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8 / 0923 ----------------------------------------------
7장
"뭐, 일단 구매 의지는 확실한 것 같군."
지금까지의 질문은 여차했다간 괜한 의심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에, 구매 의지 확인차 물어본 것으로 대충 넘겨버린 진우는 일단 분위기를 전환하여 사업 얘기로 넘어갔다.
"그런데 말야, 내 생체 나노 슈트도 완전히 만능이 아냐. 일반인은 신체 강화와 재생 능력밖에 답이 없지. 그것도 7등급까지가 한계야. 그 이상은 영 안되더라고."
"7등급? 그정도라면……."
"충분할거라 판단하지마. 분명 7등급의 신체 강화자는 무섭지.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놈들이 드글드글거리는게 이 미국이라는 곳이야."
진우의 말은 정론이였다.
7등급은 뛰어난 축에 들어가는 힘이지만, 미국의 입장으로선 그다지 큰 힘이 아니다.
일단 합성, 변종 이능력자들이 가진 특수한 기술이라던가, 강한 적을 상대로 한 전술을 사용하면서 힘의 격차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것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많은 이능력자들을 보유한 국가다보니 7등급의 힘으론 한 주에서 명성을 얻는게 전부이리라.
하지만, 매그너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듯 싶었다.
"상관없다. 일단 힘만 얻을 수 있다면 부족한 나머지는 정신력으로 해결하면 끝이니까."
'무슨 일본 스포츠물 감독이냐! 근성이면 다 해결되게!'
매그너스는 플랜 A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다른 히어로나 빌런들에게 체포, 사살 당한다면 플랜 B나 C를 노리는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하나 노예를 미국에 체류 시켜야만 한다.
즉, 조직의 전력과 지원을 이쪽으로 어느정도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매그너스라는 존재만 있다면 굳이 미국쪽으로 지원을 한다던가 자신의 부하들을 파견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어도 된다.
문제는 지금의 진우는 매그너스와 그리 친분이 없는 상태이며, 자신이 만든 제품을 사 줄 구매처를 구하고 있다고 하는 과학자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매그너스의 안전같은걸 대놓고 걱정한다면 당연하게도 위화감을 느껴지게 되리라.
여기서는,
"우리 나라에는 이런 말이 있지. 시작이 반이다, 라고 말야. 댁이 죽든, 체포되든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앞으로 이 기술을 팔아 먹어야 하는 입장으로선 처음으로 시제품을 착용한 사람이 허무하게 죽어나가면 제품으로서의 가치와 안정성이 하락 된다고. 시작부터 안 좋은 결말이 일어나면 그 인상이 초장부터 박혀버려."
"크흠…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이지?"
매그너스는 자기 고집대로 피우면 진우가 생체 나노 슈트를 팔아주지 않을거라고 판단하였는지, 한 발 물러서면서 그의 의향을 물어왔다.
"음…음…음……."
그렇게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던 진우는, 일단 매그너스가 어떤식으로 싸울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정하였다.
"만약, 지금 당장 힘을 얻는다면 어떤식으로 싸울거지? 혼자서 싸울 생각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모아서?"
"이건 내 개인적인 염원이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내 염원을 이해해주리라 생각하기도 어렵고."
"그렇다면 개인 대 다수의 싸움이 될 확률이 높다 이건데……."
'이 녀석은 무조건 자신의 힘으로 이능력자와 싸우려고 할 것이 분명해. 그렇다면 일단 전투력 강화부터 시켜줘야겠군.'
매그너스가 많이 활약할수록, 미국 내의 히어로들과 빌런들은 그에게 시선이 모이게 될 테고, 그만큼 시선이 많이 모이면 사건이 터지기도 쉬워진다.
만약, 그가 플랜A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보니까 그다지 쓸모있는 인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최소한 미국 내의 이능력자 숫자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페리샤가 계획한 이능력자와 비 이능력자의 대립에 사용될 수 있고, 거기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이이제이의 계략으로 미국 내의 이능력자 전력을 깍아먹을 수 있는 것이 매그너스라는 존재다.
즉, 어떤 루트로 가든지간에 그의 전투력 강화는 삼태극에게 있어서 직,간접적인 이득이 된다.
그렇게 매그너스의 전투력 강화에 대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때, 진우의 머릿속에 예전에 자신이 즐겼었던 유희 방법이 생각났다.
"어이. 펜이랑 종이좀."
감히 뉴욕의 대기업, 솔트 사의 사장을 종이와 펜을 가져다 달라며 요구하는 진우의 모습은 남들에게 경악을 불러일으킬만한 행동이였지만, 더 경악스러운건 기분나쁘다는 기색 없이 가져다주는 매그너스의 모습이였다.
매그너스로선 평생을 꿈꿔왔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려 하는 상황이였기에, 기분나빠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종이로 무언가를 슥슥 쓰던 진우는 다시 종이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일단, 이 재료랑 작업장을 확보해줘. 물론 최고급 품으로. 이 재료들이 댁이 사용할 무기의 부품이니까 대충 대충 구하면 댁만 손해라고."
"내가 쓸 무기의 재료라고? 그렇다면 바로 구하도록 하지."
"양이 꽤 많으니까 시간은 넉넉하게 줄께. 내일 다시 돌아올테니……."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내 힘이라면 이정도 양을 구하는건 한 시간 안이면 충분하니까."
"오? 그래?"
진우가 말한 재료의 양은 전차를 십여대 넘게 만들 수 있는 양으로, 예상외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예비 재료까지 포함된 양이였으나 그것을 한 시간 안에 구할 수 있다고 확언한 매그너스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개인이 운영하는 철물점이나 작업장을 통째로 인수하도록 하지. 크기는 어느정도 큰 게 편하겠지?"
진우에게 이것저것 설명한 매그너스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매그너스다. 아아, 인사는 됐고, 지금 당장 구해줬으면 하는게 있네. 양이 많은건 알고 있지만, 돈은 얼마든지 지원할테니 최고급품으로 한 시간 안에 모아주도록 하게."
"지금 당장 중형 크기의 철물점이나 작업장이 있으면 하나 인수해주게. 한 시간 안으로. 중요한 일이니 궁금해도 일단은 내 말대로 움직여주게."
그리고선 계속해서 전화를 걸면서 어디로 돈을 지원하라, 누구를 지원해라 라며 회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모든 전화를 끝낸 매그너스는 이제 한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고 말하면서 뒤이어 구매 금액에 대한 문의로 이야기의 주제를 바꿨다.
"생체 나노 슈트는 하나에 얼마쯤 하지?"
"액수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지. 그건 후불제니까."
"후불제?"
일반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무조건 돈을 선불로 받으려고 노력한다.
괜히 돈을 나중에 받겠다고 하다가 기술만 흡수당하고 팽 당해서 내쫓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우의 말은 매그너스에게 있어서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괜히 '이 새끼가 지금 나한테 사기 치려는건가' 라는 의심을 받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게 짜증난다는 말씀이지. 뭐, 돈을 삥땅치면 강제로 회수해낼 방법도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진우는 자신의 몸과 옆에 앉아있는 셀리의 몸을 가리키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고, 자신이 가진 실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그가 더욱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매그너스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있는데 말야, 왜 그렇게까지 이능력자들을 싫어하는거지?"
"……."
사업 얘기가 계속되려면 한 시간 이후에 있을 작업 이후부터 시작되어야 했기에, 그 동안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진우는 매그너스가 어째서 이능력자들을 증오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기로 결정하였다.
"뭐, 남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 물어본다는건 매너없는 짓이긴 하지만, 그쪽은 뭔가 이상하단 말야. 빌런 이능력자에 의해 소중한 사람이나 가족들이 죽으면서 복수심을 품어 악당들에게 증오하는 경우는 봤어도, 사람을 구해주는 히어로들에게까지 혐오감을 가지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
악당 이능력자의 범죄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잃게 되면서 히어로가 된 이능력자들도 종종 있기에, 진우는 일반적이지 못한 매그너스의 증오심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일단 속사정을 알아야 어떻게 방향을 제시할지, 등을 어느 정도의 힘으로 밀어야 할지 판단이 가능하단 말씀.'
매그너스에 대한 정보가 압도적으로 부족하기에, 겉으로는 단순한 호기심처럼 물어왔다.
"사람을 구해?"
하지만, 진우는 방금전에 대사로 자신도 모르게 매그너스의 '역린' 을 건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웃기는군. 히어로라고 모두 사람을 구해주는줄 아나?"
왔다.
드디어 매그너스라는 먹잇감을 낚아챌 찬스가 왔다.
진우는 예상치 못한 행운이 가져온 찬스를 좀 더 크게 만들기 위해 '상식적인' 답변으로 매그너스가 가진 분노라는 불길에 기름을 부어넣었다.
"그럼 아냐? 히어로가 괜히 히어로겠어? 사람을 구해주고 악당으로부터 보호해주니까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열광하는 거잖아."
까드득-
정론이라면 정론적인 대답이였지만, 매그너스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이빨을 빠드득 갈면서 히어로들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다.
"이 회사에는 회장 자리가 공석으로 비어있다. 원래라면 내가 그 자리에 앉아야겠지만, 나는 그 자리를 아버지의 추모를 위해 공석으로 남겨두고 있는 중이지. 그 빌어먹을 영웅 나리들이 제대로 일을 했다면 공석이 될 일도 없었겠지만 말야."
그리고선 매그너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히어로들의 본성을 까발렸다.
자신보다 강력한 빌런에게 겁을 집어먹고선, 자신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애원을 뿌리치며 도망간 겁쟁이들.
그러면서도 신문에서는 한 가족을 파멸로 이끌고선 오히려 피해를 최소화 시켰다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위선자들.
매그너스는 자신이 가진 이능력자들에 대한 증오의 원천을 마구잡이로 쏟아부었다.
'과연. 어릴때 이런 트라우마가 있으면 이능력자를 싫어할만도 하지.'
자신만 해도 단지 어릴적에 성당을 갔다가 안좋은 기억을 얻게 되면서 모든 종교들을 불신하게 되어버렸잖은가.
그만큼 정신적으로 미성숙할때 얻은 마음의 상처나 충격은, 어른이 되었을때 받은것보다 더 크게 남아있는 법이다.
어쨌든간에 매그너스에게 제시할 방향과 등을 어느정도 강하게 떠밀어야 하는지 알게 된 진우는 약간 심드렁하게 대꾸하였다.
"흠. 확실히 이능력자들을 증오할만은 하네. 난 또 이능력을 얻을 수 없는 몸이라서 일종의 시기심이나 질투심인줄 알았지."
"뭣?"
순간, 매그너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였지만, 진우는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야 그렇잖아? 네 말대로라면 빌런들 뿐만 아니라 히어로들도 아주 안전한 종자들이 아냐. 즉, 어느정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지. 하지만, 너는 그 히어로들을 관리하기 보단 단순히 증오하면서 마음속으로 끙끙 앓고 있으니, 제 3자의 입장으로선 이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시기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어."
"관…리……?"
순간, 진우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매그너스는 머리에 망치를 맞은듯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맞아. 빌런들보단 낫지만, 히어로들 또한 같잖은 영웅심리로 정의를 구현한답시고 죽음에 대한 각오가 없는 존재들이 많아. 이능력자들의 숫자도 착실하게 늘고는 있다지만, 그만큼 비 이능력자들의 인구수도 늘어나고 있으니 단순 비율로 따지자면 이능력자들의 숫자는 2%도 안 되거나 거기에 근접한 수준이야. 어째서 그 2%를 위해 나머지 98%가 위협받아야 하는거지?'
"뉴욕의 경제 절반이나 쥐고 있으면 정치권쪽으로 접근하는것도 어렵지 않잖아? 하지만 단지 마음속으로만 이능력자들을 증오하고 있었으니 내쪽에선 시기심이나 질투심으로 밖에 해석이 안되더라고."
"…그런가. 확실히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법도 하군."
매그너스도 진우의 목소리에 순순히 수긍하였다.
'좋아. 딱 여기까지가 커트 라인이다.'
자신은 단지 '궁금해서' 매그너스의 과거를 듣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어떤 방식으로 이능력자들을 관리해야 한다느니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한다면 의심을 살 것이 분명하기에, 지금의 상황을 기준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등을 떠미는 행동을 멈춰야만 하였다.
"자자, 딱딱한 얘기는 그만두자고. 그보다 커피라던가 다과같은거 없어? 갑자기 뭔가 입 안에 넣고 싶어지는데."
매그너스의 과거사에 대한 관심을 끊은것처럼 보인 진우는 딴 소리를 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하였지만, 매그너스의 머릿속에서는 오늘만해도 이능력자들의 싸움으로 거대한 빌딩이 붕괴되어 거기에 깔려 죽을뻔한 경험이 더해지면서 이능력자들에 대한 위험성이 증오심으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거기다가 자신을 납치하고 충성스런 운전사까지 죽여버린 작자들도 이능력자였기에, 대처할 수 없는 힘에 노출된 일반인으로서 무력감에 휩쌓였었던 그의 머릿속에서 진우가 심어놓은 씨앗이 싹을 트기 시작하였다.
============================ 작품 후기 ============================
가끔씩 이것저것 웹서핑을 하다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싸움이 몇몇 보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나오는 드래곤볼 신작 극장판에서 프리저가 부활한다고 하니까 드래곤볼 팬들의 토론이 일어났는데, 이 중에서 2가지의 논쟁이 제 어이를 털어갔습니다.
1. 드래곤볼 전투력 논쟁
2. 프리저가 맞는 말인가, 후리자가 맞는 말인가.
드래곤볼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님은 자신이 만든 설정도 까먹는 사람이예요. 오히려 패러디물이 원작 파괴가 덜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전투력으로 누가 더 쎄느니, 논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재밌더라고요.
아마 토리야마 작가님께 물어봐도 '걔가 누구임?' 이라고 대답할걸요? ㅋㅋㅋㅋ
그리고 프리저Freezer의 발음 문제 때문에 또 어이를 털어갔는데, 일본에서는 발음상 문제로 후리자 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발음상의 문제가 없기 때문에 프리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일본식 발음대로 후리자가 맞다, 아니다, 걔네들 발음이 이상한거지 프리저가 맞는 발음이다. 라고 싸웁니다.
그것도 그냥 꽤나 '격렬하게' 싸웁니다. 서로 험한말까지 사용해가면서요.
그냥 편한대로 부르면 되지, 뭔 그런걸로 언어 부심을 부리고 있는건지 참...
어쨌든 제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싸움' 의 랭킹 1, 2위는 드래곤볼 전투력 논쟁과 프리저, 후리자 발음 문제의 논쟁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