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197화
-……속보 전해드립니다! 정체불명 의 괴수가 서울 시내에…….
-시민 여러분은 즉시 안전한 장소 로 대피를…….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군대는 괴 수에게 패배했고,더 이상…….
뚝
-저,저길 보십시오! 하늘에 사람 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초 능력자들이…….
-괴수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뚜둑.
-……마치,신이 내려준 ‘영웅’
뚝.
-통계적으로,대략 100만 명입니 다.
-사망자 말입니까?
-아뇨.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실종된 인원입니다.
-100만 명이 사라졌다는 말씀이십 니까? 어떻게 된 일이죠?
-일단,실종된 인원들의 공통점
뚜두둑!
-인천시의 절반이 완전히 박살났 습니다. 재건에 필요한 시간은 최소 50년은 걸릴 것으로 보이며…….
뚝!
“하아.”
천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 김이 길게 뿜어져 나온다. 그의 오 른손에 들려있는 멀티 스마트 폰에
서 흘러나오던 30년 전의 뉴스가 재생을 정지하였다. 천영이 거칠게 전원 버튼을 누른 탓이었다.
- 처참하군.
파트라슈가 그리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처참했다. 건물 들은 모조리 무너진 채 아직까지도 방치되어있었고,재건할 생각은 눈 꼽만큼도 없는 것인지 그저 페인트 칠된 펫말에 ‘접근 금지!’가 쓰여있 을 뿐이었다.
“흔적도 안 남았네,우리 집.”
30년 전. 괴수들이 지구를 침공하 였고,갑작스레 나타난 초능력자들
에 의해 성공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피해는 이미 만만 치 않게 입은 상태였다. 그중에서 하필이면 천영이 살던 동네가 속해 있는 것은 짜인 드라마처럼 불행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저벅.
천영은 녹슨 철근과 콘크리트 파편 을 짓밟았다. 내부로 조금씩 들어가 자 기억이 살짝 되살아났다.
“이 거리,기억 나.”
반쯤 무너진 건물이 천영의 기억 속에서 생동감 있게 복원된다.
꼬맹이들이 자주 들락거리던 문방
다 녹슬어서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던 100원 전용 게임기.
매일 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천영이 소주를 사기 위해 자주 찾아 가곤 했던 24시간 편의점.
가까이에 있어서 좋아했던 오래된 치킨 집.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없었다.
-……괜찮아?
“응,뭐. 별로.”
천영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딱히 지구에 미련이라고 할만한
건 없었는데 말이지.”
지구에 두고 온 것은 아무것도 없 었다.
가족,친구,인연,직장,금전,인 생.
그 어떤 것도.
모두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질 뿐인,고작 그런 정도의 가치를 지 니고 있었다.
그랬을 터인데,
“내가 살던 동네가 자빠진 꼬라지 를 보니까……
괜히……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왠지,가슴에 철근을 올린 것처럼 무거워진다.
천영은 조금 더 걸었다. 완전히 무 너진 거리를 지나다닐 때마다 익숙 하던 얼굴들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인간이던 시절이면,그저 스쳐지나 간 것만으로 기억에 남을 리가 없 다. 하지만 드래곤이 된 지금,천영 은 그들의 얼굴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것은 천영에게 있어서,너무나도 끔찍한 저주였다.
폐허가 된 동네를 한참이나 걸었 다. 나름 추억도 많이 남아있고,안 좋은 기억도 있었던 곳. 지금은 모 조리 무너져내린 장소.
“어,여긴.”
그렇게 걷다보니,운이 좋게도 무 너지지 않은 건물 몇 개가 보였다.
오래된 책방이었다.
천영은 그곳의 문을 뜯고 들어갔 다. 주인을 잃은 지 몇 십 년이나 돼서 그런지 먼지가 가득했다.
휘이이잉!
천영의 눈에서 금색빛이 번뜩이더 니,바람이 먼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구석에 있는 책장을 손가락으로 집 어보던 천영은 이곳이 30년 전에 주인을 잃은 책방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 해적 디몽키?’
원숭이 한 마리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 밀짚모자를 쓰고 우주를 항해 하는 내용의 만화책이었다. 이 만화 책은 천영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연 재되었으면서,넥스트로 넘어갈 때 까지 완결이 나지 않던 지긋지긋한 만화였다. 하지만 이 책방에 있는 우주 해적 디몽키는 천영의 기억보 다 몇 십 권이나 더 연재되어,완결 이 나 있었다.
즉,30년 전 습격을 받은 이후에도 이 책방은 주인에 의해 운영이 되었 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이 만화가 정말 끈기 있네. 세상이 멸망할 꼬라지인데도 기어이 완결을 내다니.’
그 외에도 살아생전 과연 완결을 볼 수 있을까 싶은 명코난 탐정이나 사냥꾼 VS 사냥꾼 등등도 완결이 난 상태였다.
그것들을 만지고 있자니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만화를 돌 려보던 때가 생각났다.
“그립네.”
-돌아가고 싶어?
파트라슈가 그리 묻자,천영은 쓰 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나간 일은 모두 지나간 일일 뿐 이야. 나는 지금 당장이 행복해.”
그는 만화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 넣고 책방을 나섰다.
마지막 손님마저 끊겨버린 책방은, 그렇게 적막에 감싸였다.
하성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서 작업을 하는 거야?”
쪽,호로록!
빨대로 ‘달달한 로맨스! 아메리카 노’를 쪽쪽 빨아대는 하성에게 천영 이 답했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거든.”
“뭐,커피 빨면서 이상한 기계 두 드리는 걸?”
천영은 현재 오피스텔 근처에 있는 카페에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것도 노트북 하나를 달랑 든 채로. 카페 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뭔가 알 수 없는 작업을 위해 노트북을 두드리는 장면. 그야말로 천영이 꿈 꾸던 ‘사무직’ 혹은 ‘프리랜서’와 아 주 흡사하지 않던가?
“재미없으면 돌아가던가. 괜히 귀 찮게 따라 나와서 징징대지마.”
“아니야. 너랑 같이 있을래.”
영 지루한 것인지 종알대던 하성도 돌아가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아 무리 지루해도 천영과 같이 있는 것 이 더 좋은 모양이다.
‘일단,마법을 가르치려면 언어 체 계부터 바꿔야할 텐데……:
사실 천영은 아예 고급 지식까지 알려주고 갈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기초 뼈대만 전파하면 지구인들은 자신들의 과학과 접목하여 그리픈과 는 아예 다른 체계의 마법을 완성시
킬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그건 핑계고,사실 귀찮은 것 도 있었다.
‘그리픈의 언어 체계는 사실 나도 넥스터 능력의 번역기를 통하고 있 긴 하지만…… 당장 익히라면 못 익 힐 것도 없지.’
지금까지는 번역기의 성능이 원체 좋아서 익히지 않았을 뿐,천영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의 모든 언어를 단 하루 내에 마스터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두뇌를 가지고 있 었다.
그것은 드래곤의 두뇌가 뛰어난 것
이전에,어떤 세계로 가든 언어를 빠르게 흡수하여 적응할 수 있게 진 화했기 때문이라고 파트라슈가 부연 설명을 했다.
-드래곤은 수억 년에 걸친 생명체 의 최종 진화 단계야. 그 정도는 기 본이지!
“그러시구나.”
본인이 드래곤도 아니면서 파트라 슈는 어쩐지 가슴을 내밀면서 자랑 하듯 말했다.
“우선…… 기초부터 하나씩 적으려 면,마법에 대한 이해를 논문으로 정리해야겠군.”
천영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법이라는 것은 비록 3년밖에 함께 하지 못한 학문이었지만,그에게 있 어서 인생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격렬하게 에너지를 끌어다 바친 3년 이기도 했다.
“열심히 하네.”
“응,마법은 일단…… 재미는 있었 거든.”
비록,그녀가 떠나간 뒤로 마법 이 론은 더 이상 손대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천영의 마법 실력이 어디 가 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을 터였다.
‘어라,잠깐. 이 마법…… 왜 이렇 게 쓰는 거지?’
천영은 기초 이론을 바짝 적어 넣 고 초급 마법인 1서클의 ‘라이트’ 공식을 작성하다가 의문이 들었다. 묘한 위화감이었다. 왜 굳이,귀찮고 번거롭게,저런 식으로 공식을 전개 해야하는지 갑작스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고개를 한 번 갸웃한다.
손가락을 든다. 그저,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그의 손가락에서는 빛이 터져 나온 다.
굳이 귀찮게 저런 공식을 사용하여 써클을 돌릴 필요가 없이.
‘아니,뭔가 뭔가 이상한데……
알 수 없는 뭔가가 천영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애써 그것을 무시한 채 써클을 토대로 한 마법의 공식을 계속해서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여 전했다. 그는 모든 인간들의 마법 공식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을 억지 로 공식으로 풀어쓰는 것만 같은 기
분이었다.
그저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기에 작 성은 할 수 있지만,고작 그 뿐인 정도.
만약,3년 전부터 꾸준히 마법 공 부를 해오지 않았더라면 이 마법이 라는 학문 자체를 잊어버렸을 것만 같은 정도의 충격.
“문제 있어?”
하성이 턱을 괴인 채 그리 묻자,
“인간들의 마법은 어려워.”
천영은 그렇게 답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인간들의 마법이 어렵다고?’
펜을 툭 떨어뜨렸다.
천영은 뒤늦게,뭔가 자신에게 이 상한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뭔가……
양손으로 얼굴을 폭 감싼다. 머리 가 어지러웠다. 낯선 느낌이다.
그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 다.
인간이던 시절의 천영은 처음 만나
는 사람에 대한 예를 중시하는 편이 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 항상 존 댓말을 사용했고,대상이 높은 사람 일 경우 극존칭을 사용하여 자신을 내리까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천영은 더 이상 그러지 않게 되었다.
누구를 만나든 대부분은 천영이 먼 저 말을 놓고 시작한다. 아무리 높 은 사람이든,오래 살았든 상관없이.
그것은 서천영의 직책이 금색 별 마탑주의 후보가 되었기 때문일까?
절대로 아니다. 금탑주는 오히려 예의가 중요한 직책이다. 실제로 레
이븐 생텀은 서천영과의 첫 만남 당 시 어려보이는 외견을 가진 그에게 존칭을 사용했을 정도로,금탑주라 는 직책과 천영의 심경변화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아.’
뭘 모르는 척 해?
천영의 속마음이 그렇게 속삭였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 다.
네청을 떠나보내던 그날 밤,천영 은 더 이상 인간들의 마법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드래곤이다. 그리픈 대륙의
유일한 드래곤.’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하고,우월 하며,하늘 아래 가장 밝게 빛나는 존재.
그래,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았 다.
헌데,아이러니하게도.
천영의 인간성은 여전히 남아있었 다.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 는 드래곤의 인간성.
그 인간성만이 남은 채,용이 당연
히 가져야할 본능은 서서히 그의 마 음을 잠식했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천영은 완전 히 드래곤이 되어있었다.
-축하해. 주인도 이제 조금은 어엿 한 용이 되었구나.
-아직도 어리고 어리석고 무지하 고 성급하고 약하지만. 그래도,주인 이 인간에서 용이 되는 과정에서 두 개의 정체성을 오릇이 보존할 수 있 게 되었잖아?
“두 개의 정체성……?”
-그래, 주인은 앞으로 영원히 용으
로 살아갈 거야. 하지만,주인이 인 간일 때 가졌던 감정이 사라지는 것 은 아니지. 참 신기한 드래곤이야 주인은. 과거에도 없었고,앞으로도 없을 거야. 인간성을 가진 드래곤은.
천영의 정체성이 두 개로 나뉘었 고,또한 뒤섞인 것이 그에게 장점 일지 단점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 다.
자기 자신에 대해 언제나 철저하 고,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고,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정이 없는 것이 바로 드래곤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렇지 못했다.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고,마음이
따뜻하며,다른 이에게 정을 너무나 도 쉽게 주는 인간성.
지금 이 순간 천영은 드래곤임과 동시에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어…… 근데 말이야.”
-응?
천영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건 둘째 치고. 하여튼 내 대가리로는 인간들의 마법서를 못 쓴다는 거 아니야?”
“아,엿 됐네,진짜. 큰소리 떵떵 쳤는데. 이거 어쩌지. 야,너 마법
쓸 줄 알아?”
-모,모르겠는데.
“아이,도움도 안 되는 새끼. 아 맞다. 야,너는 쓸 줄 알아?”
하성의 종아리를 툭툭 차며 묻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한다.
“그,글쎄? 조금?”
“잘 됐군. 넌 지금부터 나를 돕는 다. 내 옆에 앉아.”
“으,응……
순식간에 분위기가 급변하는 천영 을 보며 파트라슈는 헛웃음을 터뜨 렸다.
-허허,참 나.
생각해 보니,이게 맞다.
괜히 궁상맞게 책상머리 끝에 앉아 서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 가?’에 대해 철학적인 의문을 던지 는 서천영은 상상하라고 해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
저래야 천영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