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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or 주군)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테스트를 하려 하였다.
그것도 누구의 동의없이 독단적으로.
물론, 누군가가 위험하면 곧바로 텔레포트를 통해 도움을 줄 요량이였다지만, 누구에게도 미리 귀띔조차 하지 않은채로 통신을 꺼버리고 텔레포트 시스템의 전원까지 내렸다.
이벨이 경험이 없고, 자신이 어느정도 피해를 받는다해도 눈 앞의 사람을 구하겠다는 정의감을 가져서 다행이지, 인질이고 자시고 삼태극의 간부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겠답시고 날뛰었으면 농담이 아니라 팔다리 하나쯤은 잃을 수 있었으리라.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어찌보자면 자신들의 목숨을 물건처럼 다뤘다는 인식을 줄 수 있으니까.
물론, 이는 일반적인 조직, 일반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이들에 한해서의 일이다.
"많이 아프시죠? 꺄! 계속 피가 나오잖아요! 대체 어쩌자고 그 상황에서 능력을 봉인하신거예요!"
"피가 나올정도로 깨물렸는데 왜 비명 소리도 안내셨어요!"
진우가 자신들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능력을 봉인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벌을 받겠다는 그의 행동 덕분에 화가 풀렸으면서도 이실리아와 아키는 전함으로 돌아오자마자 진우의 상처를 치료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에…저기, 걱정해주는건 고마운데, 나 지금 얘기좀 하려고 하거든?"
일단 일을 벌려놨으니 자세한 설명이라도 해줘야겠다 싶어 모든 간부들을 모아온건 좋은데, 이실리아와 아키가 구급 상자로 진우의 상처를 곁에서 치료해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입 벌리세요."
"아니, 그러니까……."
"입."
"…네……."
이실리아의 단호한 목소리에 결국 순순히 입을 열어보였고, 그녀는 피를 닦아주면서 상처를 치료해주기 시작하였다.
솔직히 그냥 능력 봉인을 해체해서 재생 능력을 이용하거나, 의료실에 가서 치료받으면 간단한 일이지만, 이런 구식의 방법으로 상처를 치료해준다는것 자체가 어찌보면 벌칙이나 마찬가지이리라.
"킥킥……."
평소에는 지랄발광 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미친개처럼 굴던 진우가 조련사들의 손에 잡혀 얌전해진 모습에, 하린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지막히 키득거렸다.
그녀의 웃음 때문인지, 진우의 약한 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외로 가벼워진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응급치료를 모두 마친 이실리아와 아키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은채로 그의 양 옆에 오롯하게 서있었다.
절대로 멀리 떨어지지 않겠다는 그녀들의 각오가 느껴지는 행동에, 그는 그녀들에게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건 분명히 내가 욕먹을 짓을 하긴 했다. 그래도 구차하게 변명이라도 하자면 이번 중국전부터는 적의 규모부터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투쟁심, 그리고 강적과의 경험이 필요했어. 이번 기회에 불만, 불평, 다 들어주마."
마침 자신을 추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마음껏 하라는 대사를 끝으로 입을 다물었고, 의외로 가장 충성심이 낮은 아수라가 호의적인 발언을 하였다.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데 이정도 위기 정도는 일상다반사로 겪게 되겠지. 솔직히 나도 많이 불안하긴 했소. 이 전함이 가진 텔레포트 시스템은 죽음의 위기로부터 너무나 손쉽게 빠져나가게 되니까 이 어린 계집들에게 죽기를 각오할 수 있는 굳건함이 있기는 한지 의심이 들었거든."
"그거 꽤 불쾌하네요. 아무리 나이가 많다지만 너무 얕잡아 부르는거 아니예요?"
노아는 그런 아수라를 향해 눈초리를 날리며 불쾌감을 표시하였고, 졸지에 어린 계집이 된 젊은 노예들도 노아와 함께 불쾌감이 섞인 눈빛을 날렸지만, 그녀들의 눈빛따윈 아수라에겐 조금의 긴장감도 줄 수 없었다.
"크크큭. 너무 그렇게 보지 말라고. 일단은 칭찬하고 있으니까."
"칭찬?"
"그래. 이벨이라는 그 여자, 경험이 부족하고 어리석게도 평범한 군인 하나 구하겠답시고 멍청하게 굴어서 그렇지, 구출이고 자시고 우리를 죽이는데만 신경썼더라면 정말로 죽을뻔한 위기를 몇차례나 겪었을거다. 너희들도 알고 있었을텐데? 우리쪽의 공격을 당하고도 상처 하나 없는 그 년의 모습을?"
"……."
확실히 그건 그렇다.
이벨이 중국군 장교를 구하기 위해 아군의 공격을 당할때도, 이쪽의 공격이 수차례나 정통으로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멀쩡한 상태였다.
이쪽의 공격에 대처하는 부분에서는 경험 부족으로 미숙한 부분이 많았지만, 신과 아수라가 그녀의 유물로 인해 위기를 겪었었고, 그 능력을 공격에만 전념했더라면 정말로 위험한 상황을 연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벨이 구출을 포기하고 갑작스럽게 반격할 확률을 무시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젊은 노예들은 이벨을 향한 공격에 조금도 꺼리낌이 없었다.
아수라는 그 부분을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대를 상대로 기세가 꺽이지 않은 상태로 싸웠으니 일단은 칭찬하고 있는거다."
"흥. 차암~ 고맙기도 하네요."
노아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빈정거린 하린은 혀를 내밀면서 아수라를 조롱하였지만, 아수라가 보기엔 귀엽기만 한 재롱에 불과했다.
어쨌든, 가장 충성심이 낮고, 성격도 괄괄해서 가장 크게 역정을 낼 거라 예상한 아수라가 생각보다 쉽게 이해하고 넘어가자, 진우를 향한 충성심과 복종도가 100인 나머지 인물들은 장난스럽게 넘어갔다.
"대신에 우리를 걱정시킨 댓가로 '이것저것'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오냐. '이것저것' 다 해주마. 일단 이쪽의 '이것저것' 부터 받은 이후에."
젊은 노예들은 '이것저것' 해주는 것으로 가볍게 퉁쳤고, 진우의 간부들이 가진 각오를 알게 된 아수라도 가볍게 넘어가면서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꽤 여기저기 빠르게 움직이느라 먼지 구름 속을 누벼야 했던 노예들은 와글와글 떠들며 목욕을 하기 위해 함교 밖으로 나섰고, 아수라는 이벨에게 자신의 공격이 통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는지 곧장 훈련장으로 향하였다.
"형님."
함교 내부에는 투르키스탄 병사들에게 지시하는 페리샤와 진우의 곁에 떨어지길 한사코 거부하는 이실리아와 아키, 어떤 보고로 인해 남아있는 리엘루스, 신이 남아있게 되었고, 신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있는듯한 눈빛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하고 싶은말이 꽤나 많은것 같구만.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마음껏 얘기해봐."
진우는 양 팔을 적당히 벌리면서 '나는 관대하다' 라는 표정으로 신의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그냥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응?"
왜, 무엇때문에 감사하다는 건지 이해를 못한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이 아니셨다면 저딴 사고방식으로 정의의 조직임을 자청하는 펜타곤의 일원이 되었을테니까요. 아니, 오히려 내 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셔줬다면서 헤헤 거리는 미래를 생각하니 오히려 열불이 터져나려 합니다."
신 또한 겉으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수라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속내를 내뱉었다간 하린이 시어머니처럼 속을 득득 긁어댈테니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아수라가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해줬으니 신은 아수라가 말한 부분을 반복하기보단 펜타곤의 리더인 이벨의 빈약한 정의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였다.
"이벨이라는 그 암컷은 절반만 지구인이니까. 아마 나이좀 많고 자신만의 정의의 가치관을 확립한 영웅이였으면 아마 다르게 말했을걸?"
"그래도 본질은 같았을겁니다. 단지 포장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였을뿐, 다 똑같은 놈들일테니까요."
이벨의 관심사는 칼리 제국에게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즉, 다르게 말하자면 지구 내부의 문제에는 관심이 희박하다는 뜻.
"그런데 그 여자를 고이 놓아줘도 괜찮은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경험이 미천하다 해도 결국 신체 강화 10등급의 이능력자 아닙니까?"
"쯧. 뭐, 나도 솔직히 좀 아까워. 적의 전력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건 알고 있지만, 그 암컷은 일단 제대로 익기만 하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최고급의 재료였거든. 그 최고급의 재료가 덜익은 상태에서 와버렸으니 요리를 해도 맛이 없을거 아냐."
만약, 이벨이 남자였다면 진우는 아싸라비아를 외치며 일단 죽이고 봤을 것이다.
아니, 이 게임을 막 시작하여 입지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초반부였다면 미래의 적의 힘을 줄여야 하니 반드시 어떤식으로든 손을 댔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힘과 조직이 생긴 안정적인 상황에서 정의의 영웅이라는 포지션과 최강급의 이능력자, 그리고 외계인이라는 초 레어 노예를 재미없게 조교하느니, 차라리 방생하여 제대로 자라서 맛있는 요리감으로 성장하는걸 선택하였다.
"일단 그 년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너도 슬슬 쉬도록 해라. 고생 많이 했다."
"예. 그럼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신이 함교 밖으로 나가자, 지금까지 인간 형태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리엘루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보고할게 있다고?"
리엘루스로부터 보고해야 할 사항이 있다는 통신을 들었던 진우는, 일단 훈훈한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보고는 맨 마지막으로 미뤄두었다.
그녀는 한 발짝 다가오며 진우를 향해 자신이 보고하려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벨이라는 펜타곤의 영웅이 등장했을때, 플래티나에게 날개 달린 인간 암컷을 잡자고 했지만 그녀는 제 지시를 무시하고 이미 상황이 끝난 인간 무리만 공격했습니다. 게다가 처음에만 좀 하는듯이 하다가, 시간이 지나고보니 거의 딴청을 피우면서 시간만 축내고 있었습니다."
"…호오."
인공적으로 태어난 아수라급 괴수인 리엘루스와 달리, 맹수급에서부터 차근차근 성장하여 강적들을 무찔러가며 아수라급이 된 플래티나는 자존심도 아수라급인지, 이쪽의 명령을 틈만 나면 거부하거나 하는척만 하고 있었다.
처음엔 남의 명령대로 따르는게 익숙치 않아서 그런거라 생각했는데, 이벨이 자신의 노예들을 공격하는데도 일부러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면 이는 곱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알겠다. 그 건은 잠깐 생각좀 해야겠구만. 수고 많았다. 너도 이만 푹 쉬도록. 아, 아니다. 지상에서 투르키스탄 병사들이 중국군 포로와 시체를 한 곳으로 모으고 있으니까 먹고 싶으면 너도 내려갔다와."
"키리리릭--"
맛있는 인간의 내장과 살을 취향껏 녹여서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한 리엘루스는 특유의 울음소리로 대답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갔고, 리엘루스의 보고를 끝으로 공적인 시간이 끝나자 진우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이실리아와 아키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자, 그럼 이만 씻으러 가보실까요, 왕비님들."
"오늘은 제대로 안 재울테니까 단단히 각오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이능력을 봉인하실것. 자안~뜩 괴롭힐꺼에욧."
"예이, 예이."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살다가 갑작스럽게 일반인으로 돌아오면서 생기는 허탈감과 불안감을 느낄법도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겨도 이실리아와 아키가 목숨을 바쳐서 막을것이 분명하기에 진우는 하루동안 일반인의 신체로 이실리아와 아키의 괴롭힘을 하루종일 받게 되었다.
뭐, 말만 괴롭힘이지, 실상은 약간 짓궂은 장난과 함께 상냥한 보살핌을 받는게 전부지만.
투르키스탄 병사들 일부분은 페리샤의 지원을 받아, 중국군이 사용하던 차량를 회수하여 기동성이 뛰어난 창귀와 두억시니와 함께 전장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한 소수의 생존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하였고, 나머지는 중국군 시체를 발가벗기면서 시체는 괴수들 먹이로, 옷과 군화, 그 밖에 무기와 물자들을 삼태극으로 자원으로 사용되도록 모으기 시작하였다.
일단 중국의 대군을 물리친것과, 30만의 대군을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양의 물자를 얻게 된것도 있지만, 이벨과 남궁 신의 언쟁을 통해 투르키스탄 병사들이 삼태극에게 충성심을 가지게 된 것도 큰 이득이였다.
솔직히 까고 말해서 투르키스탄 병사들 대다수가 삼태극이 자신들을 1회용으로 쓰고 버릴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이용당해도 최소한 중국군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였다.
그런데 남궁 신이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처해있었고. 그의 대사 하나하나가 동질감을 부여해주면서 남궁 신에게 구원의 손을 내려준 치우의 모습에 그를 믿어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병사들도 생겨난 것이다.
진우도 최악의 경우에 패배를 당해 큰 피해를 입게 되어도, 부상을 회복하고 부대를 재생산하면서 다시 한번 쿨타임이 찰때까지 안전하게 재정비가 가능하게끔 몸을 맡길 수 있는 산하 국가 하나쯤은 존재해야 했기에 투르키스탄을 이번 기회에 중국 땅을 차지할 수 있게끔 도와줄 예정이였다.
치우가 자신들을 버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지금의 사건이 시너지 효과가 되어 삼태극을 향한 깊은 충성심으로 발전할 수 있을테고, 완벽하게 삼태극을 추종하는 산하 세력이 태어나게 되리라.
============================ 작품 후기 ============================
이제 슬슬 쿨타임 찼으니 ㅈㄱ씬을 쓸때가 온 것 같습니다.
대상은 이미 이번편에 플래그 꽂아넣은 플래티나.
잠시 ㅈㄱ씬에서 손을 놓고 시야를 넓게 보니까 플래티나는 좀 더 '동물을 조련하듯' ㅈㄱ 하는게 좋겠더군요.
그동안 너무 인간적으로 다룬듯.
다들 오해하고 계시는데, 제가 쓴 과격한 조교씬들은 모두 나름 이것저것 깊은 생각을 하면서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절대 제 본성이 아님! 저는 달달한 순애물도 좋아합니다!
...남편있는 부인들을 빼앗아서 즐기는게 소소한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