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6 / 0923 ----------------------------------------------
7장
"주인님!? 주인님!!"
멀찍이서 이벨과 아수라와 신이 맞붙는것을 확인한 노아는, 처음엔 어째서 적이 여기까지 침투했는데도 아무런 보고가 없냐면서 페리샤에게 따져물을 생각으로 통신을 걸었다.
대답은 묵묵부답.
뭔가 이상하다 생각한 그녀는 이번엔 진우에게 통신을 걸었지만, 이번에도 묵묵부답이였다.
일단 로봇 병단은 순조롭게 개미때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는 중국군을 척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명령을 내려지지 않았는지 이벨이라는 존재를 무시하고 중국군 잔당 처리에만 몰두하고 있다는게 문제였다.
이건 마치…….
'마지막으로 내려진 명령만 이행하는것 같잖아…….'
그제서야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온 노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듯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수십개의 총탄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적을 유린할 수 있게 된 고위 염동력자가 되었지만, 통신을 받지 않는 진우와 페리샤의 모습에서 불안감에 휩쌓이기 시작하였다.
-노아!-
"아, 엄마!"
그 때, 이실리아의 통신이 노아에게 전해졌다.
-지금 지하드로 통신이 완전히 끊겼는데 너도 그러니?-
역시 연륜이 있다보니 노아와 달리 침착한 어조로 상황 파악을 시작한 이실리아.
하지만, 딸이기에, 그리고 함께 한 남자를 모시는 여자로서 이실리아의 목소리에서는 막연한 불안감이 섞여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해요."
-나도 다른 아이들에게 모두 물어봐도 하나같이 전함과의 통신이 두절됐다고 하더구나. 게다가 텔레포트 시스템까지 완전히 먹통이야.-
"예? 텔레포트 까지도요!?"
단순히 통신만 안되는게 아니었다.
지하드에 있는 텔레포트 기능은 지금까지 그 어떤 험난한 전투 속에서도 여차하면 전함으로 후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구명줄이였는데, 그 구명줄이 사라지게 된 것을 확인한 노아의 눈빛에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하였다.
-일단 내가 임의로 현장을 지시하마. 가장 먼저 외곽 지역에 있는 아키에게 주변의 정찰을 부탁했으니 적을 추가로 발견하면 연락이 올거야. 중국군을 처리하고자 너무 뿔뿔이 흩어지지 말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렴.-
"알겠어요, 엄마. 일단 근처의 중국군들부터 처리해둘께요."
만약, 추가로 접근하는 적이 존재한다면 뿔뿔이 흩어져서 도주하는 중국군도 큰 위험 요소로 되돌아온다.
적이 추가로 원군으로 등장하면서 도망치던 중국군이 그쪽으로 합류하게 된다면, 적의 전력이 거대해지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많은 중국군을 처리해야만 했다.
특히, 지금처럼 본진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는 적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두면서 위험 요소를 배제하는게 최우선이였다.
'주인님……. 페리샤…….'
노아는 고개를 위로 들면서 조용하게 공중에만 떠 있는 지하드의 모습을 불안한 눈빛과 함께 올려다보았다.
----------
'진정하자. 진정해. 여기서는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해.'
노아를 마지막으로, 모든 젊은 노예들에게 경고를 한 이실리아는 자신이 죽인 중국군의 시체 위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짙은 혈향이 코끝을 찌르듯이 풍겨왔지만, 예전부터 아크로스와 수많은 전투를 벌였던 그녀에겐 익숙한 냄새중 하나에 불과했다.
'일단 아키에게 정찰을 맡겼으니 외부에서 아무리 은밀하게 접근해도 모두 탐지해낼거야. 아키의 보고가 오기 전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명령대로 중국군을 처리하고, 자기 스스로 이벨이라 밝힌 펜타곤의 리더를 공격하면 끝.'
페리샤가 설명했던 외모와 분위기를 그대로 빼다박은 모습에, 이벨의 얼굴을 처음 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실리아는 그녀가 이벨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쨌든간에 펜타곤의 리더 중 한 명이 직접 찾아왔다.
처음엔 페리샤가 미국이 보낸 원군중에 펜타곤의 무리도 섞여있을거라 판단하였고, 미군과 러시아군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펜타곤의 위험도 사라졌다 생각했다.
하지만, 펜타곤의 리더가 등장하면서 페리샤와 진우에게 통신이 되지 않고, 텔레포트 기능까지 마비된 상황이 오자 이실리아는 상식적으로 판단하면서 이벨이 일부러 대놓고 나타나면서 시야를 끄는 사이, 국제적 관계를 무시한 펜타곤의 강수와 함께 정예 부대가 전함 내부로 침투했다 판단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진우와 페리샤의 통신, 그리고 지하드의 텔레포트 기능이 마비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보…제발…제발 부디 무사해주세요……!'
대체 얼마나 강력한 적들이기에 통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것일까.
마음같아선 염동력으로 날아올라 전함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일부러 과시하듯 나타난 펜타곤의 리더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즉, 단순한 시간 벌이가 아니라 일종의 양동 작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여기선 우왕좌왕하지 말고, 일단 눈 앞의 일부터 차근차근 처리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페리샤와 진우의 통신이 되지 않고, 텔레포트 기능까지 마비된 지하드의 모습에서 불안감을 느낀 이실리아는 쉽게 진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전함으로 돌아가야 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대로 간부급이 모두 돌아가버리면 지상군은 공격력이라면 아키보다 강렬한 남궁 신과 아수라를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 이벨에게 당하고 만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진우씨가 죽는다면?
진우를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이실리아는 이미 사랑하던 사람을 전장에서 잃어버린 경험을 겪었기에, 또다시 그 상실감을 겪기 싫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쿠르르릉--
그 때, 갑자기 이벨의 머리 위로 석탄색에 가까운 먹구름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이벨의 능력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먹구름에서 새하얀 뇌전이 번쩍이며 번개가 이벨을 향해 내리꽂았다.
콰르르르릉!
"후지미네!"
진우의 노예가 되기전에는 일본을 대표하던 히어로로서, 그리고 암중으로 활약하던 욱일승천의 리더였던 후지미네가 가장 먼저 일의 우선 순위를 파악하면서 이벨을 공격한 것이다.
'그래……! 양동이라면 일단 눈 앞의 적을 처리한 후에 다 함께 전함으로 되돌아가면 되는거야!'
이대로 몇 명만 전함으로 되돌아가봤자 결국 아군의 전투력을 분단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적이 양동 공격을 취한다면 아예 모두 다 함께 후퇴하거나, 양동중 하나를 확실하게 없애버린후에 나머지 한 쪽으로 전력을 집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확인하게 된 이실리아는 걱정과 불안감으로 욱씬거리는 가슴을 움켜쥐며,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눈망울로 전함을 올려다보았다.
'조금만…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되도록 빨리 당신 곁으로 돌아갈께요.'
일단 이벨의 상대로 신, 아수라, 후지미네가 나섰으니 그녀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도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실리아는 펜타곤의 부대와 중국군 잔당이 합류한다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중국군을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모두 비키세요!"
먹구름을 만들어내서 이벨의 머리 위에다가 번개를 꽂아넣은 후지미네는, 솔직히 방해밖에 안되는 투르키스탄 병사들을 향해 비키라 소리치며 자신이 달려들 공간을 만들어냈다.
파치치칙--!
땅에서부터 주먹 하나 높이 위로 떠있는 후지미네는 발바닥으로 전극을 발현하며, 그야말로 빙판의 스케이트처럼 미끄러지듯이 날라왔다.
손으로 땅바닥 + 전극을 씌우고, 발바닥으로는 - 전극을 내뿜어서 이동한다는, 초등학생용 과학에나 나올법한 과학 내용의 기법이였지만 아무런 전자 제품이 존재하지 않는 지금 상황에선 그녀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펄럭-!
번개가 내리 꽂힐때 날개를 오무리며 자신의 몸을 보호한 이벨은 날개를 크게 펼치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그와 동시에 후지미네는 신과 아수라의 곁으로 다가오며 그들과 합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실리아님께 상황은 전해들었어요. 여기서는 힘을 합치도록 하지요."
이실리아로부터 지시를 받은 후지미네는 한 때 최고위 지도자였던 판단력으로, 눈 앞의 적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며 신과 아수라와 함께 이벨을 격파하고자 곧장 이쪽으로 달려왔다.
"너같은 계집의 힘은 필요 없다."
기이하게도 아수라는 다른 진우의 노예들에겐 그냥 직선적인 성격의 노인 수준으로 대하였는데 반해, 후지미네에게 신경질적으로 대응하였는데, 삼태극이 일본을 정복할 당시, 치우의 수하로 들어가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도중에 혹시나 몰라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에 대해 짧막하게 공부하였다.
한국의 전신인 조선을 침탈하여 조선인들을 상대로 온갖 행패를 부렸다는 것을 알게된 아수라는, 전형적인 강대국의 횡포를 부리는 일본 제국을 혐오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일본 제국을 다시 한번 부흥시키려는 집단인 욱일승천의 최고 지도자인 후지미네에게도 호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진우의 막내 노예가 되어버렸지만, 약소국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수라에겐 후지미네는 그다지 즐거운 인물은 아니였다.
"흥. 말은 잘난듯이 지껄이시지만 멀리서 보니 펀치 한방에 깨갱하는게 보이시더군요?"
"이 년이……."
진우가 주는 공포에 굴복해버리면서 노예가 되어버렸다지만, 진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아무 이유없이 쓴소리 듣고 가만히 넘길 성격이 아닌 후지미네는 그런 아수라에게 톡 쏘아 붙였다.
"그만. 지금은 눈 앞의 적부터 처리하는게 우선이다."
신은 그 둘에게 경고를 하면서 검을 치켜들었고, 그 의견에 동감인지 아수라와 후지미네는 조용히 공격 자세를 취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중국군 잔당을 처리하고 있군.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건가.'
신 또한 지금 이 상황이 양동이라면 후퇴하고 있는 중국군을 더더욱 철저하게 박살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이 펜타곤의 부대와 합류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귀찮은 상황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긴 우리가 맡는다! 모든 병사들은 중국군 잔당을 처리해라! 적의 양동 부대가 도착하면 귀찮아지니까 빠르게 처리해!"
"옛!"
투르키스탄 병사들과 섞여있던 지휘관급 장교가 신의 명령에 대답하며 통신기로 전 병력에게 명령을 전달하였고, 방금전에는 확실하게 승리하여 중국인들을 천천히 가지고 놀듯이 죽였던 투르키스탄 병사들은 펜타곤의 양동 부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지휘관의 명령에 총을 사용해가며 도주하는 중국군들을 처리하기 시작하였다.
사방에서 총탄이 울려퍼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네 명의 남녀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가 불리해져. 예언의 영웅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지 여기는 속전속결이다!'
지금까지 예언의 영웅이 가진 능력을 확인하고자 탐색전만 벌였던 이벨은, 자신에게 양동 부대가 존재한다고 착각하면서 삼태극의 간부들이 흩어져 있는 지금이야 말로 각개격파의 찬스임을 직감하였다.
남궁 신의 능력에 미지의 부분이 많긴 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삼태극의 전력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버릴 것이 분명하다.
어째서 치우가 나타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언의 영웅을 회유하는게 불가능해진게 확실해진 지금, 이 자리에서 처리해두지 않으면 계속해서 성장하여 치우보다 더 무서운 위험으로 성장할테니까.
오랜 시간동안 예언의 영웅과 관련된 예지 정보를 많이 얻어둔 펜타곤에서는 각성한 영웅이 계속해서 성장하게 되고, 칼리 제국과의 전투에서도 성장을 거듭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벨은 아직 성장을 모두 끝내지 못한 예언의 영웅을 이 자리에서 처단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부터 전투씬이 연달아 일어날 예정.
참고로 진우의 강화 플래그는 꽤나 나중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지금 당장은 진우가 딱히 강화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없거든요 -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