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1부터 시작하는 드래곤 라이프 219화
60장 새벽의 발자취
마그아티온 제국의 포나리온 제 13황궁의 꼭대기, 120층 위에는 마 치 원반처럼 커다란 정원이 하나 지 어져 있었다.
이곳은 흡사 신화 속에 등장하는 꿈의 낙원 ‘이메니리온’과 닮았다
하여,이메니리온 정원이라 불린다.
이메니리온 정원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으며 그곳에는 정좌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천영은 정좌의 안쪽에 위치한 고급 테이블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 었다.
벨레인,안시르엘과 함께.
“셀라임은 만나봤다고?”
“응,오는 길에.”
안시르엘은 어쩐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야 당연하다. 천영이 대뜸 그리픈 대륙을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용을 모시는 교단의
성녀로서 심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천영이 용이라는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9년 전,처음 이 대륙에 떨어져 모 든 것이 낯설었을 때 천영은 함께 했던 동료였으며 친구였고 생사를 넘나들며 가장 가까워진 가족 같은 존재였다.
“다시…… 돌아오시는 겁니까?”
벨레인이 그리 물었다. 천영은 웃 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힘들 것 같아.”
“……그렇군요.”
마그아티온 제국의 전설,레가로스 가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고 홀연 히 떠나버렸듯이 천영 또한 떠나야 만 했다. 물론 레가로스가 떠난 이 유와 천영이 떠난 이유는 다를 것이 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리픈 대 륙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돈을 얼마나 바른 거야? 기가 막히네,진짜.”
120층짜리 높이의 성 꼭대기에다 가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그러는 오빠도 개인 재산만 따지 면 대륙에서 탑급이잖아.”
“아, 그거. 전부 파트라슈한테 양도
했어. 근데 개도 물질에는 워낙 관 심이 없는 놈이라 어디다가 대충 기 부하지 않을까 싶은데.”
비록 파트라슈는 원래의 이름 시리 온을 되찾으며 서서히 예전의 기억 과 능력이 돌아왔다. 하지만 천영과 의 계약이 끊어지면서 그녀는 마지 막에 천영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 그 와 닮았다.
이기적이고,털털하고,자유분방하 고,심지어 욕심도 많은데 어째서인 지 재산욕은 별로 없다. 일단 내가 가지면 좋겠는데, 딱히 가져봐야 쓸 데가 없으니 대충 아무데나 처박아 둔다.
파트라슈는 금색 별 마탑주로서의 인수인계를 거의 완벽하게 받은 상 태였고,본래 천영의 비서였던 로서 진은 이제 그녀의 비서가 되어 파트 라슈를 서포트 하는 중이었다.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을 거야.”
“그렇겠지.”
“많은 사람들이 오빠를 그리워할 텐데.”
“그럴 수도 있겠네.”
“천영님의 이야기는 잊히지 않고, 역사에 기록되어 영원히 전승될 거 예요.”
“하하,그건 좀 부담스럽네.”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럴 것까지야.
솔직히 고생이란 고생은 당장 눈앞 에 앉아있는 벨레인이나 안시르엘이 천영보다 몇 십 배는 더 많이 했을 것이다. 천영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 다.
“작별 인사는…… 끝낸 거야?”
“어느 정도는.”
대륙 곳곳에 만들어둔 인연을 찾아 다니며 천영은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들. 그러니 떠날 때는 확실하게 떠나고
싶었다.
심지어 그는 악귀가 울부짖는 절벽 의 근처에서 먹었던 야채 없는 야채 호빵이 그리워 그곳에도 한 번 찾아 간 적이 있었다. 특산품으로 야채 없는 야채 호빵을 팔기 시작한 그 호빵집은 지금 굉장히 규모가 커진 상태였다.
‘그러고 보면 제빵왕의 꿈에 한 발 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 었다고 편지도 한 통 왔었는데
자칭 ‘그림자’라고 소개한 어떤 누 군가가 천영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발신지가 쓰여 있지 않아 결
국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파트라슈는 ‘아,그때 비행선에서 만난 그 이상한 놈들?’이라고 반응 을 하긴 했는데 천영은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장명국이라는 사람도 만났어. 그 유명한 사람한테 존대를 받을 줄이 야.”
“아,그 분이라면 저도 압니다. 그 리픈 대륙의 경제계를 한바탕 휩쓴, ‘금의 제왕’이라 불리는 사내 아닙 니까?”
“맞아. 본인은 제발 그딴 타이틀 좀 갖다 버리라고 발광하지만.”
아무래도 지구에서 노년기까지 살 다 온 장명국이다보니 타이틀이나 칭호,별호 같은 것이 어색한 모양 이다. 그 나이 먹고 이상한 칭호 들 먹이면 굉장히 창피할 것이다. 천영 조차 은하수의 요정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칭호를 들었을 땐 그대로 접 시 물에 코를 박아버리고 싶었을 정 도이니까.
“셸라임한테 이거나 전해줘. 검이 녹슬었다고 징징대더라.”
천영은 품에서 검 한 자루를 꺼냈 다. 셀라임이 원래 쓰던,용의 큐브 로 만들어진 새하얀 보검이었다. 전 쟁통에 반쯤 박살이 나버렸던 터라
수리할 곳이 필요했는데,어떤 대장 장이도 이것을 수리할 수가 없어 방 치되던 것을 천영이 직접 힘을 불어 넣어 원상복구를 시켜주었다.
안시르엘은 그것을 조심스레 받았 다.
“오빠.”
“왜.”
“그 처음 만났을 때. 우리한테 이 야기했던 것 있잖아.”
“너네한테 얘기했던 게 한두 가지 냐.”
자신의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꼬던 안시르엘은 잠시 망설이다,천영의
키와 체형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 나이는…… 500이 된 거지?”
“응? 어. 그렇지.”
천영은 이제 어엿한 성룡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삶의 경험이라는 게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아직도 파트라 슈에게 미숙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있지만.
“그럼,그거 말이야……
“뭐?”
“……성별은,정한 거야?”
“아……
그는 슬쩍 자신의 시야 상단에 아
직도 둥둥 떠 있는 반투명한 창을 살폈다.
“아직.”
“왜? 그렇게나 원래의 성별로 돌아 가고 싶었으면서.”
참으로 오묘한 질문이었다. 그렇게 나 궁금했을까. 순수하게 질문을 던 지는 안시르엘이 어찐지 귀여워 천 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네청 님을 만나서.”
“응.”
“그때 정할 거야.”
“……그렇구나.”
내가 이렇게 자랐다.
이제는 어엿한 성룡이 되어서,차 원 간의 법칙을 깨면서까지 당신을 찾아왔다.
천영은 네청의 눈앞에서 그것을 증 명할 셈이었다.
“알기 쉬운 남자네.”
“칭찬 고맙다.”
천영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벨 레인과 안시르엘 역시 억지로 하지 만 자연스레 나오는 둣한 미소를 머 금은 채 같이 일어났다.
“나 갈게.”
“잘 다녀와.”
“몸조심 하십시오.”
그렇게.
천영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저편 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녀들은 한동 안 말없이 그곳에 가만히 서있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더라. 일일이 만나보는 것도 지칠 지경이
었으니까.
천영은 여러 차원에 존재하는 매스 컴에도 출현해야만 했고,높은 자리 에서 연설도 한 번씩 했으며 심지어 는 싸인회까지 해야만 했다.
여러모로 피곤한 스케줄이다.
그리픈을 떠나기 전 날 저녁.
금색 별 마탑에서 조출하게 여태까 지 함께해왔던 동료들과 모여 가볍 게 술을 한 잔 걸쳤다.
백하란은 울었고,맥골라스 머치펭 은 술에 꼴아서 난리를 피웠으며 요 하엔은 ‘그래,남자라면 사랑을 쟁 취하러 떠나는 거지! 힘내라!’라고
등짝을 팡팡 두드렸고 케일런과 이 혜림 등은 자신들이 만든 마법서를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우리들이 만든 마법서. 지구에서 네가 만든 걸 봤는데,정말 형편없 더군.”
“아니,그야 대충 만들었으니까.”
“핑계는 됐어.”
천영은 애초에 누굴 가르치기에 적 합하지 않다. 그것은 하성도 마찬가 지. 자기밖에 모르는 두 남자가 누 굴 가르치겠다고 교과서를 만들었으 니,제대로 된 교본이 나올 리가 없
케일런은 지구를 비롯하여 마법이 없는 세계에게 전파할 수 있는 정도 의 수준의 마법서를 만들었고,소장 본 하나를 천영에게 건넸다.
“난 이제 누굴 가르치러 다니지 않 아.”
“그건 모르는 일이지. 네가 장난삼 아 우릴 가르쳤던 것처럼, 언제 또 그런 일이 생길 줄 알아?”
천영이 앞으로 떠나는 세계는 마법 이 없을 수도 있다. 과학이 너무나 도 발전해서 마법 같은 과학 기술을 보유한 세계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천영이라면.
그 모든 환경을 무시한 채,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벌이는 사내이다.
“너와 인연이 닿는 누군가는,너에 게 마법을 배울 수도 있어. 그럼 이 걸 이용해서 가르쳐.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고맙다.”
그는 그것을 품에 갈무리했다. 작 별 선물이라고도 볼 수 있었으나,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성 님은요?”
로서진이 침울한 얼굴로 주변을 둘 러보았다.
“글쎄. 어제부터 안 보이는데……
마지막으로 하성과 백화연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어째서 인지 그 둘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 어는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아서 찾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내 일 당장 천영은 떠나야만 했고,남 은 시간은 고작해야 오늘이 마지막 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며 천영은 눈물을 질질 짜며 슬퍼하는 이들에게 와인병을
척 내밀었다.
“사내새끼들이 질질 짜서 뭐 해? 빨리 술이나 받아!”
그 말에 귀신처럼 눈물을 뚝 그치 더니 다 같이 술병을 치켜들었다.
째앵!
“건배!”
그들은 다른 술은 취급하지 않았 다.
오로지 싸구려 와인.
수많은 재력과 술에 대한 안목을 지니고 있을 터인 인물들이 모였건 만,천영과 함께라면 절대로 다른
술은 마시지 않는다.
드래곤 브레스.
그것 하나면 족했다.
“밤새도록 마셔!”
다음 날 천영이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들은 밤새 술을 마셨고.
모두가 제정신을 잃어가는 와중 그 누구도 와인을 와인잔에 따라서 마 시지 않았다.
천영은 파트라슈를 불렀다.
그들의 앞에는 새하얀 장벽이 나선 형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깊은 숲속.
그 누구도 모르는 신비로운 장소.
그곳에 차원계를 뛰어넘어 또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게 해주는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 차원 여행은 처음 해봐서 불안해. 이거 네비게이션은 없어?”
“하나 만들던가.”
“그거 좋은 생각이네.”
솔직히 파트라슈도 차원 여행은 해 본 적이 없다. 이곳 네청 차원계라 면 또 몰라도 다른 차원계까지 넘어 가는 것은 드래곤이 아닌 이상 절대 로 불가능하니까.
“가다가 길을 잃으면 어쩌지?”
“가장 밝은 빛을 찾아. 그것을 따 라가면 길이 나올 거야.”
파트라슈가 그리 말하자,천영은 피식 웃었다.
“가장 밝은 빛은 태양이잖아. 그건 너무 눈부셔.”
“불만도 많네,진짜. 너무 눈부시면 태양 불을 꺼버려.”
“그럼 어떻게 되는데?”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네가 가장 밝은 빛이 될 거야.”
천영은 어이가 없다는 둣,하지만 만족스러운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거 멋진 말이네. 내 명언 수첩 에 적어놓고 나중에 써먹을게.”
“고맙다. 출처는 시리온이라고 적 어놓고.”
반쯤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사실 파트라슈는 절반 정도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리픈 대륙을 포함해 이 차원계에 잠시 어둠이 내려앉았고,그 어둠을 걷어낸 것은 천영이다. 어둠 다음에 오는 빛,그것은 흔히 희망이라 불 리기도 하며 또는…….
“여명.”
갑작스레 그 단어를 내뱉은 파트라 슈는 어깨를 으족했다.
“여명의 드래곤. 어때? 드래곤들은 각자 자신의 종족을 소개할 때,이 렇게 타이틀을 붙여. 레가로스가 온 몸이 금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골드 드래곤이라 불린 것처럼.”
“멋지긴 한데…… 내 입으로 그걸 말하고 다니라고?”
“언젠가는 쓸 날이 있을지도 모르 지.”
절대로.
천영은 제 입으로 그런 닭살 돋는 단어를 내뱉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눈빛 을 교환하던 도중, 천영이 먼저 가 볍게 말을 툭 던졌다.
“나 간다.”
“그래.”
천영과 파트라슈.
그것이 그들의 인사방식이었다.
괜히 폼 잡으면서 작별 인사를 나 누지 않는다.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처럼,쓸데 없이 재수 없는 말은 내뱉지 않는 다.
그저 시원스레.
마치 북쪽에서 불어오는 삭풍처럼. 천영은 천천히 등을 돌렸다.
웅웅대며 회전하는 나선형의 차원 게이트가 무서우리만치 빛을 뿜어대 고 있었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우주 그리고 차원은 대체 얼마 나 넓은지. 시간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또한 어떤 사건과 사고 그리고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의 여행은 이제 출발하 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천영은 아주 기나긴 세월
동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천영이 가는 곳마다 그의 발자취가 남게 될 것이다.
그러니 천영이 그리픈 대륙에서 내 딛은 걸음은…… 그저 첫 걸음일 뿐 이다.
“잘 있어라.”
천영은 가볍게 차원 게이트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게 그들은 이별했고.
여명을 닮은 드래곤은 끝나지 않을 여행을 시작하였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