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549화 (549/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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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릴리야의 몸과 마음은 천천히 붕괴되어 가는 모습을 확인한 진우였지만, 단숨에 복종시키기 위해서 좀 더 정신이 망가지기를 기다리기로 결정하였다.

다음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다시 릴리야의 모습을 확인할때가 된다면 그녀가 복종할지,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냐에 따라 그 운명이 바뀌게 되리라.

한편, 휴게실 하나를 통째로 개조하여 결혼식장을 만들기 시작한 노예들은 자신들이 꿈꿔왔던 결혼에 대한 상상을 발휘하며 최대한 화사하게, 그러면서도 너무 졸부틱하지 않게 장식을 꾸미고 있었다.

이실리아는 하루에 몇번씩 찾아오며 결혼식장으로 개조되어가는 휴게실의 모습을 기대감으로 부풀어오른 얼굴로 감상하고 있었다.

"이게…진우씨와 나의 결혼식장……."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진우와는 이미 결혼…아니, 그 이상의 관계가 되었으나, 공개적으로 전 세계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알리게 된다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온다.

결혼식의 내용은 이실리아가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이 그런 고통을 받아가면서까지 진우를 사랑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쁠 지경이였다.

"흥! 입꼬리가 귀에 걸리겠네."

결혼식장의 모습을 확인하러 온 아키가 그 모습을 보고선 비아냥 거렸지만, 지금은 그녀의 비아냥조차 너무나 행복할 지경이였다.

"응. 너무나 행복해서 미소가 자꾸 새어나와.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해프게 웃으면 안된다는걸 알고 있지만…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당겨져~"

이실리아는 생각만하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자신의 표정을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하였지만, 진우와의 결혼을 생각만 하면 터져나오는 미소를 참아낼 수 없었다.

"하아……."

비아냥거렸는데 오히려 기뻐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비아냥거리길 포기한 아키는 복잡한 시선으로 차례차례 완성되어가는 결혼식장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업을 하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이능력자들이고, 젊은 감각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아키와 이실리아 시절의 결혼식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가볍고 화려해져 있었다.

특히, 한번씩 결혼을 했었던 두 유부녀들은 요즘 애들이 원하는 결혼식장이 이런 방식이구나, 라면서 나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정말이지 세상이라는건 알다가도 모르겠어. 설마 너와 내가 이렇게 나란히 사이좋게 서 있을 수 있다니……."

한 때, 이실리아를 죽이고 싶어할 정도로 그녀를 증오하고 미워했던 아키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과거를 회상하였다.

자신과 이실리아가 사랑했었던 유 창호는 결국 이실리아를 선택했었고, 그 충격에 아키는 이실리아를 향해 증오를 품은채 은퇴를 하면서 이능력자들의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어야만 했다.

거의 반쯤 폐인이 될뻔한 그녀는 이실리아를 죽이고 자신이 그의 옆을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에 몇번이나 칼을 갈았지만,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던 이성 덕분에 건너서는 안되는 다리 근처에만 얼쩡거릴 뿐, 다리를 넘어서진 않았다.

이실리아 또한 아키를 싫어하면서 사이가 최악 수준으로 나빴었기에, 이렇게 함께 나란히 서 있을 수 있다는게 아직도 꿈만 같았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이실리아는 자신이 과거에 사랑했었던 남자와 관련된 키워드로 입을 열었다.

"진우씨를 보면 내가 왜 유 창호같은 머저리와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그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매력이 좋았지만, 밤자리에선 진우씨처럼 육체적으로 만족시켜주지도 못했고, 진우씨처럼 여자를 확 끌어안는 패기조차 없었지. 진우씨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너도 나도 서로를 증오하는 일도 없었을텐데……."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을 진우보다 못하다며 악담을 퍼붓는 이실리아.

아키또한 거기에 호응하였다.

"동감이야. 진우씨라면 우리 둘을 모두 가지려고 했었겠지. 진우씨가 그 곳에 있었더라면 너보다 더 행복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겠답시고 그딴 멍청한 남자의 아내가 되지 않았을텐데……. 왜 진우씨를 이제서야 만나게 된걸까……."

그녀 또한 자신의 남편을 향해 악담을 퍼부으며 진우를 빨리 만나지 못한 자신들의 운명을 저주하였다.

"우리가 현역이였을 당시의 진우씨는 우리들 허리에 간신히 다다를 꼬마였겠지? 꺄아~ 그 때의 진우씨 모습은 얼마나 귀여웠을까~"

아예 콩깍지가 씌어진 이실리아는 어렸을때의 진우가 보고 싶다면서 기대어린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은 패기어리며 남자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엄청 귀여워 보였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잔주름 걱정해야 하는 나이인데 굳이 그런걸 얘기하고 싶니?"

"뭐 어때? 진우씨가 말씀하셨잖아. 우리들을 평생 키워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건 그렇고 진우씨와 결혼하면 어떻게 부르는게 좋을까? 서방님? 여보? 달링?"

"…하아……."

다 큰 아이를 낳은 아줌마라기 보단 정열적으로 사랑하여 결혼에 골인한 20대 여자처럼 들떠있는 이실리아는 자신만의 뇌내망상속에 빠져들어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젊었을적의 이실리아가 이런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아는 아키는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에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마침 꽃밭으로 가득찬 이실리아를 시궁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이 아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실리아, 주포 발사합니다~"

"커흑!"

아, 상처입었다.

최소 내상에서 최대 주화입마 수준의 충격.

꽃밭을 하하호호 웃으며 해집고 다니던 이실리아의 뇌내망상은 곧바로 썩은 물과 더러운 쥐, 벌레들이 들끓는 시궁창으로 돌변하였다.

"그러고보니 진우씨는 저 아이들한테 얘기하지 않았나봐? 하긴, 자기 엄마가 전 세계의 공개 방송으로 '주포 발사합니다~' 라는 흑역사급 대사를 내뱉는다는 사실을 알면 노아가 저렇게 웃으면서 결혼식 단장에 나서지 않……."

"아킷!"

쉬익-

이실리아가 염동력으로 아키의 안면을 공격하려 하였지만, 이미 그 부분을 예상한 아키는 재빨리 텔레포트를 하면서 입구쪽으로 이동하였다.

"흥흥흥~ 그래도 옛정이 있으니 절대로 고개 돌리지 않고 모두 감상해줄께. 그럼 안녕~"

"거기섯!"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진 이실리아는 아키의 뒤를 쫓아갔지만, 아키는 고속 텔레포트를 사용하며 이리저리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노아 언니, 어머니 왜 저러세요?"

하린은 노아에게 다가와 무슨 일인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였지만, 노아도 꽃밭으로 가득차서 웃고 있던 엄마가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당혹스럽기 마찬가지였다.

"글쎄? 아키 아주머니가 뭔가 약점이라도 들춘게 아닐까?"

"저렇게까지 화를 내면 보통 약점이 아닌가봐요."

"그러게. 아! 셀리! 그 장식은 너무 크잖아! 다른 장식들이랑 밸런스를 맞춰야지!"

젊은 시절엔 서로 살의를 품을 정도로 대립각을 피웠다 하니, 그 앙금이 모두 풀리지 않은거라 생각한 노아는 어머니의 결혼식을 위해서 너무 졸부틱하지 않게 화사한 결혼식장을 만드는데 필사적으로 진두지휘를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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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고?-

"그렇다니까. 나도 처음엔 깜짝 놀랐다고."

진우는 그랜드 아크에게서 걸려온 통신을 받은 후, 가볍게 인사를 한 뒤에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용담을 얘기하던 중, 중국의 요괴가 습격을 해온 내용까지 나오게 되었다.

-세상이란 정말 넓군. 설마 요괴라는 것들이 있었을 줄이야.-

"나는 일단 선빵 맞고는 절대 못 견디는 놈이라서 그 놈들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는 중이다. 반드시 이 몸을 방해한 죗값을 치루게 만들어줘야지!"

-그거 꽤 재밌어 보이는군. 나도 도와줄까?-

그랜드 아크가 도와준다는 말은 '우리가 도와줄테니까 그만한 이득을 내놔라' 라는 정치적인 의미가 아니라, '심심해서 그러니까 나도 끼워줘!' 의 의미가 강했다.

"됐네요. 그 년은 내 먹잇감이야."

-에이, 우리 사이에 째째하게 너무 그러지 말자고. 11등급으로 올라선 이후론 내 전용의 훈련 시설도 모조리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어. 11등급의 힘을 제대로 써본적이 거의 없단 말이다!-

육체파인 그랜드 아크에겐 새로운 힘을 시험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 스트레스로 작용되었고, 요괴라는 괴수보다 상급의 존재가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할 가치가 있는 적임을 직감하였기에 때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얌마. 이건 우리 '삼태극' 쪽의 일이라고."

-동맹끼리 서로 돕고 돕는거지!-

"에~ 그러면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도 너를 도와야 하잖아? 귀찮으니까 패스."

-아니아니아니, 우리 사이는 동맹 이전에 친우잖나! 정치적인 내용도 아니고 보상도 안바란다! 그냥 내 힘을 극한까지 사용할 환경만 제공해주는걸로 족해!-

누가 이 남자를 그랜드 아크라고 생각하겠는가.

평상시의 그랜드 아크는 호탕하게 외치긴 하지만, 그 호탕함속에 상대방을 찍어누르는 압도적인 기세를 품고 있다.

거기다가 자신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세계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여러 부하들을 힘과 카리스마로 묶어놓은 리더다.

때문에 여러 학자들은 그랜드 아크의 목적은 최악이지만, 리더로선 최고의 리더라고 칭찬하는 내용의 글도 간간히 나올 정도다.

그런데 그런 그랜드 아크가 애들처럼 땡깡을 부리면서 애원을 하고 있다.

화면상의 통신이 아니라 직접 만났다면 정말 바지끄댕이를 붙잡을만한 비굴함을 겸비하면서.

-그리고 칼리 제국을 상대로 손발도 함께 맞춰봐야 하지 않나? 이건 그 연습쯤으로 생각하면 되지!-

"흠……."

이건 좀 먹혔다.

확실히 그랜드 아크가 돕는다면 요괴들을 공략하는데 더 쉬워질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문제 때문에 고심하던 진우는 잠시 이것저것 생각하기 시작했다.

칼리 제국의 여제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랜드 아크와는 손발을 맞출 필요성은 충분했다.

'그랜드 아크 녀석은 내가 재생 능력과 여러가지 능력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 이건 녀석을 이길 수 있는 비밀 병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칼리 제국을 무너뜨리는데 나의 힘만으론 명백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그랜드 아크는 반드시 필요해. 칼리 제국의 외계인들도 다들 한가다씩 할테니까 같이 싸우다보면 결국 나의 재생 능력이 탄로나겠지.'

칼리 제국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랜드 아크의 제안은 생각할것도 없이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칼리 제국과 싸우기 위해선 그랜드 아크의 힘은 반드시 필요했고, 결국 늦든 빠르든 이 능력은 탄로날게 분명하다.

'아니면 우리 둘의 힘으로 아예 박살을 초전박살을 내버려서 내 재생 능력이 탄로날 여지를 주지 않을수도 있지.

이건 낙관론적인 예상이였지만, 그랜드 아크가 돕는다면 전력 상승은 물론, 그랜드 아크가 어떤식으로 싸우는지 확인하면서 자신이 모르던 11등급의 또다른 힘을 알게될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랜드 아크의 성격상 배신을 쉽게 밥먹듯이 하는 종자도 아니고, 신에게 감시 명령하면 그걸로 장땡이다.

11등급의 신체 강화자가 되었으니 그가 배신을 한다손 쳐도 신이 단숨에 죽이진 못하겠지만, 그랜드 아크 또한 마법이나 온갖 종류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 신을 상대로 애먹게 되리라.

"거기서 뭐가 나오든지간에 전리품은 다 우리거다?"

-오케이! 티끌 하나, 돌 부스러기도 절대 가져가지 않겠다!-

"나중에 도와줬다고 생색내기 없기다?"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시킬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내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전장을 제공해준 것만으로도 빚을 진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앰창 찍어."

-……? 앰…뭐?-

그랜드 아크는 치우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우는 혀를 내밀면서 엄지로 혀를 찍고, 새끼 손가락으로 이마를 갔다대면서 엠창의 뜻을 설명했다.

"어기면 니 애미 창녀 라는 한국 고유의 약속 문화다."

-…….-

이번건 천하의 그랜드 아크도 잠시 뻥찐 표정이 되어버렸다.

-푸…푸하…푸하하하핫! 정말이지 너란 녀석은 전혀 질리지가 않아! 그래그래, 앰창을 열번이든 백번이든 다 찍어주지.-

"일단 우리쪽도 찾고 있는 중이니까 나중에 찾게 되면 연락을 하지. 오는 방법은 네가 알아서 만들어. 우리는 장소만 내줄테니까."

-그래, 그정도만 해도 이쪽은 감지덕지지. 역시 네 녀석과는 말이 잘통해서 좋아.-

그랜드 아크와 치우는 그렇게 계속해서 어린애들처럼 서로 비속어를 섞어가면서 웃고 떠들어댔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자 대기하고 있던 페리샤는 얼굴을 들지 못하며 '왜 부끄러운건 내 몫이냐' 라며 속으로 한탄하고 있었다.

세계를 주름잡는 두 악의 총수들이 철없는 10대의 청소년들하고 거의 다를바가 없는 모습.

페리샤를 더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것은, 언제 어디서 정치적인 내용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화속에서 정치적인 뉘앙스가 섞일것을 대비하고자 이 둘의 대화를 계속해서 들어야만 한다는 것이였다.

최소한,

'후후후, 과연 나의 호적수답군. 네 녀석을 죽이지 않는한 나의 야망은 이뤄지지 않을게 분명해.'

'큭큭! 네 놈의 모가지를 따고 이 세계는 내가 지배해주마.'

라는 식의 중2병틱한 대사라도 좋으니 제발 악의 총수들다운 대화가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는 페리샤였다.

============================ 작품 후기 ============================

작은 일상편.

그리고 그랜드 아크의 임시 참전.

참고로 앰창을 아시는 분들은 저와 같은 세대일겁니다.

당연히 부모를 욕하는 싸가지 밥말아먹은 단어라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겠지만, 제가 중고등학생때만 해도 앰창이 유행했었죠.

혹시 이 단어를 지금도 사용하는 놈들이 있으면 그딴 말은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해주십시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를 욕하는건 최고 수준의 불쾌감과 어그로를 끌어들이는 최악의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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