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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가까스로 아키를 진정시킨 진우는, 잠시동안 부하들과 함께 지하드의 인공지능, 마스지드의 반란을 알리고 반격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잠시동안 헤어지자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대로 이실리아와 함께 돌려보냈다간 저 불여우같은 년이 뭐라고 험담을 늘여놓을지 모를 일이였기에, 아키는 함께 가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정말 나와 함께 가고 싶어?"
"예!"
"나와 함께 간다면 너 또한 세계의 적이야.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은 더이상 없어. 한마디로 네 모든 인생을 내 야망을 위해 바치는거야."
"바칠께요. 이제 당신이 없으면…저는……."
뱃속의 아이까지 더하면 세 자식의 어머니이자 잘나가는 대기업 중진의 아내로서 안락하면서도 화목한 삶이 더해진, 그야말로 여자로서 성공한 인생이였으나 아키는 단호하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인생을 진우에게 바치기로 결정하였다.
거기다가 마지막에 말꼬리를 흘리며 눈망울이 그렁거리기 시작하자, 진우는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따뜻한 감촉이 느껴지는 단련되어 거친 손이 뺨에 닿자, 두 눈을 감으며 양손으로 자신의 뺨에 올려진 그의 손을 잡은 아키는 그제서야 안도감을 느낀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칫……."
그리고, 처음으로 진우가 다른 여자의 몸을 만지는것 자체만으로도 꺼림칙함을 느낀 이실리아의 나지막한 혓소리가 들려오자, 연상의 여자들이 지닌 뒤늦은 연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 이미 가족들이 있는데도?"
여기서 진우가 좀 더 아키의 확답을 듣고 싶었는지, 가족들을 거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예전에는 저 또한 이실리아처럼 창호라는 남자를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가 이실리아를 선택하면서 실연의 슬픔도 있었고, 지고싶지 않다는 그런 마음으로 히데와 결혼한거예요. 저는 저를 사랑해주는 히데와 함께 살아가는걸 여자로서의 행복이라 여기며 20년이 넘게 제 마음을 속여온거죠."
이제는 창호와 남편인 히데에게도 뒤에 '씨' 라는 호칭을 생략하며 이름을 막 부르기 시작한 아키.
잠시 진우의 뒤쪽에 있는 이실리아를 향해 여자로서의 도전장을 던지는듯한 눈빛으로 흘겨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틀렸어요. 히데와 살아오면서, 20년이 넘게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마음이 두근거린적도,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낀적이 없었어요. 단지 사랑한다고 저 자신을 속여왔을 뿐이죠. 진우씨…저처럼 다 늙은 여자가 당신에게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하면…칠칠지 못하게 나이값도 못해보이고 징그럽나요……?"
그리고선 거부당할것이 무서운듯한 표정과 함께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서구적인 미인인 이실리아와 달리 동양적인 미인으로서 대조적인 아키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녀의 몸을 끌어안아주었다.
"아……!"
그의 체온이 다시 한번 느껴지자 나지막한 신음성을 흘려보인 아키.
"징그럽긴. 오히려 그런 부분이 귀엽고 사랑스러운걸?"
"고마워요……."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기쁨에 그의 목덜미를 와락 끌어안았지만, 아직 신체 약화의 저주가 걸린 진우가 괴로워하는 소리를 토해냈다.
"자…잠깐…너무 강하게 끌어안았어……! 숨이……!"
"아, 죄…죄송해요!"
딴에는 힘조절을 한다고 했었는데 너무나 기쁜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힘이 많이 들어간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그의 목덜미를 풀어주었다.
"어쨌든 네 마음은 알겠어. 이실리아, 혹시 신호기 남은거 있어?"
"예. 혹시 몰라서 위치 추적용으로 사용되는 일반 조직원의 것을 가져왔어요."
지하드에서 사용되는 신호기는 전에도 설명했지만 살라딘 -> 고위 간부 -> 중간 간부 -> 조직원 용의 신호기가 따로 있다
조직원용의 신호기는 그야말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를 제외하면 장식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단지 아무런 특색없는 평범한 브로치같이 생긴 그것을 아키에게 넘겨준 진우는 브로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건 우리 조직에서 사용하는 신호기야. 원래 고위 간부용은 좀 더 다양한 기능들이 있지만, 이건 일반 조직원용이라서 우리쪽에게 신호를 알리는것 외에는 아무런 기능도 없지."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진우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검은 늑대 시절에 사용하던 장비들을 챙겨두고 정비해둬."
"예!"
"그런데 언제 오면 되겠어? 역시 넉넉하게 내일이나 내일모래……."
"오늘 밤에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엉? 그렇게 빨리? 그래도 20년이 넘게 함께 산 가족이니 작별인사는……."
"필요 없어요. 제겐 당신만 있으면 되니까."
"……."
'이실리아도 그렇고 아키도 그렇고, 뒤늦은 연심이라는거 무시 못하겠는걸.'
이미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낳은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된 그녀들이였지만, 뒤늦게 불타오르는 연심은 젊은 여성들보다 더더욱 뜨겁고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설령 사랑하지 않는다손쳐도 20년넘게 함께 살아온 정이 있을법도 한데, 아키는 그런 정조차 없었다는듯이 매몰차게 가족을 버린 것이다.
"알겠어. 그럼 오늘 저녁에 찾아갈께."
"기다릴께요. 당신이 오실때까지……."
그리고선 진우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살짝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순종적이면서도 사랑하는 남자를 떠받드는듯한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이실리아와는 다른 부분이였다.
아내로서의 삶과 경험치가 더 많은 아키는 남자쪽이 기분좋아할법한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실리아는 그런 방법을 사용할 줄 몰라 직접 몸으로 진우를 위해 봉사하며 자신의 연심을 보여주었다.
'큿……!'
자신이 예전에 보였던 행동과는 다른 아키의 모습에, 이실리아는 나지막히 신음성을 흘리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자신이 아내로서의 경험은 그녀보다 한 수 아래임을 직감하였다.
'하지만 상관없어. 나는 아키보다 진우씨와 더 오래 살아왔고 더 오래 몸을 섞었으니까. 진우씨가 원하는 부분은 내가 더 잘 안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정신승리를 한 이실리아는, 아키의 뺨을 한차례 쓰다듬어주며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진우와 함께 아키의 임시 거처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그녀가 아키의 공세를 저항하고자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간,
"이실리아."
"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진우의 모습에 이때를 기다려왔다는 강아지마냥 기대감이 잔뜩 부푼 얼굴과 함께 쫄랑쫄랑 다가왔…….
짜악!
"!?"
순간, 신의 습격으로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면서 인기척이 없다는것을 확인한 진우가 그녀에게 손찌검을 날렸다.
"지…진우씨……?"
처음으로 맞게 된 손찌검.
그에게 공략당할때를 제외하면 그 어느 순간에도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었던 진우였기에 그녀의 충격은 더더욱 컸다.
"어째서 내 신호를 받지 않고 마음대로 나온거지?"
"그…그건……."
"결과가 그나마 운좋게 잘 되서 이정도로 끝내는거야. 자, 말해봐. 내 신호를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한 이유를."
"……."
뺨을 맞은 이실리아는, 뺨을 때린 손찌검보다 더더욱 아프게 자신을 찔러오는 추궁어린 목소리와 눈빛에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 때문에 아키를 얻는다는 내 계획이 완전히 그르칠뻔했어.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이 헛수고가 될 뻔 했다고."
평소 분노한 진우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지만, 거기서 한단계 더 나아가면 오히려 목소리가 조용하게 변한다.
대신에 추궁과 분노가 어린 목소리로 상대방을 찌르는듯한 말투를 사용할 뿐.
"저…저…저는……."
진우의 싸늘한 분노가 자신을 향해 직격해오자, 급기야 말을 더듬기까지 한 이실리아는 어떻게 대답하지 못하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번 일은 실망이다, 이실리아."
"!!"
심장을 후벼파는 목소리.
분노와 추궁, 그리고 신뢰가 깨지면서 생긴 실망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이실리아는 세상이 모두 끝장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진우는 어느새 등을 홱 돌리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향하고 있었다.
"아……."
평소의 그였다면 함께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완벽하게 무시하며 저렇게 행동한다는것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는 뜻이였기에, 이실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도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결국,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고개를 숙인 그녀는 뒤늦게 진우의 뒤를 따라갔으나, 그녀의 몸에는 힘과 생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축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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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안가를 정리한 아키는,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자 자신의 집으로 향하였다.
일본은 지진이나 태풍같은 자연재해를 1년에 최소 한번꼴로 받기 때문에 그만큼 대비책이 철저한 편인데, 국지적이긴 해도 일단 테러가 일어났으니 이 근방 시민들은 모두 대피소에서 군인들의 보호를 받고 있을테니 무너진 집에서 자신의 물건을 꺼내려면 지금이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아마 동네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 가족들이 대피소에서 자신을 찾을거라 생각한 그녀는, 재빨리 무너진 집의 잔해를 파해치고 자신이 검은 늑대 시절에 사용하던 복장과 무기들을 찾아낸 후, 진우와 함께 있었던 안가쪽에다가 다시 그걸 보관한 이후에서야 대피소로 향하였다.
"아키!"
"엄마!"
그리고, 대피소에서 남편인 히데와 장남 신페이와 재회하게 된 아키는 자신을 찾기 위해 회사마저 조퇴한데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될때까지 자신을 찾아준 가족들의 모습에서 아무런 감정을 받지 못하였다.
'진우씨에게 마음이 가서가 아니야. 단지 나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된 거야.'
단지 이실리아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였다.
진심이 들어가지 않은 결혼과 마찬가지로 진심이 없는 출산.
여자로서의 삶이 이실리아에게 패배한채로 지내기 싫어서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속여가면서 한 부부 생활.
이 모든 사실을 진우를 향한 연심으로 깨닫게 된 아키는,
"죄송해요, 여보. 저도 대피소로 오고 싶었는데 상황이 너무 급박했고 요즘 제가 몸이 안좋았잖아요? 그래서 조용해질때까지 구석진곳에서 숨어있어야만 했어요."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와 목소리로 대답하였지만, 가족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싸늘하다못해 마치 생판모르는 타인을 보는듯하였다.
그런 그녀의 달라진 눈빛을 미처 깨닫지 못한 히데와 신페이는 호들갑을 떨어대며 어디 다친곳은 없는지, 아이는 무사한건지 걱정하였다.
참고로 스즈네는 학교에서 대피를 주관하면서 다른 대피소로 향하였다고 한다.
저번에 지은죄가 있었던 두 남자는 더더욱 열렬하게 아키를 대해주었지만, 이미 그녀는 가족들에게 마음이 떠나면서 새로운 사랑을 찾은지 오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이상의 테러 행동이 느껴지지 않자, 대피령이 끝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대피소에서 나와 자신들의 집으로 향하였다.
집이 무너진 사람들은 정부가 조치를 해주기전까지 대피소에서 먹고 잘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대기업의 중진답게 회사에서 주도적으로 히데의 가족들을 위해 집근처 호텔에서 2인실용 2개를 빌려주었다.
뒤늦게 스즈네도 합류하면서 호텔에 며칠간 체류하게 된 가족들이였지만, 아키의 머릿속에서는 밤에 자신을 찾아와줄 진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 작품 후기 ============================
저는 술에 좀 많이 약합니다.
특히 소주는 진짜진짜진짜 못 먹는데, 제가 고등학생때 화공(화학공학)과를 나온지라 과학실에서는 언제나 실험용 알콜 냄새가 진동을 했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서 소주를 먹어보니까 농담이 아니고 맛과 향에서 실험용 알콜 냄새가 나요! 처음에는 불량품이 아닌가 싶었는데 모든 소주 종류에서 맛이 조금씩 다를뿐, 알콜 냄새가 진동을 해서 도저히 못먹겠더군요.
아무리 맛있는 안주를 먹어도 실험용 알콜을 먹는듯한 느낌과 냄새에 그냥 입맛이 확 달아납니다.
그런데 어제는 어쩔 수 없이 소주를 먹어야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농담 아니라 진짜 뒈지는줄 알았음요;;
어쨌든 이제 아키를 공략한 후, 마스지드 공략후에 일본 정벌이 시작되겠군요.
마스지드 공략은...음...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에디터를 이용한 조교?
제 어휘력이 딸려서 현재 구상중인 마스지드 조교를 이런식으로밖에 표현이 안되겠네요. 어쩌면 너무 정확할 수 있지만.
어쨌든 마스지드의 공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