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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네가 처음 태어난 날, 우리는…….-
"야, 저거 스킵 안되냐? ESC 버튼 어디 없어?"
원래라면 아주 감동적인 부분이여야 하건만, 이런 분위기를 다 깨부수는 존재가 있었다.
찌릿-
펜타곤의 모두가 제발 좀 닥치고 있으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지만, 진우는 뭐 어쩌라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왜? 뭐? 그냥 딱 까놓고 말해 '우리는 죽어도 너를 사랑한단다' 라는 말을 존나 길게 늘리는게 뻔하잖아? 니들 영화 안 봐? 문화 생활 안 해?"
죽음을 각오하고 자식을 탈출시킨 부모가 남긴 메세지.
영화나 소설, 만화좀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게끔, 사족을 붙이면서 적당히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든 후에 마지막에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하면서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든다.
당연히 온갖 종류의 매체들을 섭렵한 진우는 분위기의 흐름만으로 결과를 모두 알아낼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벨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에, 베스는 거의 살기까지 담은 눈빛으로 닥치라는 무언의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오케이, 오케이, 구석에 짜져 있을께."
이건 법, 권력, 질서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관련된 문제다.
인간의 감성은 법과 규칙을 뛰어넘는 법.
예를 들어 자신하고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가족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범죄자가 잡혀서 법의 처벌을 받기를 원하지만,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한다면 법이고 자시고 살인자를 자신의 손으로 찢어 죽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이런 인간의 감성과 관련된 문제에서 문제를 일으켜봤자 답이 없기 때문에 진우는 이실리아와 아키의 어깨를 끌어 안으면서 구석 자리로 향하였다.
-…그 후에 네가 처음으로 몸을 일으키고, 작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고자 애를 쓰던 모습을 본 우리는 세상이 떠나가라 환호를 질렀었지.-
이벨은 자신이 모르는 추억을 가진 친부모님의 말씀을 새겨듣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홀로그램에 나와있는 이벨의 어머니는 그 날을 추억하듯이 말을 할 때마다, 딸을 사랑하면서도 자신들이 모르는 모습으로 성장했을 모습을 보지 못한것을 너무나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렇게 홀로그램으로 나온 이벨의 친어머니는 행복하던 나날을 보내다 칼리 제국의 선전 포고를 받으며 행성 자체가 전화에 물들게 되었고, 과학자와 기술자를 겸임하던 이벨의 부모님은 시라누 인이 승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는 슬픈 얘기까지 나왔다.
이벨뿐만 아니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주변에 있던 이능력자들과 기술자들도 사는 행성과 종족은 다르지만, 딸을 지키고자 싸워야만 했던 그녀의 사연에 눈시울이 붉혀져 있었다.
특히, 칼리 제국을 상대로 전쟁까지 치뤄야 하는 지구인의 입장으로선 그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쩝쩝. 이제 슬슬 특별한 비밀 무기가 나올 차례구만. 분명 뭔가 카운터용으로 만들었는데 사용할 기회가 없거나 미완성이여서 못 썼다는 말이 나올거야."
"……."
마치 반전 영화에서 반전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스포하는 개새끼마냥 심드렁하게 말하는 진우의 목소리에, 베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싸움과는 거리가 먼 기술자들까지 얼굴을 찡그리면서 시선이 모여졌다.
거기에는 캠핑용 매트를 깔고, 흑후추로 간이 되어있는 닭고기와 고기 요리와 어울리게 드레싱 된 양상추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아키와, 직접 만든 감자 튀김을 케챱에 찍어서 진우의 입가로 공손히 향하는 이실리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가방……!!'
그리고, 그 옆에는 '이게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싶어?' 라는 식으로 활짝 열려진 가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걸 못 가져오게 막았어야 했는데!!'
베스는 외부에서 허가받지 못한 물건은 들여보낼 수 없다며 가방의 반입을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였다.
하지만, 저렇게 뻔하고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수상쩍은 물건을 들여보낼까 라는 생각도 있었고, 당시에 그렇게 말해봤자 캠핑 매트와 샌드위치, 감자 튀김이 들어간 바구니의 내용을 보면 허락했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분명한건 삼태극 일행 때문에 위기감도, 감정의 여운도, 모두 반감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분위기가 심각해져야 하는데, 저들은 마치 전용 영화관에 놀러온 것 마냥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하지 말라고 경고 했는데 싫다고 하면서 말싸움이라도 벌여졌다간 완전히 시장바닥이 되리라.
-…지만, 칼리 제국의 여제는 전 우주에서도 악명을 떨치고 있었기에, 우리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여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연구를 했단다.-
"저거 봐봐. 맞지? 내 말 맞지?"
더 짜증나는건 진우의 모습이다.
자신의 손은 절대 사용하지 않으면서, 양 옆에서 차례대로 먹을것을 상냥하게 내미는 아키와 이실리아의 행동에만 반응하며 턱과 목을 움직일 뿐이였다.
거기서 내 말 맞지? 라고 말하는 타이밍에서 상체가 앞으로 튀어나와 이실리아가 내밀던 케챱 찍은 감자 튀김이 입가에 묻어져버렸다.
"아이참, 다 흘리고 있잖아요 진우씨."
칠칠지 못하게 먹을것을 묻히고 있는 진우였지만, 이실리아는 그런 그의 모습까지도 사랑스럽다는 표정과 말투와 함께 진우의 얼굴을 붙잡고선 입가에 묻은 케챱을 자신의 혀로 날름 핥아주었다.
"으응~ 부드러운 냄새~"
"꺅~"
그 때, 진우가 기습적으로 이실리아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밀착시켰고, 그녀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는,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 소리와 함께 미소를 지으며 진우의 뺨을 자신의 뺨을 밀착시키며 비비고 냄새를 맡으며 애정행각을 벌였다.
"누구든지 좋으니까 저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막을 만들어."
결국, 베스는 참다참다 못해 결국 삼태극 일행의 소음을 차단하고자 염동력으로 만들어진 막을 만들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번만큼은 한 마음 한 뜻이 된 염동력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텔레파시 능력자의 지휘도 없이 서로의 눈빛만으로 효율적으로 협력하여 염동력으로 만들어진 막을 만들면서 목소리를 최소화시켰다.
다행히 효과가 있어서 아주 안들리는건 아니지만, 작게 수근수근 거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무시하면 충분한 수준의 소음이였다.
-…해서 다른 종족들이 만든 대항책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선례를 받아들여 무기, 함정, 강화 병사같은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단 한가지에만 모든것을 쏟아붓기로 결정하였지.-
칼리 제국의 힘은 전 우주에서도 공포로 군림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칼리 제국은 원래 왕국이였지만, 여제가 등극하고 나서 지구 기준으로 약 150여년간 세력을 확대하고 자신에게 굴복한 이들을 부하로 만들면서 왕국에서 제국으로 바뀐 것이다.
그 수많은 시간동안 여제의 진격을 막고자 다양한 종족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대항을 하였다.
누구는 물량으로, 누구는 기술력으로, 누구는 암살로, 누구는 인위적인 강화를 통해.
하지만, 그 모든것들은 여제를 죽이는데 불가능하였다.
아니, 오히려 나름 재밌었다면서 기회를 더 주기까지 했다.
그 압도적인 강함을 몇차례나 맞이한 이들은 결국 마음이 꺽여버렸고, 이벨의 부모님은 그들의 모습을 교훈삼아 여제를 힘으로 누르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였다.
대신,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여제를 제압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우리는 고향이 공격당하는 와중에도 온갖 독초들이 있는 행성들을 오가며 연구를 계속하였다. 처음엔 우주 최고의 독을 만들고자 하였지만, 그 연구를 통해 우리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지닌 독을 만들게 되었다.-
이벨의 어머니는 거기까지 말하고선 표정이 안 좋아졌다.
-상대방의 이능력이 얼마나 강하든지, 일정 시간동안 그 힘을 억제할 수 있는 독약. 굳이 먹일 필요 없이, 단지 상대방의 피부에 묻히기만 하면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독약이 바로 그것이란다.-
"!!"
"!!"
피부에 묻히기만 한다면 일정 시간동안 이능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독약?
그 독약만 있다면 정말로 우주 최강이라는 여제를 죽일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이상 시간이 없구나. 애초에 이 독약은 실수로 만들어진거라서 배합을 다시 확인해야만 했고, 많은 양을 만든게 아니라서 대규모로 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쿠르르릉!-
그 때, 이벨의 어머니는 자신의 머리 위를 올려보면서 불안감어린 눈빛으로 안절부절해하며 대사를 좀 더 빨리 하기 시작했다.
-이미 시라누 행성은 파멸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네 아버지가 어떻게든 막고자 시간을 벌고 있지만, 문자 그대로 시간 벌이밖에 안되겠지…….-
이 영상에 어머니만 보이는 이유가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밖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인듯 싶다.
-재능 분석가들은 네가 시라누 역사상 최강의 전사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며 기대하고 있지만, 우리는 네가 복수를 하길 원하지 않는단다. 운이 좋다면 칼리 제국이 너를 찾지 못할 수 있으니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돼. 하지만…여제와 싸워야만 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기에 우리가 만든 독약을 이 우주선에 숨겨두도록 하마. 주의점도 함께 써놨으니 너…혹은 함께 싸우는 동료들과 공유하여 대책을 마련하거라.-
-쿠구궁!-
거기까지 빠르게 설명한 이벨의 어머니는 가까워지는 폭발음에 다급하게 문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불안하게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정면을 향하였다.
-사랑한다. 꿋꿋하게 살아가렴. 만약, 네가 싸우길 원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단다. 복수든 뭐든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네 인생만을 생각하거라. 사랑한다, 이벨. 정말로 사랑…….-
파지직-
이벨의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모습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더이상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기 때문이리라.
푸슉-
그와 동시에 우주선 몸체 한 부분이 열리기 시작하였고, 이벨이 그 쪽으로 향하자 깨지지 않게끔 푹신한 재질로 만들어진 좁은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손가락 한 마디 수준의 투명 플라스틱같은 재질의 작은 병과 쪽지가 고이 놓여졌다.
그녀는 작은 병을 챙기고선 쪽지의 내용을 읽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경고========
1. 끓는점이 낮아 쉽게 기체화 된다.
2. 기체화 되면 잠깐 동안(약 2~3초)을 제외하면 독의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기체화되지 않도록 유의.
3. 이능력이 사라지는 시간은 복용하거나 피부에 묻힌 양에 따라 달라지며, 한 방울을 기준으로 약 10분.
4. 땀구멍이 없는 종족은 피부에 발라도 효력이 없음.
5. 피부에 바를시 복용과 달리 완전하게 효력을 발휘하는데 시간이 다소 걸림.
경고의 내용은 전부 손 글씨로 부랴부랴 쓴듯한 내용이였는데, 오히려 그만큼 급박했다는 뜻이리라.
"…적어……."
이벨은 친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감동적인 대사에 울렁거리는 감정을 정리하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위에 설명했듯이 손가락 한 마디 수준의 투명 플라스틱이 독약의 전부였다.
거기다가 적은 양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도 존재하였다.
"완전히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네."
이제는 우주선에 다가가도 괜찮다고 판단한 베스가 이벨의 근처로 다가가며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한 동화를 예로 들면서 설명하였다.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고양이에게 사냥당하는 쥐는 고양이를 이길 수 없으니 목에 방울을 걸어, 방울 소리가 나면 도망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거냐는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였다는 내용의 동화.
지금 그녀들의 심정도 딱 이러했다.
우주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가진데다, 수많은 이능력자들을 포진한 칼리 제국의 여제.
이 독약의 효과를 보려면 그녀에게 지근거리까지 접근하거나, 멀리서 쏘는 무기를 맞춰야만 하는데, 우주 최강이라는 여제가 그것을 곱게 맞아줄리가 없잖은가?
'나, 그랜드 아크, 진우. 이렇게 세 명이 여제를 상대로 3:1로 공격한다면…어쩌면…….'
이벨은 세 명의 11등급 신체 강화자들이 공격하여 기회를 엿본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최후의 수단이다. 우리의 기습 작전이 실패하였을때의 대비책으로 쓰면 돼.'
그렇게 생각한 이벨은 어머니의 유품이자 유산인 독약병을 꼬옥 쥐면서 두 눈을 감았다.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어머니.'
자신을 위해 노력해준 어머니의 모습에 고마움을, 그리고 자신들을 희생하면서까지 살려주었던 목숨을 버리고자 마음 먹은 자신의 모습에 죄송함을 동시에 느낀 이벨.
"야! 내가 스포쟁이다!! 봐봐. 내 말이 다 맞지? 내가 세계 정복의 야망이 없었으면 어디 돗자리 펴서 아주 용한 점쟁이가 되었을거라고!"
"……."
"……."
하지만, 그 분위기도 진우의 품위없는 자화자찬에 깨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아 플스4나 살까...요즘 할 게임들 진짜 없네 ㅡㅡ
근데 내년에 업그레이드 사양 나오잖아...VR도 연동된다는데...
하지만 지금 당장 심심한걸...
근데 내년 되면 타이틀 가격들 다 떨어져서 싸잖아
아 심심하다...뭐 진득하게 붙어서 할 게임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