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88화
52장 하이 엘프의 제국,카나라시 움
길르텐 펄 리쉬는 감았던 눈을 떴 다. 텔레파시가 전달되어 온다.
-금색 별 마탑에서 진한 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그런가.”
-예,금탑주 레이븐을 선두로 해 서,‘그리픈 연합’이 대규모로 움직 이기 시작했습니다. 대륙 곳곳에 심 어져 있던 저희들의 뿌리가 하나씩 뽑히고 있습니다.
“상관없다.”
-그렇습니까.
앞으로 길르텐이 일곱 차원을 통치 하는 대제국을 세우게 되면 지금 죽 어가는 이들 모두 자신의 백성이 될 터였다. 하지만 길르텐 펄 리쉬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솔렝 오르앙은 의문을 아주 잠시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그들은 곧
길르텐 펄 리쉬의 힘이자 전력.
잃으면 잃은 만큼 손해가 극심하 다.
결국 솔렝 오르앙은 처음으로 의견 을 제시한다.
-……아직 남아있는 전력은 꽤 많 습니다. 특정 포인트를 집어 집결시 킨 뒤,전투 준비를 시키면 충분히 군대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솔랭 오르앙이 자신의 머리 를 고속으로 굴려 도출해낸 결과였 다. 질 수가 없다. 자신들은 다른 차원의 힘을 받아들인 마법사들이고 그들은 고작해야 그리픈 하나밖에
모르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으니까.
그러니 이대로 당해주는 것은 억울 했다.
길르텐 펄 리쉬는 솔렝 오르앙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결국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 좋다. 전투 준비를 시키 는 편이 낫겠구나. 앞으로 ‘통치’를 시작하기 전,힘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알겠습니다.
‘통치’라,웃기기 짝이 없는 단어였 다. 애초에 길르텐 펄 리쉬는 통치 자체에 재능이 없었다. 그녀가 아무
리 막대한 힘을 가지고 일곱 차원을 모두 통합하여,자신의 지배하에 두 려고 해봐야 금방 깨어질 것이다. 천 년의 경험을 통해 그녀는 눈앞에 미래의 상황이 훤히 보였다.
차원 곳곳에서 반란군이 발생할 것 이고,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일곱 다리의 연결자라도 그들을 하 나하나 막는 데에 급급하다가 결국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애초에 길르텐 펄 리쉬는 통치라는 것을 할 계획이 없었다. 그녀의 목 적은 단 하나,일곱 개의 그랜드 디 멘션을 모조리 연결해 이 차원계 자
체를 찌꺼기밖에 남지 않은 드래곤 에게 제물로 바친다. 그리하여,그 드래곤의 권능 중 하나를 손해 넣는 것.
차원 여행자의 길잡이 (Dimensional traveler’s Assistant)
오로지 드래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능이자,드래곤들이 차원계를 자 유로이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능 력. 길르텐 펄 리쉬는 그것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크라서스와의 영접 준비는 끝났 나?”
-예,차원계가 연결되는 힘이 강해
져서,이번에는 버틸 수 있을 겁니 다.
“다행이구나.”
크라서 스.
육신을 잃은 채,구천을 떠돌고 있 는 용의 영혼.
길르텐 펄 리쉬는 우연찮게 그 영 혼을 발견했고,그 즉시 기회라고 생각했다. 용의 영혼을 자신이 받아 들인다,그리하여 용의 권능 중 하 나를 손에 넣는다. 참으로 심플한 계획이었으나 그 준비 기간은 어마 어마하게 길었고,또한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즉시,머릿속이 웅웅 울려대며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무언가가 파 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냐,너는.
“드디어 대화할 마음이 생겼나보 군.”
-내 몸,내 몸은 어디에 있지?
“네 몸은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아니,네 육신은 아주 오래 전, 이미 산산조각으로 찢겨져 나간 지 오래다.”
크아아악!
크라서스의 비명소리가 길르텐의 두뇌를 강타했다. 하지만 그녀는 잠 깐의 충격만 받았을 뿐,크게 어지 럼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차원계의 연결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증 거였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 몸을 빌려주도록 하지.”
길르텐 펄 리쉬의 그 말에 크라서 스가 입을 다물었다.
아주 달콤하고,또 매혹적인 제안
이었다.
새로운 육신.
비록 드래곤의 몸이 아닐지라도, 새로운 육체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가를 바쳐도 상관없으리 라.
-……고작 인간 따위가,용의 영혼 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후후,그에 대한 준비는 모두 끝 냈다. 내 육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 해,수많은 제물을 준비했거든.”
-그렇군,그래…….
보이지는 않지만 어쩐지 길르텐은
크라서스가 웃고 있다는 둣한 느낌 을 받았다.
-그래서 준비는 언제 끝나지?
“지금 당장.”
-좋다! 대가로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보아라.
크라서스의 말이 끝나자마자,길르 텐이 말했다.
“나의 길잡이가 되어라.”
직후,그들의 영혼이 연결되었고.
일곱 개의 차원계를 가로막고 있던 경계가 아주 조금씩,조금씩 허물어 지기 시작했다.
침묵이 감도는 기묘한 숲이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동물의 발자 국 소리도,바람에 풀숲이 휘날리는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만들어낸 정적인 것 마냥,기 분 나쁜 숲. 하지만 어째서인지 포 근한 숲.
백화연은 그곳을 거닐었다. 한참이나 걸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오 래토톡.
사박.
처음으로 침묵이 깨졌다. 흙과 나 뭇잎이 짓눌리는 소리와 함께 어떤 여인이 나타났다. 백화연은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
“때로는.”
백화연과 눈을 마주한 채,에니안 이 입을 열었다.
“갈 곳을 잃은 영웅들이 자주 이곳 을 헤매곤 했지.”
에니안은 천천히,아주 천천히 걸 어서 백화연에게 다가갔다. 화연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묘한 존 재감을 가진 여인이었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높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 어,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치 개구리가 산을 바라보는 느낌 일 것이다.
“용의 품에서 영웅이 빠져나온 경 우는 정말 드물지. 힘든 결정을 내 렸구나.”
허나.
“그렇기 때문에 너는 이정표를 잃
은 채 여전히 대륙을 떠돌고 있구 나.”
이유를 들을 수 있겠느냐?
에니안이 그리 묻자,백화연은 살 짝 고개를 떨어트렸다.
“저는 천영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요.”
드래곤 슬레이어. 그것이 나타났을 때,백화연은 천영에게 도움을 주기 는커녕 쫓아가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대상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 문에,그녀는 전혀 도움이 될 수 없 었다.
그때 화연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대로 금색 별 마탑에 가만히 상주하 고 있어봐야,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은 없을 것이란 사실을.
그녀는 천영이 좋았다. 그래서 금 색 별 마탑에 머물렀던 것이고,그 렇기 때문에 천영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대륙을 떠도는 삶 이 나았다. 당시에는 끝없이 강해지 는 것에만 집중했었고,그 덕분에 백화연은 넥스터들 중에서도 아주 특출한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 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금색 별 마탑에서 머물기 시작한 뒤로,그녀의 성장은 완전히 멈춰버 렸다.
천영은 아주 달콤한 사과나 마찬가 지였지만,동시에 화연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맹독사과이기도 했다. 차 갑게 식었던 화연의 심장을 녹여준 천영은 그녀의 마음을 너무 녹여버 린 나머지 동력조차 상실시켜버렸 다.
그래서 그녀는 떠났다.
스스로에게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 다.
‘따라오거라.’
에니안이 어딘가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백화연은 그녀의 뒤를 쫓 았다.
한참을 걷자,작은 고목이 나타났 다. 분명 오래된 나무일 터인데,그 크기가 다른 나무들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네게는 목적지가 필요하다.”
에니안이 고목을 향해 손을 뻗었 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살아 움직이 는 것처럼 스스로 가지를 내뻗었다. 그 끝에는 열매가 하나 걸려있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네모난 큐브가 달린 열매가.
큐브를 떼어낸 에니안은 그것을 화 연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을 받거라.”
“이건……
천영을 따라다니면서 본 적이 있는 물건이다.
용의 큐브.
드래곤이 영웅들에게 하사하는 아 이템.
어째서 이것을 에니안이 가지고 있 는가,에 대한 의문을 표하기도 전 에 용의 큐브가 웅웅대며 빛을 발하
기 시작했다.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큐브가 사락사락 돌아가더니 이내 그 형태를 서서히 갖춰나갔다.
새하얀 검신에,푸른색의 손잡이를 가진 검 한 자루.
고작 손바닥만 한 크기였던 큐브는 길이가 lm는 가뿐히 넘는 검으로 변모했다.
백화연은 멍하니 손을 뻗어 그것을 쥐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숲은 온 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눈앞에는 기묘한 아니,조금 평범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웬 여인 두 명이 볶음밥을 우걱우
걱 먹고 있었다.
입에 밥을 한 가득 우겨넣은 채, 셀라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 쳤다.
“배,백카여니다!”
“다 삼키고 말해 셀라임!”
“백화연이 갑자기 나타났어!”
“으아! 얼굴에 다 튀잖아!”
화연은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 았다.
일전에 와본 장소였기 때문에 금방 유추해낼 수 있었다.
이곳은 칼라할 교단의 성당이었다.
벨레인은 절벽의 끄트머리에 서서 검을 바닥에 꽂아 넣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색의 로브를 입 은 마법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명령이 하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철벽처럼,그 녀의 명령 없이는 아주 자그마한 미 동조차 않는 은색의 기사단은 그 시 선에 자신감이 충만하게 차오른 상 태였다.
“전군.”
그녀의 입이 열리자,흑색의 로브 를 입은 집단과 용병들이 모두 무기 를 꺼내들었다. 비록 군대로써 제대 로 된 조합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각종 최첨단 마법 무구와 정체불명 의 마법으로 무장한 일곱 다리의 연 결자들의 전력 또한 무시할 바가 못 됐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들은 무적의 금강은벽 기사단.
설령 가로막는 것이 드래곤이라 할 지라도,그들은 반드시 막아내고 또 한 뚫어낸다.
창과 방패.
그 모든 것을 갖춘 최강의 기사단.
“진격.”
둥,두두두둥!
북과 함께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지상을 강타했다. 그것은 하나의 메 아리가 되어 서로의 소리와 소리에 맞부딪혀 또다시 사방으로 번져나간 다. 그 울림은 고막을 넘어 심장까 지도 자극해,모든 병사들은 심장 박동 수조차 일체된다.
우와아아아!!
일곱 다리의 연결자.
그들은 언제까지고 베일에 싸인 채 숨어서 활동할 수는 없었다.
금색 별 마탑과 그리픈 연합에 의 해 그들의 정체는 속속히 드러나고 있었고,이 싸음은 필연적으로 해야 만 하는 전투였다. 그러므로 그 누 구도 물러날 생각은 없다.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일곱 다리 의 연결자.
그리고 인간들의 연합.
그들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겉으로는 말이지.”
팔리 다리에르의 수장,킨토르는
유체이탈을 사용한 채 그들의 전투 를 지켜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치열하고 대 륙의 운명을 건 싸움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당장 그리픈 연합측 의 전력만 보더라도 고작해야 마그 아티온 제국의 금강은벽 기사단밖에 오지 않았으며,일곱 다리의 연결자 들 역시 극히 일부의 병력일 뿐이었 다.
심지어 일곱 다리의 연결자의 전력 은 금색 별 마탑에서 알아낸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철저하게 사회에 녹아 들어,천하의 금탑이라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숨어있었다.
정치인,상인,기업의 회장,의사, 용병 단장,광대,대장장이. 수많은 직업을 가진 채 사회에 숨어들어 살 고 있는 그들을, 금색 별 마탑이 색 출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내 역할은 처음부터 이거였던 모 양이군.”
웨지스턴이 길르텐 펄 리쉬의 오른 팔이나 다름없는 솔랭 오르앙을 찾 으러 나선 지금,킨토르가 그의 역 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킨토르는 웨지스턴처럼 무식 하게 활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전략가이자 사기꾼이었으며,정치인 이자 사업가였다.
“놈들이 사업을 하든,정치를 하든, 요리를 하든,북을 치든. 똑같은 방 법으로 철저히 짓밟아주지.”
킨토르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