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83화
51장 재활용 쓰레기 VS 일회용 쓰 레기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맡긴 채, 천영은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WIP석이기 때문일까,의자가 굉 장히 푹신하고 바로 앞쪽에는 테이 블까지 놓여있었다. 주변을 둘러보
면 다른 좌석에서는 몇몇 귀족들이 와인을 따고 있거나 저들끼리 수다 를 나누고 있었다. 오래 전 유행했 던 탐정 소설 속에서 등장할 법한 열차였다.
‘여기서 살인 사건이라도 일어나면 미스테리 열차 살인 사건인데 말이 지.’
획획 지나가는 풍경에 눈이 현혹된 다. 슬쩍 천영은 자신의 왼쪽 좌석 을 확인했다. 로서진이 마법서를 읽 고 있었다.
“잠이나 좀 자지.”
“공부 해야죠.”
로서진은 금색 별 마탑에 처음 들 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저런 식이었다.
언제나 뭐든지 열심히 한다. 일거 리가 없으면 찾아서라도 하는 편이 었고,찾아도 없으면 청소를 하거나 마법서를 읽곤 했다.
백화연이 온 뒤로는 시간이 나는 틈틈이 그녀에게 검술을 배우기도 했다.
한창 로서진이 검술에 푹 빠졌을 때는 없는 시간까지 내서라도 백화 연에게 검술 지도를 받고는 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간 뒤,검술 지
도를 해줄 사람이 없자 스텔라아우 램의 근처에 있는 체육관에 나가 저 혼자 연습을 하는 모양이지만 어쩐 지 영 늘지를 않는 모양이다.
‘백화연……:
그녀는 아마 마음이 무너져 내린 천영을 제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일 것이다.
네청이 떠나간 뒤,천영은 몇 개월 이나 이별의 슬픔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것은 퍽 낯선 느낌이었다. 천영에게는 애초에 가족도 없고,인 연이랄 것도 없었다. 부모님이 만들 어주신 음식 맛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에 헤어졌고 친구라
는 것은 둔 적도 없었으며 현실에서 의 시궁창 인생에 여유를 둘 만한 친구도 없었다.
만남이 없으니 이별도 없다.
그런 천영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인 연과,또한 그것에 대한 헤어짐.
네청은 천영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 한 존재였다. 그녀는 천영의 마음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차지해,마치 연인이기도 했고 부모님이기도 했으 며 친구이기도 했고 스승이기도 했 다. 자신이 만나지 못했던 그 모든 인연들이,네청이라는 단 하나의 존 재에 버무러져 섞여들어가 있었다.
천영은 네청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 었다.
덕분에 네청이 사라지자,그의 마 음이 무너져 내렸다.
로서진이 읽고 있는 마법서를 보던 천영은 자신이 마법서를 아예 읽지 않은 것이 벌써 일 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리픈에 와서 매일같이 책을 곁에 두 고 살다보니 이제는 활자 중독에 걸 려버렸다. 그래서 책을 떼어놓고 살 지는 않지만 마법서는 읽지 않는다.
아니,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인간들의 마법서를 이해하기가 힘 들어졌다.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였다. 드래곤 슬레이어,마스터 스피루나와의 싸 움에서 천영의 용언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자신도 모르는 새 사용 하지 않고 있던 용언을 마음껏 뿜어 낼 수 있었고,드래곤으로서 감춰져 있던 본능이 조금씩 깨어났다.
용언을 거의 완벽하게 다룰 수 있 자,인간들의 마법에서 점점 멀어지 기 시작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저 간단한 불꽃 마법을 쓰는 데…… 왜 저런 복잡한 공식을 쓰는 거지?’
‘저기에다가 왜 귀찮게 3번의 써클 을 굴려야만 하는 거지?’
‘고작 이 정도의 수준이 대륙에서 100명도 사용하지 못하는 고위급 마법이라고?’
‘잠깐,이건 내가 공부했던 건데 도…… 이해가 가지 않아. 굳이 이 렇게 해야만 하는 건가?’
그것은 천영에게 있어서 꽤나 힘들 고 가혹한 일이었다. 마법이라는 것 을 ‘공식’으로 자연스레 이해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그냥’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인간 마법사들에게 무언 가를 설명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 다.
누군가가 찾아와서 이 마법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말하면,천영은 두 눈 을 멀뚱멀뚱 뜰 수밖에 없다. 그에 게 있어서는 꼬리를 움직이는 법을 설명해야만 하는데 그걸 어떻게 설 명하겠는가. 여태까지는 꼬리를 수 학 공식으로 정립해서 어떻게든 억 지로 움직였는데, 자연스레 움직이 는 법을 터득하자 그 모든 것을 잊 어버리고 말았다.
이 느낌은 마치…… 눈을 자연스레
깜빡이다가 어느 순간 깜빡이는 것 을 인지해버린 뒤로, 자연스레 깜빡 이는 법을 까먹은 것과도 비슷했다.
이건 천영에게 있어서 꽤나 고통스 러운 일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재미를 붙였던 마법 이라는 학문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배움으로 써 느끼는 그 희열,내 수준이 점점 높아지는 것에 붙는 재미,더 복잡 한 마법을 알아내고 쉽게 풀어내는 공식을 찾음으로써 새로운 경지로 발전하는 그 쾌감.
그 모든 것이 무뎌졌다.
마법은 이제 천영에게 있어서 팔다 리를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 워졌다.
네청이 떠난 뒤로 모든 것이 변했 다.
그는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마법 에 대해 자문하지 않는다. 천영의 일상에서 네청에게 마법에 대해 질 문하고,네청에게 용의 마법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은 그의 일상이나 마 찬가지였다. 그는 그것이 굉장히 즐 거웠고, 언제까지고 계속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네청이 사라진 뒤로 어쩐지 삶이 퍽퍽해졌다.
그래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애처럼 부모님이 어디로 떠나버렸다 고 징징대면서 주저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그랬었지.’
그랬었다. 지금은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네청이 죽은 것도 아닌데,왜 궁상 맞게 축 처져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금도 이 차원 어딘가를 떠돌아다 니며 어떤 세상을 용으로서 구원하
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이제 용이 된 천영에게는 아주 시 간이 많이 남아있었고.
성체가 되면 천영 역시 차원을 자 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찾으러 나설 것이다.
‘한 차원에 둘씩이나 용이 존재할 필요가 굳이 없어서 떠났다고?’
천영은 그녀에게 찾아가서 아주 시 원하게 반박을 해줄 생각이었다.
한 차원에 둘씩이나 용이 존재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만 존
재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툭.
책장을 덮은 로서진은 힐끗 천영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눈 빛에 강한 의지가 어른거리고 있었 다. 1년 전,그 사건이 일어나기 이 전보다도 훨씬 강렬한 눈빛이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듯 천영 역시 변해가고 있었다.
웨지스턴.
자신을 그리 소개한 남자의 뒤를 쫓으며 맥골라스 머치팽은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인근의 도시와는 꽤나 멀리 멸어진 외진 장소였다. 생명체를 잡 아먹기 위한 가시가 도처에 널려있 었고 식인 식물이 그들을 틈틈이 노 리고 있었으며 흙 속에는 지금도 지 하 생명체들이 그들을 뒤쫓고 있었 다.
굳이 이런 위험한 장소를 고른 이 유를 모르겠다.
“웨지스턴 씨,이곳은 ‘그린 필드’ 에서 한참이나 벗어났습니다만.”
모든 ‘괴수’ 종류를 완벽하게 소탕 하여 100년 이상 몬스터가 출몰하 지 않으면 그곳은 그린 필드로 지정 이 된다. 그리고 이 근방에는 그린 필드가 꽤나 넓게 퍼져 있었다.
맥골라스 머치펭은 당연히 그린 필 드를 돌면서 ‘예런’이라는 대상을 찾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웨지스 턴은 이런 험난한 오지를 돌아다니 고 있을 뿐,도저히 사람을 찾을 생 각이 없어보였다.
“내가 그놈을 일 년이 넘도록 쫓아 다니고 있어. 이제는 그 자식이 어 떤 크기의 숟가락을 쓰는지,어디서 똥을 누는지,무슨 맛 과일을 좋아
하는지까지 다 꿰차고 있다고. 그만 불평하고 그냥 따라와.”
“……그럼 납득이 갈 만한 이유를 설명해주도록 하시죠.”
웨지스턴이 ‘내가 너보다 잘 알아 임마!’ 라고 해봐야 맥골라스 머치 팽은 쉽게 납득하는 인물이 아니었 다. 맥골라스의 눈에,웨지스턴은 너 무 단순하고 방정맞고 일을 쉽게쉽 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그가 상당 히 강하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과연 믿어도 괜찮은지에 대해 자문한다면 글쎄,라고 대답하겠다.
‘신성결계가 어느 정도 구축이 되
어서 따라 나서긴 했지만…… 정말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이군.’
맥골라스의 불안한 표정을 눈치챈 젓인지 웨지스턴이 머리칼을 벅벅 긁었다.
“하여튼 마법사들은 설명을 너무 좋아한다니까. 잘 들어봐. 일단 그 예런이라는 놈의 목표에 대해 알아 야 될 게 있어.”
“목표 말입니까?”
“그래,목표. 그 놈은 ‘게이트’를 열 생각이야. 그것도 일곱 다리의 연결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자신 만의 독자적인 게이트를.”
“……그게 어떤 게이트죠?”
“몰라 인마. 그런 건 관심 없어. 중요한 건 그거지. 너 ‘만추의 기둥’ 을 제작하는 데에 일정한 제물이 필 요하단 건 알고 있어?”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맥골라스 머치팽이 침묵으로 대답하자 웨지스 턴이 그럼 그렇지 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일곱 다리의 연결자는 어딘가에 쳐박힌 채로 그런 제물들을 어떻게 든 공급해온단 말이지. 헌데,예런 저 미친놈은 그룹을 탈퇴라도 한 것 인지 자기가 직접 제물을 끌어 모으
고 있어.”
“……얼마 전 멸망한 마을이, 제물 이라는 의미입니까?”
“그래! 그건 잘 이해하네. 우리 친 구 아주 똑똑해.”
웨지스턴이 비꼬면서 그렇게 약올 렸지만 맥골라스 머치팽은 그런 놀 림에 일일이 답해줄 만큼 유치한 편 이 아니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제물을 한번에 많이 구할 생각이 었다면 마을 하나를 궤멸시키고,소 식이 퍼지기 전에 근처에 있는 다른 마을을 치러 갔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이미 제물이 충분하단 소리인가?’
……혹은 인근의 어딘가에서 ‘마지 막 제물’을 구하고 있다던가.
어느 쪽이든 좋지 않았다. 맥골라 스 머치팽의 표정이 싸하게 가라앉 자 웨지스턴이 피식 웃었다.
“이제 내가 왜 이런 곳으로 다니는 지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추리가 사실이라면 예런의 준 비는 모두 끝났다는 이야기나 마찬 가지였다.
‘……곧 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겠
이 근방에서 가장 복잡하고 위험한 장소인 이 그린 필드 외 지역은,불 법으로 특별한 마법을 펼치기에 아 주 제격인 장소였다.
예런은 자신이 사람들을 몰살시켰 단 사실이 금방 정보부에 들어갈 것 을 알았을 것이고 그린 필드 바깥으 로 도망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상식 이었다.
웨지스턴은 처음부터 그런 전제를 깔아놓고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맥골라스 머치팽은 웨지스턴에 대 한 평가를 전면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방정맞고,예의도 없으 며 언제나 미친놈처럼 싱글벙글 웃 고 있었지만…… 적어도 생각이 없 는 사내는 아니었다.
아니,오히려 그는 맥골라스 머치 펭보다도 훨씬 더 이런 일에 대해 철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