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58화 (58/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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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뭐 이런놈이 다 있어?'

국정원 소속의 요원인 이 오수는 협상에 들어서기 전엔 반드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마인드의 소유자다.

협상이라는 것은 최소 두 사람 이상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고도의 정신적 싸움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것이 협상에서는 총과 탄환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하린에게 용병들의 평가를 들은 오수은 용병 등급은 낮지만, 손 진우라는 용병이 A급 용병인 유 노아를 제치고 실질적인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는 정보와, 자신이 곤란해하자 갑자기 건방진 태도를 바꿔서 값비싼 요마의 시체를 40%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팔아주겠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밖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것이 전부였기에, 겉으론 호탕하거나 건방져도 눈 앞에 불쌍한 사람이 눈에 띄면 마음이 약해지는 부류라고 판단한 그는 유가족들의 불행한 삶을 설명하려 하였으나, 갑자기 말을 끊고 계약서를 찢어버리는 행위에 당황하면서도 여전히 웃는 낯으로 진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러시니 조금 당황스럽군요."

그의 정중한 말투에, 진우는 방금전까지 사용하던 존댓말을 집어치우고 본성을 드러냈다.

"당황스러운건 이쪽이지. 생각해봐. 얼굴도 몰라, 이름도 몰라,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을 위해서 내가 받을 수익을 포기해라?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있는데 요마 시체를 구입할 돈은 있고, 위로금을 낼 돈이 없다는건 말이 맞지가 않잖아?"

쾅-

그리고선 거만한 자세로 테이블 위에 두 다리를 꼬아두며 올려두면서 분위기가 일변하자, 오수도 본색을 드러냈다.

"후우……. 이 방법으로 해결될 확률은 반반이라 생각했건만, 이렇게 빨리 다음 수단을 쓰게 될 줄은 몰랐군."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의 불행한 삶을 구구절절하게 얘기하여 연민에 호소하려던 작전이 실패하였지만, 애초에 그의 무기는 이것 하나가 아니였다.

"이쪽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려 했는데 거절한 것은 그쪽이라는걸 잊지마라."

오수의 분위기는 방금전까지 유들유들한 미소와 상대방을 존중해주는듯한 말투에서 상대방에게 철저히 냉혹한 '갑' 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 좋아 좋아. 이제서야 대화를 할 맛이 나는군."

진우도 방금전까지 응접실을 매우고 있던 위선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상대방을 깔보는듯한 비웃음 섞인 미소로 오수를 내려 보았다.

딱-

역시나 어깨를 펴내며 거만한 자세를 취한 오수는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에 있던 보디가드가 가방안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주었다.

"일단 이것을 보실까?"

스윽-

그가 테이블 위로 몇 장의 서류를 밀어내자, 그것을 받아챈 진우의 한 쪽 눈이 치켜올라갔다.

"너……!"

함께 그 서류를 확인한 노아는 울분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서류에는 그동안 암묵적으로 범죄자들의 무기를 조금씩 빼돌리던 노아의 절도 행위와, 그것을 뒷바침하는 CCTV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설명했지만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노아는 건스미스와 총기의 구매가 매우 힘든 한국의 사정 때문에 자신이 처리한 범죄자들의 무기를 한두정씩 빼돌리면서 예비 무기로 사용해왔었다.

지금까지는 A급 등급의 용병인 노아의 위명 때문에 모르쇠로 넘어갔으나, 요마 지네를 60%까지 줄인 가격으로 구입한다면 그녀의 존재보다 몇 배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만약을 위해 모아두었던 절도 장면을 한번에 공개한 것이다.

"한국의 총기 관련 법안은 매우 무거운거 알고 있겠지? 이 정보들과 백업 자료들까지 모두 넘겨주지. 75%까지 내려준다면 말이야."

노아를 약점으로 잡은 그는 60%에서 75%까지 후려쳤다.

"30%."

그 때, 서류의 내용을 보고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진우가 말문을 열자, 오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상황 판단이 안되는건가? 이 자료 하나만으로도 저 년을 십수년간 콩밥 먹일 수 있어! 이것뿐인줄 알아!? 지금 당장 국정원을 파견시켜 불법 무기 소지죄까지 밝혀내면 20년은 기본이란 말이다!"

그들의 준비한 무기는 노아의 절도죄뿐만이 아니였다.

미등록된 노아의 무기들까지 밝혀내면서 죄를 가중시킬 수 있는 또다른 무기와 탄약까지 장전해둔 상태였다.

"15%."

"……!"

쾅!

지금 위기에 빠진게 누군지 모르는 진우의 모습에 오수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제대로 미쳤군! 아직도 이해가 안되나!? 지금 당장 국정원에 연락하면 게임 오버야! 이미 위에서는 수색 영장까지 발급 받아둔 상태란 말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선 늦장 대응,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그들이지만, 권력이 없는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을때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터라 진우와 노아로부터 요마 지네를 빼앗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0%. 한번만 더 말해봐."

"!?"

방금전까지의 경박한 목소리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진우가 진중한 표정과 살기어린 음성으로 차분하게 입을 열자, 오수와 보디가드들의 등골이 순간적으로 오싹거렸다.

국정원에서 지내면서 자신들보다 권력이라던가 힘을 가지고 있는 강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던 그들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정체모를 힘에 움츠려든 것이다.

'뭐…뭐지? 이 느낌은……?!'

강자와 약자를 본능적으로 구별할 줄 아는 그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끌어올려주는데 톡톡히 한몫을 한 본능이 빨리 입닥치고 사라지라고 울부짖고 있었으나, 겨우 E급 용병 하나와 조금 상대하기 까다롭지만 A급 용병 하나밖에 되지 않는 그들에게 겁을 먹을 이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여기서 그냥 돌아가면 자신의 출세길도 막혀버리고 만다.

"그……!"

오수가 다시 한번 뭐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진우가 먼저 선수를 쳤다.

"뜬금없이 어디서 감히 허세를 부리냐고 싶겠지? 너희들의 눈에는 E급밖에 안되는 멍청해보이는 용병 하나와 A급 용병 계집 하나만 보일 뿐일테니까."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비천한 평민이 관리님에게 까불다니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봅니다."

입은 저자세였지만, 표정은 명백하게 상대방을 비웃고 있었다.

"계약 서류가 있으면 다시 주시겠습니까?"

갑작스럽게 변한 그의 행동에 당황한 오수는 상대방이 자신의 제의에 거절하였을때, 권력의 힘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데 성공하여 75%까지 가격을 후려처서 구매한다는 계약서를 내주었다.

원래 계약서의 내용에는 요마 지네의 절반을 40% 할인된 가격으로 가져간다고 되어 있었지만, 이 계약서에는 3분의 2를 75%까지 내려간 가격으로 구매한다고 되어 있었다.

'모두 빼앗지 않은것은 남은 3분의 1을 정가로 팔도록 하여 이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느끼게 하고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인가? 약자라면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너희들은 시비를 걸 사람을 잘 못 잡았어.'

여전히 상대방을 비웃는 낯으로 아무 망설임 없이 사인을 한 진우는 서류를 오수에게 건내주었다.

"자, 이걸로 되었지요?"

"어…으…응."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깜짝 놀란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받아챙겼고, 서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갑작스런 그의 저자세와, 무엇을 눈치챘는지 방금전까지 분노한 표정으로 씩씩대던 노아가 비에 젖은 강아지를 바라보는 측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대체 뭐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 이제 노아의 관한 자료를 건내주시지요."

"……."

눈치가 빠르고 느리고간에 명백하게 이상한 두 남녀의 모습에 불길함을 느낀 오수는, 원래라면 정말로 백업 자료까지 모두 내줄 생각이었지만 일단은 백업 자료를 남겨두기로 하고 자신들이 가져온 자료를 건내주려는 순간, 노아가 염동력으로 그들이 가져온 가방을 모조리 낚아챘다.

"으앗!?"

"계약서를 드렸으니까 이 가방안에 있는 노아의 관한 자료는 저희들이 알아서 처리하지요. 나머지는 지부장님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선 가방을 모두 챙긴 두 남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나갔고, 갑작스런 전개에 어이가 없어진 그들은 눈만 껌뻑이며 대체 뭐가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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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큭큭. 안그래도 누구부터 처리할까 감이 안잡혔는데 이렇게 알아서 희생양들이 나타나주니 고마울 따름이군."

머셔너리 밖으로 나온 진우는 즐거워 미칠것만 같은 표정으로 근처 은행으로 향하였다.

해모수가 진우를 용광검의 주인으로 책정할때, 그 자리에 있었던 노아는 갑자기 달라진 진우의 행동의 의미를 가장 빨리 깨닫을 수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국정원 직원의 미래가 걱정될 정도였다.

드디어 오늘 밤, 해모수에게서 받은 용광검의 봉인을 풀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감히 자신의 노예를 가지고 협박하는 이 오수의 얼굴을 기억하면서 가방 안에 있던 노아와 관련된 자료들과 사진을 은행의 세절기안에 모두 밀어넣고 폐기시키며 노아를 향해 가볍게 꾸중하였다.

"야. 그런데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하지 않냐? 적당히 한두개만 했어야지."

"그게…하다보니까 습관이 되서……. 제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오수의 협박에 분노하긴 하였지만, 진정하고 자세히 보니 자신이 너무 많이 훔쳤다는 것을 깨닫은 그녀도 나름 반성하는 눈치였다.

"내가 한가지 맹세한게 있었는데, 저쪽이 국가의 힘으로 '갑' 행세를 한다면 나는 그 국가를 파괴할 힘으로 '갑' 행세를 하겠다고 맹세했거든? 오늘 밤, 놈들에게 권력이라는 힘은 어디까지나 '인간' 에게만 통용될 뿐이지, 상식을 벗어난 '괴물' 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겠어."

그녀의 반성을 들은 진우는 머셔너리 안을 들어설때 다짐했었던 자신의 마음 가짐을 내보였고, 그녀 또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다면 혼자서 움직이는게 더 빠르고 편하시겠죠?"

진우가 가진 10등급 신체 능력이라면 자신이 서포터 하는것보단 혼자 행동하는 것이 몇십배는 더 편리하고 쉬울 것이다.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네게도 그 개새끼의 울부짖는 표정을 보여주고 싶은데 말이지."

"진우님께서 그 자의 모습을 설명해주시면 그것만으로도 족해요."

그가 얼마나 잔인한 인간인지 몸으로 똑똑히 겪었던 노아는, 오히려 그 모습을 목격하면 트라우마에 걸릴것 같았기에 그들의 최후만을 듣는것으로만 만족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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