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 / 0923 ----------------------------------------------
1장
석석석-
"흥흥흥~"
이실리아는 한국인인 유 창호와 결혼을 하면서 한국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데 노력하였고, 원래 음식 솜씨가 좋은 그녀는 금방 전문 요리사 수준의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에이프런을 두르고 능숙하게 도마 위의 채소를 썰어내며, 딸을 위해 다시 한번 음식을 해줄 수 있다는데 흥겨운 콧노래를 부른 그녀는 시계를 확인하였다.
진우와 노아가 나간 시간은 1시 10분 가량.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면서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 바늘의 모습에 아직 3시까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노아가 좋아하던 식단 위주로 준비를 마쳐가고 있었다.
딩동-
"어머? 벌써 돌아왔나?"
이실리아는 도마 위에 칼을 올려두고, 인터폰으로 종종 걸음으로 달려나간 그녀는 손에 이것저것이 묻어있기에 염동력으로 수화기를 들어 귓가에 가져갔다.
-엄마, 저희예요.-
"노아니?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진우씨라면 이정도는 당연하죠. 어쨌든 문좀 열어주세요.-
그녀는 마치 진우라는 남자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딸의 모습에 그에게 단단히 빠졌다고 생각한 쓴웃음을 지어보이고 염동력으로 문의 잠금 버튼에 압력을 가하였다.
삐이-- 철컹!
문을 열어준 이실리아는 문 앞에서 딸의 귀가를 맞아주기 위해 기다렸고, 찌개가 끓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염동력으로 손잡이를 돌리면서 불을 꺼두었다.
달칵-
"다녀왔……."
순간, 문 안으로 들어온 노아는 문을 열자마자 목격한 엄마의 따뜻한 미소에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였다.
"응? 왜 그러니?"
"아…아뇨……. 집에 돌아올때 엄마를 보니까…그리운 기분이 들어서요."
언제나 항상 자신이 집에 돌아올땐 냉기가 느껴지는 바닥과, 아무 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던 노아는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위해 마중나와준 엄마의 모습을 보니 어째서인지 울컥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실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노아가 자신의 과보호에 진절머리를 치며 가출하듯이 독립한 후론 이렇게 귀가한 딸을 맞아주는 행복감을 다시 한번 되새겨진 이실리아는 딸아이처럼 왠지 속으로 울컥거렸다.
'아놔, 아무리 나라도 이 분위기를 깰 수 없다고.'
그 사이에 끼어버린 진우는 자신이 이 분위기를 깨버리면 이실리아의 호감도가 -100을 찍고, 노아의 복종도 100에서 0까지 단숨에 내려가는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의 훈훈함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고민될 정도였다.
"지금 찌개랑 반찬 만드는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저도 도와드릴께요. 저도 그동안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거든요."
"큼큼,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장모님."
진우는 요리하고 싶은 마음은 0.0001%도 없었지만, 이 훈훈한 분위기에 끼어들지 못하면 영원히 겉돌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귀차니즘을 참고 요리를 만드는데 참가해야만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실리아는 염동력을 사용하여 혼자서 4~5명의 요리사 몫을 처리할 수 있지만, 오랫만에 만난 딸과 나란히 함께 요리를 만들 수 기쁨을 위해 시간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원래는 노아도 염동력으로 칼질하고 요리를 하였으나, 그녀가 요리할라치면 뒤에서 공격해오는 진우가 가져다주는 쾌락에 정신력이 흐트러져버려 손으로 칼질하는게 나름 익숙해진 상태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함께 부엌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모녀는 미소를 지으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그러지 못한 진우는 이실리아의 전용 일꾼처럼 그녀의 지시대로 움직여야만 하였다.
------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이실리아의 가정식 백반 요리에 허겁지겁 반찬과 찌개를 먹어치운 노아와 진우는 밥을 한 공기 더 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후하아~ 정말 맛있어요, 엄마."
"솔직히 장모님께서는 영국인이시니까 조금 불안했었는데 전문 요리사보다 더 맛있게 하셨네요?"
진우는 NPC들만이 가지고 있는 요리 스킬이 있는게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정도로 맛있는 저녁 식사에 감탄사를 내뱉어주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영국 음식은 십수년전만 해도 여러 미식가들에게 최악의 평가를 받았지만, 계속된 요리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사람이 먹을만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렇기에 맛없는 영국 음식을 먹고살던 이실리아의 요리 솜씨를 많이 미심쩍어 하였으나, 다행히도 그의 걱정은 걱정으로만 끝이 나게 되었다.
"후훗, 나는 옛날부터 요리가 취미였지. 창호씨와 결혼하면서 그 이를 위해 한식을 배워뒀거든. 이렇게 두 사람 모두 기뻐하니 나도 기분이 좋네."
이실리아는 행복하면서도, 아련함이 느껴지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지금은 저승에 있을 남편을 추억해 보였다.
그녀의 말에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졌지만, 진우는 오히려 속으로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예쓰! 옛 남편을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미망인 최고! 이래야 먹어주는 재미가 있지!'
진우가 가장 좋아하는 시츄에이션은 3개다.
하나는 모녀 덮밥. 모녀를 한 자리에 깔아두며 즐기는 것.
두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공개 섹스.
세번째는 죽은 남편을 추억하는 미망인이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남편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쾌락에 져버리면서 조금씩 사랑했었던 그 사람의 얼굴을 잊어가고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것은 상상만 해도 꼴릿할 정도다.
다들 알다시피 이실리아는 세번째의 유형이다.
십수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로지 자신만이 사랑했던 남자만을 바라보는 그녀의 고귀한 마음이야말로 짓밟고 타락시키기 딱 좋은 먹잇감이다.
현재, 진우의 계획은 이러하다.
이실리아의 약점을 잡고 그것의 댓가로 노아의 눈을 피해가며 아슬아슬한 성생활을 즐기는것.
말은 쉽지만, 이실리아의 약점을 잡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없으면 뚫어서라도 길을 만드는 진우에겐 오히려 여러가지 공략법을 생각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에 불과했다.
"자, 다 먹었으니 슬슬 치워볼까……."
그 때, 모두 식사를 다 한것을 확인한 이실리아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반찬그릇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진우가 그런 그녀를 제지하였다.
"아, 장모님. 뒷정리는 제가 할테니 노아와 그동안 하고 싶었던 해후를 즐기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응? 그래도 괜찮을까?"
"물론이지요. 수년만의 모녀상봉인데 남자가 눈치 있게 빠질 수 있는 공간좀 만들어주세요."
넉살좋게 웃어보이며 꾸밈없이 솔직한 대사에 피식 웃음을 지어보인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그럼 뒤를 맡기겠네."
"옙. 따님과 느긋하게 보내십시오."
"진우씨, 고마워요."
노아와 이실리아는 그렇게 진우에게 고마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고, 진우는 식탁 정리와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일부러 자진해서 나선것은 이실리아의 호감을 조금이라도 얻어 경계심을 줄이기 위함과 어떻게 해야 그녀의 약점을 잡을 수 있는지 천천히 궁리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이실리아의 약점을 잡으려면 그녀의 뒷조사를 해선 불가능해.'
이미 노아로부터 그녀의 명성을 전해들은 그는 과거 조사를 해봤자 시간 낭비일 뿐이니, 지금 당장 약점을 만들어낼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약점도 단지 창피한 수준으론 안 돼. 밝혀지면 그녀의 명성이 더럽혀지거나, 본인이 노아가 충격을 받을거라 생각할 수 있는 약점이 필요해.'
어떻게 약점을 만들것인지 설거지와 함께 머리를 굴려가던 진우와 달리, 소파쪽은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그래서 진우씨가 제 총을 몇번 만지더니 소이탄의 위력이 강해졌어요. 솔직히 그때는 망가지지만 않았어도 다행이라 생각했었거든요."
"흐응~ 보기보다 실력이 꽤 좋나 보구나?"
"게다가 오늘 머셔너리 서울 지부에서 그 사람이 간단하게 모든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해서 처음부터 E랭크 용병으로 등록하게 됐지만, 그 이의 실력이라면 B랭크도 간단했을걸요?
노아의 대사 태반이 진우의 칭찬 일색이였기에, 이실리아는 자신의 딸이 정말로 저 청년에게 빠져도 보통 빠진게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대화를 몇번 해보니 아주 나쁜 청년이 아님을 느낀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심사숙고 끝에 조심스래 입을 열었다.
"노아야, 내 장기 휴가가 끝나면 나와 진우 청년과 함께 영국으로 오지 않을래?"
"…예?"
"네 염동력 레벨은 나보다 낮지만, 굳이 내 뒤를 따라서 라운드 나이츠에 들어갈 의무는 없단다. 영국에 가서 네가 하고 싶은걸 해도 좋아. 하지만, 가족끼리 떨어져야 하는 생활은 이쯤에서 청산하고 나와 함께 버킹엄 궁으로 들어가자꾸나."
"……."
"게다가 엘리자베스 여왕님께서도 너를 만나고 싶다 하시고. 너도 옛날에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여왕님을 잘 따랐잖니."
사람은 상대방이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아도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고, 보기만 해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엘리자베스 2세와 이실리아는 후자로, 서로를 처음으로 만나자마자 왠지 모를 친근감에 순식간에 친해진 케이스다.
특히, 반복적인 왕궁 생활을 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작은 새끼 고양이처럼 귀여운 어린 시절의 노아와 자주 놀아주면서 지루함을 이겨내던 시절이 있었다.
노아도 영국의 국모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놀았던 어린 시절이 기억났는지, 조금 그리운듯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자신과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자를 주인으로 섬겨야하는 입장이 될테니, 그 후의 일을 그녀 마음대로 정할 순 없었다.
"조금…생각해볼께요."
"하긴, 지금까지 자유로웠던 생활을 했던 네게 갑갑한 궁전 생활은 고민이 되겠지. 하지만, 나와 여왕님의 권한이 있다면 마음대로 바깥 출입이 가능하니까 용병 생활을 하고 싶다면 영국에서 하려무나."
"……."
솔깃한 말이긴 하지만, 그녀의 생각보단 진우의 생각이 중요하기에 노아는 계속해서 생각해보겠다는 말로만 시간을 끌었다.
'미안해요, 엄마. 하지만, 엄마도 진우님에게 안기면 그 분의 강인함에 끌릴거예요. 우리 모녀가 그 분을 함께 모시면 언제 어디서나 함께가 될테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노아는 어차피 한달이 지나면, 엄마와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게 될거라 생각하면서 본가로 돌아가는것에 대한 대답을 미루어두었다.
이실리아도 너무 많이 권유를 하면 오히려 반대 효과만 생길 뿐이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다시 못다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