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 브레이커-844화 (84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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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어떤 조직도 자신들의 실패를 '했던거 다 폭망함. 우리 완전 좆됐음;;'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피해를 봤지만 자신들도 다소 이득을 얻었다, 혹은 의지를 보여줬다,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 등등 자신들의 실패와 패배를 어떻게든 최소화 시키고자 노력한다.

아예 실패를 부정하고 상을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말한다고 받은 피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이런식의 언론 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결속력과 사기 문제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들이 탄 배가 침몰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른 배로 갈아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식의 언론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지구로 내려온 여제는 '지구인의 저항은 재미없었지만, 치우의 저항은 재밌었다' 라는 식으로 대놓고 공개 방송을 한 것이다.

물론, 적의 말을 일방적으로 믿는건 바보같은 짓이지만, 실제로 펜타곤은 이지스 전함을 우주에 버려둔채로 돌아와야만 하였고, 여러 국가의 수장들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펜타곤은 그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줄 수 밖에 없었다.

"후우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제이콥 대통령은 방 안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에게 핫라인 직통 전화를 연결한 펜타곤의 통신 담당 간부는 대통령의 한 숨에서 느껴지는 감정 때문에 덩달아 분위기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펜타곤…아니, 그리핀은?”

제이콥 대통령은 그리핀의 상황을 물어보았고, 그 질문에 핫라인으로 연결한 펜타곤의 간부는 더더욱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게…대략적인 보고를 한 이후, 모든 연락을 끊고 혼자 있고 싶다며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

회심의 작전이 실패한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도망친 건지 모르겠지만, 칼리 제국이 지구, 그것도 러시아 땅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두문불출한 것은 무책임한 행동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구를 위해, 정의를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계획을 꾸몄는데,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으며, 더욱이나 그토록 혐오하던 삼태극이 대활약을 하여 간신히 살아나게 되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이러한 상반된 마음과 평가 때문에, 제이콥 대통령은 그리핀에게 추궁을 해야할지, 응원을 해줘야 할지 몰라 잠시 생각하였으나, 일단은 칼리 제국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책 회의를 하는게 우선이였다.

“알겠네. 그리핀이 나온다면 바로 내게 연락하라고 전하게.”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뚝-

그 말을 끝으로 펜타곤과의 핫라인은 끊어졌고, 다시 한번 크게 한 숨을 내쉰 대통령은 분노와 황당함이 섞인 복잡한 표정이 지어졌다.

“하하……. 우린 완전 들러리로군.”

펜타곤으로부터 직접 상황을 들어 전후 사정을 알게 된 그는 삼태극을 제외한 지구의 전부가 들러리로 전락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여제는 처음부터 삼태극의 치우를 호적수로 인정한다며 그와의 싸움을 기대하였고, 그 외의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버러지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당이 지구, 나아가 우주의 희망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분노와 황당함이 섞인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그래도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어떻게든 국민들을 안정시키고, 패전 사실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진 책임이다.

여기서 펜타곤이 실패하고 삼태극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민들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삼태극은 말이 안통하는 살인마 집단인데, 그 집단이 인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누가 이겨도 결국 끝장이라는 종말론적 주장이 득세하면서 경제고 뭐고간에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이기심만 날뛰게 되리라.

그렇게 된다면 누가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멸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지도자의 자질을 시험하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제이콥 대통령은 현 상황을 타개하고 삼태극과 칼리 제국에 대한 문제를 의논하기로 결정하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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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 회의실.

거기에는 삼태극의 모두와 아직 아크로스로 돌아가지 않은 그랜드 아크가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회의실에서 유일하게 서 있는 인물인 페리샤는 자신이 확인한 정보를 먼저 설명 형식으로 알려주었다.

“현재 지구권 국가들은 여제의 발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다들 국민들을 안정시키려 하지만, 그 이후의 대책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여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완벽하게 전무하다는 뜻이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노아가 이대로 자신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물어보자, 페리샤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여제가 지구를 초토화 시키던가, 아니면 지구측에서 연합군을 결성해 공격을 한다던가. 물론, 여제는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곤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넘게 된다면 심심하다면서 지구를 장난감마냥 사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선 진우와 그랜드 아크쪽을 살짝 흘겨보았다.

“제가 본 여제는 딱 저쪽에 어울리는 인물이니까요.”

“뭐야!? 우릴 도매금으로 싸잡지 마라!”

“맞아! 이래뵈도 우린 상식이란게 있는 문화인이라고!”

진우와 그랜드 아크는 자신들을 같은 부류로 싸잡는 페리샤를 향해 우가우가 거리며 항의하였지만, 그녀는 간단히 고개를 돌리면서 무시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항의를 하였으나, 인상 하나 변하지 않고 무시한 페리샤는 자신을 집중하고 있는 삼태극의 간부들을 향해 재차 설명을 하였다.

“아쉽게도 기습은 할 수 없습니다. 기습을 가하려면 칼리 제국의 함대를 뚫고 기함까지 접근하여,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여제를 공격해야 하는데, 그 과정중에서 수많은 외계인 이능력자들에 의해 집중 포화를 받게 될 확률이 많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쪽에서 정면 승부를 요청하여 여제와 대면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녀의 설명에 아키가 질문하듯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본 칼리 제국의 함대라면 지구권 국가들의 군대론 제대로 반격조차 할 수 없어. 이 부분을 이용해 우리가 이득을 얻을 수 없을까?”

“확실히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우리가 얻을 수 있는거라곤 물자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니 굳이 귀찮게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그랜드 아크가 주기로 한 물자를 다 주지 않았기에, 그 물자들만 얻으면 굳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삥 뜯으러 갈 필요가 없다.

아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들은 고생하는데 남들은 구경만 하고 있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여제는 주인님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공격하면 응징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주인님 혼자서 오라는 뜻인거야?”

하린은 몇 명까지 오라는 제한을 두지 않은 여제의 대사 때문에 이 부분이 혼란스럽다는 듯이 반응하였고, 그것은 페리샤가 아닌 쿠베리아트가 대답해주었다.

“아니, 그건 아니다.”

지구에서 여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면 단연 쿠베리아트다.

실제로 그녀는 여제와 싸우기까지 했었으니까.

“그 년은 몇 명이 와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인원 제한을 두지 않은거다.”

“뭐? 말도 안 돼. 그러면 전 세계의 정예들이 주인님과 함께 와도 인정한다는 거야?”

듣자하니 여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 단신으로 싸우기를 즐겨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정도가 있지, 상대방이 정예 수백명인데 그걸 상대한다고?

“여제라면 오히려 자신과 싸울 지구인이 더 많이 찾아왔다고 좋아할거다. 분명한 것은 여제는 싸울 때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싸우고, 상대가 몇 명이든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쿠베리아트의 설명에 성질 급한 몇 명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아무리 운석을 주먹으로 파괴하는 괴력을 가졌다지만, 상대방의 숫자가 몇 명이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무시였기 때문이다.

“여제는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싸운다. 크게는 행성 단위를 혼자의 힘으로 정복하기도 하지. 지구인을 깔본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성격 자체가 원래 저런거다.”

“…….”

“…….”

행성을 혼자의 힘으로 정복한다는 소리에 발끈하던 사람들은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농담이 아니라 여제는 스케일 자체가 지구인의 기준으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물량 공세를 취하는 것이…….”

후지미네는 적이 숫자 제한을 두지 않았으니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지 않냐는 말을 하려 하였으나,

“아니, 그건 안됩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남궁 신이 입을 열었다.

“왜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물량 공세로 퍼붓는게 조금이나마 더 이득이지 않나요?”

적이 숫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여제는 혼자 싸운다.

이 두가지 조건을 결합하면 당연하게도 물량 공세로 아주 약간이라도 빈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지만, 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들 외에 다른 이들이 여제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낼 가능성은 0%입니다. 눈을 한 번 깜빡거리면 10~20명이 죽어나갈 것입니다.”

신은 확신이 서린 목소리로 강하게 주장하였고, 그 증거를 덧붙였다.

“여제는 제가 소환한 운석을 부수고, 그것들을 모두 쳐내는데도 불구하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애초에 운석을 부수는 것 자체가 여제가 가진 힘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함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기에서 잠시 말문이 막힌 신.

그렇게 십여초동안 우물거린 그는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저와 형님이 있어도 그녀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가 않습니다.”

“!!”

“!!”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신이 처음으로 약한 소릴 내뱉었다.

거기다가 진우와 함께 있어도 여제를 이길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발언에, 다른 이들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들이였다.

“저는 소수정예. 그것도 여제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소수 정예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지미네와는 완전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남궁 신.

그런 그의 모습에 쿠베리아트도 동의하였다.

“여제가 정복한 행성중에서 물량을 쏟아부어 저항한 세력도 있었지. 그 행성의 외계인들은 여왕에 의해 조종받는 사회라서 공포도, 감정도 없이 적을 공격하는게 가능했어. 결국, 명령을 받는 개체가 다 사라진 이후에 여왕이 항복을 하였지만, 여제는 여왕의 목숨을 빼앗으면서 그 종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지. 내가 듣기론 그 숫자가 16억이 넘는다고 들었어.”

“…….”

“…….”

16억의 외계인들을 혼자서 다 때려잡고 여왕까지 죽여 한 종족을 멸망시켰다?

지구에서도 여러 종의 동식물을 멸종 시키기도 하지만, 어떤것이든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제는 혼자서 16억의 외계인들을 혼자 다 처리하였다는 소리에, 다시 한번 지구인의 기준으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다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신과 쿠베리아트의 주장을 확인하면서 여제의 전투력이 보통이 아님을 확인한 페리샤는, 두 사람의 말이 맞다는 가정하에서 인해전술이 안되는 이유 하나를 추가로 더 설명하였다.

“전투와 전쟁에는 기세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기세에 따라 사기가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하지요. 만약, 순식간에 아군이 허망하게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살아남은 이들도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테고, 결국 기세 싸움에서 밀리며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죽을 수 있습니다.”

이따금씩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존재하지만, 그런건 그야말로 극소수의 인간들이다.

동료들이 아주 간단히, 순식간에 고깃덩어리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냉철하게 적을 공격하고 대열을 유지하는 것은 극도로 숙련된 특수 부대원조차 힘든 일이다.

거기다 정신력에 따라 힘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이능력의 특성상, 기세에 밀리면 전투력이 반감될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우리들은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 증오의 대상입니다. 서로 불신하는 이들끼리 뭉쳤을 때 생기는 문제들은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하겠지요.”

“결국 지구의 위기를 우리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소린데, 우리만 희생하는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이기적인 말을 아무 꺼리낌없이 내뱉는 이실리아.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세상의 정의도, 이목도 아닌 ‘남편의 이득과 안전’ 이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여제를 쓰러뜨려도 우리들 또한 만신창이가 될 확률이 높아요. 그 때 기습 공격을 당한다면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으니, 후지미네가 말한 수준으로 많진 않더라도 각 국의 최정예 이능력자나 영향력을 가진 이들 몇 명에게 협조를 받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살라딘을 처단하고자 모였을 때처럼.”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그녀의 모습에, 그랜드 아크는 확실히 옛날에 알던 이실리아와 지금의 이실리아는 완전 다른 인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여기서 사이드 스토리를 더 진행할까, 아니면 그냥 메인 스토리 직행을 할까 고민중.

아, 그리고 작가는 할 게임이 너무 없어서 심심한 나머지 미드를 파러 떠남.

시즌 3에서 멈춘 워킹 데드도 보고 다들 일단 보면 다 미쳐버린다는 왕좌의 게임도 함 봐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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