰하게 쓰 는 남자였다.

레이븐이 천영을 부른 장소는 사무 실이 아니었다.

금색 별 마탑의 옥상. 그 꼭대기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천영은 이런 장소가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조 금은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둘러보았 다. 레이븐이 난간에 걸터앉아 샌드 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의 옆에 가서 털썩 주저앉은 다 음 샌드위치를 하나 햇어먹자,레이 븐이 우물거리다 말고 입을 열었다.

“천영.”

“응.”

“이 도시 겁나 예쁘지?”

새삼 그의 말에 스텔라아우렘의 정 경을 내려 본다. 언제 봐도 아름다

운 장소이지만 이렇게 햇살이 하늘 위에서 강하게 내리될 때 이 별빛으 로 빛나는 도시는 최고로 아름답다.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븐이 피식 웃 는다.

“이거,전부 내가 설계한 거야. 전 대 마탑주가 있었을 땐 이 정도까지 는 아니었어.”

천영은 그저 묵묵히 들었다.

“내 나이가 올해로 64야. 뭐,용의 나이로 따지면 굉장히 젊겠지만

인간으로 치자면 조금은 늙은 나이

마법사가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기는 길어봐야 일흔. 허나 그것도 마탑 구석에 틀어박혀서 얌전히 지 낸 마법사가 그렇다 뿐이지,레이븐 처럼 온 사방팔방 동네를 뛰어다니 면서 살아온 마법사는 그리 오랜 시 간 현역으로 있을 수가 없다.

천영은 그제야 레이븐의 표정을 살 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굉장히 늙어있었다. 마법의 수준이 일정 경 지를 넘어서자 신체는 회춘했지만 정신은 그러지 못했다.

레이븐은 이제 지친 것이다. 자신 이 더 이상 금색 별 마탑을 관리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달았다 해서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가. 천영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이 금색 별 마탑에서 경력을 따지자 면 천영은 아주 짧은 편이다. 레이 븐보다도 더욱 길게 금색 별 마탑에 서 현역으로 지내온 베테랑 마법사 도 있었고 젊은 30대의 나이에 7서 클의 경지를 넘어선 마법사도 있었 다. 차라리 고작 1년밖에 지내지 않 은 천영보다도 그들이 훨씬 나을 것 이다.

“천영,나는 이기적이다. 그래서 네 이름을 이용해먹기로 생각했어.”

“내 이름……?”

“그래,뭐 지금 당장 후보만 따지 면 사실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거 든. 하지만 역시 네가 제일 적합해.”

“그게 무슨……

마치 오늘 저녁으로 라면을 먹자! 라고 말하는 것처럼. 레이븐은 간단 히도 툭 내뱉었다.

“마탑주. 네가 해라.”

“너는 천 년 만에 나타난 드래곤이

다. 또한, 사람들이 너를 맹신하고 있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이변 현상을 모두 네 동료와 네가 해결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잖아?”

“그건……

“뭐,진위 여부는 관계없어. 나도 솔직히 전부 믿지는 않아. 하지만 믿고 있어. 왜 그런 줄 알아? 사람 들에게는 믿을 것이 필요하거든. 무 언가,대단하고,또 대단하고. 우러 러 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필요해.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해서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금방 쓰러져버리거 든. 그리고 나 또한 인간이다. 그래 서 네게 기대기로 했어.”

바로 드래곤이라는 거대한 기둥에.

천영은 갑작스레 가슴이 무거워지 고 있음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무거 워서,사람들이 기대는 것이 너무나 도 부담스러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천영 스스로가 무너지 고 싶어도 드래곤의 단단한 정신력 은 절대로 무너지지 못했다. 드래곤 이란 원래 이런 부담을 짊어지고 살 아가는 종족이었다.

“나는 너무 지쳤어. 20대부터 시작 해서 40년이야. 40년을 이 마탑에게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 금 쉬고 싶군.”

제이나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 또한 자신의 반평생을 레이븐에게 바쳤다. 제발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네 인생을 살라며 다그쳐도 그녀는 레이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제이나는 레이븐을 위해 자신의 인 생을 모조리 포기해버린 채였다.

“……제이나 책임도 져야지. 나 때 문에 결혼도 안 하고,지금까지 노 처녀로 살고 있어. 심지어 성격도 더러워. 그런 여자 누가 데려가겠 어?”

레이븐이 샌드위치를 한 입 깨물었

다. 굉장히 퍽퍽하고 맛이 없었다. 금색 별 마탑주가 먹기에는 적합하 지 않았다.

그래도 먹는다.

이 샌드위치는 무려 4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샌드위치였다. 레이븐 이 마탑주가 되기 전부터,이곳에서 자리를 지치고 있던 그런 샌드위치 가게.

지금은 맛이 없어 아무도 손님이 찾지 않았지만 레이븐 만큼은 이곳 을 꿋끗하게 찾아간다. 돈 한 푼 없 던 시절 그에게 공짜 샌드위치 하나 를 대접해줬을 뿐인,샌드위치 가게 에 대한 보답이다.

“마탑주 해라.” “난 그런 거 못•

“못 한다고 하지 마. 해야만 해. 금색 별 마탑은 현재 그리픈 대륙에 서 가장 굳건한 기둥이다. 그리고 그 기둥의 자리를 네가 물려받아야 해. 이 자리는 애초에 드래곤을 위 해 설계된 자리였어.”

천영이 고개를 푹 숙이자,레이븐 이 피식 웃었다.

“뭐,당장 줄 생각은 없어. 인수인 계도 해야 하고 내가 처리해야할 일 도 많이 남아있으니까. 하핫,뭘 그

리 쫄았어? 이거 별거 없다니깐?”

레이븐은 천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는 부담을 모두 덜어낸 채였다. 이렇게나 짧은 시간 내에 고민을 간단히도 떨쳐냈다. 그 리고 그는 현명한 금색의 눈동자로 레이븐을 꿰뚫어보려 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탑주 그만 두려는 이유가 뭐야?”

정곡을 찔렸다.

레이븐은 말을 삼켰다. 솔직히,잘 모르겠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말했잖아. 지쳤다고. 그게 끝이 야.”

그의 대답에 천영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레이븐이 그렇다면 그렇다 고 이해해주는 것이 예의였으니까. 이윽고 레이븐이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에서 내려갔지만 천영은 한참이 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천영의 생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 는 것은 단 하나였다.

마지막에 일어나기 직전 레이븐의 표정이 마치 네청과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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