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178화 (178/923)

0178 / 0923 ----------------------------------------------

3장

고요한 화물칸.

수많은 사람들의 물건들이 여기저기 나동그라지지 않게끔 그물처럼 생긴 거대한 줄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기에, 이따금씩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한두번씩 찾아오는 승무원들을 제외하면 인적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삐빅-

그 때, 짐 한 구석에서 기계음이 살짝 들려왔다.

스컥!

그와 동시에 사람이 4~5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상자 안에서 칼날이 튀어나왔고, 칼날은 상자를 슬근슬근 잘라내기 시작하였다.

상자의 모서리 부분을 잘라낸 칼날은 상자를 다른 짐들과 함께 고정시킨 밧줄까지 잘라냈고, 밧줄이 잘려나가면서 상자 또한 뚜껑이 열리며 한 명의 여성이 튀어나왔다.

"이상한데. 내 체감 시간대로라면 이제 겨우 1시간 지날까말까인데."

이마의 눈알을 숨길 수 없기에 짐짝 취급을 받아 화물칸으로 옮겨진 리엘루스는 다양한 검사 기기를 통과하기 위해 몸 여기저기에 부착된 기계 장비들을 때어냈다.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기에 시간의 흐름을 잘 못 파악할리 없고, 무엇보다 잘 못 파악했다손 쳐도 이건 너무나 빨랐다.

"설마 1시간만에 지겨워져서 시작하는건 아니겠지?"

참으로 알기 쉬운 진우의 성격 덕분에 앞뒤 사정 모르는 리엘루스마저 진실에 근접한 답을 내놓았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맡은 임무는 무기 조달.

파워 슈츠가 아무리 경량화 되었다고 해도 사람들 눈을 숨길 수 있을 정돈 아니기에, 파워 슈츠와 일행이 사용할 무기들을 챙기는것이 그녀의 임무다.

미리 자신의 거미줄로 만든 그물에 무기들과 파워 슈츠들을 대충 몰아넣은 그녀는, 거의 경차 한 대의 무게를 한 손으로 가뿐히 들면서 청각을 집중하였다.

타앙!

꺄아아아아악!

잠시 후, 총격음과 함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는것을 확인한 리엘루스는 빠르게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화물칸으로 내려오려는 여승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

스칵!

인간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이마에 눈알이 8개인 모습을 목격한 승무원이 비명을 내지르려던 찰나에 재빨리 팔을 거미화시키면서 그녀의 목을 베어냈다.

"꺄아아악!"

화물칸으로 몸을 숨기려던 몇몇 승무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안쪽으로 도망쳤지만, 리엘루스의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였다.

촤아악!

잘려진 목 위로 피 분수가 몰아진 스튜어디스의 시체가 나동그라지면서 꿈틀거리는 모습에, 그녀는 살짝 곤혹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차…주인님이 여자는 죽이지 말라고 그랬는데……."

남성을 위한 성인용 게임이다보니 대부분의 NPC조차 평타 이상을 치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고, 무엇보다 스튜어디스들은 직업 특성상 모두들 외모를 가꿔야 하기에 기준치 이상의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남자들은 어떻게 죽여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외의 남자 따윈 머리가 교체되면서 땅에 떨어진 호빵맨 머리만큼 쓸모없는거니까. 단, 여자들은 무조건 생포야!-

그렇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노예들에게도 신신당부를 했었지만, 야생의 본능 때문에 일격 하나하나가 필살의 의지를 담을 수 밖에 없는 리엘루스에겐 매우 어려운 고난이도의 요구였다.

'어쨌든 빨리 장비들을 가져가자.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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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꺄아아아아악!"

진우는 AMC가 붙은 권총을 꺼내들며 허공을 향해 권총을 발포하였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길에서 지나가다가 벼락 맞……."

"끼야아아악!"

"살려줘! 으아아아악!"

"……."

총알 한방에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란스러워하는건 좋은데, 자신이 이 때를 위해 준비한 대사를 내뱉을 수 없게 된 진우는 짜증섞인 표정으로 40대 중반쯤 되는 외국인 남성의 미간을 향해 탄환 한방을 날렸다.

탕!

퍽!

"컥!"

"아가리 닥쳐 이 새끼들아! 말을 할 수 가 없잖아!"

"……!"

또다시 들려오는 총성과 함께 한명이 머리에서 피를 토해내며 즉사하자, 그제서야 죽음의 공포를 실감한 승객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성립되었음을 확인한 진우는 권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해맑게 웃는 얼굴과 함께 입을 열었다.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길에서 지나가다가 벼락 맞는 확률보다 낮고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는 즐거운 하이재킹 시간이 여러분들께 찾아왔습니다~! 다들 '무사히' 살아 돌아가신다면 복권 한장씩 긁어보시길 적극 권장하는 바입니다."

방금전까지 악마같은 표정을 지었던 당사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실제로 한 명이 죽었기에 승객들은 몸을 움츠리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자자자~ 너무 무서워하지들 마세요. 제가 한순간씩 '욱' 하는 성질이 있긴 하지만, 조용히, 그냥 닥치고 가만히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꺄아아악!"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과 한 사람의 죽음에 당혹감과 공포심이 승객들의 뇌리를 지배할때, 비행기 뒤편에서 여성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적으로 비행기에는 스튜어디스들이 쉬거나 물건을 가져오는 휴식공간이 존재하는데, 이 비행기에는 화물칸과 승객좌석 사이에 끼어있었다.

안쪽이 보이지 않게끔 커튼이 쳐져 있는 승무원들의 공간에서 바짝 얼어붙어 나오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스튜어디스들이 비명을 지른 이유는…….

쾅!

얼굴과 이마에 8개의 눈알이 붙어있는 이질적인 외모를 지닌 리엘루스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왔습니다, 주인님."

"오, 가져왔구만. 어이, 다들 장착해."

"예!"

그의 명령과 함께 진우의 노예들은 각자 자신들의 파워 슈츠를 착용하였고, 무기들을 들며 승객들을 향해 겨누었다.

자신의 노예들이 모두(리엘루스는 제외) 파워 슈츠를 착용하는것을 확인한 진우는, 자신의 전용 파워 슈츠를 착용하였고, 권총을 슈츠에 부착된 허벅지 권총집에 넣으며 좁은 내부에서 사용하기 쉬운 SMG를 양손에 들어보였다.

"일단 우리들을 소개하자면 나이가 한달도채 되지 않은 신생 조직, 삼태극이라 합니다."

하늘을 부수는 집단이라는 뜻을 가진 파천단은 노예들이 '세계를 아우르는 조직은 너무 직설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름은 피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였기에, 진우는 한반도에서 옛날부터 사용해왔던 삼신의 조화를 담은 삼태극이라는 이름을 짓기로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멋있게 느껴지는 영어라던가 외국어로 지을려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었지만, 약간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진우는 무분별한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단 한국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었기에 다소 평범하게 느껴지긴 해도 어느정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삼태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가 처음으로 만든 무인형 로봇의 이름인 불가사리 또한 한국의 요괴인데, 어지러운 세상을 개혁하거나 바로잡는 속성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다.

키이잉--!

진우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몸을 일으키며 모습을 드러낸 불가사리는 돌격소총을 들며 승객들을 조준하였다.

"히익!"

로봇이 자신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니 당연히 승객들은 화들짝 놀랐지만, 다행히도 로봇은 겨누기만 할 뿐이지 발사까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지켜야 할 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일어선다? 죽습니다. 갑자기 의자에서 이탈한다? 죽습니다. 내 부하들이 여자들이라서 닥돌 한번 해볼만 하다? 곱게는 안 죽일테니까 해볼려면 한번 해보시던가."

마지막에 으르릉 거리는듯한 표정을 지은 진우는 노예들에게 각자 위치를 선정해주었다.

"물론, 우리라고 여러분들의 사정을 모르는건 아닙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 어디가 아프다 싶으시면 손을 드세요. 단, 한 번에 한 명씩만 가능합니다. 애새끼들이라고 해서 2~3명 우르르 가는걸 불가능하니까 다들 이 규칙만 잘 지켜주시기 바래요~"

진우는 부모의 품안에 안겨서 끅끅대며 울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진행자 오빠처럼 방긋 웃어주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페리샤, 너는 잠깐 나 따라와."

"옛!"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끝으로 페리샤를 대동한 그는 기장실로 향하였다.

"기장실을 장악하실 예정이십니까?"

"당연하지. 걔네들이 갑자기 착륙하거나 방향 선회하면 좆되는거라고."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공항에 긴급 착륙한다면 드넓은 중국 땅을 가로질러가야 하기 때문에 기장실을 점령하여 기장이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끔 만드는것이 최우선이였다.

재빨리 기장실에 도착한 진우는 마치 은행에서나 볼법한 두꺼운 합금으로 이루어진 철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기장실 입구가 원래 이렇게 두꺼웠나?"

"이능력 범죄자들이 기장실을 점령하지 못하게끔 대부분의 비행기에는 이러한 철문으로 개조되어있습니다. 얼핏 듣기로는 신체 강화 4등급의 괴력까지 막아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

만약, 진우와 페리샤가 일반적인 범죄자였다면 엄청난 두께를 지닌 철문에 우왕좌왕하며 당황하였겠지만, 진우는 마치 종이찢듯이 가볍게 철문을 뜯어냈다.

우지지지지직!

"헉!?"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란과 스튜어디스가 경고 부저를 누르면서 하이재킹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기장실의 입구를 단단하게 막고 있는 철문을 믿고 있었던 기장과 부기장은 금속이 '뜯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라게 되었다.

"방가방가~? 우리가 누군지 대충 눈치챘을테니 본론만 말할께? 이대로 쭈욱~~~ 직진해서 이라크로 가면 아무 문제 없을거야. 아임 해피, 유어 해피, 위아 해피. 오케이?"

그리고선 기장과 부기장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눈 진우는 페리샤에게 턱짓을 하며 어떤 신호를 보냈고, 그녀는 여기저기 나열되어있는 버튼들과 스위치를 확인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가 알고 있는 기종입니다."

리피를 모셔야 했었던 페리샤는 그녀를 위해 다양한 탈것의 조종법을 숙지해야만 하였고, 단지 크고 넓은걸 선호하는 리피의 성격 때문에 경비행기 뿐만 아니라 이런 대형 비행기까지 조종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냥 조종사를 고용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당시의 리피는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미모를 지닌 페리샤에게 여러가지 심술을 부렸기 때문에 이런 조종까지 혼자서 도맡아야만 했다.

"그래? 그럼 얘네들은 인질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이네?"

"딱히 필요없으니까 귀찮은짓 하기전에 처리하는게 최선일듯 싶습니다."

철컥!

페리샤의 호언장담에 진우는 기장과 부기장의 관자놀이에 겨눈 SMG를 가까이 들이밀며 일부러 쇳소리를 자아냈고, 하이재킹 당해도 조종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약간 여유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공포에 젖은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하였다.

"자…잠깐만! 사…살려주시오!"

40대 중후반쯤 되어 경험많아 보이는 기장은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진우는 그런 기장의 뺨을 총열로 탁탁 쳐냈다.

"워워워~ 쫄지마 쫄지마~ 내 부하가 이 기체를 조종할 수 있다지만, 겨우 그런 이유로 인질을 죽일정도로 막장인 놈은 아니라고. 너희들은 단지 우리들의 지시대로만 따르면 아~~무 피해 없이, 하이재킹을 당한건지도 모를 정도로 편안하고 아늑하게 조종을 할 수 있지. 몸 성히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가려면 내 지시대로 따라. 알겠지?"

"아…알겠소……."

끄덕 끄덕

기장은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하였고, 부기장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좋아 좋아. 아, 그런데 혹시 하이재킹 신호를 보냈어?"

"…그…그건……."

경고음이 들리자마자, 아니 정확히는 총성이 들리자마자 하이재킹 신호를 보낸 기장과 부기장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일반적인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당연히 하이재킹 신호를 보냈다는것에 분노하며 자신들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인'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반응을 보아하니 보냈구만. 잘했어."

툭툭-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테러리스트의 모습에, 기장은 혹시 마약이라도 빤 테러리스트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찰할 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

============================ 작품 후기 ============================

파천단은 솔직히 제가 생각해봐도 좀 너무했음요 ㅋㅋㅋ

그런데 불가사리라고 해서 대부분 바다에 사는 그 불가사리를 연상하시고선 싫어하시더군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등장한 네임드 파워 슈츠들은 모두 한국 요괴의 이름으로 지어서 알아채실줄 알았는데...

그런데 세계에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놈이 세상에 혼란이 찾아왔을때 나타난다는 불가사리의 이름을 사용하니 이것이야말로 모순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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