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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그 이후의 승패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랜드 아크의 패배였다.
둘은 동시에 캐릭터들의 1픽셀 단위로 움직임을 꿰뚫었지만, 한쪽은 캐릭터들의 공격 패턴과 콤보, 후딜레이까지 알고 있는데 반해, 처음으로 오락실 레버를 잡은 그랜드 아크로선 자신과 똑같은 동체 시력을 가지고 있는 신체 강화자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였다.
-KO!-
결국, KO패를 당하게 된 그랜드 아크는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푸하하하하핫!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맥없이 당해본적은 처음이군!"
게임을 승리한 진우는 그랜드 아크가 내건 상금을 주머니에 쑤셔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며 오락실 밖으로 나섰고, 그랜드 아크는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어이, 잠깐.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함께 얘기좀 나누지 않겠나?"
"응?"
그는 간만에 자신에게 호승심을 불태우게 만들어준 젊은 이국인 청년에게 자그마한 '포상' 을 내려주기로 하였다.
'좋아. 계획대로다.'
진우는 일부러 그랜드 아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도발적인 언사를 하고, 관심을 끌만한 행동을 하면서 그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냈다.
'정체불명의 고레벨 이능력자. 이 이벤트가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아내려면 조금이라도 정보를 캐내야 해.'
오랫동안 언더 드림의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플레이어로서의 경험치과 감을 가지고 있는 그는, 눈 앞의 호탕한 인상의 남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벤트가 등장할 거라 예상한 것이다.
"뭐요, 아저씨. 혹시 이제와서 돈 아깝다고 삥 뜯을라고 하는건 아니지?"
"흐하하하하하! 간만에 내 가슴속의 호승심을 불태우게 해줘서 '감사' 를 전하려 할 뿐이네!"
'뭐여? 안면을 나눌 생각이긴 했는데 너무 깊은 호감을 보이는거 아냐?'
겨우 오락실 게임이였지만, 그래도 간만에 승부욕에 불타올랐던 그랜드 아크는 정말로 진우에게 감사를 전할 의도였었다.
거대한 세력을 일군 그랜드 아크는, 요 근래에 욕구불만이 상당히 쌓여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세력이 강대해지고 커진것은 괜찮은데, 생각보다 크게 커지면서 잃을것도 많아지게 되자 정치라는 것도 신경을 써야만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을 상대로 유럽 국가가 연합을 맺다보니, 어디 한 곳을 공격하면 유럽의 이능력자들이 다른 곳을 공격해오면서 고착 상태가 계속되어간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고착 상태가 되면서 힘을 제대로 배출할 수 없게된 혈기왕성한 이들이 조직내 파벌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부하들간의 갈등, 거대한 세력의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책임과 의무감.
그 모든것들이 그랜드 아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는데, 남들은 한낱 게임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간만에 눈 앞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던 그랜드 아크는 깔끔하게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꽤나 후련해진 상태였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진우는 예상보다 더 찐하게 달라붙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 거릴 뿐이였다.
'뭐, 어쨌든 대화할 수 있는 건덕지가 왔다. 지금부터 이 순간을 노렸다는 뉘앙스를 주면 안 돼. 자연스럽게 답을 이끌어내면서 아주 약간이라도 정보를 끄집어내자.'
"흥, 호승심은 무슨. 대전 게임을 하는데 신체 강화 능력이나 사용한 주제에."
"이크, 들켰나? 하지만, 그걸 알아낸 자네도 신체 강화자이지 않은가?"
"댁이 일반인 상대로 대전 게임에서 치트키 쓰고 있길래 발라준것 뿐이요. 아저씨 나라에서는 그래도 되는지 몰라도 다른 나라에서 그러지 마쇼."
"흐하하하하하! 그거 미안하게 됐군! 솔직히 생전 처음으로 게임이란걸 해봤거든. 젊었을땐 혈기가 넘쳐서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이를 먹은 지금은 일에 치여 살게 되었지 뭔가."
그랜드 아크는 자신의 기세에 대부분 겁을 먹고 움츠려는데 반해, 눈 앞의 젊은 동양인 청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을 올려보니 더욱 마음에 든 표정이였다.
'젊었을때는 움직이느라 바빴고, 지금은 일에 치여 산다……?'
일단 한가지 정보를 얻어낸 진우는 그것만으론 상대방의 정체를 1%도 알아 낼 수 없었기에 좀 더 대화를 하고자 재차 입을 열었다.
"그렇게 바쁜 사람이 오락실에서 게임할 시간은 있고?"
마치 자신을 한량이나 백수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가까스럽게 오늘만 시간이 나게 되었거든. 내일부터는 큰 일이 생겨서 또다시 바쁜 나날을 보낸다네."
'내일부터 큰 일이 생긴다? 이 사람을 중심으로 한 이벤트가 내일 일어난다는 뜻이군.'
삐리리리리--
차곡 차곡 정보를 얻어가던 진우는 계속해서 질문을 하려던 순간, 그의 주머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응?"
스마트폰의 화면을 드래그하여 전화를 받은 그랜드 아크는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오늘은 쉬겠다고 말했을텐데?"
진우는 조용히 입을 다물면서 통화를 건 쪽의 대화를 엿들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 쪽' 에서 마스터를 직접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그것도 포함하여 설득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건 자네이지 않은가?"
-할 말이 없습니다. 설마 이들이 이토록 강경한 이들이라곤…….-
"쯧. 알겠다. 여긴 사람들이 많으니까 통화는 이쯤에서 끝내지. 그쪽으로 가겠다."
심기불편한 표정으로 통화를 끊은 그랜드 아크는 자신을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진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런이런. 못난 꼴을 보였구만. 나는 바빠서 이만 가보지. 마지막으로 작별 선물이라고 하기 뭐하지만……."
그랜드 아크는 자신의 지갑에서 하얀색 종이 뭉치를 진우에게 던져주었고, 진우는 그 종이 뭉치를 받아챘다.
"이건 뭐요?"
"약간이나마 내 가슴을 흥분시켜줬으니 감사의 인사네. 나중에 볼 수 있으면 좋겠군."
그렇게 등을 돌리고 사라지는 그랜드 아크의 모습에,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뜯어내지 못하여 아쉬운 진우는 하얀색 종이의 내용을 확인하자, 백만원 수표 10개를 반으로 접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이정도 돈이야 푼돈이나 마찬가지인 진우는 일단 지갑에 넣어두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젊을때와 지금도 바쁘다, 내일부터 큰 일이 생긴다, 저 남자는 '마스터' 라고 불리운다. '저 쪽' 이라는 곳과 동맹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손을 잡으려 한다. '저 쪽' 은 강경한 성향의 조직이다.'
일단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순서대로 나열한 진우는 정보들을 하나둘씩 조립해 나가며 그럴싸한 추론을 만들어 냈다.
'내일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게 되고, 그 중심에 저 남자가 있게 된다. 저 남자는 '마스터' 라고 불리우는걸로 보아 한 조직의 수장, 못해도 바로 그 아랫 단계쯤이다. 그런 그가 한국에 있는 강경한 이름모를 조직과 손을 잡아, 내일 어떤 이벤트를 일으킨다.'
자세한 사항과 시각은 모르지만, 내일 안에 어떤 사건이 터질것이 분명하다고 여긴 그는 무작정 그 이벤트의 흔적을 찾아 볼까 싶었으나,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괜히 힘만 빼는것보단 차분하게 노아에게도 이 정보를 알리면서 그 이벤트를 대응하는게 낫다고 판단하였다.
'땡땡이 치려다가 생각치 못한 정보를 얻고 가는군.'
어떤 일이 생겨날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놀라운 일이 생기는것보단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각오한 상태에서 놀라운 일이 생겼을때의 대응 방법이 더 빠르고 나은건 당연한 사실.
자신도 모르게 일어날 어떤 사건의 편린이라도 알아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 진우는 슈퍼 바이크를 주차해둔 공용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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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사업가 아닐까요?"
리피의 저택으로 돌아온 진우는 노아와 함께 저택 내부를 순찰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일을 하고 있는 도중에 잡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으나, '근무중 잡담은 초소 경계의 꽃' 이라는, 군인밖에 모르는 의미 불명의 억지를 붙이면서 결국 잡담을 나누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정체모를 외국인 남자로부터 들었던 사실을 말하였지만, 노아는 만약이라는 이름의 가정을 얘기하였다.
"게임 캐릭터의 1픽셀까지 움직이는걸 알아채는 이능력자가 겨우 사업가일리는 없잖아. 게다가, 그 놈…나와 비슷한 힘의 기운이 느껴졌어."
"진우님과 동급……? 에이, 설마요. 육체 관련 이능력자들은 서로가 같은 이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모르는게 태반이라구요."
세상에 진우보다 강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반박하고 말았다.
"정말이라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대방의 이능력 수준이 아니라, '강자' 의 풍채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런게 풍겼어."
"정말로 진우님과 비슷한 강자라면…상대방의 정체는 이미 알려진거나 마찬가지네요."
"응?"
이미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귀여운지 그녀는 피식 웃으며 자신이 생각한 그의 정체를 말하였다.
"진우님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라면 그랜드 아크 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랜드 아크가 한국에 올리가 없잖아요."
"그랜드 아크……? 하긴, 그 아저씨가 정말로 그랜드 아크였다면 자기 딸을 만나러 왔을테니까……."
그와 만난 시각은 오후 2~3시 사이. 현재 시각은 6시 23분.
그가 정말로 그랜드 아크였다면 최소한 자신의 딸인 리피, 혹은 리피의 대외적인 활동을 담당하는 페리샤에게라도 언급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페리샤는 평소와 같이 순찰 임무에만 집중하였고, 그랜드 아크의 얼굴을 모르는 자신들에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그랜드 아크가 아니라면…9등급 수준의 신체 강화자 같은데……. 어찌됐든간에 내일이 되면 자연스래 알게 되겠지.'
"어쨌든 지금은 순찰에 집중해요. 괜히 침입자가 와서 뚫리면 우리가 무능해 보이잖아요."
"음……. 확실히 나도 힘만 쎈 바보 취급 당하는건 별로지. 뭐, 일단 용병으로서 계약을 했으니까 오늘 하루 정돈 열심히 일 해 볼까나?"
그리고 정확히 1시간 후, 진우는 군대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며 만사가 다 귀찮아 졌다는 표정으로 땡땡이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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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면 모든게 다 귀찮아집니다. 워낙 안 좋은 추억들이 많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