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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210화 (209/219)

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210화

57장 엇갈린 시간의 틈새에서

덜커덩.

레가로스의 말이 끝난 직후,천영 은 양다리의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았다. 심장에 고여 있던 마나가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레가로스에게 흡수되었다.

반투명한 홀로그램 상태였던 레가 로스에게 실체가 약간 부여되었다.

발끝부터 시작해서,머리끝까지. 그 러나 그곳에 사용된 마나는 아주 극 히 일부였다. 천영은 이 적은 마나 만으로도 실체를 생성할 수 있는 레 가로스의 마나 운용법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대단도 하시네.”

“후후. 아리따운 레이디께서 칭찬 해주신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아직 성별은 안 고른 것 같지만

좌르록!

사방에서 금색의 사슬이 튀어나오 더니 천영의 사지를 속박했다. 양팔 을 뒤로 묶여 바닥에 주저앉은 채 천영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레가로스가 손가락 끝을 튕기자, 천영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출력되었 다. 그곳에는 천영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평소의 상태창과 도 비슷하면서도,아주 세밀하고 알 수 없었던 것들까지.

맥박이나 심박,드래곤일 때의 덩 치가 얼마나 큰지 파괴력은 또 얼마 나 강한지 등등.

‘오호,이건 조금 놀랍군.’

레가로스의 금색 눈동자가 반짝였 다. 천영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스 킬’로 표시가 되어 나타난 상태였 다. 그런 스킬 중,처음 보는 것 하 나가 있었다.

[용의 혜안]

‘패시브라. 혜안(■眼)이란 본디 경 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모든 것을 알 게 되었을 때 비로소 비유하기 위해 표현하는 단어이거늘.’

즉,혜안이란 지식의 진리를 깨우 친 자들에게 붙는 칭호 같은 것이지 절대로 스킬이 아니다.

그러니까.

스킬에 혜안이 붙었다는 의미는.

‘……진정한 의미의 혜안을 가졌을 수도 있겠군. 보면 볼수록 탐나는 몸이야.’

진정한 의미로써 용이 혜안을 가졌 다는 것은 우주적 진리,시간의 비 틀림,차원의 이변 등 모든 것을 밝 게 꿰뚫어보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 다.

비록 아직까지는 천영의 혜안이 아

주 극히 일부분만 개방되어있어 본 인도 능력을 잘 모르는 모양이었지 만 만약 레가로스가 저 눈을 갖게 된다면 세상 그 자체를 전부 자신의 시야 아래에 두는 것이 불가능한 것 이 아니다.

레가로스가 혜안이라는 스킬 하나 에 집중하고 있을 때,천영은 다른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뭐야 이건?’

분명 500레벨,즉 성룡이 되어야만 선택이 가능할 터였을 무언가가 레 가로스가 터치 몇 번 하자 눈앞에 나타났다.

[성별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M/W]

‘어이가 없군.’

물론 그토록 원하던 것이 나타났다 고 해도 양팔이 구속된 상태였기에 크게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신체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성별이 뭐가 중요하단 말 인가.

천영의 고민을 눈치 챈 레가로스가 비스듬히 웃었다.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오랜 세 월 동안 남자로 살아서 지루한데, 새로운 삶은 반대로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겠군.”

그리 말하며 레가로스가 천영의 눈 앞에 둥실 떠있는 메시지 창을 드래 그해서 자신의 앞으로 빙글 돌렸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시스템창을 만질 수 있 다니. 아무래도 넥스트 시스템의 창 시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양이다.

“취향 참…… 남자로 살았으면 끝 까지 남자로 살 것이지.”

“아직 30년도 살아보지 못한 먼지 가 나를 헤아릴 수는 없다. 후후. 사실 나보다 오래 살아온 먼지도 존 재하긴 한다만. 우주는 넓고,차원은 많으며 시간은 무한하거든.”

천영의 표정이 굳었다. 레가로스는 마치 배달 온 신상품 핸드백이라도 감상하는 것 마냥 천영의 스테이터 스를 읽어 내렸다. 모든 면에서 마 음에 들었는지 그의 미소가 점점 더 흡족해졌다.

이내 레가로스는 천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의식은 별로 아프지 않을 거다.

남의 신체를 완벽하게 영혼까지 결 합시키는 일은 꽤나 어려워서 널 아 예 기절시킬 거거든.”

그러면서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쓰 다듬는 레가로스를 보며 천영이 피 식 웃는다.

“잠깐…… 당신 설마 이대로 내 몸 을 차지하려고?”

“물론이지.”

“그렇게 시시하게?”

마치 유혹하는 것처럼. 분홍빛으로 번들거리는 그 요염한 입술을 보며 레가로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여태까지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떤 드래곤보다도 아름다워. 믿 을 수 없군. 이런 완벽한 작품이 내 손에서 탄생하다니……

내가 가져야겠어.

그리 생각하며 천영의 뺨을 아주 조심스레 붙잡은 레가로스는 그의 얼굴을 아주 서서히 자신의 얼굴로 잡아당겼다.

천영은 별 다른 저항 없이 레가로 스의 손길에 이끌려 끌려갔다. 레가 로스의 눈과 손이 성별 선택 칸으로 향하기 직전,천영이 바로 지척에서 입을 열었다.

“뒤를 조심해.”

심장이 무언가에 꿰뚫렸다. 비록 본체는 두뇌이기 때문에 이깟 육체 에 무리가 가도 별 상관은 없다지 만, 기분이 상당히 더러운 건 별개 의 문제였다.

금색의 창 같은 것이 레가로스의 심장을 꿰뚫고 바닥에 틀어박혀 있 었다. 레가로스는 그것을 간단히 부 러뜨린 뒤 고개를 돌렸다.

파트라슈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하 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긴 내가 만든,나만의 공간이다. 이런 쓸데없는 짓 해봐야 의미는 없 어.”

철커덩!

사방에서 창이 뻗어 나와 천영의 사지를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을 끊 었다.

하지만 레가로스의 헛웃음은 좀처 럼 그치지 않았다.

“난 너의 모든 것을 다 보았다. 네 가 날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없어. 마법사와 마법사의 싸움이 체스라 면,용과 용이 싸우는 것은 전쟁이 다. 그 짧은 생을 살면서 고작해야

어린 아기들과 체스밖에 두지 못했 던 네가 나와 싸운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그건 그래.”

그러면서 천영은 레가로스의 시체 를 바라본다.

“근데 당신은 이미 죽어 있잖아.”

맞는 말이다.

아무리 이곳이 레가로스만의 공간 이라 해도,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제대로 힘조차 사용하지 못하고,마 나 운용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천영 이 가볍게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구

속이 쉽게 끊어질 정도였으니까.

만약 실제로 결투를 벌인다면 둘 중 승자는 없더라도 천영이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넌 이미 늦었다. 의식은 진 작 시작되었거든.”

타인의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잃어버렸던 영혼.”

애초에 레가로스는 ‘기억’이라는 정보에 의존하여 살아있음을 흉내 낼 뿐,실제로 살아있는 것은 아니 다.

그러니.

다가오던 죽음에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육체에서 빠져나가버린 영혼을 되찾아올 필요가 있었다.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레가로스는 길르텐 펄 리쉬라는 여자를 이용했 고 결과적으로.

“아주 성공적이었지.”

이 수많은 차원 어딘가에 버려졌을 터인 레가로스의 영혼,즉 크라서스 는 길르텐에게 이끌려 결국 그리픈 으로 찾아오고 말았다.

그것은 아마 본능이었을 것이다.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드래곤의 본

자신에게 남아있는 아주 작은 마음 의 편린에 의한 그런 작은 본능이.

절대로 불가능한 확률의 차원과 시 간의 틈새를 건너 길르텐 펄 리쉬는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크라서스를 불렀고,마침내 크라서스는 그에 응 했다.

그야말로 기적의 확률.

“어처구니가 없군.”

“이 세상에 기적은 없어. 그저 이 루어질 때까지 빌고 또 빌어서 이루 어지면,기적으로 보일 뿐이지. 나는 확률에 걸었다.”

내가 길르텐 펄 리쉬를 영혼에 이 끌릴 정도로 사랑했음을.

“자신의 사랑마저도 이용한다

니……

“말했다시피,나는 영혼이 없어. 그 러니 사랑도 없지. 나에겐 이미 없 는 감정이야. 난 내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뭐든 이용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서 천 년씩이나 기다리셨다?”

“천 년이라.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 지. 그리픈에서는 천 년이지만,나는 이곳에서 훨씬 더 길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지냈어.”

넌 아마 모를 거야.

“죽지도 못하고,살지도 못한 채 이런 찌꺼기 차원 속에서 영원에 가

까운 시간을 버텨내야 했던 내 기분 으 ”

레가로스는 레가로스가 아닌 상태 이다. 만약 영혼이 존재했다면,아마 레가로스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영혼이 없었기에 레가로스는 미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는 그저 두뇌 속에 심어져있던 정보 덩어리에 불과했고,정보가 미 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정보가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 니,애초에 미쳐있었다는 건가.’

천영은 표정을 찌푸린 채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사용할 수 있 는 무언가가 없고,마법 역시 레가 로스에 의해 봉쇄되어 사용이 불가 능하다.

‘역시 저 대가리를 으깨버려야.’

그리 생각하여 천영이 레가로스의 시체에 접근하려는 순간,사방에서 금빛의 쇠사슬이 좌르록 쏟아졌다.

그리고 그 금빛의 쇠사슬은 레가로 스의 토막 난 시체에 다가가더니 조 각을 하나하나 끼워 맞췄다. 비록

끼워 맞췄다고 표현했지만 그 조각 하나하나가 합쳐지는 장면은 지켜보 는 입장에서 참으로 오묘하였다.

“삼단합체 로봇이라도 보는 것 같 은데.”

천영의 금색 눈동자가 무미건조하 게 레가로스의 시체가 합쳐지는 것 을 하나하나 새겼다. 삼단합체 로봇 이 변신하는 장면은 보는 맛이라도 있지,시체가 결합되는 모습은 솔직 히 말해서 역겨웠다.

자신의 몸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 며,레가로스는 양팔을 넓게 펼쳤다.

“돌아와라!”

쿠구구구구구!!

슬쩍 주변을 둘러보던 천영은 어딘 가로 시선을 두었다.

차원과 차원 틈새 사이로,무언가 가 이곳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영혼……

보통의 영혼보다도 그 크기가 꽤 거대한 무언가가 금색의 찌꺼기가 차원을 비집고 서서히 들어오기 시 작한다. 벽에 그려져 있던 회로가 서서히 흰색으로 물들며 빛나기 시 작했으며 마법진이 웅웅대며 허공에 떠올라 회전한다.

레가로스는 자신의 영혼이 이 차원 으로 돌아오는 것을 만끽하며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천영의 눈에 미심쩍은 것이 포착되었다.

‘저거…….,

이윽고,영혼이 완전히 이 자그마 한 차원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자 레 가로스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우선 널 제압해서 완전히 내 것으 로 만들어야겠군.”

레가로스의 영혼으로 추정되는 ‘크 라서스’가 서서히 거대한 금색 드래 곤의 시체를 향해 날아갔다. 이후

저것이 결합되면 레가로스는 살아생 전 가지고 있던 본연의 힘을 되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천영은 이상하게도 영혼과 육체가 합쳐지는 저 의식이 두렵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 만 계속해서 그의 눈에 기묘한 것이 읽 혔다.

‘가슴팍에 저거,대체 뭐야?’

레가로스의 영혼,크라서스의 가슴 에는 기다란 검 하나가 꽂혀있었다. 또한 영혼의 표정은 뭔가에 의해 굉 장히 괴로워보였다. 마치,마치 살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것처럼.

너무…… 너무 아파서…….

눈에 뵈는 것이라면 뭐라도 한 대 칠 것처럼.

“쇼 타임!”

레가로스는 마치 서커스를 하는 광 대처럼 우아한 포즈를 지으며 그리 외쳤고.

직후.

……크라서스의 영혼이 레가로스의 대가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끼오오오오오!!

쿠궁,광!

천영은 말없이 자신의 육신이 구석 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 레가 로스를 향해 말했다.

“나만 뻘쯤한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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