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50화 (5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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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흐아아악! 아아악!"

"키시이이잇!"

날카로운 송곳니와 함께 나타난 지네의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하린이였다.

염동력은 상상의 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뚜렷하게 상상할수록 더더욱 강력하게, 정확하게 표현 할 수 있기에 그녀는 자신의 팔에 채찍을 휘감는다는 상상을 하며 바람의 압력으로 이루어진 채찍을 만들어내, 지네의 기다란 몸을 내리쳤다.

파측!

등껍질이 부서지면서 안의 살이 파괴되는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지네는 그 정도 부상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자신이 물어뜯은 부대원을 퉤 뱉고는 하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누님!"

하지만, 호진이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더니 눈을 감자, 두 남녀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지네의 머리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훑어냈다.

팟-!

"차앗!"

호진의 텔레포트 능력으로 반대편으로 건너온 하린은 양손을 모으며 몸통을 향해 힘껏 내리베자, 고밀도로 농축된 바람의 검이 지네의 몸통을 반 이상 갈라냈다.

"하린 양을 원호한다! 쏴라!"

그와 동시에 부대원들중 가장 계급이 높은 이가 원호 사격을 지시하자, 모든 부대원들이 상처 부위를 집중적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키이익!"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지네는 반격을 나서기 보단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을 선점하려는듯이 다른 통로로 빠르게 몸을 움직였고, 그 속도가 매우 빠른지라 하린과 호진이 이능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어찌어찌 지네를 퇴각시킨 그들은 지네의 송곳니에 복부가 꿰뚫린 부대원을 응급처치하기 위해 다가갔으나.

"크가아아악! 끄아악!"

그는 온 몸이 보라색으로 변하더니, 머리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걸죽한 피가 터져나오며 손 쓸틈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다.

"……."

"…큭……."

동료의 참혹한 죽음에 모두들 뭐라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가 내리 깔렸지만, 단 한명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찾아야 할 놈을 찾은것 같은데? 역시 2억짜리 대가리라고 할만 하구만."

여전히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말투에, 무전기 때부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하린이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해서 지금까지 조용히 입닥치고 있던 호진이 그를 향해 쏘아붙였다.

"야! 사람이 죽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이능력 범죄자가 설쳐대고 괴수가 난무하는 세상인데다, 적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에서 사람 몇명 죽었다고 징징댈래? 군대는 갔다오고 그딴 소리 지껄이는거야?"

"그만!"

둘의 말싸움이 심화되려는 분위기가 느껴지자, 하린이 두 사람을 제지하였다.

"두 사람 모두 그만하세요. 여기서 감정 싸움 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는게 없습니다."

"그렇고 말고.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저 애송이나 챙겨두라고. 가자, 노아."

"응."

진우는 하린의 질책어린 목소리를 무시하며 지네가 들어간 구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요! 단 둘이서 행동하겠다고요? 각개격파 당할뿐이란걸 모르십니까?!"

"이봐요, 아가씨. 각개격파라는건 실력이 고만고만한 애들이 뭉쳐있다가 떨어질때 당하는걸 뜻하는거지, 나같은 졸라강한 짱짱맨에겐 '사냥감을 추적한다' 라는 표현을 쓰는거요. 오키? 그럼 수고하라고. 2억을 댁들에게 넘겨주기 싫거든. 카하하하핫!"

끝까지 상대방이 기분나쁠만한 대사를 내뱉으며 어두운 통로속으로 사라져가는 그의 모습과, 그 뒤를 따라가는 노아의 모습에 하린은 그의 건방진 태도에 어금니를 깨물며 분노를 표출하였다.

"누님! 저 싸가지없는 새끼를 그냥 둘 생각이십니까!?"

"후우…애초에 우리는 저쪽에게 지휘 권한이 없어.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노아는 작열의 마탄이라는 이명을 가진 A등급 용병인데 어째서 저런 남자와 함께 다니는거지?"

하린은 자신이 듣던것과 다른 노아의 이상 행동에 궁금증을 품었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 주변에는 요마의 등장으로 겁을 집어먹은 부대원들을 다독이는게 우선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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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장사하자~ 먹고 살자~ 오늘도 방실방실~"

예전에 즐겨들었던 후크송을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네가 들어간 통로의 추격에 나선 진우는 징그러운 요마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긴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였다.

"진우님, 어째서 하린양에겐 그런식으로 대한거예요?"

노아는 그녀를 공략하기로 한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모르는게 이상한 일이지만- 일부러 나쁜 인식만 심어주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쁜 남자 효과지."

"일부러 나쁜 남자처럼 굴어서 여심을 흔드는 그거요? 그녀는 그런 수법에 통할 정도로 골이 빈것처럼 보이진 않았던데……."

노아는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들을 골빈 사람 취급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물음은 거침이 없었다.

"예를 들어서 말야, 평생을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을 A, 툭하면 시비를 걸고 싸가지 없는 B라는 놈이 있다고 치자고. 그런데 A가 누군가의 지갑을 찾았는데 처음으로 그 지갑을 훔치다가 틀켰어. 사람들은 A에게 맹비난을 하겠지. 착실하게 살아온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승냥이였네, 뒤에서 콩깍지를 까는 놈이였네, 말이 많을거야. 얘기를 바꿔서 B가 우연찮게 누가 위험에 빠진걸 구해줬어. 사람들은 그래도 아주 나쁜놈은 아니다, 그래도 착한 구석이 있다, 라며 호감을 가지지. 나는 하린에게 철저하게 B가 될 생각이야."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마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최악의 남자로서 인식이 박혀있겠지. 하지만, 그녀가 힘들어하고 있을때 갑자기 나타나 도와준다면? 나쁜놈인줄 알았지만 어느정도 친절한 구석이 있을거라 생각해서 호감도가 생길거란 말씀이야. 그때부터 겉으론 평소처럼 행동하되, 행동 하나하나에 그녀에게 도움이 될만한 짓을 섞는다면 자신을 말없이 도와주는 모습에 경계를 풀테고, 그 때야말로 작업 개시지. 큭큭큭!"

"…그 짧은 사이에 그걸 생각하셨다고요?"

그가 하린을 만난것은 고작 2~3분. 거기다가 1분만에 요마 지네가 등장하였기에, 무전기를 들었을때부터 궁리를 했다손 치더라고 5분 밖에 주어진 시간이 없었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이런 계산을 해낸 그의 머리가 어떻게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응. 나의 계산 능력은 일반인보다 수준 이한데, 남을 괴롭힐때랑 공략할때 만큼은 아이슈타인 부럽지 않더라고."

"……."

방금한 말 취소.

곰곰히 생각해볼때 그가 자신의 정신적인 방어벽을 깨부실때도 그렇고, 어머니인 이실리아를 공략할때도 자신의 보고를 듣자마자 즉시 다음 명령을 내리는 그의 모습에 신빙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아……."

"……? 왠 한숨이야?"

"아…아녜요.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네요."

"뭐가?"

진우는 노아가 말하는 '이상한점' 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는지, 어깨를 으쓱이며 갸웃거렸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요마급의 괴수가 나온적이 거의 없어요. 10년전쯤에 한번 나왔다곤 했지만, 그 이후에는 요마의 등장이 전무했거든요."

"원래 괴수란게 언제 나올지 모르잖아? 이미 한번 떴다는건 언제든지 다시 재등장할 확률이 있는거라고. 이번일은 그 확률에 당첨된 복권 같은거겠지."

"게다가 괴수들은 기본적으로 폭력적이기 때문에 집단 행동같은걸 보이지 못해요. 인간형이나 머리가 좋아보이는 요마라면 힘으로 군림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그녀의 의문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지만, 진우는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꺄앗!?"

"자자, 너무 어지럽게 생각하지 말자고. 일단 눈 앞의 2억부터 챙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이실리아를 공략하기전에 다른 종류의 이벤트가 꼬이면 일이 귀찮아진다고 생각한 그는 더이상 플래그를 세우지 못하도록 막은거지만, 노아는 그의 뜨겁고 거친 손이 머리를 쓰다듬자 조금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숙이며 잠잠해졌다.

그 모습이 마치 고양이같다고 느낀 진우는 좀 더 어루만져주려 하였으나, 앞쪽에서 들려온 소음에 전투 자세를 취하였다.

와그르르르--

무슨 소린지 몰라도 앞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라이트를 비추며 천천히 나아갔고, 통로 끝에 도달하면서 목격한것은.

"으읏……."

"크으…이거 완전 B급 슬래셔 무비 수준의 풍경인데?"

마치 공포 영화에서 주인공 일행이 괴물의 둥지를 들어가서 보게 되는, 전형적인 뼈다귀로 이루어진 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정도 숫자라면…최소한 30명 이상은 잡아먹을지도……."

"거참, 먹을라면 다 소화시키지 편식 개쩌네. 어쨌든 여기가 놈의 둥지중 하나라는거……."

그 때, 주변을 둘러보던 진우의 눈이 한 장소에서 멈추며 말끝이 흐려졌다.

"어이, 노아. 이것좀 봐."

"예? 어라? 왜 이런게……?"

진우와 다른 방향을 살피고 있던 그녀는 그의 부름에 시선을 돌리자, 단번에 눈에 띄는 이상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나무로 이루어진 테이블.

테이블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어째서 이런곳에 테이블이 세워져있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지네 녀석이 테이블을 이렇게 세워둘리는 없고……. 누군가가 테이블을 여기까지 가져와서 사용했다는 뜻인데……."

오만가지 쓰레기가 모두 모이는 하수구라지만, 이런 큼지막한 테이블이 버려질리가 없다고 생각한 진우와 노아는 테이블과 밀착되어있는 벽에 칠해진 노라색 액체가 말라붙은것을 발견하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탐색하려던 찰나, 진우의 귓가에 메세지음이 들려왔다.

-이상한 약품 자국을 확인하였습니다. 생물학 지식이 7등급 이상이여야만 이 약품의 성분을 알아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허? 그렇다면 여기에 누군가가 이 테이블을 통해 약을 만들었다는거잖아?'

그는 요마의 등장이 자연 발생이 아니라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물임을 직감하면서 자신이 모르고 있던 또다른 적대 세력이 등장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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