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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일본의 국회의사당.
파괴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에는 정치가들을 경호하거나 시설 경비를 위한 인물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고, 드넓은 주차장에도 차량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치가들은 이미 일본이 끝장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국회로 출근하기 보다는, 자신들만의 은신처나 인적이 드문 산장 같은곳으로 숨어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치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국회로 출근하여 자신의 집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인물이 있었다.
총리, 야마토 헤이세.
예전의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이상과 방향을 잡고, 대일본제국의 부흥을 위하여 욱일승천에 모든것을 헌신하였다.
하지만, 치우라는 존재에 의해 일본은 패망, 거기다가 욱일승천도 와해되면서 단지 힘없는 패전국의 총리가 되어버렸기에, 중후한 정치가의 모습과 분위기를 보였던 그는 초췌한 얼굴로 죽은듯한 눈동자로 자신을 찾아온 인물과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헤이세를 찾아온 인물은 치우와 그 뒤를 보좌하는 비서처럼 오롯하게 서 있는 페리샤였다.
"여어, 그동안 잘 지냈나?"
"……."
어째서 그가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헤이세 총리였지만, 이제는 삶의 희망도 모두 잃어버렸는지 치우의 인사를 무시하였다.
빠각!
"크헉!"
헤이세 총리가 어떤 마음인지는 대충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감히 자신의 말을 씹어버린 그의 무릎을 가볍게 걷어차자, 총리는 힘없이 무릎을 꿇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성을 내질렀다.
"사람이 인사를 했으면 받아줘야지, 응? 이건 사람과 사람간의 기본적인 에티켓 아니였나?"
"크…크크큭…에티켓이라……. 당신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줄은 몰랐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제정신으로 이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헤이세 총리 입장으로선, 차라리 죽을것 같은 고통을 겪어도 좋으니 앓아 누워서 정신을 잃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였다.
"주인님, 굳이 시간 낭비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뭐, 그건 그렇지."
페리샤는 굳이 여기서 아웅다웅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판단하여 진우에게 조언하였고, 진우 또한 남자 새끼랑 노닥거리는게 싫은지 헤이세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였다.
"지금부터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한가지 해줘야겠다."
"일본 정부의 이름이라……. 그런게 남아 있기는 했소?"
이미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실상 망하고 말았다.
모든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서, 이제와 제대로 국가로서의 기능이 발휘되어도 3류 농업 국가 밖에 답이 없는 상황이다.
예전과 같은 경제 대국으로서의 영광을 누릴려면 최소 백여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다른 국가들도 그만큼 성장할테니 결국 제자리 걸음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것도 삼태극이 물러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삼태극이 일본에 눌러앉은 이상, 일본 정부 또한 목소리는 커녕 입조차 벙긋할 수 없는 입장.
그런데 대체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우연찮게도' 꽤나 많은 잉여 식량을 얻어버렸는데 말이지, 생각해보니까 한 번쯤은 너희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주는게 좋겠다 싶더라고. 우리 애들이 말해봤자 씨알도 안먹힐테니, 니가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식량 배급을 위해 모이라고 선전해줬으면 좋겠어."
"식량…배급……?"
"응응. 식량 배급. 모든건 우리가 다 준비할테니까 너는 그냥 사람들을 불러모으기만 하면 되는거야. 미리 '치안 유지대' 애들한테도 말해뒀어. 요 며칠동안은 '비국민들' 도 체벌하지 않을테니 자유롭게 움직여도 좋아."
"치안…유지대라…하하……."
치안 유지대?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아니, 이제는 야스쿠니 창관으로 개명된 곳으로 끌고가서, 남자는 잔인하게 고문시키며 죽이고, 여자는 무차별적으로 강간을 하는것이 치안 유지대란 말인가?
거기다가 치우가 말한 '비국민' 이라는 말은, 예전에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당시에 일본인이 아닌 식민지의 인간들을 일컫는 단어였다.
그는 일본 제국 시절에 일본이 했었던 만행을 고스란히 피해자의 입장으로 겪게끔, 일부러 그런 종류의 단어 선택을 체택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쪽에서 크~~~게 선심 써서 한가지 보답을 해주지."
"……."
불안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치우라는 인간은 절대로 이런 인물이 아닌데…….
헤이세 총리가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치우는 씨익 웃어보이며 헤이세 총리를 위한 '보답' 을 공개하였다.
"니들 종특인 그거 있잖아, '천황 폐하 만세~!' 그거. 앞으로 그걸 사용해도 처벌하지 않도록 해주마."
"……."
까드득--!
헤이세 총리는 그제서야 치우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를…심심풀이로……!'
그렇다.
치우는 단지 심심해서 그를 놀릴려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왜 그래? 너무 감격스러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나? 자자, 외쳐보라고.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 제국 만세~~!"
"……!!"
마치 일본인의 영혼이 빙의하듯이, 총리의 집무실에서 두 팔을 벌리며 '천황 폐하 만세' , '대일본 제국 만세' 를 외치는 치우의 모습에, 헤이세 총리는 모멸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술에 피가 터져나올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다.
"뭐해? 내가 허락한다니깐? 위대하신 대일본 제국의 위대한 총리 각하께선 신의 자손이신 천황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나봐?"
"제발…제발…이제…더이상 살고 싶지 않소……. 그러니…제발 할복할테니…크흑…흐으으윽……!"
결국, 치우의 노골적인 조롱에 억지로 꾹꾹 참아왔던게 터지고 말았다.
일본이 패망하고, 자신의 꿈도 망가진데다, 천황 일가는 치우가 모조리 죽여버리면서 유일한 자손은 후지미네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미 치우의 노예가 되어버린 후지미네가 자신의 일족을 죽이는 모습에서 그녀가 일본을 위해 헌신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이제는 싫다.
아무도 없이 먼지만 쌓여가는 국회로 출근하는것도, 총리의 집무실에서 절망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일도 이제는 모든게 다 싫다.
차라리 자살하고 싶었지만, 자살하면 아예 일본인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전에서 말살시켜버리겠다는 협박에 억지로 꾸역꾸역 삶을 연명하는, 마모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헤이세 총리다.
"뭐? 할복!? 우와! 나 진짜 할복쇼 하는거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졸라 희귀해서 야쿠자들도 안한다는 그 할복 쇼를 보게 되다니!"
헤이세 총리가 무릎을 꿇으며 분위기를 잡자, 그 모습을 확인한 치우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동영상 녹화모드로 들어갔다.
"할복 쇼~ 할복 쇼~ 야, 페리샤! 박수 쳐서 박자 맞춰! 할복 쇼~! 할복 쇼~!"
짝 짝 짝 짝 짝
'할' 에서 박수 한번, '쇼' 에서 다시 박수를 치면서 박자를 맞추는 페리샤의 모습과, 자신이 할복하는 것을 기대하는 치우의 눈빛을 마주본 헤이세 총리는 모멸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구나……. 나의 죽음은…이들에게 있어서 그정도 가치밖에 되지 않았던 거야…….'
"야, 뭐해? 할복한다며? 아, 혹시 단도가 없어? 할복용 단도 준비해줄까?"
"크흑…흐흐흐흑…흐하하하하하하……!"
자신의 죽음이…아니, 일본인의 사무라이 정신이 깃든 할복이 조롱거리, 구경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결국 죽고자 하는 마음마저 꺽여버린 헤이세 총리는 울면서 절망감이 어린 힘없는 웃음소리를 토해냈다.
"흥. 하여간 사람들은 막상 돗자리 깔아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깐. 나같으면 돗자리만 깔아주면 길거리에서도 공개 섹스를 할 수 있는데 말이지. 뭐, 거기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지만."
할복하라고 자리를 깔아주니깐 결국 자살도 못할 정도로 정신이 망가져버린 헤이세 총리의 모습에, 치우는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됐어. 어쨌든간에 내가 내린 명령대로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일단은 도쿄에 있는 시민들부터 시작하자고. 한 5분 있다가 이것저것 지원해줄테니 시간에 맞춰서 정문으로 나와."
"…알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힘없이 대답한 헤이세 총리의 모습에, 아니, 정확히는 할복을 하지 못한 헤이세 총리의 모습에 흥미를 끊은 치우는 그렇게 할 말만 마치고선 페리샤와 함께 텔레포트로 텔레포트하였다.
이후, 삼태극에서 지원받은 차량과 확성기를 통해 헤이세 총리가 직접 녹화한 내용을 도쿄 전체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일본 정부의 이름으로 도쿄의 시민들에게 식량을 무상 배급해준다는 것이였다.
처음에는 믿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였지만, 배고픔에 지쳐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없다고 생각한 몇 명이 국회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일본 시민들에게 있어서 지옥의 악마보다 더 무서운 '치안 유지대' 들이 그들을 발견하면서도 무시하는 모습과, 시간이 흘러서 국회로 출발한 사람이 푸짐한 양의 식량을 구해오는 모습에 도쿄의 폐허에서 살아남아 있던 일본인들은 굶주림에 지쳐 국회로 이동하였다.
정말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많은 양의 식량을 얻게 된 일본 시민들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국가가 조금씩 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삶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들의 희망은 문자 그대로 '희망' 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삼태극이 준 식량에는 사람의 이지를 망가뜨리는 특수한 약물이 첨부되어 있었다.
욱일승천의 수석 과학자이며 괴수 분야의 일인자였던 오로즈키 니시죠 박사는 괴수의 이성을 잠시동안 마비시키는 약물을 개발했었는데, 이게 어디까지나 괴수들에게 맞춰져 있어서 인간이 먹게 된다면 거의 반평생동안 식물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삼태극의 치안 유지대는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을 모두 한 대 모아놓았고, 삼태극의 전함인 지하드가 SF나 우주인이 나오는 미스테리물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을 빔 업beam up 한 뒤에 유유히 사라졌다.
-옛날 일본 제국에서는 카미카제 공격을 했었다지? 비행기로 자폭한다거나 어뢰에다가 사람을 태워서 자폭 공격을 유도했다잖아? 네가 일본 제국 시대를 너무, 너어~~무 좋아하는것 같아서 내가 특별히 신경 써줬어. 이 사람들은 내가 카미카제 공격용으로 사용할테니 딱히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덴노 헤이카 반자이~~!-
-추신 : 원래는 전국에 걸쳐서 모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도쿄의 시민들이 많이 있더라? 아마 치안 유지대 애들이 한동안 입에 거품을 물면서 전국을 들쑤실거야. 걔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하는것 같아서 이번에 좀 쪼아줬거든. 그럼 덴노 헤이카 반자이~~!-
"하…하하하……."
헤이세 총리는 자신의 손에 들려진 치우가 남긴 쪽지의 내용을 읽고선 힘없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에!! 크하하하하하하!!"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으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던 헤이세 총리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던 권총을 꺼내들어,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가져다댔다.
"천황 폐하 만세에에에에!!"
타아앙-
============================ 작품 후기 ============================
아마 이번편은 유일하게 천황 폐하 만세라는 쓰레기같은 단어가 즐겁게 느껴지는 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일본에 대한 언급은 앞으로 가끔씩만 나올뿐, 이제 이걸로 쫑.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괜히 시점이 이리저리 분산되는것보단 하나씩 마무리짓고 다음으로 넘어가는게 좋겠다 싶더라고요.
-------PS-------
어휴 쓰고 나니까 제 글에서 친일 냄새가 물씬 풍기네요 ㅋㅋ
세상에 어느 한국인 주인공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즐겁게 외치겠어요?
이러다가 본의 아니게 친일파 소리 듣는거 아닐지 모르겠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