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177화 (177/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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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와글와글와글--

인천 국제 공항.

가벼운 여행복과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갈색 머리카락의 남성이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표정과 달리 매의 눈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는 라운드 나이츠의 요원으로서, 실종된 이실리아 맥스웰 경과 그녀의 딸, 유 노아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한국땅에 들어온 것이다.

그 밖에도 신문을 보거나, 책을 보거나, 혹은 주변을 구경하는듯한 외국인들이 인천 공황에서 죽치고 앉아있는데, 그들 또한 같은 목적으로 공항의 이곳저곳을 빈틈없이 물색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과 비슷한 중국인들도 몇명이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저놈들은 대체 정체가 뭐길래 전부터 우리 뒤를 쫓아오는거지?'

'저놈들은 뭐하는 놈들이길래 우리들을 따라오는거야?'

정무맹의 요원들과 라운드 나이츠 요원들은 계속해서 행로가 겹쳐지는 서로를 향해 의구심을 품었지만, 둘 다 전투 요원이 아닌데다 정보 수집, 수색이 목적이기 때문에 딱히 뚜렷한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외국땅에서 외국인들인 자신들끼리 부딪혀서 정체가 밝혀졌다간 외교적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에 두 세력의 요원들은 먼저 선제 공격을 가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목적만을 수행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맺은 상태였다.

'어? 저건?!'

그 때,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척 하면서 주변을 확인하던 라운드 나이츠 요원의 눈에 노아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사진으로 이미 노아의 얼굴을 숙지해두었던 그는 재빨리 옷깃을 여미는척 하면서 거기에 붙어있는 통신기를 향해 입을 열려던 찰나,

"여기……."

와득!

"!!"

그의 목이 꺽이지 말아야 할 위치까지 꺽여 올라갔고, 그의 눈동자는 곧 촛점을 잃으며 고개가 추욱 늘어졌다.

"죄송해요, 콜슨 요원."

콜슨 요원이라 불린 라운드 나이츠 요원의 뒤쪽 좌석에 앉아있던 이실리아가 염동력으로 그의 목을 꺽어버린것이다.

콜슨 요원은 이실리아의 신봉자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임무 수행중에 위기에 빠졌을때, 이실리아가 '하급 요원이라 해도 구할 수 있다면 구하는게 인간의 도리' 라고 주장하면서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그를 구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콜슨 요원은 이실리아에게 은혜를 느끼고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신봉자가 되었다.

그런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린 이실리아는 약간 죄책감어린 눈빛을 지어보였지만, 라운드 나이츠의 기사이기 이전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우이기 이전에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버린 한 명의 '여자' 가 되어버린 그녀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다.

'진우씨의 행보에 방해가 된다면…아무리 옛 부하라 할지라도……!'

마무리로 염동력의 힘을 이용하여 그가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는듯한 자세로 고정시킨 이실리아는 자신을 필사적으로 찾으려는 옛 부하들을 하나하나씩 찾아가며 똑같은 방식으로 암살하기 시작하였다.

"맥스웰 경……!'

우득!

화장실 입구 옆의 벽에서 등을 기대고 시계를 바라보는척 하던 라운드 나이츠 요원은 이실리아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하였지만, 그와 동시에 콜슨 요원과 똑같이 목이 시계 방향으로 크게 꺽여들어갔다.

탁!

그와 동시에 편한 복장과 모자를 쓴 진우가 그와 어깨동무를 하더니 가까이 있던 의자로 끌고가서 앉혀두었다.

이실리아는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자는듯한 자세로 고정시켰고, 진우는 그런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괜찮아?"

"예?"

"모두 함께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자 부하들이잖아. 힘들면 말해. 얼굴만 알려준다면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테니까."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게 상당히 힘든 일이었기에,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역력하였다.

자신을 배려하는 그의 목소리에 살짝 감동받은 표정을 지어보인 이실리아였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녜요. 제가 얼굴도 알고 있고, 염동력으로 보이지 않게 암살할 수 있는데다가 사체의 자세도 교정시킬 수 있으니 이 임무에는 제가 최적이예요."

페리샤의 지시에 의해 이실리아는 한가지 임무를 더 맡았는데, 그것은 공항에 라운드 나이츠 요원이 있을시엔 숫자를 최대한 줄여놓는것.

이쪽의 행동 반경을 좁히는 감시의 눈을 하나라도 더 줄여놓는다면 그만큼 행동에 자유가 생기기 때문에, 옛 부하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는 이실리아만이 해결할 수 있는 임무였다.

"걱정마세요. 당신의 적은 저에게도 적. 아무리 옛 동료들이라 해도 당신을 방해하는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맹목적인 사랑이 느껴지는 그녀의 결의에, 진우는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나는 아이리에게 돌아갈테니 힘들면 말해."

"예. 걱정마세요."

진우는 가까이 있는 의자에 힘없는 눈빛으로 앉아있는 아이리에게 돌아갔고, 마치 커플인양 서로의 팔짱을 안으며 어디론가 향하였다.

그 후, 이실리아는 몇 명의 라운드 나이츠 요원들을 조용히 암살하면서 이쪽의 감시망을 최대한 줄여놓은 후, 이스탄불 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녀가 금속 탐지기와 이능력 검사기를 통과하면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진우는 다른 노예들도 무사히 통과하는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서야 슬슬 움직이기로 하였다.

'크크큭. 존경하던 상관이 자신들을 죽이려 드니 대항조차 하지 못할 수 밖에.'

솔직히 말해서 진우는 공항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시간을 잡아먹을줄 알았지만, 이실리아의 선전에 의해 매우 손쉽게 일이 풀려나가고 있었다.

라운드 나이츠에서 실종된 이실리아를 찾으러 왔으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전투, 잠입에도 능숙한 베테랑들이 찾아오는건 당연지사.

하지만, 그런 그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죽어버리는 이유는 그들을 공격하는 당사자가 자신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드는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이실리아는 라운드 나이츠 내에서 아랫 사람들을 잘 보살펴주기에 가장 인망이 높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명예욕이 아닌, 어려운 사람을 보고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그녀의 인품과 성격 덕분에 자연스래 따라온 인망이였다.

여기에 있는 라운드 나이츠 요원들은 모두 이실리아를 존경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모습을 발견해도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만을 느낄뿐,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아예 사라지면서 그녀의 공격에 하나하나 생명의 빛이 사그라든 것이다.

"자, 그럼 나도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짱깨들을 처리하고 가볼까?"

진우는 자신을 포착하고 슬금슬금 포위망을 좁혀오는 정무맹의 요원들을 확인하면서 최대한 인적이 드문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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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늦게 인천 공항에서는 수많은 경찰들이 들락날락거리게 되었다.

계속해서 미동도 하지 않고 한 자세를 고정시킨 외국인 여행자들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청소부들이 툭툭 건들어보면서 그들이 싸늘하게 식은데다 사후경직으로 굳어버린 시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수색 도중에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체 십여구가 대형 쓰레기통에 '쑤셔넣어진' 채로 발견되면서 경찰들을 당혹케 만들었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엄청난 사건들이 거의 주 단위로 연달아 터지면서 정신이 없는데, 이런 사건까지 터지게 되니 더이상 한국이라는 땅은 더이상 안전하다는 인식이 사라지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한국의 경찰들과 형사들은 가장 큰 사건이라 해도 맹수급 괴수들이 나타나는것 뿐이였기에, 그 이상의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게 되자 경험의 한계를 드러내며 여러가지 부족한 면이 드러났다.

그들은 모르고있겠지만 그나마 다행인점은,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엄청난 사건 사고들을 몰고올 최악의 악당이 외국으로 나갔다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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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다……."

처음 비행기에 탑승한 진우는 처음엔 신기함과 즐거움에 들떠있었지만, 출발한지 1시간이 지나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지루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게다가,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11시간 하고도 10분이 소요된다는 소식에 진우는 절망에 빠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이였다.

비행기는 규모가 상당히 컸는지, 중앙에 4개의 좌석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좌우로 3개의 좌석들이 나열되어 있는 구조로, 처음엔 하이재킹을 하면 움직이기 수월해서 적당하다고 좋아했었지만, 그것도 1시간동안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니 몸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앞에있는 의자 등받이에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있는 화면이 있었지만, 그런 빈약한 즐거움 따위로는 진우를 만족시키긴 커녕, 오히려 더더욱 욕구불만을 느끼게 만들었다.

참고로 진우 일행은 모두 오른쪽 맨 뒷좌석 6칸에 앉아있는 상태로, 진우, 이실리아, 노아, 페리샤, 하린, 아이리가 앉아있었다.

"그냥 눌러버릴까? 누를까? 아니 그냥 누르자."

"예? 잠깐만요, 이제 겨우 중국 동부지역에 들어올까 말까한 상태인데 벌써 그걸 누르시게요?"

노아는 진우가 주머니에서 어떤 스위치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들고 누르려 하자, 황급히 그의 손을 제지하였다.

"지금 누르시면 10시간동안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잖아요. 조금만 참으시고 일단 한 숨 주무시는게 어떻겠어요?"

이실리아 또한 이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는게 귀찮다는점을 강조하였지만, 진우는 그 귀찮음보다 지금의 지루함이 더욱 끔찍하였다.

전형적인 쾌락주의자인데다가 그것을 제어할 인내심 따윈 내다버린 그에겐 아직도 10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고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앉아 있어야만 하고, 남몰래 봉사라도 받고자 해도 계속해서 왔다리 갔다리 싸돌아다니는 여승무원들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

일반인들이라면 영화를 본다던가 독서를 한다던가 시간을 때우는 방법이 여럿 있겠지만, 시간을 때우는것이 오로지 여성의 육체를 이용한 쾌락 위주로 개발된 진우는 더이상의 지루함은 너무나 참기 어려웠다.

그러한 진우의 성격을 몸으로 겪어왔던 여성진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냥 10시간동안 귀찮아지고 말련다."

딸칵-

결국, 지루함이라는 최악의 적에게 패배한 진우는 원래 당초 계획과 달리 비행기에 탑승한지 1시간만에 하이재킹을 시작하였다.

============================ 작품 후기 ============================

원래 이번편은 항공 잠입 스토리, 탑승 스토리, 비행기 내부 스토리로 총 3편을 계획하였지만, 쓰면서 이런 생각이 나더군요.

"겨우 비행기 탑승하는데 뭐 이렇게 오래 걸리냐 ㅡㅡ"

그래서 3편의 내용을 1편으로 압축시켰고, 덕분에 내용은 어느정도 스무디하게, 여러가지가 스킵된 티가 팍팍 나는 스토리 진행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3편 분량을 쓰면서 여러분들에게 "야! 대체 언제 하이재킹하는거야!" 라는 불평불만이 안나오는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음편부터 곧바로 하이재킹을 시작하며, 갑자기 이번편에서 실종된 리엘루스는 제가 깜빡한게 아니라 여러가지 설정 때문에(변신이 제대로 안되서 이마에 눈알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점이 가장 큼) 화물칸에 들어간거니까 오해 ㄴ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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