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사직히는 드래곤 라이프 199화
다른 용의 존재.
충분히 그럴 듯했다.
애초에 넥스트에서 천영 혼자만이 ‘드래곤 탈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란 법은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 천영이 고민을 하고 있자,하성이 괴성을 질렀다. “끄악!”
“……왜 또 지X이야?”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저거. 만추의 기둥 아니야? 나 저거 싫어.”
“뭐?”
시선을 돌린다. 하성의 손가락 끝 이 향하는 바로 그곳.
기묘한 무늬가 그려진 기둥이 반쯤 부숴진 채,새하얀 유리 안에 보관 되어 있었다.
천영은 황급히 그곳에 다가갔다.
수많은 연구원이 유리벽에 뭔가를 설치한 채 수치를 계산하고 있었다.
드레식이 뒤늦게 따라오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던전 안에서 발견한 겁니다. 기묘한 기운을 풀풀 홀리고 있어서 사냥꾼들이 회수해오긴 했지만,무 엇에 쓰는 물건인지 도통 알 수가 없더군요.”
천영은 말없이 유리벽에 다가가 손 을 댔다. 다른 연구원들이 저지하려 하자 드레식이 막았다.
“이건……. 다른 세계와 통하는 문 을 만들 때 쓰는 장치입니다.”
“무,뭐라구요?”
“저게 차원 이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라고?”
“맙소사……
유리벽을 어루만지며 천영이 심각 한 표정을 짓고 있자 드레식이 다가 왔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 었다.
“사실……. 미스터 천영을 부른 이 유는 다름이 아니라,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게이트’ 너머에서 이것들이 발견되고 있었기 때문이
죠
“……이게 한두 개가 아니라구요?” “예,얼마 전부터 갑작스레 나타나
기 시작한 게이트는……
드레식은 터치패드를 다시 꺼내서 작동시켰다. 그러자,동영상이 재생 된다.
[끄아아악!]
[도,도망쳐!]
[맙소사, 저게 뭐야!] [젠장!]
수많은 사냥꾼이 죽고 다쳐 나가며 도망치는 광경이 찍혀 있었다.
쿵,쿠직 소리가 들리자 절반의 사 냥꾼이 휩쓸려 나갔고 한 번의 포효 에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다.
이윽고,그림자 하나가 등장한다.
마치 거대한 산처럼,고고하게 서 있는 그것은 마치 ‘공룡’처럼 보이 기도 했다.
상식으로 알고 있는 공룡보다 크기 가 100배나 커다랗다는 점이 달랐 지만.
“저 물건이 발견된 ‘게이트’,즉 던 전 너머에서는 저런 비상식적인 괴 수들이 줄곧 발견됩니다. 물론 다른 게이트와는 다르게 저 ‘기둥’이 존
재하는 게이트 너머에서는 터무니없 이 약한 괴수들만이 존재하거나 아 예 아무것도 없이 광활한 평야만 있 었던 적도 있었지만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죠.”
드레식이 굳이 천영을 불러와야만 했던 이유.
“아직까지는 세간에 비밀로 부치고 있지만……. 더 늘어나면 분명 숨기 는 것이 어려워질 겁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평화란 거짓이라 할지라도,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안정
시킨다.
두려움은 마치 바이러스와도 같아 서 모두가 겁에 질리면 그대로 희망 은 산산조각 부서지고 만다.
억지로라도,어떠한 희생을 치러서 라도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평 화’를 반드시 포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처음 이 물건이 발견된 것은 20 년 전입니다. 그때는……. 어떻게든 베테랑 사냥꾼들을 투입해서 해결했 지만 그로 인해 많은 ‘300레벨 급’ 사냥꾼을 잃었지요. 그 이후로도 아 주 가끔 저런 게이트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손해가 늘어나고 있습니
다.”
아마,짧은 시간 내에.
“……이런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 로 발생하게 된다면,그땐 더 이상 평화를 위장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 다.”
애초에 그때가 되면 평화라는 단어 를 울부짖을 새도 없을 것이다.
세계가 빠르게 무너져 내릴지도 모 르는 일이다.
“그저 잘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더
니……
설마 뒷 세계에서는 이런 혼란스러 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 줄 몰랐
다.
천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명 현대 병기가 통하는 괴수들도 많았다.
사냥꾼이 아니라, 과학으로도 그들 을 제압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 되었 다.
하지만 모든 괴수에게 현대 무기가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리적인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 것들이나,마나 방벽이 너무나도 막 강해서 오로지 사냥꾼들의 ‘마나’로 만 사냥할 수 있는 괴수들이 나타날 경우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사냥꾼들이 더 많 이 필요한 세대였지만.
통칭 ‘초능력자’는 아무에게나 발 현되지 않았다.
게임 넥스트가 서버를 종료한 뒤로 30년이나 흘렀다.
이제는 골수 게이머라고 불릴 만한 초능력자들은 대부분이 사라진지 오 래였고 지금은 아주 가끔가다 신의 계시를 받는 것처럼 난데없이 능력 을 각성하는 것 외에는 초능력자가 되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아니,방법이 아예 없진 않아.’
천영은 자신이 작성하고 있던 마법 서를 떠올린다.
그 교과서가 완성되고,배포를 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의 누구라도 ‘마법’이라는 학문에 접근할 수가 있게 된다면.
‘현대 공학에 마법이 추가되는 것 만으로도……
어쩌면,평화라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지키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주인.
“응?”
-뭔가,익숙한 기운이 느껴져.
잠자코 있던 파트라슈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동시에, 천영도 기묘한 기운을 느 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잠들어있던 익 숙한 무언가가 천영에게 반응하여 깨어났다.
“이건……
천영은 다급히 드레식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에 푸른색의 큐브 같은 물건이 있습니까?”
“예,푸른빛은 거의 사라졌지만,저 쪽으로 가시면……
드레식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 리키자마자 천영은 그쪽으로 달려갔 다.
가까이 다가갈수록,더욱 기운이 강렬하게 윙윙댔다.
허겁지겁 달리던 천영은 구 형태의 유리막에 휩싸인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별빛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저건……
익숙하다 못해,지긋지긋한 물건. 용의 큐브.
그것이 천영에게 반응하여 빛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왜 지구에……? 이것도 던전 안에서 발견된 겁니까?”
어쩌면 그리픈에 있어야 할 물건이 지구로 떨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 에 그리 물었지만,드레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존을 탐험하던 마법사가 탐지 마법을 사용하던 도중,오래된 유적 지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곳에 이 물건이 잠들어 있었다더군요.”
“……예?”
뭔가 이상했다.
“그럼……. 오래 전부터 지구에 있
었던 물건이란 소리에요?” “예,틀림없습니다.”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뭔가 순식간에 정보가 머릿속에 파 고들어서 정신이 사나워졌다.
묵묵히 있던 파트라슈가 입을 열었 다.
-주인,어쩌면 다른 드래곤의 존재 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
“……응.”
드래곤이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이 세상은 더욱 안전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천영의 희망 사항을 부수겠다는 듯 파트라슈가 못을 박 았다.
-내 생각엔,다른 드래곤은 없어. 저 용의 큐브는 오릇이 주인에게 반 응하고 있어. ……그리고 용의 큐브 는 오로지 그리픈 차원에만 존재하 는 물건이지.
“그럼……
-차원계.
파트라슈가,낯선 단어를 꺼냈다.
-별이 모여서 은하를 이루듯,차원 도 모여서 차원계를 이뤄. 그리고
그리픈과 지구는 매우 흡사하여,같 은 차원계에 속해 있지. 그뿐만이 아니야. 이 차원계에는 수많은 차원 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랜드 디멘션’이라고 하여 가장 거대한 7 개의 차원이 있어.
길르텐 펄 리쉬. 그녀의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이 차원계의 모든 벽을 허물어버리는 것이었다.
-비단 그 재앙…… 이라는 것은 그리픈 차원에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어. 아마,지구뿐이 아니라 다 른 다섯 개의 차원에도 역시 ‘용의 큐브’가 있을 거야. 그리고 ‘위대한’ 이라는 칭호를 가진 너희 지구인들
은 그곳으로 각자 퍼지게 되었겠지.
“아니,뭔가 이상하잖아. 애초에, 용의 큐브는 이전 대의 드래곤이 흩 어놓는다면서.”
-그래,레가로스가 차원계를 돌아 다니며 뿌렸겠지.
“……그럼,그 레가로스라는 드래 곤은 이미 천 년도 더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 단 거야?”
파트라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드래곤이 아니었기에,드래 곤의 옆에서 가장 많이 드래곤을 이
해할 수 있었지만,그와 동시에 드 래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 다.
-나는……. 드래곤이 아니야. 나보 다는 주인이 더 잘 알겠지.
어쩌면 드래곤들은 미래에 닥쳐올 위협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 을 수도 있다.
물론,어쩌면이다. 천영에게는 아직 까지 그런 능력이 없었다.
“닥터 드레식.”
“예.”
“이 물건……. 제가 꺼내가도 되겠 습니까?”
이것은 용의 물건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 다. 그렇기 때문에 천영은 ‘인간’으 로서 드레식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 었다.
“어차피 저희가 가지고 있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대 신……. 조건을 하나 걸어도 되겠습 니까?”
“조건이요?”
“예.”
드레식은 쓰게 웃으며,말을 꺼냈 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적 지식 들을……. 그것으로 일부 기관과 거 래를 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리 는 저희가 마련해드리도록 하지요.”
그거야,별로 어려운 부탁이 아니 었다.
아니 심지어 자리까지 마련해준다 는데,오히려 천영으로서는 고마울 지경이었다.
이 세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와중 에 천영은 자신의 지식을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했고,드레식 역시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다.
’가만,생각해 보니 마법이 아니라 무술도 문제가 심각해.’
근거리 클래스로서 각성한 사냥꾼 들이 싸우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싸음 실력은 솔직히 처 참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형편이 없 었다.
그저 스킬을 난사할 뿐인 엉망진창 의 싸움.
지구에도 무술을 배운 자들이 있다 지만,그리픈과 비교하자면 발톱의 때만큼도 따라오지 못한다.
만약 사냥꾼들에게 무술의 기초를 알려준다면? 이후,자신들의 방식으 로 성장시킬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천영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크 린네와 필리어스를 떠올렸다.
“야,너네.”
“네?”
“혹시 싸움 좀 잘 하냐?”
그러자 크린네와 필리어스가 자신 만만하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희가 비록 머리가 안 좋아서 마 법은 낙제점이었지만,이 주먹 하나 로 숲의 수호자로 선발되었답니다!”
“그,그래……
어쨌든 크린네와 필리어스는 무술 쪽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다는 의미 였다.
또한 여태까지 지켜본 결과 최소한 나이트급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성과 천영은 무술 쪽에 있어서는 영 잼병이다. 마침 크린네와 필리어 스가 따라와서 천만 다행이었다.
당장의 고민이 해결되자 천영은 큐 브를 만지작댔다.
‘이 큐브는 닥터 드레식 같은 사람 이 가져야 좋을 텐데……
자신의 욕심을 가볍게 포기하고, 평화를 생각하는 연구원이다.
분명 닥터 드레식이 마법을 배운다 면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을 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용의 큐브는 닥터 드레식에 게 반응하지 않았다. 주인이 따로 있다는 의미였다.
천영은 용의 큐브를 쥐자마자,이 것의 주인을 상기해낼 수 있었다.
이유도 없이 천영에게 호의를 내보 인 남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 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애정 어린 눈
으로 천영을 쳐다보던 그 A등급의 사냥꾼.
'주한성……
그 남자가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