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302화 (302/923)

0302 / 0923 ----------------------------------------------

4장

달그락-

"자, 여기."

손님 맞이용 소파 앞에 있는 탁자 앞에 홍차와 커피 두잔을 내려놓은 아키는, 홍차를 이실리아쪽으로, 커피 두잔은 노아와 자신쪽으로 향하였다.

"네가 이실리아의 딸이니?"

"아, 예에……. 유노아 라고합니다."

"예쁜 이름이네. 게다가 창호씨와 닮은 구석도 있고."

"가…감사합니다."

엄마에게 들었을때는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잔혹한 손속으로 적과 아군에게도 두려움을 샀었다던 아리이노 아키라는 여성이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 대해 칭찬해주니 노아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였다.

"그런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건 아니잖아, 아키?"

"후훗. 간만에 만난 인연인데 너무 매몰차게 구네."

아쉽다는듯한 말투와 함께 커피를 한입 홀짝이는 모습을 보이자, 노아는 이토록 긴장한 엄마의 모습을 처음 봤다는 놀라움, 그리고 오히려 아키쪽이 성격이 더 좋아보이는데 반해, 이실리아가 툭툭 시비조로 말을 내던지는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워하였다.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다고하니 나도 그렇게 할께."

달칵-

커피잔을 내려놓은 아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는 분명히 한국에서 네 딸을 찾는 도중에 딸과 함께 실종되었다고 들었어. 그런데 그 실종되었다던 모녀가 되도않는 변장을 한 채 길거리에서 오붓하게 데이트를 하고 있지.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걸?"

'역시나.'

읽기 쉽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아무리 심중이 깊은 사람이라 해도 사전 정보없이 그냥 실종되어버린 사람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뿅 튀어나오면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엄마는 어떻게 대처하실까?'

여기로 오는 도중에 자신에게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낸 엄마의 모습에, 노아는 이실리아의 입에 집중하였다.

"그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지, 실제론 달라."

잠시 홍차로 목을 축인 이실리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기밀이라서 조직명은 말할 수 없지만, 나와 노아는 삼태극의 발호를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비밀 조직에 스카웃되었어."

"네 힘이라면 영국 왕실도 움직일 수 있을텐데? 옛날이라면 되도않는 허튼 소리라며 코웃음을 치겠지만, 지금은 삼태극이 정말로 발호했으니 명분도 생겼을테고."

일개 개인이 영국의 왕실을 움직인다는 말을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영국인으로부터 존경심을 얻고 있으며 여왕과 친자매처럼 친한 이실리아의 말 한마디라면 정말로 영국 왕실을 움직일 수 있다.

거기다가 아키의 말대로, 지금은 정말로 삼태극이 화려하게 등장하였으니 더더욱 쉽게 영국 왕실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이실리아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그건 안 돼. 너무 많은 사람을 좁은 일본땅에 몰아넣는것이야말로 삼태극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니까. 그들은 잔인하게도 이스라엘과 바티칸에 세균 병기를 퍼트려서 좀비 영화에 나올법한 장면을 연출시켰잖아? 설령, 그 세균 병기가 없다손 쳐도 일부러 일본을 공격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면서 이렇게 소식이 없는걸 보면 똑같은 세균 병기를 만들거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게 틀림없어."

거기까지 말한 이실리아는 다시 한번 홍차를 한모금 마셨다.

노아는 엄마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에, 하마터면 겉으로 당황할뻔 하였다.

'우와…역시 주인님이랑 같이 있다보니 거짓말도 많이 늘으셨네.'

"아키."

다시 한번 찻잔을 내려놓은 이실리아는, 진우가 써먹었던 방법을 사용하고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힘을 빌려줘."

상대방이 의심할것 같으면 어설프게 멀어지거나 당황하지 말고, 오히려 달려들어 함께 있자고 엉겨붙는것.

"…내 힘을?"

그럴싸한 이실리아의 거짓말에서 헛점을 찾고자 머리를 굴릴려던 아키는 그녀의 제의에, 자신의 배를 내려보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만삭 상태의 너에게 싸워달라고 부탁하는게 아냐. 단지 네 경험을……."

"미안하지만, 나는 더이상 피와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아. 이런 평범한 아줌마로서의 삶도 나쁘지 않거든."

빙긋 웃어보인 그녀는 자신의 배를 자애로운 눈빛과 함께 두 손으로 보물을 만지듯이 쓰다듬었다.

"창호씨가 나를 아닌 너를 선택했을때, 나는 지하드 토벌이 끝나자마자 일본으로 도망가듯 돌아갔어. 처음엔 분노했지. 저딴 계집보다 내가 못한게 뭐냐고. 솔직히 그때의 너는 피쉬 앤 칩스나 즐겼던 전형적인 요리 못하는 영국인이였잖아?

"흠흠……!"

딸 앞에서 옛날의 치부가 밝혀지는 모습에 이실리아는 거친 헛기침을 토해내며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안그래도 불편한 표정이 더더욱 불편해지는 대사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처음엔 내 모든것을 총동원해서 너를 사고사로 위장살인 하려했어. 그 틈을 이용해 창호씨는 내가 가로채고 말이야."

오싹-

한차례 정사를 즐긴후, 진우의 품안에서 아키에 대해 설명했었던 이실리아는 말했었다.

아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서 그녀가 자신을 암살하려고 한게 아닐까 싶어 두려워 했었다고.

그리고, 그 두려워했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올뻔하였다는 사실에,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홍차에 독이 타지 않았을까 싶어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어. 그런식으로 차지해봤자 이미 여자로서의 나는 너에게 패배한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며 커피를 한모금 마신 그녀는 재차 입을 열었다.

"방황 도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니까."

일본으로 돌아온 아키는, 정처없이 방황하였다.

혼자서 조용한 곳에 있다간 계속해서 다가오는 무력감과 패배감, 굴욕감에 이실리아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의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방황하는 도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그 이가 나를 보고 한번에 반했답시고 따라오지 뭐니? 처음엔 이 놈팽이는 뭔가 싶었는데, 솔직히 실연의 상처 때문에 마음이 조금 약해졌었는지도 몰라."

이실리아는 저 냉혹했었던 아키가 사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우리 그 이'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닭살이 오소소소 돋아날뻔하였다.

"결국 그 사람의 대쉬에 넘어가서 결혼하게 됐어. 지금은 회사다니는 아들이랑 이제 막 고등학교 입학한 딸아이가 있는데다, 이렇게 막둥이까지 얻었지 뭐니."

"정말 금실좋네. 늦둥이까지 낳을 정도면. 그런데 남편분은 네가 검은 늑대라는 이명으로 활동했었던건 알고 있고?"

"아니, 단지 신체 강화 2등급의 이능력자라고 거짓말을 했어. 솔직히 이런건 솔직하게 말해봤자 좋은건 없잖아."

아키의 이능력은 화려하다.

일단 신체 강화 8등급, 상대방의 정신을 현혹시키는 쪽으로 발달된 마인드 컨트롤 5등급, 아파트 기준으로 4층 건물 넓이까지 투시 가능한 클레어 보얀스 3등급, 그리고 좁은 텔레포트 반경을 가지고 있으나 빠른 속도로 연달아 텔레포트가 가능하도록 특성을 찍은 텔레포테이션 5등급.

이 모든게 아키 한 명이 보유한 능력으로, 여기다가 2급 유물(진우의 용광검이 1급 유물)의 능력을 지닌 닌자도를 사용하고 있다.

그야말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고밖에 표현이 안되는 살육병기가 바로 아키라는 여성인 것이다.

아키의 말대로, 이 모든 능력을 설명했다면 오히려 남자쪽이 겁을 먹고 떨어져나갔을 확률이 높았다.

"아참, 그런데 남편분 성함을 안 물어봤네?"

그 때, 이실리아가 뒤늦게 생각났다는듯이 아키의 남편 이름을 물어왔고, 아키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토모노리 히데. 아들은 신페이, 딸은 스즈네야. 그리고 이 아이는 렌이라는 이름을 붙여두었고."

참고로 아키의 성 또한 결혼을 하여 아리이노에서 토모노리로 변한 상태다.

"그 분을 한번 보고싶긴 하지만…우리도 간신히 휴식 시간을 가진터라 오래 머무를 순 없을것 같아."

"괜찮아.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라는데 어쩔 수 없으니까. 부디 내 몫까지 함께 싸워줘, 이실리아."

그렇게 대화를 마친 두 여성은 이내 자리를 정리하였다.

옛날엔 악연이였으나, 시간이 지나 두 사람 모두 성격이 둥글둥글해지면서 기분좋게 헤어지게 되었으나, 이실리아와 노아의 모습이 사라지자 아키의 눈빛이 착 가라앉아졌다.

"…그래…내 몫까지 평생 싸워버려. 나는 네가 즐기지 못하는 여자로서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테니까."

이겼다. 드디어 자신이 이실리아를 '여자' 로서 이겼다.

남편의 열렬한 대쉬에 넘어간것도 있지만, 그녀는 토모노리 히데와 결혼하면서 이실리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감으로서 그녀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 것이다.

봐라, 나는 너보다 더 금슬도 좋고 아이도 더 많이 낳았다. 싸움과는 인연이 없고, 안정적인 삶과 사이좋은 가족애를 즐기며 여자로서의 행복은 내가 더 강하게 누리고 있다.

솔직히 창호가 아크로스에 의해 사망하였을때는, 첫 사랑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있었으나, 자신을 재치고 승자 행세를 하던 이실리아가 추락한 모습에 내심 기뻐하는 마음도 있었다.

거기다가 과잉보호로 인해 유일한 딸인 노아가 엄마인 이실리아에게 반발하여 가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땐 그야말로 환호성을 내지를뻔 하였다.

갑작스래 그녀가 실종되면서 소식이 끊겼을때는 많이 실망하였지만, 그런 그녀가 삼태극의 발호를 미리 눈치채고 있었던 조직에 들어가 일본을 지키기 위해 아직까지도 위험한 전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때는 꼴좋다라는 미소를 참아내느라 힘들었었다.

솔직히 이것저것 캐물을게 많았다.

삼태극의 발호를 눈치챈 그 조직은 대체 정체가 뭐냐, 어째서 아직까지도 모습을 감추고 있느냐, 등등의 질문이 남아있었지만, 이실리아가 거짓말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키는 단지 그녀가 전쟁속에서 아직까지 위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승리감을 느끼느라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첫사랑을 앗아간 이실리아가 목숨이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반해, 자신은 평화롭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화목함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승리감을 고취된 아키는 승자의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공허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공허함을 단지 앞으로도 피와 고통으로 얼룩진 이실리아에 대한 죄책감이라 판단한 그녀는, 자신은 싸우고 싶어도 뱃속의 아이가 있으니 싸울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면서 자기합리화를 하였다.

그 날 밤.

"돌아왔니, 스즈네?"

"예에~ 돌아왔……. 우와~? 엄마! 오늘 무슨 날이예요?"

공부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교복 차림의 포니테일의 소녀, 스즈네가 집안 전체에서 진동하는 맛있는 냄새와 호화로운 식탁에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다녀왔습니다~ 음? 어라?"

뒤이어, 깜끔한 인상과 단정한 외모를 지닌 20대 초반 정장 차림의 남성, 신페이도 집안에 들어오면서 맛있는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무슨 기념일이예요, 엄마?"

딸과 아들의 이구동성에, 아키는 그런 자식들을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기념일은 아니고, 옛 친구를 만나게 되었거든. 옛 친구를 만난 덕분에 기분이 좋아서 오늘은 힘 좀 써봤지. 아버지가 오시면 다 함께 먹을테니 먼저들 씻으렴."

"저 밥 두공기 예약할께요~!"

"일단 옆구리와 뱃살부터 집어넣은 후에 말하는게 어떨까?"

"꺅! 이 변태 오빠갓!"

두 아이들이 티격태격 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본 아키는, 이 평화로운 행복은 이실리아가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이들, 싸움따윈 없는 평화로운 삶. 나는 행복한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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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요, 아앙~"

"아앙~"

전함을 개조하여 직접 조리할 수 있는 1인용 주방을 만들어둔 터라, 이실리아는 돌아올때 이것저것 식재료를 사온후에 손수 만든 갈비찜에서 큼지막한 살코기를 아기새 마냥 입을 벌린 진우의 입안으로 직접 넣어주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으음~~~! 쮝이네! 정말이지 이실리아의 손맛은 최고라니깐! 일본 라면 투어를 괜히 했나벼. 이렇게 맛있는걸 만드는 아내가 이토록 가까이에 있었는데 말이야."

"후훗, 아직 양은 많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이실리아는 미리 준비한 손수건으로 진우의 입가에 묻은 갈비찜 소스를 닦아주었고, 사랑스런 미소를 지으며 반찬 이것저것을 직접 사랑하는 남편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딸아이와 함께 한 남자를 사랑하는 기쁨,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삶. 나는 행복한 여자야.'

이실리아는 맛있는 미소를 지어보인 진우의 모습에, 다시 한번 자신이 행복한 여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작품 후기 ============================

다들 제가 조아라에서 짤리는게 아니냐며 걱정해주시더군요. 정말 여러분들의 걱정, 감사합니다.

원래는 정말 하드한 이것저것을 준비해놨지만, 일단 짤리지 않는 수준으로 강도를 약화시켜보고, 배빵도 약하게 할 생각입니다.

일단 배빵으로 유산한다거나 그런 내용은 없으니까 걱정마세요~

PS:쳇. 여러분들께 임산부의 매력을 가르쳐드릴라 했는데. 다른 방법으로 전환하자니 골치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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