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82화
50장 어른들은 왜 솔직하게 말하 지 않는 걸까?
“급하게 챙겨오느라 제대로 수선 못했는데,그래도 꽤 잘 어울리네 요.”
“응……
천영은 몸을 반쯤 덮은 로브의 소
매를 손가락으로 살짝 쥐었다. 소매 가 워낙 길어서,손가락 끝까지 전 부 뒤덮을 정도였다. 원래는 레이븐 이 입기 위해 제작해둔 로브였기에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금색 별 마탑의 마탑주만이 입을 수 있는 이 황금빛과 우윳빛깔이 섞 인 로브는 본디,레이븐이 입을 경 우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정도의 로브였다. 하지만 천영이 입으니 옷 이 펑퍼짐하게 마치 치마처럼 퍼져 서 발목까지 아슬아슬하게 덮는 정 도가 되었다. 또한 소매는 어떠한가. 굉장히 넓게 펴진 소매는 가져오기
전에 길이를 조금 조정했음에도 불 구하고 굉장히 길었다.
뒤에서 로브를 입혀주던 로서진이 혀로 입술을 살짝 할으며 말했다.
“돌아가서 다시 수선해달라고 할게
요.”
“에이,또 입을 것도 아닌데 뭘. 내껀 따로 제작하고 있다며?”
“네,근데 아무래도 금색 별 마탑 주 전용 로브를 제작하다보니 기간 이 좀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요.”
“어느 정도나 걸리는데?”
“음…… 삼 개월 정도는 족히 걸릴
걸요?”
“그렇게나?”
하긴 그럴만도 했다.
이번에 새로 만들고 있는 천영 전 용 로브는 무려 넥스터들만이 가지 고 있는 고유 축복인 ‘아이템’을 접 목시킨 것이었다. 물론 넥스터 장인 이 만든다면 뚝딱 제작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넥스터가 아닌 그리픈 대륙의 장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아이템.
물건 자체에 강력한 힘이 길들어있 는 것을 칭하는 단어. 통상적으로
마법사들이 제작하는 아티팩트나 대 장장이들이 만드는 무구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이 아이템 은 극소수의 넥스터만이 ‘특별한 재 료’를 가지고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는 점에서 그 희소성이 굉장히 높았 다.
하지만 천영은 아주 최근 아이템 그 자체에 걸려있는 술식이 ‘용언’ 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 아주 긴 시간을 투자했다. 비록 시스템창의 존재유무로 인해 그 아이템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진 것을 제작
하는 것은 가능해졌다.
“분명 굉장한 로브가 탄생할 거예
요.”
“그렇겠지. 거의 100년이 넘도록 로브 하나만 만드신 분들이라고 했 는데……
추정컨대 넥스터 장인이 만든 것과 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 어마한 ‘아이템’이 탄생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까진 그 것을 입을 수 없다는 것.
천영은 로브의 소맷자락을 붙잡은 뒤 코에 가져가서 킁킁댔다.
“홀아비 냄새나.”
“……그거 한 번도 안 입었다고 했 거든요.”
“원래 한 번도 안 입은 옷에서도 주인의 냄새는 배기 마련이야.”
“무적의 억지논리네요.”
“반박해보시지.”
“유치하니까 제가 진 걸로 하죠.”
유치한 말장난을 시작하면 언제나 항상 로서진이 진다.
서천영은 정말로 유치했으니까. 그 러므로 유치하다고 놀려도 별 타격 이 없다. 그러므로 로서진은 주제를 의도적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아빠 옷 몰래 흠쳐 입은 어린애 같네요.”
“별로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닌 걸.”
-하지만 저 비유가 딱 들어맞는 걸?
이런 대화로 주제를 옮기게 되면, 항상 천영이 불리하다. 아무리 말로 상대방 등쳐먹기 좋아하는 천영이라 지만 이 건에 대해서는 어린애가 상 대라 해도 이기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천영은 입을 다무는 것을 택했 다. 아주 훌륭한 판단이다.
“옷 드립게 크네,진짜.”
주섬주섬 손목을 걷어 시계를 확인 한다.
“회담 시작 30분 전이네. 슬슬 가 자.”
“네.”
아무래도 전 세계에 있는 일인자들 이 모이는 장소이니 만큼 회의장은 평범하지 않았다.
하늘을 찌를 둣 높이 솟아있는 아 웰리우스 대성당의 꼭대기 층에는
‘진실을 울리는 종’이라는 거대한 종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의장은 그 종이 위치한 곳의 바로 위층,하늘이 보이는 거대한 원반 형태의 자리였다.
반투명한 마법진으로 인해 사방에 서의 침입이 완벽하게 차단되어있 다. 그리고 금색 별 마탑의 마법사 세 명을 포함해 각 12개 마탑의 마 탑주들과 호위 마법사들이 모여 있 으며 몇 개월이나 공을 들인 결계가 쳐진 상태였다.
좌석은 50개가 넘어갔다. 자국에서 벌어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참석하 지 못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참석한 채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가 한 국가의 ‘수장’들이었다. 말을 할 때에 매우 조심스러워야만 하는 인물들. 허나, 이 자리는 모두 동등한 입장으로 모 여 있기 때문일까,날아다니는 대화 에 굉장히 살이 서려있었다.
한마디,한마디에 묵직한 무언가가 담겨있었고 그것을 대하는 입장에서 는 굉장히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하나둘 좌석에 사람들이 착 석하기 시작하고 맨 마지막으로 서 천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은연중에 각자의 목표를 하
나씩 품은 채 이 자리에 나와 있었 다.
무려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수장들 이 모인 이 정상회담의 주제는 그리 픈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군대를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연합을 결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픈.
이 대륙은 너무나도 넓고,또한 주 인 없는 땅이 굉장히 많았다. 이종 족들은 저들의 땅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들은 그러지 못 했다.
그들의 영역 내에 속해있는 땅 중
에서는 그 누구도 지키지 않는 빈 공간이 있었고,그곳에 ‘게이트’가 발생한다면?
누구도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당장 그리픈에 위협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군대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분명 처음 게이트가 발생했을 당시 에만 해도 그들은 어떻게든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철저히 싸움을 하였 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보의 식이 열어지고,싸우는 쪽만 싸움을 지속하고 싸우지 않는 쪽은 계속해 서 군대를 비축하고 있는 현상이 발 생하여 군대를 보내지 않으려고 하
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벌써 이계의 게이트에 의해 잠식당한 땅이 4군데나 되었 다.
천영은 이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될 것을 예상하 고 결국 ‘정상회담’이라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을 감행한 것이다.
저벅.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과 미녀들을 보아왔을 왕들조차 천영을 보자마자 순간이지만 혼을 쏙 빼버릴 정도로 말을 잃었다. 사진으로 그 얼굴을 자주 봤다지만 고작 그런 것에는 그
의 외모를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몇몇 왕들의 얼굴에는 탐욕이 어른 거렸고 몇몇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 으며 몇몇은 경외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이내,그들은 공통적 으로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 다.
아무리 어린 외모라지만 그는 드래 곤이다.
그 사실을 입증하듯 이 자리에 있 는 그 어떤 왕보다도 더욱 강한 패 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고개가 숙여지는 그 무게,위엄,위 세. 단지 그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왕들이 천영에게 감히 ‘제안’을 하 러 온 것을 순식간에 철회하고 말았 다.
-아주 개똥 폼을 잡는구만.
파트라슈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천영은 지금 아주 극세미량의 드래 곤 피어를 흩뿌리는 중이었다. 누구 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약하게. 그것만으로도 천영은 가볍게 좌중을 압도할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금색 별 마탑 의 차기 마탑주,서천영이라고 합니 다.”
그는 자신을 금색 별 마탑의 차기
마탑주라고 소개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이 다.
천영은 이 자리에 금색 별 마탑의 마탑주가 아닌,‘드래곤’으로서 참석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금색 별 마탑의 마탑주라 할지라도 이 소집에 참여하는 이들은 절반 이 하로 줄어들 것이다.
왜냐,이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손해를 보는 이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 허나 거 절할 수 없는 것은 상대가 드래곤이 기 때문이다.
‘근데 드래곤이라도. 우리가 호락
호락하게 넘어갈 수는 없어.’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었다. 아주 조금의 손해가 일어날 새면 입에 거 품을 물고 발광을 한다. 특히,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인원들은 그 정도 가 더욱 강하게 돋보이는 이들이었 다. 왕이라는 자리는,그 정도의 악 바리가 없으면 지킬 수 없는 자리이 니까.
“제가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알다마다.
어떤 나라의 군대는 놀고 있으며, 어떤 나라의 군대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게이트를 막기 위해 고군 분투를 하고 있었다.
천영은 그런 군대를 유동적으로 움 직이길 원했고,그래서 ‘연합’을 제 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도 반발은 존재할 것 이다.
천영은 정치를 할 줄 모른다. 정치 인들 사이에서는 흔히 사용하는 돌 려 말하기나,심리전이나,말 한 마 디로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 등등 전부 천영이 가지고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아무리 드래곤이
라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어우러 져 나오는 것들은 가질 수 없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천영은 어떻게 든 ‘정치’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정 치 좀 해봤다는 사람들을 불러 교육 을 받기도 했었다. 그들이 어떤 식 으로 말을 돌려서 까는지,원하는 것을 어필할 때 어떤 식으로 이야기 를 은근슬쩍 꺼내는지,자신이 손해 를 보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이익을 죽이는 방법이라든지.
그것들을 대략 30분 정도 배운 천 영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난 정치인 체질이 아니군!’
결론적으로 때려 쳤다.
그러고는 단순 명료하게 접근하기 로 했다.
“흠흠,메이지 서천영. 그 연합에 대해서 보내주신 서류는 모두 읽어 보았습니다. 현 인류의 군대가 얼마 나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해 서,그리고 연합을 하지 않을 경우 그리픈이 완전히 게이트에 잠식당할 확률과 시뮬레이션 등의 자료까지 전부.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천영은 자신이 금색 별 마탑의 내 에서 조사한 것을 꼼꼼하게 적어서 모든 국가에게 뿌렸다.
기본적으로 금색 별 마탑은,다른 국가 마법 기관에 비해 100년 이상 은 마법이 발달해있을 정도라는 소 문이 있을 정도로 그 능력이 뛰어났 다. 아예 그리픈 대륙의 마법 발전 은 금색 별 마탑 혼자서 하는 것이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 천영이 보내준 이 서류에 대해 반박 할 수 있는 국가는 아무 곳도 없다.
즉,조작하기가 굉장히 쉬웠다.
‘조금 위기의식을 줘야했거든.’
지구에 있던 슈퍼컴퓨터조차 지구 의 멸망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하 물며 컴퓨터조차 없는 이 덜떨어진
세계에서 게이트를 예측해봐야 얼마 나 예측하겠는가.
천영은 그곳에다가 대충 아무런 수 치나 적어 넣었고,이 세상의 멸망 이 앞당겨지고 있다는 문장을 굉장 히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 추상적인 수치 하나만 을 믿고 군대를 파견하기엔 저희들 의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당장 그 리튼 산맥에서 매일 쳐들어오는 오 크 부대를 막아내기 위해 매년 만 명 이상의 군인이 파견되고 있고 또 한 중앙 그릭시아 호수에서 올라오 는 물귀신을 정화하기 위해 수천 명 이상의 병력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지금 금색 별 마탑에서 조사한 것 을 추상적이라고 하셨나요?”
“금색 별 마탑의 마법력을 믿지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들은 이 단 순한 숫자 하나에 군대를 파견할 만 큼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천영의 고민은 3초를 넘어가지 않 았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슬링 웡 왕국의 국왕 하네스 슬링 이라고 합니다.”
“홈.”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이 노인 역
시 왕이다. 왕에게 존대를 받는 것 은 썩 어색하다.
‘추상적인 숫자놀음이라고 말했으 면서,저도 추상적인 말을 쓰는군.’
그를 비꼬는 법은 간단했다. 지금 당장 서천영에게는 무려 금색 별 마 탑에서 조사한 정보력이 손에 쥐어 져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슬링 윙 왕국의 총 군사력을. 그리고 슬 링 국왕이 언급했던 그리튼 산맥과 그릭시아 호수에 파견되는 병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또한,그곳에 투여되는 병력은 고 작해야 총 군대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천영은 지금 당장 이곳에서 이 사 실을 낱낱이 밝혀 슬링 윙 국왕을 까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건 ‘금색 별 마탑주’로서의 서천영 의 힘이다. 천영은 지금,금색 별 마탑주가 아닌 드래곤으로서 이 자 리에 참석한 참이었다.
그러니 드래곤답게 행동한다.
“그럼 하지 마세요.”
“……예?”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심플한 대답 에 순간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 또한 한 국가 의 국왕이다. 사람들이 왜 언어를
돌려서 쓰겠는가. 서로를 항상 공격 하면서도,그들은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킨다. 아주 최소한의 예의는 남겨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의 정치였고, 천영은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인간들의 정치 스타일에 맞춰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안 하셔도 돼요. 저는 강요 안 합 니다.”
“그 말은……
“근데.”
슬링 국왕이 뭐라 말하려 하자,천 영은 뚝 끊었다. 어차피 그 뒤로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당장 슬링 웡 왕국이 위험하 지 않다고 해서,언제까지고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떻게 하시죠? 저 는 추상적인 결과물이라도 들고 왔 습니다만 슬링 국왕께서는 그조차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그게……
“실례지만 슬링 웡의 수도가 어디 지요?”
그 말에 또다시 침묵이 감돈다. 슬 링 웡 또한 선진국인데, 그 수도조 차 모르고 있다니. 명백한 무시였다.
하라움입니다.”
“예,만약 하라움의 한복판에 게이 트가 갑작스레 열린다면 국왕께서는 국가의 힘만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럴 리가 없다.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고 있던 록 제국이 불과 30분 만에 멸망한 것 이 고작 1년 전의 일이다. 천영은 거기에 결정타를 먹였다.
“그리고. 인간들이 감당 불가능한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일일이 막아 준 것은 누구였죠?”
굳이 질문이랄 것도 없었다.
서천영이었다.
“이건 보험입니다. 무조건 어느 한 쪽보고 손해를 보라고 하지 않아요. 다만,일부의 군사력을 떼어 파견함 으로써 훗날 자신들에게 위험이 닥 칠 경우,최소 수십 배 이상의 이득 을 볼 수 있죠. 연합에 속해있는 것 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모든 국가의 도옴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의 인간들은 ‘왕국’이라는 선을 긋고서 서로를 돕지 않았다. 그로 인해,막을 수 있는 게이트도 뻥 뚫려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심지어는 바로 앞에서 사건이 터지 고 있는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경
우도 있었다.
하지만 연합을 하게 된다면,그럴 일은 사라진다.
게이트는 어디에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고,그 재앙이 당장 자신의 집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 장 또한 없다. 그러니 보험을 드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실언을 했 군요.”
결국 슬링 국왕은 천영의 회유에 넘어갔고 다른 왕,마탑주 및 대통 령들 역시 이 대화로 인해 넘어오게 만들 수 있었다.
‘역시 본보기로 한 놈 잡아다 쥐어 패는 게 답이란 말이지.’
이야기는 척척 진행되었다.
연합을 맺기로 한 이상,더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과연 어느 지역을 어느 국가가 관 리하는가.
이 그리픈 대륙에는 ‘주인 없는 땅’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그 주인 없는 땅 중에서는 사람들이 갖고 싶 지 않았기 때문에 버려진 땅이 있는 가 하면,누구라도 탐내고 있기 때 문에 누구도 가지지 못한 땅이 있었 다. 5개의 왕국 사이에 둘러싸인 킬
라얀 산맥의 경우 그것이 특히 심했 다. 누구라도 갖고 싶은 땅. 킬라얀 산맥이 바로 그런 장소 중 하나였 다.
미리 계획을 짜둔 천영이 커다란 스크린 화면에다가 지도를 띄우고서 전략 및 거점에 대해 설명하던 와 중,킬라얀 산맥의 이야기가 나오자 가장 먼저 가장 인근에 위치한 셜럼 공화국의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저희 셜럼에서는 킬리얀 산맥에 대해 아주 비중한 영향을 미치고 있 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산맥 근처에 서 자라 그곳을 뛰어다니고,또한 군인들 역시 훈련을 할 때면 산을
타고 오르죠. 저희 국가는 1,500년 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킬리얀 산 맥을 수호하며 그곳의 이종족을 모 두 몰아내고,또한 그곳에서 자라는 몬스터를 모조리 퇴치하고 있습니 다.”
천영이 멀뚱멀뚱 쳐다보자,대통령 은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아마 킬라얀 산맥의 지리에 대해 저희만큼 잘 알고 있는 국가는 없을 것입니다.”
즉,셜럼의 대통령은 아주 살짝 돌 려서 말했다.
뭐든,기본적으로 절대 원하는 것
을 직접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야속하게도 인간들은 모든 것을 탐 하면서도 그것을 겉으로 표출할 수 없는 병에 걸려버린 둣싶었다. 그들 은 솔직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 다. 정치판이란 본디 그랬다.
그러나 천영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네.”
이야기는 장황했으나 참으로 간단 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ᅮ,,
“이제부터는……
짧게 건성으로 대답한 뒤 천영이 주제를 옮기려 하자,셜럼의 대통령
이 황급히 말문을 열었다.
“그,그것이 끝입니까?”
“네,왜요?”
참으로 유치하고,참으로 뻔뻔하고, 참으로 황당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 다. 셜럼 공화국의 대통령이 하는 말에 저런 식으로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천영은 정치를 몰랐다. 아니,인간들의 정치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척을 하기로 했다.
드래곤이란 인간들의 정치에 관해 알 필요가 없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국가의 수장들에게 각인을 하고 있
‘같잖은 정치질로 날 회유할 생각 은 꿈도 꾸지 말라.’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 빙빙 돌려 서 말하는 것은 미리 쳐내야만 했 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뭡니까? 자꾸 이상한 얘기 하지 말고 그거나 말해 보세요.”
“흠흠,그게……
“서북부 킬라얀 산맥 전투지휘권을 넘겨달라는 겁니까?”
“커흠흠,큼,크흠. 그건 아니지 만.”
물론,속마음과 입은 따로 논다. 인간의 본능이다. 명백히 눈치를 살 피며 헛기침을 하는 꼬락서니가 어 린애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하 지만 서천영은 여전히 직설적이었 다.
“아,그게 아니라구요? 안타깝네 요. 그럼 전투지휘권은 루지트리국 에게 주도록 하죠.”
“예?”
설마 서천영이 이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셜럼의 대통령이 눈 을 휘둥그레 뜨자,서천영이 뭔가 문제가 있냐고 고개를 갸웃한다.
“싫다면서요? 그래서 다른 사람 준 겁니다만. 안타깝게 됐네요. 저는 셜 럼의 대통령 각하에게 정말로 전투 지휘권을 부여하고 싶었는데.”
“아,으흠. 그게 말이죠……
“바쁘니까 이 건은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 화이트 페슬 데저트에 발 생한 이상 현상에 대해 대처할 국가 가 필요합니다.”
“예,마탑주님. 사실 저희 세 연합 국에서는 이미 그것에 대해 논의한 바가 있는지라.”
그렇게 해서 서천영은 쓸데없이 말 을 꼬아서 이 자리에서까지 이득을
취하려는 자는 가차 없이 쳐냈다. 천영에게 ‘정치’는 중요치 않았다. 천영은 그 누구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드래곤이었기에,또한 금색 별 마탑의 마탑주였기에.
그렇게 해서.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_정상회담년r 상당히 기묘한 흐름으로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