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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꺄아아악!"
"!!"
저녁이 되면서 노아와 함께 돌아와, 저녁 식사를 위해 부엌에서 수 개의 식칼과 국자를 염동력으로 조종하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던 이실리아는 딸아이의 비명 소리에 깜짝 놀라, 식칼들을 가지고 노아의 방으로 달려나갔다.
"노아!? 무슨 일……!"
수 개의 식칼을 공중에 띄우며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달려간 그녀가 목격한 것은…….
"변태! 바보! 죽엇!"
"자…잠깐! 노아악! 내 얘기좀……!"
노아에게 베게로 무참히 두들겨 맞고 있는 진우의 모습이였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걸 줄 수 있어! 실망이야!"
"아…아니……! 네 사이즈에 맞는 속옷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그러니까 왜 내 속옷을 당신이 사오는거냐구!"
퍽퍽!
또다시 노아에게 침대로 두들겨 맞는 진우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문 밖으로 도망쳤고, 노아의 씩씩거리는 표정에 뭔가 잘못한게 있나 싶어 이실이라는 부엌칼을 한쪽으로 몰아붙이며 조심스래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니? 사위가 이상한거라도 줬어?"
"엄마! 진우씨가 나에게 이런걸 선물했어!"
그리고선 그녀가 펼쳐든것은, 고급스런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 실크로 수놓아진 올인원 속옷이였다.
"그게 왜?"
"이게 뭐라는지 알아? 저주파 기능성 속옷이래!"
"저주파?"
"그러니까 저주파로 진동을 일으켜서 다이어트 시키는 속옷이래잖아! 이게 나보고 쪘다는 말 아니면 대체 뭐냐구!"
"에……."
그제서야 이실리아는 긴장을 풀며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푸흡……."
"어쨌든 자존심 상해서라도 못 입어! 안 입을거라구!"
그렇게 문쪽을 향해 올인원 속옷을 집어던진 노아는 신경질적으로 침대 이불보에 쏙 들어가버렸고, 웃음섞인 한 숨을 내쉰 이실리아는 속옷을 챙기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야야……. 베게라도 무방비로 맞으니까 꽤 아프네요."
소박맞은 남편마냥 소파에 궁상맞게 앉아있던 진우는 뒷목을 쓰다듬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흐응~? 그런데 속옷 색깔이 참…취향이 보이는걸, 사위?"
"윽…거기까지 해주세요. 안그래도 여자 속옷 사서 부끄러워 죽겠는데 장모님까지 그러면 진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구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노아 사이즈의 속옷은 구하기 어려워서 나름 생각좀 했다 생각했는데…사이즈가 맞는게 하필이면 그런거 밖에 없어서……. 아아~~! 이 오해를 어떻게 풀지~~!"
진우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한탄을 내뱉었고, 이실리아는 딸과 사위의 사랑 싸움에 걱정을 접어두었다.
"장모님, 죄송한데 한동안 장모님께서 가지고 계셔주지 않겠어요?"
"응? 내가?"
"버리기는 아깝고…노아가 화를 풀기 전까진 어딘가에 있어야 해서……."
"그러면 잠시 내가 보관하겠네."
그녀는 별 생각없이 승낙하였고, 진우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노아의 화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궁리하는 척을 하였다.
'좋아. 일단 속옷을 자연스럽게(?) 건내주는데까진 성공했어. 여기서 확률이 반반인데…….'
일부러 노아와 싸우는척을 하면서 잠시동안의 보관이라는 명목으로 이실리아에게 저주파 올인원 속옷을 건내는데 성공하였지만, 여기서부터는 그녀의 행동에 따라 루트가 갈린다.
스스로 착용하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 만약 착용을 하지 않는다면 속옷의 기능에 대해 찬양한다거나, 화를 푼척한 노아가 효과가 느껴진다고 말한다거나, 최악의 경우엔 그녀의 모든 속옷을 빨아버렸다는 실수로 어떻게든 입혀야만 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사위가 맡기니까 맡아준다는 분위기였기에, 속으로 애간장을 태운 진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서 1층으로 내려온 노아와 눈이 마주쳤다.
'성공?'
'성공.'
서로 눈빛으로 계획이 성공했음을 확인한 두 남녀는 겉으론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이실리아가 차려준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해 식탁에 앉기 시작했다.
"어…저기…노아……?"
"……."
"그…그게…아까전엔 미안했어. 그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식사하고 있잖아. 그런건 나중에 말해."
그렇게 냉랭하게 대답하는 노아의 모습에 풀이 죽은듯이 고개를 숙인 진우도 겉으론 꾸역꾸역 먹는것처럼 보였지만, 나름 음식의 맛을 즐기며 음미하고 있었다.
'뭐, 이런 사랑 싸움은 제 3자가 끼어들면 안되겠지.'
이실리아는 자신도 젊었을적엔 남편과 여러번 싸워보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싸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아마도 길면 3일쯤? 짧으면 오늘 밤이려나.'
괜시리 여기서 한 쪽편을 들면 일이 더욱 복잡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세 남녀는 평소와 달리 대화가 거의 없는 묵언수행 같은 식사 시간을 보내야만 하였다.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노아는 무표정한 냉기를 뿌리며 사라졌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을 내쉰 진우는 꺼림칙한 일이 생기면 뒷목을 주무르는 버릇을 사용하며 이실리아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기…장모님, 아무래도 노아의 화를 풀어주려면 오늘은 함께 자는게 좋을것 같은데…장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음……."
진우의 속뜻을 모를리 없는 그녀는 나름 심각하게 고민을 하였다.
개인주의적인 서양인들이니까 다 큰 자식이 이성 애인과 함께 자든말든 상관없을것 같지만, 예전에도 말했듯이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은 종족, 인종, 문화 불문하고 모두 똑같은 것이다.
애인이긴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속도 위반같은게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부모된 입장에선 기쁘기도 하면서도 화가나기도 하고, 하여튼간에 엄청 복잡한 심정의 이실리아였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허락해? 말아? 죽여?' 를 몇분간 고민하던 그녀는 남편을 위해 맥스웰이라는 성을 버렸을때만큼 비장한 각오로 입을 열었다.
"알겠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게."
"옙! 감사합니다, 장모님!"
정식으로 허락을 받은 진우는 기쁜듯이 싱글벙글해 하며 그녀를 대신해 찬거리를 정리해주고 설거지를 해주며 나름대로의 아부를 떨어주었다.
그녀도 그의 이런 노골적인 아부가 싫지만은 않은지 피식 웃음을 지어보이고선 노아의 화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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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밤이 되자 진우가 노아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잠시동안의 소란이 일어났으나, 이내 잠잠해지자 둘이서 오해를 풀고 있으리라 생각한 그녀는 둘의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 이만 일찍 자기로 결정하였다.
자기전에 이실리아는 자신의 옷과 짐을 진우가 사용하던 방으로 가져와 풀었고, 옷을 정리하다가 잠시 맡겨주기로 한 저주파 올인원 속옷을 꺼내게 되었다.
'후훗, 사위는 꽤 육감적인걸 좋아하나보네.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 실크라…….'
지금 생각해봐도 조금 웃긴 일인지라, 웃음을 참으며 정리하려던 그녀는 문득, 노아가 화를 냈던 이유가 기억났다.
'그러고보니 저주파로 진동을 일으켜서 다이어트 효과를 준다고? 요즘 세상 참 좋아졌네.'
자신이 젊었을때는 이런건 상상도 못했었기에, 그녀는 호기심에 올인원 속옷을 여기저기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다이어트라…….'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그녀는 문 옆에 있는 반신거울 앞에서 옷을 벗더니 속옷 차림만 남은 자신의 몸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으응…요즘 운동을 안해서 그런지 조금 옆구리가 찐것도 같고…….'
40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S라인과 개미 허리를 가진 주제에 옆구리 살을 꼬집더니 전보다 더 찐게 아닐까 걱정하던 이실리아는 문득, 딸과 함께 예능 사무실의 직원으로부터 명함을 받았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아직 젊은 애들에게 뒤지지 않겠지만…나잇살도 조금 있는것 같고…방심했다간 한번에 늘어날지도…….'
군살이라곤 조금도 없는 잘록한 뱃살을 매만지던 그녀는 젊은 아이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여자의 욕심에 의해 전보다 찐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여자라는 생물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만족을 못하는 동물이다보니 그녀 또한 그 범주에 들어가는, 어머니라고 불리기 이전에 한 명의 여성이였다.
'노아에겐 미안하지만…어차피 걔는 한동안 보지도 않을테니까 그때동안만 조금 써둘까나?'
안그래도 왕실에 있던것처럼 운동을 하지 않았던지라, 다이어트라는 말이 나오자 위기감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속옷을 벗더니 올인원 속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올인원 속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은 젊었을적의 몸매를 그대로 유지한 아름다운 여성의 몸매였으나, 그녀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면서 진우의 마수에 스스로 들어가고 말았다.
"어디보자…작동을 어떻게 하는거지?"
진우가 손수 제작한 아이템인 만큼, 사용 설명서 같은게 있을리 만무하기에 그녀는 설명서를 챙기지 않은 진우의 무신경함에 투털거리며,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다가 명치 부근에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스위치를 발견한 그녀는 곧바로 누르려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음…만약에 소리가 들리면 딸이랑 사위가 내 방으로 들어올텐데…….'
딸아이에게 선물한 속옷을, 그것도 젊은 애들이 입을법한 것을 몰래 쓴것을 들킨다면 주책맞은 아줌마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일단은 노아와 진우가 수면을 취하면 그 때 작동하기로 결정하였다.
============================ 작품 후기 ============================
빠른 스킵으로 인해 피해를 본 여러 캐릭터가 있습니다.
원래는 노아와 이실리아의 오락실 탐방기, 주인공에 대한 페리샤, 리피, 그랜드 아크의 대화씬이 있어야 했고, 코벤은 주인공에게 몸이 뜯겨져 나가는 고통을 받다가 죽기 일보직전에 일부러 공격을 멈춰서 빨리 재생하라고 득달하면서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에 콧물눈물 질질싸야 했죠.(아니, 얘는 오히려 다행인가?)
그 밖에도 소소한 이벤트를 넣어야 했지만, 모녀 덮밥을 보고 싶다는 만행에 의해 2~3편 분량에 달하는 내용이 스킵되었습니다.
너무 빨리 휙휙 지나간다, 스토리가 급전개 되는것 같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 그분들 생각 맞습니다.
빨리 써야한다는 일념하에 몇몇 묘사는 놓쳐버리기까지 했지만, 앞으로는 원래의 묘사와 소소한 사이드 이벤트를 집어넣으며 진행하겠습니다.
일단 모녀 덮밥까지만 진행하고요 -_-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