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1 / 0923 ----------------------------------------------
9장
매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린이 K-ESP 본부를 초토화 시킴으로서 정부쪽은 발칵 뒤집어졌고, 그로 인해 그녀의 화려한 복귀가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측은 이능력을 잃었다지만 8등급이나 되는 이능력자인 하린의 몸으로 이런 저런 실험을 통해 이능력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욕심으로 그녀의 신변을 확보하고자 수배령까지 내렸으나, 그녀는 남궁 신의 마법으로 인해 얼굴을 바꾼채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있었다.
물론, 마법에 의한 환상이라서 CCTV같은 기계에 찍히면 그녀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만, 사람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면 완전히 다른 얼굴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정부는 하린을 찾으려고 사방팔방을 들쑤시기 시작하였고, 시민들도 그동안 모습을 감췄다가 존재감을 드러낸 하린을 향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였다.
---------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와 이화여대의 입학률이 높아서 명문 고교라 불리우는 여고.
그곳에서 날카로우면서도 도도한 인상과, 여고생임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금발로 염색을 한데다 장신구로 치장한 여고생이 수수하게 꾸민 여고생의 뺨을 후려쳤다.
그것도 모두가 보고 있는 복도에서!
짝!
"꺅!"
털썩!
수수한 여고생은 금발의 여고생에게 후려맞으며 쓰러졌고, 금발의 여고생은 화가 풀리지 않은 표정으로 수수한 여고생을 향해 악담을 퍼부었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숙제 내용을 완전히 똑같이 해오면 어떻게 해? 너 바보야? 병신이야? 이런 기본적인것도 이해가 안 돼?"
"미…미안해…민정아……. 하지만…아버지 공장이 힘들어서…나도 도와야 했었……."
퍽!
순간, 민정이라는 여성이 수수한 여고생의 몸을 발길질로 걷어찼다.
"쿨럭!"
"누가 너희집 사정 말하래!? 너같은 천민의 집안 사정따위 알게 뭐냐고!"
민정이라 불린 여고생은 복도에서 자신을 보는 여고생들을 향해 음산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구경났어? 당장 안 꺼져?"
후다닥--
그녀의 협박에 모든 여고생들은 시선을 돌리며 폭행을 당하던 수수한 여고생을 외면하였고, 거기에는 놀랍게도 교사들도 섞여 있었다.
아무리 권력이 있다곤 해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의 폭행이다.
당연히 교사들이 만류를 해야 정상이건만, 교사들은 두려움이 깃든 눈빛으로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떠야만 했다.
"사과해."
"쿨럭! 쿨럭! 어…어……?"
"못 들었어? 사과하라고."
수수한 여고생은 잠시 어안이 벙벙하였다.
민정이 몸을 담고 있는 '조직' 에 대해 알고 있는 교사는 자신과 그녀의 숙제가 완벽하게 똑같다는것을 알아내고선 가볍게 주의만 주었을 뿐,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았다.
일반적인 상황이였다면 두 사람을 불러서 누가 누구 숙제를 배꼈냐고 추궁했겠지만, 교사가 주의만 주면서 넘어간 것은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민정이라 불린 여고생은 그런 가벼운 주의조차 신경질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수수한 여고생에게 적반하장식으로 사과를 요구하였다.
"미…미안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갑' 이고 자신은 '을' 이니까.
몸을 일으킨 수수한 여고생은 고개를 꾸벅이며 사과를 하였지만, 민정은 그런 그녀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퍽!
"케헥……!"
제대로 맞아버린 여고생은 배를 움켜쥐며 괴로워하였고, 민정은 그런 그녀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누가 그딴식으로 사과하래! 절하면서 사죄해!"
"……."
마치 조선 시대처럼 절을 하면서 사과하라는 민정의 모습에, 여고생은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죄…죄송…합니다……."
딩동댕동~
그 때, 쉬는 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려퍼지자, 민정은 교실로 돌아가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화랑' 이 있는 덕분에 너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거야. 우리들의 힘으로 안전해지는 주제에 이딴 숙제도 제대로 못해오는 니년도, 니년을 이따구로 키운 애비 애미도 수준을 알만하겠네."
"……!!"
수수한 여고생의 아버지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삼태극이라는 여파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면서 사원들을 대부분 퇴직시켜야만 하였고, 자신이 직접 기계를 돌려가면서 일을 해야만 하였다.
당연히 혼자서 많은 일들을 해야하니 힘들 수 밖에 없었고, 수수한 여고생은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도움이 되고자 공장일을 배우며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힘들지만 그녀는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면서 사랑하였기에, 민정의 욕설에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안된다. 여기서 화를 내면 안된다.
부모욕을 먹었음에도 그녀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무릎을 꿇게 만든 여고생이 자신따윈 올려다보는 것도 허락치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권 민정.
염동력 7등급의 이능력자로, 신 원규가 만든 조직인 화랑에서 원규를 제외한 모든 이능력자 중 가장 뛰어난 힘을 가진 염동력자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서양적인 이목구비와 화려한 외모로, 많은 언론에서는 화랑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녀를 높게 띄어줌으로서, 한국 한정이긴 하지만 아이돌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여고생이였다.
화랑의 창립자인 신 원규는 물밑으로 이능력자들을 설득하여 힘을 모았을뿐만 아니라, 삼태극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국으로 밀입국하여 도주한 중국인 이능력자들도 안정된 삶으로 유혹하면서 세력을 불려나갔다.
즉, 현재 화랑이야말로 한국 정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치안 또한 그들이 없으면 유지를 할 수 없을 만큼 그 영향력이 커져나갔다.
거기다가 새롭게 각성한 이능력자들도 낮은 보상과 높은 노동률을 가진 정부의 이능력자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이능력자를 대우하는 화랑에 들어가니, 화랑의 영향력은 정부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 할 정도다.
잠시 설명이 많아졌지만 어쨌든간에 정부조차 눈치를 보는 조직인 화랑을, 망해가는 것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의 딸이 어떻게 저항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언론들이 띄어주기를 작정한 인기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이며, 무력만으론 화랑의 2인자인 권 민정을 욕해봤자 보복을 당하고 만다.
부모님 욕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수한 여고생, 가슴에 달린 명찰에 '김 도윤' 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울분을 삼키며 수업을 받기 위해서 교실로 돌아간 민정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것이 저항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예…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보호비라니요!?"
자동차 부품 공장을 간신히 유지중인 김 진호는 화랑의 창시자이자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능력자인 신 원규의 갑작스런 요청에 깜짝 놀랐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며, 날카로우면서도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눈빛을 가진 남성, 신 원규는 최대한 부드럽게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상황이 안 좋다는건 알고는 있지만 우리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정부에서 내주는 금액이 너무 낮아서 조직을 유지 시키기에는 많은 '지원금' 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게 모두 국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그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게 된 것이고요."
"하…하지만…우리 공장도 사정이 좋지 않아서……."
50대 초반의 나이, 구겨진 와이셔츠, 원형 탈모, 툭 튀어나온 배, 한국의 아버지의 표본을 내놓으라면 당장 나타나도 문제가 없어보이는 모습을 한 진호는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땀을 손수건으로 황급히 닦아내며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원규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채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화랑의 규모가 축소된다면 당신도, 당신의 가족들도 이능력 범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게 되지요. 예를 들어서 이렇게 말입니다."
둥실~
"히…히익!?"
'말입니다' 부분에서 원규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자, 진호의 몸이 무중력처럼 둥실둥실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훙훙훙훙--!
"악! 으아아악!"
염동력자인 원규는 진호의 몸을 공중에 띄우면서 이리저리 날려대기 시작하였지만, 상처를 입히면 문제의 소지가 있기에 벽과 부딪히기 일보직전에 멈추게 만든후, 다른 방향으로 날려대기를 반복하였다.
"어떻습니까? 저항할 수 없지요? 이런 이능력 범죄들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문도 남지 않고, 원거리에서 사용이 가능하니 CCTV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몸을 박살내는 범죄자들이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지요."
명백한 협박.
일부러 그러한 범죄자들이 찾아올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증거도 없이 죽일 수 있다는 부분을 강조한 협박.
그러면서도 절대 상처가 나지 않게끔 조절하는 것은 이런짓을 한두번 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내겠습니다! 낼께요!"
무력한 일반인인 진호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채 롤러코스터 마냥 빠른 속도로 여기저기 날려지다가, 결국 그의 협박에 지고 말았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다음주에 화랑에서 수급원이 찾아갈테니 그때까지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헉…허억……."
진호는 염동력에 의해 몸이 이리저리 날려진 충격 때문인지, 숨을 몰아쉬면서 땀을 비오듯이 흘려댔다.
생전 처음 느껴본 염동력의 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자신의 힘으론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인외의 힘.
자신의 목표를 완수한 원규는 건강히 잘 지내라는, 영혼없는 덕담을 마무리로 사장실 밖으로 나섰다.
"누…누구세요?"
그 때, 투박한 공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교복 차림의 여고생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사장실에서 나오자 경계를 하였다.
'김 도윤. 저 사장의 딸인가보구만.'
분위기와 같은 성씨로 딸이라고 생각한 원규는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하였다.
"사업적인 문제로 잠시 찾아온거란다. 그럼 실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공장 밖으로 나섰고, 도윤은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의 남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사장실로 향하였다.
"저 다녀왔어…아빠!?"
"헉…도윤이…왔니……?"
"왜 땀을 흘리고 계세요? 어디 아프세요!?"
"아…아냐. 그냥…갑자기 운동을 좀 해서 그래."
진호는 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자 허허허 웃으며 와이셔츠의 소매 부분을 펄럭이며 땀을 말리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중에 도윤의 얼굴 한쪽에 붉은 자국이 남아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아, 이…이거요? 잠시 한 눈을 팔다가 벽 기둥이랑 얼굴이 부딪혀서요."
도윤은 누군가에게 맞았다고 말할 수 없기에 어물쩍 넘겼고, 진호는 살짝 의심이 가는 눈빛을 하다가 이내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저렇게 싹싹한 성격인데 누가 괴롭힐리가 없지.'
자기 딸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도윤은 옛날부터 밝으면서도 싹싹한 성격으로 무난하게 학교 생활을 해왔고, 아주 높은 성적을 받진 못하였지만 그래도 상위권에서 노는 우수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괴롭힌다는 것은 악랄할 정도의 악의를 가져야만 하지만, 딸이 입학한 고등학교는 여러 명문대 입학생 명문고라서 그런 문제는 없을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친구들하고 좀 놀다 오지."
"친구들도 모두 바빠서 같이 놀고 싶어도 못 놀아요."
"…미안하구나."
자신을 생각한 딸의 변명에, 진호는 죄책감을 가진 목소리로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삼태극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대국이 기침을 하면 소국은 독감을 앓는다는 말이 있듯이, 중국과 일본을 무너뜨리면서 생겨난 여파는 한국이라는 작은 국가로선 감당키 어려운 일이였다.
단지 여파만으로 나라 자체가 휘청거리니, 삼태극이 가진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였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는 아버지 일을 도와주는게 더 재밌으니까요."
도윤은 학교에서 화랑의 2인자인 민정에게 괴롭힘당하는 사실을 애써 숨기며 밝은척을 하였고, 그녀의 아버지인 진호도 화랑의 수장인 원규에게 협박을 받아 보호세를 내야 한다는 아픔을 숨기며 딸과의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 작품 후기 ============================
당연한 얘기겠지만 전편의 깽판은 단지 '나 돌아왔다!' 를 알리는 역할이였을뿐, 제대로 된 깽판이 아닙니다.
그냥 준비 운동쯤?
그런데 준비 운동으로 K-ESP 본부가 박살난게 함정 ㅋㅋㅋ
PS : 일단 한국 스토리의 메인 악역중 하나인 권 민정은 여캐이긴 하지만 노예로 만든다던가 조교를 한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딱히 조교해야 할 매력이나 가치가 있는것도 아니고, 소설까진 확대되지 않았다지만 아청법의 여파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괜히 신고당할만한 껀수를 만들기 싫다는게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