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 / 0923 ----------------------------------------------
1장
"이 바보들이!"
풍사라는 이명을 가진 한국의 유일한 S랭크 이능력자, 이 하린은 차분한 평소의 성격답지 않게 씩씩거렸다.
"어라, 왜 그래요, 누님?"
예전에 이실리아에게 큰 무례를 저질를뻔했던 젊은 남자는 그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토해내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실리아가 딸을 찾기 위해 한국에 왔으니 테러리스트 대책관련 법규가 있긴 하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녀의 명성이 있으니 특례로 최대한 간소화 해달라는 요청을 보고하는 겸에 같이 하는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어."
"아! 이실리아 라는 그 아줌마 건이요?"
"FM대로 하래."
"당연히 그만한 명성을 가진 사람이니까 당연한…예……?"
젊은 남자는 당연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치려다가 뻥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실리아가 아니였대요? 사칭한 가짜랍니까?"
"본인임은 확인했어. 그런데도 위에선 FM에 맞게 처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거지."
하린의 말에 젊은 남자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였다.
참고로 여기서 나온 FM은 게임의 이름Football Manager가 아니라, Field Manual(야전 교범)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철저하게 원리원칙대로 행동하는 군대 용어중 하나다.
말의 뜻이야 좋지만,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군대든, 회사든 인기가 없는 상관이 되고자 하거나, 인기따윈 알바 없고 욕 많이 먹어도 좋으니 부하들을 굴리는게 즐거운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어쨌든, 그는 흥분하면 앞뒤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생각과 관념을 가진 일반인이였기에 어째서 유럽 전체에서 알아주는 S랭크 이능력자를 그런식으로 처리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아줌마한테 무례하게 하면 국제 관계가 나빠지는거 아녔슴까?"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하린은 무슨 이유로 상층부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퍼포먼스야."
"퍼포먼스요?"
"그래. 경제적으로 좀 만만한 국가니까 S랭크 이능력자가 자신들보다 많아도 까불지 말라는 퍼포먼스. 그녀가 미국인이였다면 간이랑 쓸개까지 다 내뱉을 놈들이……!"
그녀의 말대로, 이실리아가 미국인이였다면 아마 윗선에 보고하고 1시간도 안되서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정치가 몇몇이 달려나와 미국의 S랭크 이능력자와 친분을 쌓고자 노력했을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정도로 많은 이능력자를 보유하고 정예화에 성공한 영국의 국가 경제력은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만만한 국가가 아님을 알리려는, 국민 누구도 원하지 않는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 하린의 분노를 키웠다.
"거참…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런 패기도 가지고 있었네. 난 맨날 미국한텐 굽실거리고 일본한텐 쓴소리도 제대로 못내는 소심쟁이들인줄 알았는데."
젊은 남자는 씁쓸하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거렸고, 하린은 한 숨을 내쉬며 딸을 1분 1초라도 빨리 찾길 원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이실리아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달해야 하나 골치가 아파왔다.
어쨌든 나쁜소식이긴 하나, 자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위해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하린은 전화벨 소리가 이토록 심장을 쿵쿵 때릴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하린 양?"
수화기 너머에서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하린은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이실리아 경……."
"벌써 노아의 주소를 알아내신건가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초조함, 희망이 섞인 목소리에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지금까지 자신의 부탁을 이렇게까지 단번에 거절한 사람이 없었던듯, 이실리아의 목소리는 잠시 긴 텀을 가지고 이어졌다.
"그게…상부에서 법규대로 처리하는 명령이 내려왔……."
꽈창! 챙그랑!
지이이익---!
"아윽!"
전화기 너머에서 무언가가 깨지고 강한 노이즈가 들려오자, 귀를 틀어막으며 거리를 벌린 하린은 잠잠해질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귀를 붙였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세요. 어째서인가요?"
"…저로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명령을 받는 입장이라서요.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론 정치인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알고는 있지만, 국가의 녹봉을 받고, 한국 이능력자들의 대표라 할 수 있었기에 노아는 더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사과로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 하였다.
이실리아도 잠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녀 또한 하린과 같은 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렇군요. 무슨 뜻인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해두세요. 당신들의 행동으로 제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는다면, 저의 모든것을 걸고 이 사태의 해명을 요구할겁니다."
"…죄송합니다."
하린으로선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 또한, 어머니의 다급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국회의원들의 어리석은 모습에 통탄할 지경이니까.
그렇게 이실리아는 전화를 끊었고, 안좋게 끝았으나 어찌어찌 통화를 마친 하린은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미치겠네…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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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은행이 있다.
근처에는 고층 빌딩이 많고, 회사 또한 많아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는 거의 추석연휴 고속도로 수준으로 길이 막히는 도로 중앙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인근 주민들도 많아 은행앞의 도로는 평상시에도 교통량이 꽤 많은 편이다.
그렇게 은행을 지나쳐 가면 사거리가 하나 나오고, 이 사거리 또한 꽤나 많은 교통량을 자랑한다.
즉, 자동차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여기를 타켓으로 잡은거지. 크크큭!'
진우는 하루동안 노아가 알고 있는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규모의 은행을 확인하였고, 여러개의 은행중에서 이 곳을 타켓으로 잡으면서 인근의 지형과 도주로를 계산하고 숙지하였다.
대부분의 1층짜리 은행은 창문을 많이 만들지 않고, 만든다 해도 사람이 넘나들정도로 크게 만들지 않는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진우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탈취를 노리는 범죄자들에 의한 외부의 침입이 어렵다고 만들었다고 생각해왔고, 막상 은행 강도의 입장에서 정문외의 다른 침입로를 찾아보려니 물리적으로 벽면을 파괴하지 않으면 침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게 요란스럽게 침입할바엔 그냥 입구에서 기선 제압하는게 훨씬 나으리라.
"자, 마지막 준비를 해볼까. 어이,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숨어. 이딴 '놀이' 에 네가 죽으면 몇십억을 얻더라도 내겐 손해나 마찬가지니까."
"예."
조사를 끝내고 또다시 노아를 안으면서 복종도를 높인 진우는 자신의 명령에 말꼬리를 흐리지 않고 바로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진우와 노아는 움직이지 편한 평상복만을 입은채, 무기와 복면이 들어간 스포츠용 크로스백을 어깨에 맨 상태로 은행 바로 옆에 있는 건물 2층 계단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은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1시 38분.
다들 식사를 끝내고 자신들의 회사나 업무장으로 되돌아갈 시간이였기에, 2층 계단에서 각자 총기를 점검하는 두 남녀의 행동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진우의 크로스 백에는 수류탄 3개, AK-12, USAS-12, 7.62mm 드럼 탄창 4개, 5.56mm 드럼 탄창 2개, 12 gauge 드럼 탄창 3개가 들어가 있었고, 노아의 크로스 백에는 수류탄 2개와 자신의 주무기인 글록18C 두 정과 9mm 탄환 30개, 남는 잉여 공간에는 진우를 위한 드럼탄창이 각 탄환별로 1개씩 더 들어가있었다.
노아의 무장이 이렇게 빈약한 이유는, 그녀가 죽으면 안되기 때문에 원호의 역활만을 맡기기 위함이였다.
게다가 염동력에 의해 자유자래로 총알의 궤적을 변경할 수 있으나, 힘을 앞쪽으로 실어내 살상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었기에 특수한 상황에서나 사용하는 샷건이나 NTW-20은 이런곳에서 사용하기엔 성격이 너무 맞지 않았다.
은행 안으로 들어가 통장을 하나 새로 만드는척 하면서 주변을 확실하게 확인한 진우는 노아에게 숨을만한 엄폐물이 많으니까 총격전이 본격화되면 자기 몸만 제대로 보전하라는 지시를 내린 상황.
"후우, 그럼 가볼까."
신체 능력이 10등급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하는 은행 강도짓에 조금 긴장한듯 심호흡을 한 진우는 머리에 복면을 뒤집어 쓰고 AK-12를 크로스백에서 꺼내 7.62mm 드럼 탄창을 끼워넣었다.
한 탄창에 100발이 들어간 드럼 탄창이 가져오는 부담감은 총의 탄알 결림 현상이 자주 일어나지만, 탄창 부분을 드럼 탄창 호환화로 개조해놨기 때문에 사격 도중에 탄알이 걸리는 불상사는 없으리라.
노아도 생에 처음 저지르는 범죄에 긴장한듯, 크게 숨을 들이 마쉬며 복면을 뒤집어 쓰고, 바지 주머니에 탄창을 2개씩 넣어두며 준비를 마쳤다.
"알겠지? 일단 안으로 진입해서 인질들을 한군대로 모은 후에 기둥 뒤에 크로스백을 두는거야. 총탄에 맞아서 망가지면 안되니까."
"예. 그리고 저는 은행원들을 협박하고 당신은 바깥쪽을 맡는다, 이거죠?"
게임답게 복종도가 올라간 노아는 진우의 명령을 쉽게 받아들였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간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간에 일단 무조건 은행 안으로 들어가!"
은행은 입구와 건물 바깥쪽을 향한 감시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미리 복면을 쓰고 돌입하기로 한 그는 크로스백을 다시 매고 AK-12를 무장한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아도 그 뒤를 따라나섰고, 마침 은행 앞쪽을 걷고 있던 시민은 갑자기 옆건물에서 튀어나온 무장 강도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으며 비명을 지르려 하였으나, 진우가 입가에 손을 대고 자신의 총구를 가리키자 비명을 지르려던 그 자세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지이잉--
그렇게 굳어버린 시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은행의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선 진우는 자신이 은행 강도를 하면 가장 하고 싶었던 대사를 자신의 성격에 맞게 어레인지 하며 외쳤다.
"따랑~ 따랑~ 인출받으러 왔습니다~! 모두 대가리에 구멍나기 싫으면 손 머리 위로 올려!"
투다다다!!
"꺄아아아악!"
그리고선 천장을 향해 난사를 하자, 은행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은행 강도에게 죽기 싫다는 보호 본능에 따라 벽쪽으로 알아서 뭉쳐졌다.
은행원들은 접수대 아래쪽으로 몸을 숙였고, 처음부터 생각대로 진행되자 본래 계획했던대로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뒤쪽에 크로스백을 모아두고, 그 안에서 수류탄을 하나 꺼내보였다.
"자~! 레이디스 앤 젠틀맨! 내가 원하는 것은 단 두가지다! 조용히 하고 움직이지 말것! 이 두가지만 지킨다면……."
"꺄악! 꺅! 꺄아악!"
그 때, 한 아줌마가 그가 수류탄을 드는 모습에 비명을 질렀으나, 그와 동시에 AK의 총구에서 불이 터져나왔다.
탕!
퍽!
비명을 지르던 아줌마는 마에스트로 등급에다가 총열 강화까지 하여 성능이 2배 이상 올라간 최신형 AK에 의해 머리통이 터져나갔고, 그 모습에 인질이 된 시민들은 숨이 넘어갈것 같은 숨소리를 토해냈다.
"으…으아아아!……"
탕!
퍽!
하지만, 남들과 달리 비명을 지르려던 젊은 남성은 자신의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며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
"……!"
본능적으로 그가 소리를 지르려는 사람만 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은 시민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막았고, 그제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총구를 내리게 되었다.
"좋아 좋아. 역시 인간은 말보다 행동이라니까."
"이 자루에 돈을 넣어. 빨리!"
한편, 노아는 자루를 은행원에게 건내며 돈을 넣도록 하였고, 총구가 눈 앞에 겨눠진 은행원들은 살아남고자 필사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자루의 안을 채워나갔다.
'여기까진 순조롭군.'
이제 곧 은행원중 하나가 안내 테스크 밑에 있는 도난 스위치를 누르면 경찰들이 출동할 것이다. 아니, 누군가가 이미 눌렀으리라.
그 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설령 진우의 IQ가 200이여도 계산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사건이.
지이잉--
"여기는 우리 헬 프리즈너가 점령한다! 모두 엎드…엉?"
"엥?"
"허?"
"왓?"
갑자기 은행 안으로 들어선 또다른 4인조 복면 강도단이 등장한 것이다.
두려움에 떨던 시민들, 돈을 넣던 은행원들, 갑작스런 소리에 고개를 돌린 진우와 노아, 그리고 중무장한 4인조 강도까지 눈이 동그래진 상태가 되면서 은행은 적막함이 감돌았다.
============================ 작품 후기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러한 범죄 행위에 심각한 불쾌감, 혐오감을 느끼신다면 조용히 백스페이스를 누르기 바랍니다.
솔직히 이런 스토리에 혐오감을 가지는 분들이 100% 있겠지만, 그렇기에 픽션이고, 그렇기에 게임이라는, 안넣어도 상관없는 부분을 첨가한겁니다.
현실 현대물이라면 '이런 개새끼가 주인공이라니!' 라며 욕설이 나오겠지만, 게임이라는 틀만 일단 쓰면 '아무리 개새끼라 해도 게임은 게임이니까...' 라는 변명이 가능하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쓴 모든 소설이 가상현실게임이라는 설정을 가져다 쓴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만약,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주인공이 이렇게 개객낀데 현실에서 누가 알아보지 않느냐 라고 질문하신다면 "인터넷 악플러들이 회사, 직장에서도 인터넷에서 하던 그대로 행동할까요?" 라고 되묻겠습니다.
PS:동생을 주깁시다. 동생은 나으 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