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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크으……."
갑작스런 공격에 고통스런 표정을 지은 그랜드 아크는 자신의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진우의 정체를 물으려던 찰나,
"내 몸에게 타격을 주다니 대단하…음?"
"응?"
순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진우와 그랜드 아크는 뻥찐 표정으로 두 눈을 껌뻑거렸다.
"에…아까전에 페리샤가 댁보고 '그랜드 아크' 라고 부른것 같은데?"
그랜드 아크에게 맞아 나동그라졌던 그는, 페리샤가 새로 나타난 인물에게 '그랜드 아크' 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일단 싸우게 되면 자기가 이길게 뻔하니까 상대방이 병신 되기 전에 제대로 답을 듣기 위해 잠깐만 참기로 결정한 그는 잠시 흉폭성을 잠재우고 질문 타임에 들어갔다.
어제 만났었던 사람이 그랜드 아크라면 자신의 추리가 모든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맞다. 내가 바로 그랜드 아크다. 그런 너의 정체는 대체 뭐지? 일격으로 내게 이런 고통을 안겨다준 이는 처음이군."
"나는 E급 용병 손 진우다."
"E급 용병?"
겨우 E급 용병이 자신에게 이런 데미지를 줬다는게 믿겨지지 않은 그랜드 아크는 그의 장비품을 눈으로 확인해봤으나, 손에는 특별한 장치나 무기가 없음을 확인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내게 어떻게 고통을 준……."
"그렇군, 댁이 그랜드 아크였단 말이지. 그렇다면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군."
지금까지 자신의 말을 대놓고 잘라먹은 이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질문을 무시하고 혼잣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 생소한 기분을 느낀 그랜드 아크는 입을 다물며 눈을 껌뻑였다.
"상황 하나, 그랜드 아크는 어제 입국하였다. 하지만, 그는 딸에게 가지 않고 어떤 조직과 손을 맺는 일을 중시하였다."
"그랜드 아크께서 어제 입국하셨다고……?"
"이런이런, 남의 통화 내용을 엿듣다니. 매너가 좋지 않구만."
진우의 말을 듣고 있던 페리샤는 깜짝 놀랐었다. 그랜드 아크급의 거물이 입국하였다는데 아크로스에선 자신들에게 그 어떤 정보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의 놀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상황 둘, 리피를 포함하여 리피의 호위병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상황 셋, 아크로스의 조직원이 리피를 암살하였고, 그랜드 아크가 그 암살자를 보호하였다."
"흠."
그랜드 아크는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흥미있는 표정으로 지켜보았고, 그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져나갔다.
"댁과 처음 만났을때, 당신이 그랜드 아크라는걸 알았다면 좀 더 빨리 답을 알아냈을텐데, 아쉽구만."
"호오,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로 내 계획을 알아냈다는건가?"
잠시 머리를 정리한 진우는 자신이 암살자를 잡았을때, 그가 아크로스의 조직원임을 알았을때부터 자신이 모아두었던 퍼즐 조각이 모두 원래의 자리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전에 질문 하나만 하지. 댁이 손잡으려는 조직은 욱일승천…맞지?"
"숨길것도 없지. 맞다."
"그랜드 아크님! 그런 자들 따위와 손을 잡으시다니요!"
자신을 죽이려던 상대에게 끝까지 존댓말을 사용하던 페리샤의 모습에, 진우는 명철한 그녀가 아직 모든 계획의 결말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중요한건 욱일승천이 아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력이지."
"전력……?"
"호오."
"지금부터 내가 스토리 하나를 설명하겠어."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는 삼국지 계열 게임을 즐겼었던 그는, 음모나 계략을 짜는데는 일반인 수준이지만 그것을 알아내는데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른 수준이였다.
그랜드 아크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스토리' 를 잠자코 들어주었다.
"그랜드 아크의 장녀인 리피 에스텔이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랜드 아크가 딸을 만나고자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리피와 만나러 가는 도중에 누군가가 리피를 암살한다. 이에 분노한 그랜드 아크는 한국에서 난동을 부리게 되고, 그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자 모든 국가들은 세상에서 유일한 신체 강화 10등급의 능력자인 그랜드 아크가 최소한의 호위병만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죽이면 아크로스라는 조직도 자연히 분해되기에 그랜드 아크를 죽이고자 이능력자들을 출동시킨다."
잠시 혀가 아려오는지 입을 잠시 쉰 그는 다시 입을 열며 '스토리' 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때, 아크로스가 동맹을 맺은 욱일승천과 함께 전력이 얕아진 유럽 대륙을 침공하고, 거기에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까지 합세하여 압도적인 군세로 EU 연합을 무너뜨린다. 모두 다 무너뜨릴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최소한 유럽의 절반 이상을 먹을 수 있기만 해도 성공."
그는 두 다리가 부러진 페트릭을 향해 손가락질 하였다.
"아마 이 녀석은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때의 보험 같은거겠지. 성조기를 달고 있는 스텔스 아머를 입은 암살자. 일이 틀어지게 된다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미국의 비호를 받는 한국에서 난동부릴 생각이였겠지. 게다가 리피의 습관, 주변 호위병들의 능력 수준을 모두 알고 있는데다, 페리샤의 보고로 배치 사항 또한 꿰차고 있으니 이보다 더 쉬운 암살이 어딨을까? 자, 내가 생각해낸 '스토리' 가 어떠신가, 그랜드 아크?"
"……."
"거…거짓말……. 그렇다면…리피 아가씨는…처음부터 이런 희생양이 되기 위해…한국에 온거란 말야……?"
털썩!
페리샤도 의문이긴 했었다.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는데 아무런 이유를 붙이지 않고, 단지 '중요한 계획을 위해서' 라고만 했었기 때문에.
유럽과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
처음에는 리피에게 유학 생활을 하게 하여, 이곳의 문화를 익히도록 한 다음에 동아시아 지배를 위해 필요한 발판인 한국을 다스리도록 하려는 의도쯤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페리샤는, 그녀가 짜증을 낼때도 잘 타이르며 기분을 가라앉히게 했었다.
하지만, 한국을 점령한다 해도 유럽과 멀리 떨어진 동북아시아까지 물자를 전달하거나, 이능력자를 파견 보내는것만으로도 큰 일 인데다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에게 치이면서 손쉽게 다시 빼앗길 확률이 높았다.
그랜드 아크가 말했었던 '중요한 계획' 이라는것이 그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을 뿐인데 그 결과가 리피의 죽음이였다는 사실에 페리샤는 눈물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라고…아니라고 말해주십시오…그랜드 아크시여……. 저 소리가 헛소리라고! 내부 권력 다툼에 의한 돌발적인 사고라고! 제발 그렇게 말해달란 말입니다!!"
진우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느꼈던 의문점 또한 모두 풀리기에, 비명을 지르는듯한 목소리로 그랜드 아크를 향해 절규한 그녀는 제발 그의 입으로 저 말이 모두 거짓말 혹은, 단순한 착각이라고 말해주길 기다렸으나.
"후…후후후…후하하하하하핫!! 그래! 정확하다! 대단하구나! 설마 아크로스의 모든 머리가 모아서 만든 계획을 제한된 정보로 단번에 알아채다니! 하하하하하핫!"
"아…아아……."
짝짝짝짝!
상대방의 추리에 감탄한 그랜드 아크는 박수를 쳐주면서 진우의 머리를 칭찬해주었고, 그와 달리 페리샤는 고개를 떨구며 절망하고 말았다.
"생각해보아라. 겨우 동북아시아의, 특별한 자원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입맛 당기는 나라는 절대 아니다. 뭐, 그래도 설비같은게 충실하게 갖춰져 있는데 반해 이능력자 전력이 부족하여 정복하기 쉬운 국가임은 분명하지만 말이지."
그는 한가지 특이한 취미가 있는데, 아크로스가 점령하지 못한 국가를 몰래 방문하게 된다면, 그곳을 점령하게 된다면 복구는 얼마나 들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대략적으로 견적을 재는것이 바로 그것이다.
즉, 그가 한국에 오면서 생각했던것은 단순한 취미 활동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한가지 다른게 있다."
"응?"
"욱일승천. 나도 그들이 10년만에 등장하리라곤 생각치 못했거든. 그것도 이런 최고의 형태로 말이야."
"하지만 그들과 동맹을 맺었을텐데."
그랜드 아크는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진우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원래 이 계획은 다른 외부의 조력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우연찮게 욱일승천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준 덕분에 욱일승천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지. 나는 확실한 동맹 의지를 보이고자 한국에 찾아온 김에 그들에게 내 얼굴을 보여줌으로서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슬슬 대화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한 그랜드 아크는 목을 좌우로 풀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이 나라에서 난동을 부리고, 내가 그랜드 아크라고 광고를 하면 전 세계로 순식간에 내 정보가 퍼져나가겠지. EU와 미국 놈들은 나의 조직과 맞닿아있는 전방이 불안하긴 하겠지만, 아크로스에서도 나를 돕기 위해 전력을 보낼것이라 생각할테고. 바로 그 순간을 노려 내 부하들과 욱일승천의 전력이 한꺼번에 유럽 전역을 강타할 것이다."
"자신의 딸까지 죽이면서 그렇게 세계를 정복하고 싶은거냐?"
"흐하하하하핫! 그렇다! 나의 진정한 목표는 아크로스의 세계 정복이 아니야! 바로 '나' 의 세계 정복이다! 내가 못하면 나의 자손이 그 유지를 이어 받을거라고? 웃기는 소리! 내가 살아있을때 세계 정복을 못했는데 나의 후손이 성공한다 해서 이미 죽은 내게 무슨 값어치가 있다는거냐! 게다가 대외용으로 내 뒤를 물려받을 자식들은 몇 명이나 더 있다! 리피도 자신의 죽음으로 나의 세계 정복이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뻐하겠지!"
"웃기지 마아앗!"
타타탕!
티티팅!
죽은 리피의 마음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자, 페리샤는 휴대용 권총을 뽑아들며 그랜드 아크의 머리통을 쏴재꼈으나, 그의 피부에 간단히 튕겨져 나가버렸다.
"아가씨는…아가씨는 아무리 불만이여도 당신의 명령이였기에! 부모의 명령이였기에 불만을 참고 참았어! 그 댓가가 이딴거라고?! 아버지에게 죽었는데도 기뻐할 거라고?! 지랄하지마!"
"후후, 너는 나를 향한 충성심보단 리피를 향한 충성심이 강했지. 하긴, 리피에겐 단순한 변덕이였겠지만, 하루 하루를 먹고 사는게 힘들었던 고아 거지였던 너에겐 새로운 삶에 대한 기회를 받게 되었으니까."
완벽하게 이능력이 없고, 그렇다고 특별하다 할 만큼 뛰어난 재주도 있지 못했던 페리샤는 길에서 도둑질하거나 밥을 빌어먹어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던 고아였다.
도둑질에 맞아 죽어가던 그녀를 리피가 발견하여 단순히 보기 싫다는 이유로 그녀를 때리던 이들을 죽이고 자신의 하인으로 부려먹게 되었지만, 페리샤에게는 창녀, 폭력배 밖에 미래가 없었던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준 그녀를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였다.
다행히도 지능계열 쪽으로 특출난 재능이 발견되었고, 그녀는 리피의 시녀겸 조언자가 되면서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차분한 대처 능력으로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오직 그녀만을 위해 충성을 바쳐왔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겨우 그깟일로?' 싶겠지만, 당사자인 페리샤에겐 리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조차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충성을 바치던 상대가 리피였기에, 그녀를 죽인 그랜드 아크를 향해 이토록 격렬하게 반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우, 너에게 기회를 주마. 날 따라라. 아크로스의 머리들이 만든 계획을 단편적인 정보로 추리해내 진실을 밝혀내는 비상한 머리, 나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뛰어난 네 능력이라면 아크로스 내에서 3인자…아니, 네가 좀 더 분발한다면 2인자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다. 네게 보내는 나의 호의를 받아들여라."
어제의 일로 진우에게 어느정도 호의를 가지고 있던 그랜드 아크는, 그의 비상한 머리와 능력을 높게 사서 영입을 제의하였으나, 너무나 당연하게도 진우의 답변은.
"크크크큭! 여기서 동업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동업자?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이 몸도 세계 정복이 목표라는 소리다!"
"?!"
그랜드 아크는 깜짝 놀란듯이 눈을 크게 떠보였지만, 진우는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당신 계획은 완벽해. 게다가 스스로 미끼가 되는 대범함까지 가지고 있지. 그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유럽의 절반 이상을 먹어치울 수 있겠구만. 그런데 말야, 댁이 한가지 실수한게 있어."
강자와의 전투에선 걸치적 거리기만 하는 자신의 웃옷을 벗어던지자, 너무 과장되게 부풀려지지 않지만, 잔근육이 육체 곳곳에서 튀어나와 단단한 느낌을 주는 근육들이 드러났다.
"세계 정복을 노리는 또다른 악당을 만났다는거야. 당신이 죽은 공백을 차리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이 될 지구 역사상 최강, 최악의 악당을 말이야!"
진우는 드디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만 이길 수 있는 상대를 발견하게 되면서, 잠시 잠재워뒀던 흉폭성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나와 손을 잡기보단 대적하길 결정한 것인가! 그 만용! 호기로움! 흉폭함! 모두 마음에 든다! 후하하하하핫!"
"댁만 죽이면 세계 최강의 악은 바로 이 몸이다! 카하하하핫!
웃음을 터트린 두 절대자는 서로 말하고 싶었던것과 의문을 모두 해결하였기에, 더이상의 잔말은 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 격돌하였다.
============================ 작품 후기 ============================
지금까지의 모든 떡밥과 의문점을 해결하는 편.
다음편부터 전투씬.
괴물 두마리가 육탄 대결을 하면 어떤 재해가 일어나는지, 격렬한 전투씬보단 그 부분을 중점으로 묘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