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347화 (347/923)

0347 / 0923 ----------------------------------------------

5장

일부러 추적자들이 따라오게끔 속도를 많이 늦춰준 하린은, 넓직한 공원으로 착지하였다.

삼태극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평화로운 공원이였겠지만, 지금은 갑작스런 공격에 대피한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혼돈의 잔재같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흐흐흥~ 흥흥~"

일부러 아이리를 포함한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이 찾아올때까지 발밑에 있던 깡통을 발끝으로 굴리며 시간을 보낸 하린은, 즐거움이 섞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워낙 본바탕이 좋은 천연 미인인 하린의 밝은 미소는 남성들의 가슴을 두들길만도 했지만, 감성이 풍부하거나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그 너머로 느껴지는 살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휙! 후욱!

뒤이어 아이리와 함께 11명의 이능력자들이 공원에 도착하였다.

전원이 중, 원거리전에 능숙한 하린을 공략하기 위해 근접전 타입인 신체 강화자로, 삼태극의 공격을 반격하기 위해 모인 이들인 만큼 당연히 등급도 높고 실전 경험도 풍부하리라.

게다가 이들중 몇몇은 유럽 전선에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로, 이미 중거리, 원거리전에 익숙한 이능력자들의 목숨을 몇번이나 앗아온 베테랑들이었다.

"잠시 못 본 사이에 취향이 좀 이상해졌는걸, 풍사? 이런곳을 네 무덤으로 정하다니 말이야."

아이리는 두 자루의 일본도를 꺼내들며 하린을 향해 입을 열었지만, 정작 하린은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처음에 네가 기억 상실에 걸렸다고 했을땐 정말 실망했었어. 우리들은 '그렇게' 결착이 나면 안되는 관계였거든."

욱일승천에 의해 가족과도 같았던 동료들을 잃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이리의 손에 의해서 잃었다.

아버지처럼 자신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준 한박구.

큰 오빠처럼 언제나 모두를 조율해줬던 배용조.

나이가 어려서 아직 철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본성은 나쁘지 않았던 동생같은 분위기의 박호진.

언제나 힘들었던 자신을 보살펴주고 위로해주었던 가족과도 같았던 동료들을 아이리가 모두 죽여버린 것이다.

이제와서 하는 소리지만,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아무리 진우가 강도높은 조교를 했어도 그녀의 마음이 쉽게 꺽이지 않았으리라.

"흥,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들이 그렇게 그립다면 내 손으로 직접 그들을 만나게 해주지. 물론, 그 동안의 정도 있으니 일본인의 씨앗을 받을 수 있는 영광을 안겨다 준 후에 말이야."

그녀의 말에 하린을 추적해온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은 음심이 깃든 미소로 히죽거렸다.

아이리가 날카로운 이미지의 미인이라면, 하린은 거기에 대조적인 부드러운 인상의 미인이였기에 그녀를 제압한다면 가장 먼저 자신들이 가장 먼저 능욕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어차피 일본을 공격을 죽어 마땅할 죄인들.

숫적 우위와 상성의 우위, 거기다가 한때 자신들이 지배했었던 조센징 따위라는 생각에 욱일승천 소속의 이능력자들은 그녀를 둥글게 포위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다들 한가다씩 하는 신체 강화자다보니 순식간에 하린을 포위하였으나, 정작 포위당한 그녀는 여유만만 미소를 지어보였다.

철컥!

순간, 하린의 파워 슈츠에서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하자,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은 그녀의 공격이라 판단하며 자세를 낮춰 몸을 움직이려 하였으나,

쿠쿵- 또르르르르-

지금까지 장식으로 여겨지던 주먹의 3분의 1 수준 크기의 쇠구슬들이 파워 슈츠로부터 떨어지며 땅에 나동그라졌다.

떨어질때 쿵 소리가 둔탁하게 난걸 보니 상당히 무거운듯한 쇠구슬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또르르 굴러갔고, 갑작스런 상황에 적들은 쉬이 움직이지 못하였다.

찰칵!

"!!"

뒤이어 쇠구슬들은 고슴도치마냥 뾰족한 가시가 튀어나왔다.

수십여개의 뾰족한 쇠구슬들을 사방에 퍼트린 하린의 의도를 알지 못한 그들은, 그녀의 의도를 알지 못하기에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후후후, 감들이 꽤 좋네. 뭐, 바보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하디 뻔한 함정이긴 하지."

스스로 함정이 있다는 것을 자백하는 하린이였지만, 그녀는 살기어린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덧붙였다.

"응? 뭐야? 설마 위대한 대일본제국의 군인들께서 이렇게 뻔히 보이는 함정에 겁을 먹은거야?"

그녀는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을 도발하였으나, 아이리를 포함한 그들은 어떤 함정일지 감을 잡지 못해 우물우물 거리고 있었다.

"꽤나 여유들이 넘치시네? 내가 원거리전에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그렇게 거리를 벌리고 있는거야?"

파워 슈츠 안쪽에 부착된 포켓 주머니로 손을 옮긴 그녀는 빠르게 허공을 향해 주머니 안의 작은 쇠구슬같은 것들을 뿌렸다.

그리고 손목을 한바퀴 빙글 돌리며 바람의 막을 만들어 허공에 뿌려진 쇠구슬들을 고정시키더니, 이내 1자형으로 줄줄이 세우면서 쇠구슬들을 중심으로 한 바람의 채찍을 만들어냈다.

작은 쇠구슬은 진우가 특별히 하린을 위해 만들어준 크레모아용 티타늄 구슬로, 바람의 채찍을 팔의 힘이 아닌 염동력으로 휘두르는 하린의 공격력을 몇배로 강화시켜주는 역활을 맡는다.

쐐에에엑!

하린이 손목을 살짝 까딱이자, 바람과 함께 더불어 채찍의 형태로 이어진 티타늄 크레모아 쇠구슬들은 맹렬하게 눈 앞에 있던 욱일승천 이능력자를 향해 날라갔다.

"큭!"

콰지지직!

그는 재빨리 몸을 뒤쪽으로 날리면서 아슬아슬하게 회피하였으나, 그가 서 있던 땅은 엄청난 형태로 쩍쩍 갈라져나갔다.

"핫!"

하린은 낭랑한 기합성을 외치며 손목을 휘둘러가며 바람의 채찍을 자신을 포위한 이능력자들을 향해 계속해서 휘둘러나갔으나, 적들은 그녀의 주변에 있는 가시 돋힌 쇠구슬들을 경계하면서 계속해서 피하기만 하였다.

"주변의 물건들로 쇠구슬들을 쳐내!"

"!!"

그 때, 아이리가 바닥을 힘껏 밟아 부수며, 그 잔해 덩어리로 하린의 주변을 지키듯이 널부러진 쇠구슬을 맞췄다.

다른 이능력자들은 하린의 티타늄 구슬로 이루어진 바람의 채찍을 피하며 그녀의 주변에 있는 고슴도치 마냥 가시 돋힌 쇠구슬들을 주변의 물건들을 던져 구슬 치기처럼 맞추기 시작했다.

그냥 그 물건들을 하린에게 던지면 되지 않겠냐 싶겠지만, 던지는 물건의 강도가 최소한 합금 이상의 수준이 아니라면 그녀가 만들어내는 바람의 막을 뚫지 못할것이 분명하기에, 차라리 함정이라 생각되는 구슬들을 쳐낸 후에 근접전으로 공격하는게 더 현실적인 공략법이였다.

하린은 그런 이능력자들을 향해 쉴새없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모두 정예의 이능력자들인 만큼 그녀의 공격은 적들에게 약간의 부상을 입히는걸로 그쳤다.

파각!

어느새 하린의 주변에 있던 마지막 쇠구슬이 돌 파편과 부딪히며 다른 방향으로 날라갔고, 모든 불안 요소를 잠재운 일본의 이능력자들은 자신들을 애먹인 하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우웅!

그러나, 그녀는 이미 예상했다는듯이 바닥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폭발을 일으키듯이 바람을 사방으로 퍼트렸고, 마치 공원의 나무들이 휘어지다 못해 뽑혀나갈것 같은 풍압에 이능력자들의 움직임이 잠시 굼떠졌다.

그리고, 풍압을 멈춘 그녀는 허리를 크게 비틀면서 티타늄 구슬 채찍을 자신을 향해 달려오려던 이능력자들을 향해 휘두…

투두두두둑---!!

…르자 신체 강화자들의 몸을 찢어 발겨야 할 바람의 채찍이 사라지더니 티타늄 구슬들이 줄이 끊긴 염주마냥 사방으로 흩어져나갔다.

"위험해!"

순간, 본능적으로 위험함 느낀 아이리가 몸을 빼며 소리쳤으나, 하린을 제압하여 능욕하겠다는 생각으로 깊숙하게 들어간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은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쇠구슬들의 모습에 시선이 꽂혔다.

"늦었습니다~"

노골적인 함정처럼 보여준 가시돋힌 쇠구슬들을 자신의 주변에 뿌리고, 티타늄 쇠구슬들을 바람의 채찍으로 만들면서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에게 두 구슬들의 사용처가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주었지만, 실제 함정은 채찍으로 만든 티타늄 쇠구슬들이였다.

후우우우웅!!

그들은 재빨리 몸을 뒤쪽으로 날리며 구슬들의 사정거리 밖으로 도망치려 하였지만, 갑자기 폭풍같은 회오리 바람이 하린의 중심으로 휘몰아치면서 S랭크 이능력자가 전력을 쏟아부은 바람의 힘이 더해진 티타늄 구슬에 휩쓸리고 말았다.

투퍼퍼퍼퍼퍼퍽!

"끄아아아악!"

"크허억!"

처음에는 고목마냥 발에 힘을 주면서 억지로 버텨보려 하였지만, 티타늄 구슬들이 그런 그들의 몸을 꿰뚫으며 살이 구슬로 뚫려지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땅을 딛고 서 있는 이능력자가 없을때까지 태풍을 만들어낸 하린은, 재빨리 뒤쪽으로 피신한 아이리를 제외한 모든 욱일승천의 조직원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태풍에 휩쓸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람의 힘을 위쪽으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휘이이이이잉---!!

"~~~~~~!!"

"~~~~~~!!"

태풍안에 휩쓸린 욱일승천의 이능력자들은 비명같은 소리를 질러냈지만 바람 소리가 그들의 목소리를 삼켜버렸고, 이내 그들의 몸은 거대한 소용돌이를 타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쉬이이이익!

퍼퍼퍼퍼퍽!

그리고 뒤이어 티타늄 구슬에 의해 곤죽이 된, 아이리를 제외한 욱일승천 신체 강화자들의 시체가 우후죽순 떨어지며, 그 충격으로 몸의 일부러 뜯겨져 나가거나 터져나갔다.

예전에 아이리를 필두로 한 욱일승천의 부대가 연구소를 습격할때의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자신의 이중 함정에 제대로 속아넘어간 상황에 '어떠냐' 식으로 아이리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던 하린은,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 곤죽이 된 시체가 떨어지면서 잠시동안 아이리의 모습을 놓쳤다.

순간.

퍽!

"!!"

떨어지던 시체의 하복부를 뚫고 한 자루의 일본도가 하린의 미간을 겨누며 날라왔다.

갑작스런 기습에 그야말로 이를 악물며 전력을 다해 고개를 옆으로 비틀며 간신히 피하는데 성공하였다.

퍽!

하린과 아이리의 중간 부분에서 추락한 시체가 땅에 떨어지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비틀었던 하린은 이마에 피를 흘리며 일본도를 던진 자세를 취한 아이리를 향해 노려보았다.

하린은 욱일승천의 조직원들을 전멸시켰고, 아이리는 하린을 기습 공격하여 기세를 빼앗았다.

순식간에 생사가 오가는 살기어린 공방전이 일어났지만, 두 여성은 이래야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였는지 각자 전의를 불태웠다.

"어차피 말해봤자 소용없겠지만, 주인님의 전언이 있어."

그 때, 하린이 미간을 타고 턱까지 입술까지 흘러내려온 피를 혀로 할짝 핥으며 아이리를 향해 진우의 전언을 전달하고자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나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배신의 건은 없던걸로 쳐주겠다. 하지만, 끝까지 내 기대를 배신한다면, 너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일단 누가 아이리와 만날지 모르기에 모든 노예들에게 전해진 전언을 내뱉은 하린이였지만, 아이리는 한 자루 남은 일본도를 양 손으로 쥐고 자세를 바꾸며 냉랭하게 대답하였다.

"개소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군."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아이리."

그렇게 두 여성은 길고 질긴 악연의 끈을 각자의 방식으로 매듭짓고자 서로를 향해 노골적인 살기를 품으며 자세를 취했다.

============================ 작품 후기 ============================

아...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요...

억지로 가고 싶지 않은곳에서 황금같은 주말을 보낸지라 월화수목금금금을 보낸것 같은 느낌입니다...

게다가 일도 갑자기 많이 들어오고...아아...이번주는 진짜 지옥 같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