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1 / 0923 ----------------------------------------------
12장
…….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숨쉬는 소리…아니, 눈이 깜빡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고요함이 주변을 지배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눈 앞의 공연은 자신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만에 만났는데 다짜고짜 주먹질은 좀 너무하지 않아?"
"닥쳐!!"
퍼억!
매그너스는 진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고, 그것을 무방비하게 맞았지만 오히려 아픈쪽은 때린 쪽이였다.
주먹을 휘두른 손목은 마치 단단한 금속을 때린것 마냥 시큼거리면서 힘의 강약 수준을 뚜렷하게 알 수 있었겠지만, 매그너스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눈빛으로 상대방을 죽일듯한 살기를 비쳤다.
"언제부터냐! 대체 언제부터 나를 이용한거냐고! 나를 구해준것도 모두 의도된거냐!?"
매그너스는 성질머리가 고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힘을 주고 여러 위기를 구해준 진우를 믿을 수 있는 친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처음엔 자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돈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의심도 해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힘들고, 그 어떤 미래도 없을때 힘을 주면서 응원을 해주었다.
그가 준 힘이 아니였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의 추적자에 의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느끼고 있던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에헤이~ 내가 뭐 얻어먹을게 있다고 너를 이용해? 나는 순수한 호의로 도와준거야."
"왜! 대체 어째서!"
"음…그 부분은 꽤 기니까 나중에 하자고. 지금은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말야."
"진우!"
매그너스는 진우의 납득할 수 없는 답변에 그의 멱살을 붙잡았지만,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살기가 자신의 팔을 향해 쏘아져오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뒤쪽으로 피하였다.
쉭-!
매그너스가 자리를 물리게끔 일부러 노골적으로 살기를 내비치며 천천히 쌍용검을 휘두른 남궁 신은 낮게 으르릉 거리듯이 경고를 하였다.
"거기까지해라. 형님께서 나중에 하자고 말했잖나."
"…김 건호……."
매그너스가 남궁 신을 봤을땐 변형된 얼굴이였지만, 말투, 목소리, 분위기, 절제된 동작, 그 모든 것이 똑같았기에 자연스럽게 당시 사용하던 가명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이름은 남궁 신이다. 그 때 쓴 이름은 가명이고."
신은 조금이라도 다가오면 베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넣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정정해주었고, 거리가 벌려진 매그너스는 그런 신의 기세에 함부로 다가서지 못하였다.
"처음엔 진우씨가 가만히 두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이 이상 무례는 용서치 않겠습니다."
"이 이상의 적대 행위는 우리를 향한 선전포고라 해석해도 되겠지?"
거기다가 이실리아와 아키가 힘을 천천히 일으키며 주변을 공격할 기세를 뿌리자, 그 기세에 깜짝 놀란 히어로들도 경계를 취하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자……!"
"다들 거기까지."
보다 못한 이벨과 베스가 뜯어말리려 하였지만, 사태를 진정 국면으로 만든건 진우였다.
"우리는 싸우러 온것도 아니고, 그냥 이벨이 타고온 우주선에 뭐가 있는지좀 확인해보고자 온거잖아? 겨우 다 큰 남자들끼리 주먹 다짐좀 했다고 전쟁이니 뭐니 그러면 세상은 항상 세계 대전인 상태일걸?"
진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이실리아와 아키의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러주면서 잔뜩 힘이 들어간 몸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그녀들이 힘을 누그러뜨리자 다른 이들도 천천히 힘을 풀면서, 자칫했으면 피를 볼뻔한 상황은 곱게 넘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곳에 온 목적만 해결하면 시간을 따로 내줄테니까, 드래곤볼 애니판처럼 서로 눈싸움 하면서 질질 시간 끄는건 그만두자고. 오키?"
마지막으로 매그너스에게 절충안을 내주자, 매그너스는 분노로 이성이 마비됐다지만 자신의 행동 때문에 큰 문제로 번질뻔했다는 것을 깨닫았기에 말없이 거기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벨과 베스는 너무나 정상적이며 이성적인 진우의 모습에, 잠시 페리샤가 진우로 변장을 한게 아닐까 라는 망상을 할 정도로 당황하였다.
"…날 납득시키지 못한다면…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오늘 죽는다."
매그너스는 자신이 말하고서도 둘 중 하나가 자신이라고 100% 확신하였지만, 만약에라도 자신이 진우에게 철저히 이용을 당한거라면 죽더라도 자신의 분노를 느끼게 만들 생각을 가졌다.
"에이, 내가 친구를 왜 죽여? 나는 사람 목숨은 벌레처럼 여기지만, 친구 목숨은 최소한 인간 대우는 해주니까 걱정말라고."
진우는 그렇게 말하고선 이벨과 베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안내하라는 듯이 눈동자를 아래에서 위로 올리기를 몇차례 반복하였다.
"큼큼,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베스도 분위기가 험악한데 괜히 시간을 끌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일단 흐름부터 바꾸고자 재빨리 진우 일행을 안으로 안내하였다.
그렇게 겉보기엔 낡은 공장처럼 보이는 공장 안을 베스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그녀를 호위하는 이능력자들의 안내를 따라 이동한 진우는, 공장 안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쪽으로 향하자 생각보다 좀 거릴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어이."
"예?"
"혹시나 싶어서 말해두는데, 매그너스에게 따로 처벌한다거나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
베스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면서, 뒤쪽으로 시선을 돌려 진우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이거 진짜 치우 맞아?'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를 호위하는 이능력자들도 모두가 똑같이 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건 어째서죠?"
"왜냐니? 친구가 친구를 걱정하는게 뭐가 이상해? 듣자하니 너희 둘은 친한 친구라던데, 상황이 반대였으면 친구를 걱정했을거 아냐?"
"……."
이건 치우가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지구의 인구 십억 이상을 죽이고, 지금도 계속해서 죽여나가는 지구 역사상 최악의 대악당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나오다니?
결국, 이벨이 참다 못해서 입을 열었다.
"대체 매그너스, 그 사람이 얼마나 마음에 들길래 그렇게까지 하는거죠?"
"그 녀석은 신념이란게 있거든."
진우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입을 열었고, 그 모습에 이벨과 베스의 눈이 살짝 미묘하게 좁아졌다.
그 눈빛에는 그가 죽인 사람중에서 신념을 가진 히어로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냐는 듯한 책망이 숨겨져 있었다.
"뭐, 내가 죽인 놈들 중에서 신념을 가진 이들이야 많았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신념을 가진 약자를 좋아하는거야."
"약자……?"
"그래, 약자. 녀석은 이능력에 대한 재능이 전무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약자였어. 힘이 없는자가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 자체가 투쟁이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말한 진우는 잠시 혀를 쉬고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든지 대의를 위해, 이득을 위해 신념을 잠시 접어야 할 때가 있지. 대부분 신념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녀석들은 거기서 대부분 꺽여나가고 말아. 한 번 접었는데 두 번은 왜 못접냐는 식으로 말이지."
너무나 진지한 대화에 그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이벨의 눈은 '너 대체 누구냐?' 라고 묻는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빛을 무시한 진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녀석은 한 번은 접었지만, 다시는 접지 않게끔 자학하고 반성해. 신념을 위해서라면 누가 뒤지든지 알바 없는 외골수도 아니고, 신념을 한 번 접었다가 포기하는 인종도 아니지. 나는 그런 신념에 가득차 있는 녀석들을 좋아해. 나는 지금까지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녀석들을 두 명 봤는데, 하나는 아까 말했듯이 매그너스고, 다른 하나는,"
거기서 말을 잠시 끊은 진우는 자신의 주변과 이실리아, 아키를 호위하듯이 서 있는 남궁 신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어깨동무를 하였다.
"이 녀석이지. 매그너스와 남궁 신. 성격과 나아가는 방향은 다를지 몰라도, 둘 다 잠시 접힐지언정 절대 꺽이지 않을 신념의 소유자들. 약자에서 힘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위해 투쟁하는 녀석들."
"과찬이십니다."
"아마 매그너스, 그 녀석은 끝까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적대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기에 마음에 들어. 약자였던 녀석이 내가 가진 압도적인 힘에 기죽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덤벼들테니까."
"……."
"……."
이벨과 베스는 생각도 못했다는듯한 표정과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지구 역사상 최악의 학살자가 신념을 가진 약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할거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자, 그럼 슬슬 페이스를 올릴까? 우리가 자리 깔고 대화할 관계는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베스는 진우와 오래 대화해보진 않았지만, 이번 대화를 통해 한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진우, 이 자는 단지 평범한 학살자가 아니야.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미친놈이였어.'
아마 이런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폭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단지 부귀영화, 주지육림 같은것을 원하는 폭군이 아니라, 천성적으로 인간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진정한 폭군.
'그런데 저 배낭은 대체 뭐지?'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게 있었다.
그것은 검은 머리의 여성이 등에 짊어진 배낭이였다.
마음같아선 안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조사해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조용히 감시하는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삼태극 수준의 조직이 저렇게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물건을 옮길리 없다는 생각도 한 몫하였고.
하지만, 베스는 잠시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가방을 들고 오지 못하게 막았어야 한다며 후회를 하게 된다.
-----------
이벨이 타고온 우주선은 전투기 수준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공격 능력은 전무한 대신에 안전을 위해 3중 장갑 형태에다 충격을 가하면 조종실 안에 에어백 같은 것이 튀어나와 안전을 보장해준다.
어차피 칼리 제국에게 걸리면 1인용 우주선 따위가 아무리 철저한 무장을 갖춰도 갈려나가는 것은 똑같기에, 방어, 속도, 안전성에만 모든것을 집중시킨듯한 우주선.
"……."
이벨은 자신이 타고온 우주선의 모습에 두 눈을 감으며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새겼다.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친부모의 얼굴.
지구, 미국의 시골 마을에 착륙하여 아이를 가지지 못하던 지금의 부모님들의 딸이 되어 성장한 추억들.
그리고, 고향별을 멸망시킨 칼리 제국.
칼리 제국에 의해 포로가 되어 겁쟁이가 되어버린 동족의 모습.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있는건 아니지만, 그들이 겪은 고통을 부모님들이 겪는다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솟아오른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친딸처럼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반드시 칼리 제국을 쓰러뜨려야만 해……!'
그리고, 그 이후엔 세계의 악인 삼태극과 함께 산화한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슬퍼하시겠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은.
"가볼께."
"함께 가줄까?"
이벨이 마음의 정리를 하면서 자신이 타고온 우주선으로 향하자, 베스가 그런 그녀를 향해 격려어린 목소리로 조심스래 물어왔다.
"혹시 모르니까 나 혼자만 갈께."
우주선에서는 이벨이 오라고 했다.
만약에라도 이벨 외에 다른 사람이 함께 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에, 여기서는 이벨 혼자서 가는게 정답이다.
이벨은 기술자들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쳐놓은 금지 표시를 뜻하는 줄 너머로 넘어갔고, 여러가지 추억이 생각나게 만드는 우주선의 모습이 가까워졌…….
지지직-
순간, 갑자기 우주선에서 초록색의 빛이 이벨을 향해 비쳐졌고, 빛은 그녀의 몸에 작은 실금을 만들면서 머리 끝부터 다리 끝까지 몇차례나 위아래로 반복하며 움직여나갔다.
지잉-
초록색 빛이 사라지자, 이번엔 전신형 홀로그램 인간이 이벨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
이벨은 친부모를 실제로 본적이 없었지만, 홀로그램 영상에 나타난 사람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영상이 나왔다는 것은 이벨, 네가 왔다는 뜻이겠지? 정말…정말로 보고 싶구나…….-
영상에 나온 여성은 지구의 것과 비슷한 옷을 입으며 이벨과 비슷한 구석이 많은 중년 여성으로, 그녀의 눈빛은 이미 저장된 홀로그램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다.
============================ 작품 후기 ============================
로스트 아크 클베 떨어짐
아마 몇몇 독자분들은 존나 쌤통이다 싶겠지만 어차피 마음 한구석으론 기대하지도 않았음
왜냐면 내가 진짜진짜 하고 싶다고 기원한 클베는 꼭 당첨이 안되거든 ㅋㅋ
나중에 유튜브 같은데서 플레이 영상이나 봐야긋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