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1 / 0923 ----------------------------------------------
8장
"적의 초반 공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전투 자체의 사기와 연결되지.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마피아 두목께서는 전혀 모르나보지?"
소수의 정예 부대.
거기다가 비공식적으로 지원을 온 타국의 이능력자.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당사자가 있는데 대놓고 고기 방패가 되라는 병력 배치도는, 안그래도 심기가 불편해 있었던 릴리야의 분노를 지피는 역할밖에 되지 않았다.
"글쎄. 그건 네 말대로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비 전문가인 내가 봐도 분명하군. 대놓고 우리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이……!"
중앙군사위 주석, 비진바우는 자신에게 꼬박꼬박 반말을, 그것도 마치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듯한 말투에 발끈하여 뭐라고 말하려 하였지만, 냉막한 릴리야의 목소리가 먼저 나타났다.
"게다가 우리는 너희들하고 손을 잡으려고 여기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들을 자신의 수하들인것 마냥 부려먹다니, 아무리 참으려 해도 이것만큼은 못 참겠군."
"네 년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거냐! 세계의 악으로 지정된 삼태극이 지금 우리들 눈 앞에 있단 말이다! 지금도 놈들은 계속 북진해오고 있다고! 이건 세계를 위한 싸움이란 말이다!"
비진바우가 세계를 위한 싸움이라는 명분을 들먹거렸지만, 릴리야는 코웃음을 치면서 팔짱을 끼며 오만한 눈빛과 함께 그 를 내려보았다.
"그건 댁들 사정이지. 게다가 애초에 소수 민족들을 잘 보살펴줬으면 최소한 적의 숫자가 불어나는 일은 없었을거 아냐? 나는 나대로 알아서 싸울테니 댁들은 댁들대로 알아서 싸워. 그럼 이만."
결국, 중국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치우를 죽이기 위해서 중국군을 이용하겠다는 속뜻이 품어진 대사를 마지막으로 몸을 일으킨 릴리야였지만, 주변에서 그것을 당연히 놔주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백인년이! 앉아! 당장 앉으라고!"
북한과 남한의 병력을 지원받자는 의견을 올렸던 정무맹의 대사부, 홍 라우가 명령조로 릴리야에게 앉으라고 소리쳤고, 거기에 동조한 대사부 몇명과 회의실의 경호를 위해 배치된 이능력자들도 릴리야를 적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금 감히 내게 덤비겠다 이건가?"
지직- 지지지직--
살의를 감지한 릴리야 또한 서서히 이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는지, 그녀의 발밑으로 하얀 서리가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원래라면 중국이라는 국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칭피오 주석과 군대의 최고위라 할 수 있는 비진바우 주석이 있으니, 무장을 해체하겠다는 의도로 EIEW로 이능력을 억제하려 하였지만, 정무맹의 대사부들은 EIEW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 그리고 자신은 중국을 믿지 않는다는 두번째 이유로 리미터기의 착용을 거부하였다.
계속되는 실랑이로 서서히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 모습을 보다못한 왕 슝첸 노사가 자신이 그녀의 옆자리에 앉겠다고 하면서 문제가 일단락 되었지만, 결국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촉측발의 상황으로 인해 서로 건너오지 못 할 강을 건너려던 순간,
"그만! 지금 우리들끼리 싸울때인가! 모두 한발짝만 물러서서 진정하게!"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왕 슝첸이 몸을 일으키며, 힘이 느껴지는 거대한 목소리를 터트렸다.
"……."
"……."
정무맹의 대사부들은 대사부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왕 슝첸의 목소리에 진정 국면에 들어섰고, 릴리야 또한 자신에게 그동안 편의를 이것저것 봐준 그의 호의를 무시하지 못하였는지 이능력을 멈추었다.
만약, 왕 슝첸이 지금 상황에서 나서지 않았더라면 어느 한 쪽이 공격을 가했을테고, 다른 한 쪽도 반격을 가하면서 피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다들 실력자들이니 한 방에 죽어나가진 않겠지만, 서로의 공격을 한차례 주고받은 이상, 그 이후부터는 어떤 말을 해도 들어먹지 않았을 터.
왕 슝첸은 너무 일찍 나서면 혼자 과잉반응한듯한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았기에, 언젠가 터질것 같은 폭탄을 제지할 타이밍을 정확하게 재고 있었던 것이다.
"비진바우 주석께 건의를 올리겠습니다. 릴리야 양은 치우에게 원한을 가진건 분명하니, 일종의 독립 유격대같은 역할을 맡기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으…으음……. 하지만……."
방금전까지만 해도 길길이 날뛰던 비진바우 중앙군사위 주석은 왕 슝첸의 설득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도 그럴것이, 왕 슝첸은 정무맹의 대사부들 중에서 암묵적인 리더역을 맡고 있으며, 그의 인망또한 높아서 그의 뜻이 곧 정무맹과도 같았다.
칭피오 주석(국가 주석) 또한 극단적으로 가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이, 자존심 문제 때문에 왕 슝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진바우 주석에게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그쪽이 괜찮다고 생각되오. 애초에 중국인도 아닌데 중국의 부대로 편입시키기 보단, 차라리 독립 유격대로서 자유롭게 활약을 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되는데 그쪽은 어떻소?"
"주석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분위기는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릴리야와 그녀의 부하들은 독립 유격대로서 활동하며, 대신에 물자가 필요할시에는 정식적으로 군부쪽에다 지원 요청을 해야 한다는 식의 사소한 문제 여러개를 조율하였다.
릴리야 또한 중국군과 뜻이 엇갈리면 활동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독립 유격대로서 치우를 공격할 기회가 없을시에는 전선 유지를 위해서라도 중국군의 지원 요청을 받아주기로 했다.
왕 슝첸이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겠지만, 다행히도 이 자리에 그가 존재했기에 최악의 사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약간 딱딱하긴 하지만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릴리야도 거기에 만족하면서 회의는 끝이 났다.
"아, 홍 라우 대사부는 잠시 남아주게. 북한과 남한의 지원을 받자는 의견은 꽤 좋았지만 여러 문제가 있어서 함께 의논을 하고 싶군."
"예? 하지만 저는 정치라던가 그런건 잘 모릅니다만……."
그 때, 칭피오 주석이 빠져나가려던 홍 라우에게 그가 발언한 북한과 남한의 지원에 대한 주장을 핑계로 남아달라고 하였고, 홍 라우는 정치 문제는 영 잼병이라서 머리를 긁적이며 간접적으로 사양했다.
"가끔씩은 비전문가이기에 허를 찌르는 발언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지. 오래는 안 붙잡을테니 걱정말게. 그냥 생각나는대로 말해주면 끝이니까."
하지만, 칭피오 주석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면서 홍 라우를 붙잡으려 하였고, 홍 라우 대사부는 주석의 간곡할 설득을 이겨낼 수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인원들이 빠져나가고, 칭피오 주석과 비진바우 중앙군사위 주석만이 회의실에 남게 되었고, 두 사람의 표정은 방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
"……."
"……."
잠시동안의 침묵이 회의실 안을 감돌았다.
그리고, 뒤쪽에서 경호를 하고 있던 경호원이 주석에게 조심스래 다가가 입을 열었다.
"회의실에 참석한 인원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나섰다 합니다. 현재 차량에 탑승중입니다."
"그정도면 되겠군. 혹시 모르니 도청기 확인도 해보게."
"예."
경호원들은 칭피오 주석의 명령대로 도청기를 감지하는 이런저런 도구들을 가져와 회의실 내부를 확인하였고, 지루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확인한 그들은 이내 도청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선 보고하였다.
"??"
왜 지금와서 도청기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일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린 홍 라우였지만, 이내 칭피오 주석이 경호원들조차 회의실 밖으로 나가게 만든 후에서야 입을 열었다.
"비전문가가 입을 연다는것은 보통의 용기가 아니지. 비난을 맞을 경우도 많고, 전문가에 의해 조목조목 따져지면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으니 말일세. 게다가 상황이 급박하여 다른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했던 우리에게 북한과 남한이라는 답을 말해준건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네."
"큼큼."
사근사근하게 입을 여는 칭피오 주석의 목소리에, 홍 라우는 부끄럽다는듯이 헛기침을 하면서 입가가 살짝 비틀려지면서 우쭐함을 내보였다.
"게다가 위대한 중화의 남아다운 기개는 나와 비진바우 군사 주석도 감탄할 정도였다네. 자네는 중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세상의 중심입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대답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백인 돼지놈들을 모조리 깔아뭉게고 세계의 지배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감히 백인놈들 따위가 세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흠……."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극단적인 제국주의적 사상이였지만, 두 주석들은 흡족한 미소를 띄었다.
이윽고, 칭피오 주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미개한 백인놈들이 세계를 좌지우지 한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지. 이 땅에 위대한 중화 제국을 건국하는게 우리 중화인들의 궁극적인 목표 아니겠나?"
"!!"
지금까지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호응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냐며 우려를 내뱉어왔다.
하지만, 국가의 대표들이 자신의 말에 호응해주자, 그의 표정은 흥분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 상황의 중국은 그다지 좋지 않다네. 감히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문 위구르놈들과 티베트놈들이 삼태극에게 붙어버렸고, 삼태극의 힘은 일반적인 전술 교리를 완전히 뒤바꿀 정도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지."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는 삼태극을 무찌르는 것을 기회로 전 세계를 지배할 위대한 중화 제국을 건설할 생각이다. 삼태극의 과학 기술을 우리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단순한 꿈이나 망상이 아니게 된다."
칭피오 주석 다음으로 비진바우 군사 주석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감히 위대한 중화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위구르 놈들과 티베트 놈들은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되갚아줘야만 하지."
비진바우 군사 주석은 2가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가 삼태극을 무찌르면 당연히 티베트와 위구르 놈들을 '말살' 시킬 수 있다. 먼저 전쟁을 건 것은 놈들이니 대놓고 보복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 하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더이상 삼태극 놈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진다면……."
잠시 말을 끊은 비진바우 군사 주석은 이미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들이 가진 모든 핵폭탄으로 놈들을 응징할 생각이다. 아니, 대륙간 미사일에 핵폭탄을 장착시켜 전 세계에다가 쏘면서 아예 지구 자체를 멸망시킬 것이다.
"!!"
"우리가 패배한다면 이 지구가 존재할 필요가 없지. 그렇지 않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국의 핵은 전략핵, 전술핵까지 모두 더해서 400~500여개가 전부지만, 실제론 은밀하게 핵탄두를 더 생산하여 3천여개가 넘는다.
애초에 미국이나 러시아쪽도 알려진것보다 더 많은 핵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핵의 힘을 이용한 강제성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중국은 그 강제성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자 은밀하게 핵을 만들어온 것이다.
즉, 비진바우 군사 주석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멸망시킬 순 없어도, 인간을 멸종시키거나, 최소한 지구 전체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핵들을 중국이 삼태극에게 패배한다면 전 세계로 쏘아보낼 예정인 것이다.
그것도 중화의 역사가 사라지면 지구의 가치 또한 사라진다는 이유로.
일반적인 인간이였다면 이들의 이러한 행동을 미친 행위라고 욕했겠지만, 홍 라우는 오히려 감격했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당연합니다! 위대한 중화의 역사가 사라지는데 이 지구가 필요한 이유가 없잖습니까!"
칭피오 주석과 비진바우 군사 주석은 자신들이 죽는다면 자포자기 형식으로 지구의 모든것을 멸망시키겠다는 주장하였지만, 중화 사상이 골수까지 녹아든 홍 라우는 중화가 없어진다면 전 세계도 없어지는게 당연하다며 그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역시 자네야말로 중화인이네. 우리에겐 자네같은 중화인이 필요하지."
그렇게 홍 라우의 어깨를 두드려준 비진바우 군사 주석의 역할이 끝나자, 칭피오 주석이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패전을 대비하여 지하에 대피소를 만들어두었지. 몇백, 몇천년이고 자급 자족이 가능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그 곳에서 자라날 중화인들은 방사능이 사라진 지구위에 다시 한번 중화의 역사를 새기게 될 것일세. 우리들은 자네 또한 그 위대한 중화인의 선조가 될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여 따로 부른 것이네."
"오오! 감사합니다!"
지구가 멸망한 이후, 새롭게 중화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후손들의 선조가 될 수 있다는 기쁨에 감격어린 눈물을 쏟아낸 홍 라우였지만, 아직 이들의 대사는 끝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사실은 자네만이 알고 있게. 자네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베이징의 경비를 맡길테니, 우리가 소환한다면 곧장 이 곳으로 오게."
"알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그렇게 홍 라우를 진정한 중화인이라며 십여분째 칭찬을 하였고, 콧대가 하늘까지 올라간 홍 라우는 너무 오래 걸리면 의심을 할 수 있으니 이만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이윽고, 경호원의 안내로 밖으로 나가게 된 홍 라우의 모습을 확인한 두 주석들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큭큭큭. 정무맹의 대사부라고 해서 잔뜩 긴장했는데 저런 바보라서 다행이군."
"그것보단 중화 사상이 골수까지 들어가 있어서 다행이지. 어쨌든, 저 자는 우리들이 지하 벙커로 피신할때까지 삼태극의 공격을 막아줄 방패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낼것이 분명하네."
만약에 삼태극이 자신들을 공격해온다면, 그는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준 방패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그는 어차피 죽긴 죽겠지만, 자신들이 지하 벙커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뒷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때가 된다면 전 세계로 핵 미사일이 날아가면서 인간이 이룬 문화가 모조리 파괴될테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오늘의 교훈.
어떤 정치색이든 극단적으로 가지 맙시다. 정치놀음 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습니다.
...라고 해도 차기작 시리즈에 유일하게 들어가 있는 대체 역사물의 주인공 또한 이와 같은 사상이지만요.
조선 시대로 회귀한 주인공은 어떤 이유로 다수의 핵폭탄과 함께 이동하게 되는데, 자신이 조선을 개혁할 수 없거나 타국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면 이 세계 또한 필요없다면서 핵폭탄을 전 세계에 발사시키겠다는 각오와 함께 프롤로그 부분이 끝남.
이미 차기작들의 뼈대는 완성했기 때문에 더이상은 스포 문제로 말 못하지만, 어쨌든간에 다음 차기작은 던전물임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제목인데...던전물의 제목은 '미궁도시' 로 일단 붙여놨지만 너무 많이 평범한것 같습니다. 비슷한 제목도 많을것 같구요.
아니면 (최종보스 명칭)의 미궁 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뭔가 미궁을 탐험한다는 듯한 분위기의 제목이 필요한데...일단 좀 더 제목 연구좀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