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0 / 0923 ----------------------------------------------
4장
부우웅-- 끼익--
고급스런 검은색 벤츠는 '개장 준비중' 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거대한 백화점 앞에 멈춰섰다.
벌컥-
그리고 벤츠의 문이 열리면서 훤칠한 키와 시원시원스런 남자다운 얼굴을 한 20대 중반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김 사장님!"
그의 모습이 보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백화점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던 40대 중후반의 통통하고 머리의 절반이 대머리로 까진 남자가 쪼르르 달려나왔다.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까?"
"이제 마무리 작업만 하면 모두 끝입니다. 예정대로 다음날에 개장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정중하면서도 묵직한 물음에, 40대의 남자는 싹싹하게 대답하였다.
서울에 자리잡은 대기업의 사장이자 재벌 3세 김건호는, 이번에 회사에서 계획한 명품 백화점이 거의 마무리 짓고 있다는 보고에 백화점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직접 이렇게 나섰다.
"그럼 안쪽의 상황을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백화점 안으로 향하였고, 백화점을 맡게된 40대의 남자는 그 뒤를 따라나서며 기대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잉-
"어서오십시오, 김건호 사장님."
자동문이 열리면서 안으로 들어서자, 백화점의 제복으로 갈아입은 여직원들이 양옆으로 줄줄히 서서 배꼽인사와 함께 김건호를 향해 인사하였다.
40대 남자는 시작부터 김건호의 기분을 띄어주려는 속셈인듯 싶었지만, 정작 김건호는 별로 마음에 드는 눈치가 아니였다.
"…내가 방금전에 듣기론 마무리 작업이 남아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예. 그랬지요……?"
40대 남자는 김건호의 표정과 말투가 심상치 않게 변하자, 뭐 잘못됐나 싶어 말꼬리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았다.
"마무리 작업이 남았는데 이만한 직원들을 겨우 저 하나에게 인사하고자 대기시켜둔겁니까?"
여성들의 숫자는 대략 40여명. 수백명에 달하는 직원들 중에서 40여명은 많은 숫자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은 숫자도 아니였다.
"예…예……?"
"나는 이런 생산성없는 허례허식 따위로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일은 원하지 않습니다. 당장 직원들을 모두 원래의 자리로 해산시키세요."
회사의 주인이 될 정식 후계자라 해도 자신보다 나이 많은 간부에게 반말을 하지 않고 정중하게 말하였지만, 그 말 안에는 다음에도 이딴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섞여 있었다.
40대 남성이 당황하든 말든, 그렇게 말한 김건호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나가 백화점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기 시작하였다.
어쨌든간에 40대 남자에 의해 해산되어 자신들이 맡은 구역으로 향한 여직원들은 자기네들끼리 입을 모으고 있었다.
"봤어 봤어? 저 대머리가 쩔쩔매는거?"
"어우~ 꼴좋다!"
40대 중반의 남성은 그리 부하 직원에게 인기가 있는 타입은 아니였는지, 잠깐 모여진 여직원들은 그를 씹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길래 대머리가 상전모시듯이 하는거야?"
"어머? 너 모르고 있었어? 본사쪽 사장님이잖아?"
"사장님? 재벌 2세라는거네?"
젊고 능력있고 유망있는 대기업의 후계자.
그야말로 여자들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어필해야만 하는 1등 신랑감이였다.
뒤이어 여자들은 김건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는데, 쓸모없는 허례허식을 싫어한다는 일, 경직된 회사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기 위해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있다는 내용을 말하다가 자신의 업무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편, 민태식의 집.
계속되는 생생한 고통과 공포로 인해 정신이 붕괴된 민태식은 진우가 용광검의 경험치를 얻기 위해 검을 찔러 죽인 상태였다.
그렇게 민태식과 그 부하들에게 복수를 한 신과 진우는, 신이 패밀리어 마법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조합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아낸 사실은,
"호오. 부하 직원에게는 인기있는 젊은 사장님이라?"
직원들의 노동력 저하를 일으키는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복지에도 나름 신경쓰는 좋은 사장님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였다.
능력있고, 부하 직원들에게도 인기 있는 젊은 사장님.
이쯤되면 남궁 부자를 미친듯이 괴롭히던 그 김건호와 동일 인물인지 의심이 될 지경이였다.
"어이, 저 녀석이 네가 알던 그 김건호가 맞아?"
마법으로 이루어진 화면을 통해 사방으로 보낸 패밀리어(주로 모기같은 벌레들)들의 도청 내용을 확인한 진우는 그 김건호가 이 김건호인지 물어보았다.
일반적으로 이런 악당들은 부하들에게도 욕 디비지게 쳐먹으며, 당장이라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정도의 정신병같은걸 앓는게 아닐까 싶을정도의 그런 캐릭터여야 하는데 현실은 다르니 진우로서도 타켓이 잘못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김건호의 얼굴을 잊어버릴리가 없는 신은 분노를 억누르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패밀리어가 확인하고 있는 인물이 김건호임을 확신하였다.
'대체 왜지? 너는 잘 나가는 대기업의 후계자인데다가 이렇게 부하직원들까지 신경 써주는 녀석인데…대체 왜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인거냐…….'
김건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좋았다. 대기업의 후계자인데도 불구하고 오만불손하지 않고,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여러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단순한 낙하산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해보였다.
물론,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최고의 환경을 가지고 있으니 거기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들이 주를 이루었다.
"뭐, 그렇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지. 타인에겐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너에겐 원수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이번엔 어떻게 복수할 생각이지?"
그렇다. 그가 좋은 사장님이든, 아니든간에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중요한건 자신의 복수니까.
"일단 물어보고 싶습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우리들을 그렇게 끈질기게 괴롭혔는지를."
처음엔 일단 다짜고자 찾아가서 납치한 후에 민태식처럼 복수하고 싶었지만, 그의 주변을 조사할수록 도저히 자신들을 괴롭힐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슨 이유로 자신들을 괴롭혔는지 알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진우도 그 부분에는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드시 처리해야 할 복수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었다.
"그래도 일단 그건 그거, 복수는 복수지. 부하 직원들에겐 좋은 사장님일지 몰라도, 너와 네 아버지에겐 회사를 무너뜨리고 조폭까지 고용하면서 괴롭힌 악당이니까."
신이 복수를 꺼려한다면 영웅으로 돌아설 확률이 생기기에, 이런식으로 그가 복수를 꺼려하는듯한 분위기를 조금만 풍기면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원한을 느끼게 만드는 발언을 하여 복수를 완성함으로서, 정의라는 길로 아예 들어서지 못하게끔 유도하고 있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일단 자신들이 평생을 일궈놓은것들이 무너지는 공포감과 상실감을 맛보게 해야지요."
아버지의 회사를 무너뜨릴때 느꼈던 공포감과 상실감을 김건호에게도, 그리고 김건호의 아버지에게도 똑같이 맛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진 신과,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어보인 진우는 김건호의 밑바닥부터 천천히 망가뜨릴 계획을 시작하였다.
---------
그로부터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쾅!
"제길!"
3일전만해도 훤칠하며 남자다운 미남이였던 김건호는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사고에 제대로 면도한 틈이 없었는지 턱수염이 듬성듬성 생겨나고, 와이셔츠를 반쯤 풀어 제낀채로 혼자 사장실에서 연속적으로 터진 문제들의 서류를 해결하느라 새벽 시간때까지 야근을 하며 문제를 처리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은 강호파의 인물로 이루어진 대량 학살 사건이였다.
누군가가 강호파 조직원을 습격하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강호파를 이루는 핵심 간부들과 조직원들이 모두 처참하게 죽어버린 사건이였다.
서울에서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학살' 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의 살인 사건에 크게 요동쳤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김건호가 사장으로 있는 대기업의 사업체가 의문어린 공격을 받아, 건물이 붕괴되거나 팔아야 할 상품들이 망가지면서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김건호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강호파를 처리한것은 자신의 팔다리부터 잘라내려는 사전 공작이였던 것이다.
김건호는 아버지의 인맥까지 총동원하여 수수께끼의 적을 처리하고자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인맥으로 인해 경찰쪽에서는 테러범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경찰 특공대를 대기시켜두며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를 맞춰두었다.
부르르르르--
그렇게 인맥들을 동원하면서 어느정도 방비를 하게 된 김건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피해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그의 휴대폰이 진동을 일으켰다.
'젠장. 바빠 죽겠는데…….'
바쁘긴 하지만, 중요한 문자일 수 있기에 일단 짜증을 내면서도 확인을 한 김건호의 두 눈은 희둥그래졌다.
-전화하기엔 사정이 나빠 문자로 남깁니다. 남궁 신이 사흘전에 퇴원했답니다. 이호준 올림-
"!!"
어째서인지 몰라도 본능적으로 남궁 신에게 신경이 쓰였던 김건호는 이호준이라는 부하 직원 하나를 통해 남궁 신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런데 3일전에 퇴원했다는 문자 메세지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남궁 신이 이 문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자를 박차며 몸을 일으킨 순간,
콰앙!
누군가가 사장실로 들어오는 문을 발로 날리며 거칠게 열어재꼈다.
"끄…헉……."
털썩-
그리고 뒤이어 날라온것은 김건호의 호위를 담당하며, 남궁 신의 파워 슈츠를 부수는데 파견되었던 이지후가 피를 토하며 내던져지듯이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벅저벅-
고요한 새벽 시간대인지라 더더욱 크게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김건호는 발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면서 최초엔 경악, 그 다음은 부정, 마지막으론 증오어린 표독스런 표정으로 발걸음의 주인을 향해 낮게 으르릉 거렸다.
"남궁 신……!"
"간만이다, 건호."
고등학생때부터 이어지던 악연이 드디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쳤지만, 생각처럼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대는 난장판같은 소동은 없었다.
"크…크크크…그런가……. 이 모든 사건들이 모두 네가 꾸민 일들이군?"
"……."
"씨발…뭐가 이능력 재능이 0%야. 하여간에 군대라는건 정말 하나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구만."
군대까지 손을 뻗어서 신의 이능력 재능에 대해 알아냈는지, 김건호는 군대의 무능력을 저주하면서 자신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겉으론 체념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재빨리 책상 아래에 있는 비상 버튼을 누른 김건호는 시간을 어떻게든 때우고자 머릿속을 최대한 굴렸다.
"지금 난 네 녀석을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대체 왜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냐는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만큼 도저히 모르겠더군."
"……."
순간, 김건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알아서 시간을 소모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주는 신의 멍청함에 비아냥거려도 모자랄판에, 김건호는 그의 말을 듣더니 진심으로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 몰라!? 모른다고!? 네가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모른단 말야!?"
"??"
"때린놈은 자신이 얼마나 때렸는지 모른다고 하더니 네가 딱 그 짝이구나!"
"허!"
신은 마치 자신을 가해자처럼 구는 김건호의 모습에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토해냈다.
"그래. 내가 대체 뭘 어떻게 너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대체 무슨 이유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자신을 괴롭힌 이유가 궁금하였기에 일단 들어는 보자라는 식으로 살기를 거두었다.
"이 개새끼가!"
그 때, 갑작스럽게 일어선 이지후가 신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신은 손날을 세우며 이지후의 한쪽 어깨를 갈라냈다.
쫘아아악!
"끄아아아아악!"
내공을 사용하여 손날에 기를 압축시킨 일격에 의해 신체 강화 4등급의 이지후는 단숨에 팔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쉬익!
하지만, 이지후가 계속 지랄발광을 하면 귀찮아질거라 생각한 신은 내리베듯이 휘두른 손날을 다시 한번 휘두르며 이지후의 목을 베어냈다.
스컥!
마치 날카로운 검날에 의해 베여지는 소리와 함께, 정말로 검에 잘려나간것 마냥 깔끔하게 목이 떨어져 나간 이지후의 모습에 김건호는 신이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하지만, 그 또한 이 날까지 남궁 신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자.
그 원한의 상대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공포심을 억제한 김건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와 내가 초등학생때 같은 반이였다는건 알고 있지?"
"6학년 3반. 그리고 짝꿍이였지."
"그 때의 난 어땠지?"
"…착했지. 그리고 친구를 사귀길 좋아했고."
지금은 서로를 향해 원한을 가지고 마주치고 있다만, 초등학생때 같은 학교, 같은 반의 친한 친구였었던 두 사람이였다.
특히, 당시의 김건호는 싸움을 싫어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착한 아이였었다.
"그럼 그 때의 일도 기억나나? 10월 17일 급식 시간."
"……?"
신은 이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누가 초등학생때의 기억을 날짜 단위로 기억한단 말인가.
"그 때는 너와 내가 둘 다 좋아하는 소세지가 반찬으로 나온 날이였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반찬은 다들 조금만 주잖아?"
"…하고 싶은말이 뭐냐."
원한을 말하라고 했더니만 어렸을때의 추억을 말하는 김건호의 모습을 시간 벌기라 판단한 신은 다시 한번 살기를 풍겼다.
하지만, 김건호는 계속해서 그 때의 일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반찬이 부족한 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 그 소세지 반찬을 달라고. 당연히 나 또한 소세지를 좋아했으니까 싫다고 말하면서 우리들은 처음으로 티격태격 싸우게 되었지."
"……."
"그리고 네가 그 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조금씩 그때의 기억이 났는지, 눈알을 굴리면서 뇌를 회전시킨 신은 마치 운명처럼 그 다음 대사가 기억났다.
"너는 친일파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양보해야해."
"너는 친일파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양보해야해."
이구동성으로 두 남자의 입에서 나온 대사.
두 사람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가문은 나름 악연이 깊은 사이였었다.
친일파였었던 김건호의 할아버지와, 독립 운동가였던 남궁 신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에도 반목하였었고, 두 가문간의 앙금은 그 아들대를 이어서까지 내려오고 있던 상황이였다.
남궁 신의 아버지는 김건호를 친일파의 후래자식이라며 욕하였고, 친일파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나쁜 말이라는 것은 알아들었기에 아무 생각없이 김건호에게 소세지를 빼앗으며 그렇게 말했었다.
"정말 소문이라는건 무섭더군. 초등학생을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그 친일파라는 꼬리가 계속해서 붙어있었어. 특히, 누군가를 합법적으로 괴롭히고 싶은 놈들은 내가 친일파의 후손이라는것 때문에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혔지. 그런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나?"
그리고선 낮게 큭큭 거리며 웃어보인 김건호는 계속된 야근으로 힘이 빠졌는지 의자에 기대듯이 약간 축 늘어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돈의 힘으로 처리했지. 나를 괴롭히던 놈들의 부모님들을 사회적인 위치를 이용하여 억압하고, 돈의 힘으로 일진들을 고용해서 내게 괴롭히는 놈들을 처리하라고 지시했어. 나를 괴롭혔던 놈들은 일진들의 타켓이 되었고, 괴롭혔던 놈들의 부모님들은 내게 무릎을 꿇고 제발 자식들을 용서해달라고 사정하였지. 나는 그때부터 돈의 힘을 알게 된거야."
그렇게 피로로 잠깐 몽롱해져 있던 김건호의 눈빛이 다시 한번 살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다시 너와 만난거다! 나는 친일파라던가 독립 운동가라던가 그딴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 단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아 최소한 내 품안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사장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너만 아니였더라면 나는 이 빌어먹을 친일파라는 굴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됐어! 너만 아니였더라면 나는 이렇게 타락하지도 않았을거란 말이다!!"
"……!!"
설마 어린시절의 철없는 한마디로 인해 이런 악연이 생길줄은 몰랐던 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지 이유없이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라는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이런식의 괴롭힘을 가하는것이라 생각했었던 신은, 설마 이런 내용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는지 김건호 정도는 새끼 손가락으로 처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세에 밀리고 말았다.
그렇게 분위기가 김건호에게 넘어갈 무렵, 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한 남자가 나타났다.
휙! 콰당탕!
"으우우웁!"
밧줄로 묶고 테이프로 입을 막은 중년의 남성을 사장실 안으로 거칠게 밀어내면서.
"헤에~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아~ 그런데 뭐 어쩌라고?"
"아버지!?"
"형님!"
김건호는 거칠게 넘어져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향해 다가갔고, 신은 김건호의 아버지를 붙잡기 위해 잠시 떨어져서 행동했었던 진우의 모습에 무언가를 원하는듯한 목소리로 반겨주었다.
============================ 작품 후기 ============================
최초에 설정했었던 남궁 신이 영웅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중 또 하나.
일단 받은게 있으니 복수는 해야겠다만, 남궁 신 뿐만 아니라 다른 3명의 가치관이 섞이면서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아성찰과 동시에 더더욱 이상적인 영웅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니 비명소리가 나의 기쁨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진우의 개입으로 그딴거 없음요ㅋ
10등급 예지 능력자인 그레이스가 아직 이러한 상황을 포착 못하는 이유는 남궁 신이 한쪽으로 확실하게 돌아선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황에서도 특별한 계기가 있으면 선의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진우만 없다는 가정하에서.
PS:원래는 이번편의 내용을(강호파 처리, 사업체 공격 스토리)총 3편으로 기획했었는데 저도 빨리 남정네들의 스토리를 빨리 진행하고 싶어서 한편으로 압축시켰습니다.
스토리의 흐름이 좀 산만하고 빠르다라고 느끼셨다면 정상이십니다. 3편짜리를 1편으로 압축시켰으니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