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104화 (104/923)

0104 / 0923 ----------------------------------------------

2장

무의미한 기습 공격이였으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데는 효과적이었는지, 두 사람은 상대방을 어떻게 죽일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스으윽--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상대방을 향한 시선만큼은 거두지 않았다.

"정말로 안타까워. 내가 너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거나, 네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더라면 동일한 조건에서 맞붙어봤을텐데."

"그러면 그쪽도 귀찮아지지 않아?"

"귀찮아지긴 하겠지. 하지만, 내 가슴을 불태우는 호적수가 나와 비슷한 세력을 구가한다는 사실에 언젠가 제대로 맞붙을 그 날을 기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정도 귀찮음을 감수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렇게 거의 20m가량 거리를 벌린 그들은, 서서히 전의를 불태우며 스스로를 고양시켜갔다.

"탐색전에는 의미가 없겠지?"

"이미 알거 다 알고 있으니 시간 낭비지."

더이상은 서로를 간보는 탐색전따윈 집어치우고, 오로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필살의 신념을 넣기로 결정한 두 남자는 서서히 허리를 낮추기 시작하였다.

아니, 하려 하였다.

크그그그긍---!

타타타타타---!

"??"

"??"

갑자기 무한궤도가 무겁게 돌아가는 소리와, 여러대의 헬기들이 프로펠러를 돌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진우와 그랜드 아크는 소음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놔. 분위기 다 잡았는데 저 떨거지들은 대체 뭐야?"

"불쾌하군. 감히 이 세상의 절대 악을 판별하는 신성한 결투에 저런 잡것들이 난동을 부리다니."

그들은 신체 강화 10등급의 이능력자가 얼마나 괴물인지 모르는 수뇌부들이 보낸 기계화 부대였다.

전차, 장갑차, 헬기로 이루어진, 화력 중시형의 군대가 진우와 그랜드 아크를 맞이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치우. 어떻게 할건가? 저 놈들을 처리할까?"

그랜드 아크의 물음에, 진우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표정(정확히는 눈과 입에 드러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어이, 이렇게 된거 삼파전으로 가볼까?"

"삼파전?"

"그래. 이게 소년 만화였다면 저 잡것들을 치우자고 힘을 합치다가 동료애를 느낀다거나 하는 스토리로 가겠지만,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들인데 그런 스토리는 좀 그렇잖아?"

크그그긍--!!

타타타타--!!

전보다 더더욱 가까워진 소음속에서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이해가 잘 안되는군?"

"그러니까 우리가 일부러 저 녀석들이 우리들을 완전히 포위하면 그때부터 싸우자 이거지. 언제 어디서 어떤 공격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환경에, 즉석에서 사용 가능한 다양한 '던질것' 들이 있으니 평범한 1:1 싸움보다는 더 스펙타클하지 않겠어? 악의 절대자들이 세계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결전인데, 뭔가 빵빵 터지는 맛이 있어야지."

"크…크크…크하하하하핫! 정말이지 네 놈은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가 않다!"

원래 그는 단순하게 '일단 저 잡것들부터 처리해야지' 라고 생각하였으나, 진우의 말을 들어보니 단순한 대결보단 그쪽이 더 재밌어 보였기에 그 말에 호응하기로 하였다.

그랜드 아크와 진우는 각자 어딘가에 걸터앉아, 군대가 자신들을 포위할때까지 기다리면서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는 대체 과거에 어떤 놈이였지? 상당히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나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투 센스와 지금같은 획기적인 생각은 단순히 머리가 좋아서 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데?"

그랜드 아크가 젊었을때는 스웨덴의 촉망받던 7등급 신체 강화 이능력자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 모든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라는 야망에 불타올라 있던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면서 괴수와의 싸움을 통해 10등급의 이능력을 각성하게 되었고, 수많은 혈투를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한 그랜드 아크는 물밑에서부터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모으게 되었다.

만약, 그가 경험이 없는 20대의 나이에 지금같은 힘을 가졌다면?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막강한 힘에 취하여 무조건적인 파괴 행위를 하면서 돌아다녔으리라.

그에 반해, 진우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아니, 저런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처럼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정신적인 성장과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한 영역이였다.

"나? 나야 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차피 그랜드 아크에게 알려진다고 무슨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기에, 자신의 배경 스토리를 말해주었다.

"옛날에는 어떤 악의 조직에 일반 조직원이였지."

"허어? 신체 강화 10등급의 이능력자가 일반 조직원이였다고?"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있던 조직은 과거에 꽤나 거대한 조직이였다 하더라고. 전 세계의 이능력자들이 연합했을 정도라니 말이야. 어쨌든 조직이 멸망할때 겨우겨우 살아남는 도중에 각성한거지."

"흐음……?"

주변에서는 전차와 헬기들이 포위하는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것처럼 편하게 담소를 나누는 두 남자의 모습에, 주변 군인들의 표정은 '쟤네들 대체 뭐야?' 라는 모습이였으나, 그랜드 아크는 진우가 말한 키워드에 의해 무언가가 생각난듯 하였다.

"아! 기억이 났다! 지하드! 너는 지하드의 조직원이였었나 보군!"

'지하드? 그거 중동 지역에서 '성전' 을 뜻하는 말 아냐?

설정상으로만 존재하였던 조직의 이름을 말하자, 진우는 뭔가 중요한 플래그라고 생각하면서 바보처럼 이름을 되묻는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일반 조직원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큰 조직이라고 실감이 안 나더라고. 대체 얼마나 큰 조직였던 거야?"

"하긴,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느끼기 어려운 법이지."

그랜드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하드 라는 조직을 설명하였다.

"지하드는 중동 지역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스스로를 살라딘이라 자칭하던 10등급의 염동력자가 나타나, 강력한 힘과 카리스마를 토대로 하여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 지역의 모든 국가들을 통합하였지. 게다가 천재적인 과학자들도 때를 맞춰 나타나고, 히틀러의 유산을 가지고 있던 나치들과 손을 잡으면서 유물, 과학, 이능력이라는 완벽한 삼박자를 갖췄기에 급속도로 성장할 수 밖에."

"그러다가 결국 전 세계의 이능력자들에게 멸망당했고?"

"풍부한 석유 자원을 가지고 있는 중동 지역의 연맹은 모든 국가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으니까. 전 세계의 지도자들은 석유 자원의 가격을 통제하려는 지하드가 악의 조직이라 선언하고 모든 이능력자들과 최정예 부대를 투입시키면서 멸망시켰지.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아크로스를 성장시킬 수 있었으니, 수장으로서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천재일우라고 밖에 설명이 불가능하군."

"대단하게 들린것 같다만, 지금까지 '지하드' 라는 이름의 존재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데?"

"그럴 수 밖에. 자신들의 욕심으로 인해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의 조직으로 만들었으니, 혹여라도 누군가가 진실을 알게 되면 곤란해지니까 지하드의 기지를 철저하게 부수고, 언론 통제와 진실을 아는 수뇌부들에겐 입막음까지 철저하게 해놨지. 덕분에 지하드라는 조직을 아는 사람은 몇 안될거다."

현실이였으면 언론을 통해 진실이 나왔겠지만, 게임이니까 가능한 언론 통제라 생각한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잡담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였다.

군대의 포위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우."

그 때, 그랜드 아크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없겠지만, 만약에라도 네가 살아남게 된다면 이라크로 가라."

"이라크?"

"소문에 의하면 지하드의 발생지인 이라크에는 살라딘이 남긴 유산이 있다 하더군. 뭐, 아무리 찾아봐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헛소문이라 생각한다만, 운좋게나마 그 파편이라도 찾으면 맨 손으로 시작하는것보단 나을거다."

"친절도 하시구만. 좋아, 보답으로 최대한 빠르게 죽여주마."

"큭큭큭! 내가 말했을텐데? '만약에라도' 살아남게 된다면 말이야. 자, 포위가 완성되어 가는것 같으니 슬슬 일어서지."

탁탁탁!

두 남자는 엉덩이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시작은 쟤네들중에 왕고가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라고 하면 시작하는거야. 오케이?"

"크하하핫! 전에도 말했다만, 네 녀석과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구나!"

시작 신호까지도 개성적인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그랜드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격 자세를 취하였다.

크그그……

투타타타타타---!!

진우와 그랜드 아크를 포위한 전차들의 무한 궤도음이 멈추고, 장갑차에서 하차한 군인들이 요지를 점령하면서 더더욱 시끄러워진 헬기들의 프로펠러 소리만이 가득 채워질 무렵,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작 신호가 울려퍼졌다.

장갑차 위에서 확성기를 들고 있는 장교가 입을 연 것이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지금 당……!"

슈우우욱!

콰아앙!

장교의 말을 신호로, 잔상이 남을 속도로 빠르게 달려나간 두 남자는 서로의 무기를 부딪혔고, 전력이 담긴 공격이 부딪히면서 생겨난 여파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거대한 흑색의 기둥과 환두대도가 부딪혔으나, 두 유물들은 흠집하나 남지 않으며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부들부들 떨렸다.

"크큭! 힘 대결은 내쪽이 좀 더 강하다는걸 알텐데?!"

"그래……! 평소라면 말이지……!"

투쾅!

파캉!

그 때, 두 괴물들이 맞붙자, 전차 하나가 포를 발사하였고, 포탄은 그랜드 아크의 옆머리를 가격하였다.

"큿?!"

예상치 못한 공격에 몸의 중심이 비뚤어진 그랜드 아크의 모습에, 진우는 기둥 아래쪽으로 몸을 파고들며 돌진하면서 그의 옆구리를 향해 야구 방망이 휘두르듯이 용광검을 휘둘렀다.

"츠아아앗!"

퍼어억!

"크우욱?!"

몸의 중심을 잃어버린 그랜드 아크는 일격을 맞으면서 힘의 방향으로 밀려나갔고, 자신을 공격한 전차와 몸이 부딪혔다.

콰아앙!

단단한 전차의 장갑 안쪽으로 음푹 들어간 그랜드 아크는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자신의 아래쪽을 살펴보았다.

"피……?"

놀랍게도 자신의 옆구리에 2mm나 되는 검상이 생겨나고 그 곳으로 피가 흐르고 있는 모습에, 용광검이 보통 유물이 아님을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크하하하하하핫! 그래! 이게 바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맛이지! 이번엔 내 차례다! 치우!"

그 상처 덕분에 오히려 패권을 두고 다투는 싸움임을 상기시킨 그랜드 아크는 자신과 부딪힌 전차의 포신을 잡으면서 거대한 전차의 몸을 가뿐히 들어보였다.

안에서 전차를 조종하는 군인들은 난리가 났지만, 그딴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는 진우를 향해 달려나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대한 흑색 기둥과 전차를 들고 뛰어오는 괴물의 모습에 겁을 먹었겠지만, '보통 사람' 이 아닌 진우는 용광검을 치켜들며 반격 자세를 취하였다.

"흐아앗!"

부우웅!

가장 먼저 분쇄기가 먼저 날라오기에 재빨리 점프하여 몸을 피하려 하자, 그 때를 노린 그랜드 아크가 전차를 파리채마냥 휘둘렀다.

"흥! 그딴거 가뿐히 베어주지!"

푸슈욱!!

공중에서 전차를 베어내려던 찰나, 진우의 뒤쪽에서 날라다니던 아파치 헬기가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미사일은 그대로 그의 등짝을 가격하였다.

퍼엉!

"큿!?"

투콰아앙!

"커헉!"

미사일의 공격으로 공중에서 자세가 풀려버린 진우는 전차의 몸체와 부딪혀버렸고, 파리채에 맞은 날벌레 마냥 날라가면서 그나마 성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건물과 부딪혔다.

쿠웅! 우르르르--!!

"우와아악!?"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보병들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건물이 무너지면서 진우와 함께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진짜 간만에 글을 씁니다. 덕분에 필력이 좀 많이 낮아진것 같아요...

103화랑 104화는 지금까지 제가 쓴 글중에서 가장 불안합니다.

지금 벌벌 떨면서 실시간 리플 확인중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