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3 / 0923 ----------------------------------------------
7장
일단 인적이 드물고 안전한 지역까지 쉴틈없이 날라온 이벨은, 수시적으로 뒤쪽을 힐끔거리며 자신을 뒤쫓는 추적자가 없는지 확인하였다.
'정말로 나를 풀어준건가?'
그 상황에서? 완벽하게 포위당한 그 상태에서?
어쨌든 추적자가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녀는 적당하게 울창한 숲까지 도달하여, 그 곳에서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하아……."
평평해서 앉기 쉬운 자리를 확인하고선 나무에 등을 기대며 한 숨을 내쉰 이벨은 그제서야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뇌리로 더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이 깃든 투르키스탄 병사들의 모습, 그리고 남궁 신의 분노, 자신을 비웃는듯한 치우의 목소리가 순차적으로 떠올랐다.
"내가…잘못한…걸까……?"
투르키스탄 병사들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삼태극에게 붙은게 아니였다.
단지, 삼태극이 건내준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사정이 절박하였던 것이다.
예언의 영웅, 남궁 신 또한 약자의 설움을 느껴야만 하였고, 치우는 그런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려 함으로서 그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만들어냈다.
이제와서 그의 불행을 방관한 펜타곤에선 그 충성심을 깨트릴 수 있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으리라.
"치우……."
치우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 처럼 단순히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살인을 하고, 타국을 정복하는 그런 쾌락형 지배자가 아니였다.
아니, 본질은 그쪽이긴 한데,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단순 무식한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악당이긴 하지만, 그런 자신이 동앗줄을 내려주면, 그것이 썩었어도 잡을 수 밖에 없는 고통받는 민족들을 잘 구슬려서 자신의 세력으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타국을 짓밟아 뭉개는게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는 그의 곁을 보좌하는 조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의 뜻이 아니고 주변에 있는 조언자의 조언을 따른거라면?
그래도 누군가의 조언을 이해하면서 받아들였다는 뜻이니, 지식 수준이 낮더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조언을 사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펜타곤이 삼태극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껍데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차라리 치우가 단순하게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면 상대하기도 쉬웠으리라.
"……."
이벨은 무릎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파묻었다.
처음부터 목숨을 걸고 치우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하였지만, 자신을 덜익은 먹잇감으로 밖에 보지 않는,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보는 그의 모습에 주늑들고 말았다.
물론, 거기에는 그가 신호를 보내자마자 자신의 뒤를 노리는 삼태극의 간부들의 위험도 있었지만, 결국 그의 기세에 압박당한건 사실인 셈이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크게 침울하게 만드는 것은, 투르키스탄 병사들의 눈빛이였다.
칼리 제국의 이능력자들을 상대로, 가족과 같은 행성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군인들의 눈빛.
더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결의와 자신들을 침범한 칼리 제국을 향해 보였던 적의가 뒤섞인 그 눈빛.
투르키스탄 병사들이 그녀를 그런 눈빛으로 노려보았을 때부터, 자신이 칼리 제국과 똑같은 입장이 되었을 때부터, 그녀의 투쟁심은 이미 반쯤 꺽인 상태였다.
"나는……."
솔직히 지금까지 칼리 제국만을 막는 것만 생각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다.
자신을 친딸처럼 보살펴주는 양부모님을 위해, 그리고 제 2의 고향이 된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칼리 제국의 야망은 반드시 꺽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지구를 제 2의 고향이라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이름조차 듣지 못한 소수 민족들이 있고, 그러한 소수 민족들이 칼리 제국에게 정복당해 학대당하는 것처럼 강대국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펜타곤은 그런 이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저들이 삼태극이라는 동앗줄을 잡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는것을 방관하고 있었을까?
일단 체력을 회복한 후, 펜타곤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자신이 모르고 있던 정보들을 확인하고, 펜타곤의 리더들에게 따져물을 생각이다.
그리고,
"치우……. 다음에는 반드시……."
이유가 어떻든간에 치우는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악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삼태극과 손을 잡은 투르키스탄 병사들이 자신을 칼리 제국인처럼 노려보는 모습, 그리고 남궁 신의 분노로 투쟁심이 꺽이면서 지금은 이렇게 후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과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삐리리릭-
"응?"
그 때, 그녀의 품 안쪽에 있었던 통신기에서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만약, 치우를 죽인 후, 자신이 살아있는 상태라면 치우를 죽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가져온 통신기로, 그 전투속에서 용케도 고장나지 않고 무사하게 남아있었나 보다.
이벨은 소형 이어폰 같은것을 귀에 끼운 후, 통신을 받아들였다.
-이벨! 이벨! 괜찮은건가!?-
"그리핀."
지금까지 신호를 아무리 보내도 무시했었던 그녀가 통신을 받자, 그리핀은 당황해하면서도 이벨의 안부를 우선적으로 물어왔다.
"예. 일단은 괜찮아요."
-하아…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그리핀은 진심으로 이벨의 생존을 기뻐하였다.
그녀가 10등급의 이능력자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녀의 생존 자체에 기뻐하는 안도감 섞인 목소리였다.
어쨌든, 이벨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게된 그리핀은 곧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좀 전에 투르키스탄 지역을 감시하던 인공 위성들이 동시에 먹통이 되어버렸어. 우리쪽에서는 이 작위적인 사태에 삼태극이 투르키스탄과 손을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었지.-
"그 예상이 맞아요. 투르키스탄은 삼태극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제 눈으로…아니, 치우의 입으로 확인했어요."
-뭣? 그런데 어떻게……?-
솔직히 말해서 그리핀은 그녀가 아직 전장에 도착하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제 아무리 그녀가 강력하다지만, 신체 강화 10등급의 이능력자인 치우와 그의 수하들이 드글드글 거리는 적진을 혼자서 쳐들어간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치우와 대화를 나눴을 정도로 적진 깊숙히 들어갔으면서 어떻게 살아남았단 말인가?
"그는 내가 죽여야 할 가치도 없다면서, 노예로 만들 가치도 없다면서 보내줬어요. 저는…한심하게도 마음이 꺽여서 그의 자비에 살아돌아온거죠……."
-…그래도 나는…아니, 우리들은 자네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얼마나 크게 기뻐하고 있는지 모르네.-
적에게 구걸받아 목숨을 가까스로 구원받은 상황.
제 3자의 입장으로 들어도 그녀가 가질 굴욕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핀은 그녀가 단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게끔 생환 자체에 촛점을 맞췄다.
"그리핀."
-음?-
"……."
그 때, 그리핀에게 뭔가를 말하려던 이벨은 잠시 입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녜요. 일단 체력을 회복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가려 해요. 그러니 이쪽이 사용할 수 있는 루트를 알려주세요."
-알겠네. 자네가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쪽 요원을 통해 루트를 확보해두지. 그 밖에 필요한건 더 없나? 구급 요원은?-
"큰 부상을 입을만한 공격들은 날개로 모두 막아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시라누 인의 날개는 자가 복구할 수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요."
시라누 행성의 인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날개를 지니고 있고, 이 날개는 별개의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적의 공격을 막아낼 방패이자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핀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날개로 방어하여 치명상은 피하였다는 말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일단 수시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게. 그럼 이쪽은 귀환 루트를 수배하도록 하지.-
"예."
그렇게 그리핀과의 통신을 끊은 이벨은, 방금전에 그에게 질문하려 했었던 질문을 목구멍 안쪽 깊숙하게 넣어두었다.
'왜 펜타곤은, 미국은 투르키스탄 사람들이 고통받는데 모른척 하고 있었나요?'
이 질문을 그리핀에게 말하려 했었지만, 투르키스탄 사람들쪽의 정보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그리핀의 설명이 어떻든간에 처음으로 접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에, 괜한 선입관이 생기지 않게끔, 자기 스스로 충분한 만큼의 정보를 알아낸 후에 위의 질문을 해볼 생각이였다.
-약자든, 강자든, 권력자든, 누군가가 잘못을 했다면 신분여하를 따지지 않고 공정하게 처벌하는 것. 그것이 '정의' 의 최소 조건이다. 이것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네 년은 정의의 영웅 따위가 아냐. 그냥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만 정의를 울부짖는 비겁자지.-
그 때, 그녀의 머릿속으로 치우가 말한 '정의의 최소 조건' 이 바로 옆에서 듣는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나는…내가 실현하고 싶었던 정의는……."
예전에 그리핀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굳건한 정의어린 마음을 가진 이능력자의 힘으로 부패한 정치가들을 때려잡거나 부정부패를 고발하면 정치가 좀 더 깨끗해지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리핀은 이런 그녀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능력은 일반인의 눈으로 보자면 인외의 힘이지. 지금은 꽤나 잠재워졌지만, 한 때는 모든 이능력자들을 국가적으로 관리,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갈 정도로 일반인들은 이능력자들을 괴물처럼 바라보았네. 만약, 그 괴물들이 정치까지 손을 대려 한다면 사람들은 다시 한번 이능력자들을 두려워하며 반목의 골이 깊어질거야.'
당시 그리핀은 이렇게 말하며 이벨을 설득하였지만, 당시의 이벨은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능력자도 사람이고, 평범한 인간도 사람이다.
그런데 왜 특별한 힘을 가졌다는 이유 자체만으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악을 고발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걸까?
그때는 아직 지구에 대한 지식이 완전하지 않아서 일단은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치우가 말한 '정의의 최소 조건' 쪽이 자신이 원하던 '정의' 였다.
돈이 많고 권력이 많다 하여 악을 저지르는데 처벌할 수 없다면, 그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위선에 불과하다.
반대로, 돈이 없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주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러야만 하는 사람에게만 정의의 처벌을 내린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방관이자 폭압에 불과하다.
이벨의 머릿속에서는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던 정의와, 삼태극으로부터 듣게 된 이상과 현실의 차이로 인해 어지럽게 얽히기 시작하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고뇌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그 고뇌를 해결하고자 머리를 굴려나갔다.
---------
"이 곳에서 무슨 볼일이지?"
플래티나는 자신을 인적이 드물고, 아무것도 없는 평야로 끌고 온 진우를 향해 물어왔다.
평생동안 한 두번 먹어본것이 전부인 인간 고기를 마음껏 섭취하고,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그동안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사냥감을 사냥하도록 지시했었던 그녀는, 이번만큼은 자식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에 흐뭇함을 가지고 있었다.
뭐,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매우 섬뜩하겠지만.
그 날의 연회로부터 하루 후, 진우는 자신에게 할 말이 있으니 괴수들조차 듣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이동하자고 전하였다.
조용히 말하거나 하늘을 떠다니는 기계 덩어리 안에서 말하면 될 것을 굳이 멀리 이동한다?
바보가 아닌 플래티나는 대충 감을 잡았지만, 일부러 모른척 하면서 그를 등에 태우고 자신이 봐도 누군가의 방해가 들어오기 힘들다고 생각될 정도로 멀리 이동하였다.
자신의 등에서 내려온 진우는 아무 말 없이 거리를 벌리고,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용광검을 뽑아들었다.
"아무래도 말야, 내가 그동안 너무 인간적으로 네 년을 대했던 것 같더군.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버릇' 고쳐주려고 말이지."
"흥. 너 따위가?"
플래티나는 자신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진우를 돕기 위해 다른 이들이 몰래 찾아온게 아닐까 싶어 기계 냄새나 인간 냄새가 나는지 코를 킁킁 거렸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후각에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잘 됐어. 이 녀석이 죽게 된다면 삼태극이라는 이 조직도 알아서 와해되겠지.'
만약 고독이라는 것을 터트려서 자신이나 자식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한다면?
'그때는 차라리 죽는다. 인간의 노리개가 되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죽는게 훨씬 나아.'
그녀는 어제 식사를 하면서 깜짝 놀라게 됐는데, 그것은 눈빛이 흐르멍텅해지면서 인간들의 명령대로 수행하는 다종다양한 괴수들의 모습이였다.
단지 내장 안에서 폭발하는게 위험의 전부라 생각했었던 그녀는, 고독이라는 것 때문에 점점 인간의 명령을 받는데 익숙해져가는 괴수들의 모습에서 위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맹수급 괴수에서 아수라급까지 긴 세월동안 도도하게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아온 그녀에겐, 인간의 명령대로 수행하는 것이 고문과도 고통이였던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플래티나였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진우를 죽이는 일은 매우 간단하고 판단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아는 진우라는 인간은 단지 뛰어난 과학 기술을 가진 과학자의 면모만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이따금씩 그와 눈동자를 마주칠때마다 왠지 모를 호승심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지만, 일반인 수준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봉인한 그의 진면목까진 알아낼 순 없었다.
"자, 그럼 이건 필요없겠군."
진우는 손목 시계처럼 생긴 기계 덩어리를 풀어서 땅에다 내던졌고, 그와 동시에 플래티나의 눈동자가 휘둥그래졌다.
'이 기세…는……!?'
오싹 오싹-
지금까지 만나왔던 그 어떤 적들보다 강력한 기운!
자신도 모르게 털이 곤두선 플래티나는 경계어린 자세를 취하였다.
"이건 반전을 위해 나중까지 미뤄두려 했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네 년 하는 꼬라지가 영 마음에 안들어서 말야. 여기서 확실하게 위아래를 가르켜주기로 결정했다."
"크르르릉~~~!!"
자신을 향해 살기를 퍼트리는 진우의 모습에, 플래티나 또한 발톱을 드러내며 살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부터 ㅈㄱ씬 들어갑니데이~
좀 고어한 면이 많아서 성적으로 꼴리기보단 단지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하며 고통을 지르는데서 희열을 느끼는 씬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리밋뷁이 완결되면 연재될 차기작 던전물의 진우가 이런식의 플레이를 즐긴다고 보시면 차기작의 성격을 아실 수 있을실겁니다.
PS:앱으로 접하시는 분들은 공지가 안보인다니...앱을 사용하지 않는 저는 생각도 못해본 문제네요. 앱을 쓰시는 분들께 묻겠습니다. 블로그 주소를 어디다가 올려야 쉽게 확인이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