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90)

지갑을, 하다못해 핸드폰이라도 챙기지. 왜 맨몸으로 나가서 이런 민폐를 끼쳐? 기본도 못 하면서 리뷰는 무슨 리뷰야.

벽에 머리를 박고 자괴감에 빠져있는 도웅에게 질문 하나가 날아왔다.

“어땠어요?”

설거지를 하는 알바생이었다. 대뜸 던져진 질문에 도웅의 시선이 벽에서 알바생으로 향했다.

“예뻐요?”

“뭐가…….”

“3201호요. 영호 형한테 듣기로는 사장님이 배달 가셨다고 들었는데 아녜요?”

“어……. 직접…, 갖다줬지…….”

“예뻐요?”

“뭐가…….”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창피해서 손으로 안면을 감싼 채 찌그러져 있었더니 계속 이상한 걸 묻는다.

“자꾸 뭐가 예뻐.”

“3201호요! 딱 여자가 좋아할 만한 메뉴만 시켰잖아요. 사장님 상태가 왜 그래요? 못생겼어요?”

“…….”

슬며시 손을 내리고 잡일 담당으로 고용한 알바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뭐가 여자가 좋아할 메뉴야?”

“달달한 디저트만 맨날 시키니까. 아. 살쪘으려나.”

“단 거 좋아하면 다 여자냐? 그럼 나도 여자게. 너 그거 굉장히 편협한 사고야. 모든 사람이 치킨을 좋아할 거라 여기면 곤란해.”

“네? 치킨이요? 저 치킨 좋아해요!”

“채식하는 사람은 치킨 안 좋아할 수도 있어……. 여하간 입조심 해.”

“앗. 죄송해요. 사장님 이상형이 통통한? 퉁퉁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무례한 알바생을 보자 끝없이 자책하던 도웅의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내 이상형에 관심 끄고 일이나 하자.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입 밖으로 꺼내면 그냥 집에 가. 월급은 계산해서 바로 이체해줄 테니까.”

저런 상식이 부족한 놈도 떳떳하게 공기 마시며 사는데 고작 택시비 삼천팔백 원 먹튀가 뭔 대수랴. 다음에 갚으면 된다.

가까스로 마음 보듬기에 회복한 도웅은 주방을 빠져나와 포스기 옆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망설임이 남아있었으나 문자를 찍는 손가락은 거침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디저트 ㅇㅜㅇ입니다.

저희 직원 번호인 줄 알고 반말로 전화했던 점 정말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미처 살피지 못했어요. 불쾌하셨을 거예요. 거듭 사과드립니다.

대신 내주신 택시비는 계좌번호를 알려주시면 이체해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 밀려있는 주문을 빠르게 소화하기 시작했다. 일이라도 해야 미비하게 남아있는 창피함을 잊을 수 있을 거 같았다.

* * *

“사장님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고생했어. 내일 봐~”

마감을 끝낸 직원에게 손을 흔든 도웅은 심란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저지른 실수에 관해 보낸 사과 문자에 답이 없었다. 계좌번호라도 보내줄 법하건만 그것조차 없었다. 불호 리뷰도 없다. 없는 거 천지였다.

오늘 일이 언짢아서 가게를 옮길지도 모른다. 옮겨도 변명은 못하겠지만, 다시 한번 사과하고 싶었다. 대화창을 눌러 구구절절한 사과문을 찍어내다가 손을 멈췄다.

내 마음 편하자고 늦은 시간에 문자를 보내는 게 옳은가?

옳지 못하다. 기껏 써놓은 장문의 메시지를 지워버린 도웅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내일 점심 즈음에 다시 보내든지 해야겠다.

* * *

어렸을 적. 절친과 크게 싸웠던 적이 있었다.

자세한 원인은 기억나지 않았으나 굉장히 사소했던 거 같다. 치고받고 싸우다 보니 어느새 원인은 중요하지 않아졌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싸웠던 전날을 잊기라고 한 것처럼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보았을 때의 그 감정은 형용할 수 없었다. 한두 가지로 끝나지 않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처음 강렬하게 와닿은 감정은 감격이었다. 그렇게 싸웠어도 나를 기다려 주는구나, 하는.

도웅은 지금 그때와 비슷한 감격에 젖어 들었다. 바로 단골의 주문이 접수되었기 때문이다. 제 실수로 인해 단골이 떠나버리는 악몽까지 꾼 도웅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디저트 웅을 찾아준 3201호 단골에게 깊은 감동을 느끼는 중이다.

투샷 아메리카노 두 잔에 레드벨벳 티라미수, 치즈 크루아상, 무화과 요거트.

신속하고 정확하게 메뉴를 준비한 도웅은 일일 다섯 상자만 한정 판매하는, 주문 어플에는 올라와 있지 않은 메뉴인 몽블랑까지 챙겨 들었다. 마지막으로 지갑과 핸드폰까지 확인 후 가게를 나섰다.

오늘은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헬멧을 단단하게 눌러쓴 도웅은 늠름하게 미리 구비해 둔 전동 킥보드 위에 올랐다.

안전 운전하느라 택시보다는 느려도 걷는 것보다는 빠르다.

잠시 후, 로얄 골드 펠리스 공동 현관 앞에 선 도웅은 심호흡 후 3201호를 호출했다.

카메라에 종이 백 로고가 잘 보이게끔 비추자 스르륵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도웅의 심장은 쿵, 쿵, 쿵 뛰었다. 심장 아래에 있는 장기들이 층간 소음으로 신고할 정도로.

띵동.

대망의 3201호 앞에 다다라서 벨을 꾹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렸고 어제 택시비를 내준 뿌리 깊은 단골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디저트 웅입니다.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공손히 두 손으로 종이 백을 내밀며 고개를 숙이자 단골의 맨발이 보였다.

하얗고 커다란 발에 달린 가지런한 발가락이 곱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말 없이 종이 백을 받아든 남자는 어제와 같이 내용물을 살피고는 도웅이 챙겨온 몽블랑 상자를 내밀었다.

“어제 너무 죄송해서 사과 표시로 가져왔어요. 그리고 내주신 택시비도 여기…….”

도웅이 미리 꺼내놓은 봉투를 내밀었다.

가게에서 제일 빳빳한 지폐와 제일 반짝이는 동전을 골라왔다.

“그렇게 사과하실 일은 아닌데. 가져가세요.”

예상과 달리 조금……, 쌀쌀맞다.

하하호호 같은 분위기를 상상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단호할 줄은 몰랐다. 멋쩍은 척 미소라도 보여주지.

너무 단호해서 하마터면 기껏 챙겨온 몽블랑을 도로 돌려받을 뻔했다. 한 번만 더 설득해보고 그래도 거절하면 그때 받자. 거절하는데 계속 밀어 넣는 것도 실례니까.

“저희 가게 디저트 좋아하시면 분명 맛있을 거예요. 배달 어플에는 안 올리고 일일 한정 판매하는 몽블랑이거든요.”

남자는 물끄러미 도웅의 손에 들린 몽블랑 상자를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집어 들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맙다거나 잘 먹겠다는 말도 없이 닫힌 현관문을 본 도웅은 주먹을 말아쥐고 작게 아자, 포즈를 취했다. 돈은 돌려주지 못했지만, 사과의 의미로 건넨 몽블랑을 남자가 받아 갔다는 사실이 무거웠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줬다.

32층에 그대로 정지해있는 엘리베이터에 도로 올라탄 도웅은 1층을 누르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후후. 짜식. 한정 판매하는 몽블랑이 먹고 싶긴 했나 보지? 하긴, 우리 디저트가 적당히 맛있어야지. 내가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진짜 맛있다니까.

도웅은 어깨를 으쓱이며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희고 커다란 손 하나가 빼꼼히 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왔다.

놀란 도웅이 두 걸음 물러섰다. 잡음 없이 열린 엘리베이터 앞에는 뿌리 깊은 단골이 슬리퍼를 신고 서 있었다.

“무… 슨 일 때문에……. 혹시 상품에 하자가 있었나요?”

“그게 아니라. 몽블랑, 얼마에요?”

지갑을 여는 단골에게 손사래를 쳤다. 말없이 집으로 돌아간 건 지갑을 챙기기 위함이었나 보다.

“네?”

“가격이요.”

사과 표시라고 분명 설명했건만 굳이 돈을 내겠다고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손까지 집어넣은 뿌리 깊은 단골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당황한 도웅은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그냥…, 그냥 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일이 많이, 아주 많이 밀려있어서 얼른 가봐야 할 거 같거든요…. 자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쾌하지 않을 만큼의 적은 힘으로 남자의 어깨를 슬며시 밀어내고 문 닫힘 버튼을 눌렀다.

“아. 저기.”

문이 닫히는 순간 단골이 짧게 불렀으나 도웅은 어제 주방에서 그랬듯이 엘리베이터 구석에 찌그러졌다. 여태껏 다른 서비스는 군말 없이 받아 놓고 이제 와서 값을 치르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하나 떠오르는 게 있긴 있다.

“이제부터 나하고, 아니 디저트 웅과 선을 긋겠다는…….”

방금까지 들뜬 기분이 거짓말처럼 착 가라앉았다. 

배달 지연 문자나 보낼 것이지 나대긴 왜 나대, 도웅 미친놈아….

자책하며 엘리베이터 벽에 머리를 세게 박으려다가 멈칫.

콩.

가볍게 머리를 박았다. 1층에 도착하고 세워놨던 전동 킥보드에 탄 도웅의 눈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사실 울지는 않았다. 그저 심란한 마음으로 전동 킥보드를 몰았다.

“오. 사장님. 또 주문 들어왔어요.”

영혼이 나간 채 파이 반죽을 썰고 있는데 갑자기 직원이 주방에 빼꼼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

“주문 들어왔다구요!”

지금도 꾸역꾸역 밀려드는 배달 어플 소리와 테이블 콜이 가득인데 새삼스럽다고 여기며 답했다.

“그런데…?”

그런 도웅에게 직원은 답답해하며 영수증을 흔들었다.

“3201호요. 이번에는 요청도 있어요.”

“뭐?!”

빠르게 파이 반죽을 정리하고 직원이 두고 간 영수증을 확인했다.

요청사항이라니. 이런 적은 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뿌리 깊은 단골은 어찌나 깔끔한지 리뷰는 물론이고 요청사항에 글자라는 걸 남겨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영수증을 확인하는 도웅의 마음은 더 떨렸다.

[매장 요청 : 몽블랑, 계좌번호.]

몽블랑 계좌번호?

짧아도 명확한 요청사항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도웅은 바보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몽블랑 값을 주고야 말겠다는 단골의 의지가 담긴 영수증을 보고 짧게 숨을 내뱉었다.

우리 단골님은 제법 선 긋는 걸 좋아하시나 보다. 여태껏 서비스로 준 건 잘 받아 놓고 몽블랑만. 내가 가져다준 몽블랑만 값을 내겠단다.

“허. 삔또 상하게.”

고정 음료인 투샷 아메리카노 두 잔에 종류가 다른 디저트 서너 개.

빠르게 단골 메뉴를 준비하며 라이더를 호출했다. 그리고 아까 주려다 실패한 택시비 봉투 겉면에 계좌번호를 휘갈겨 적었다.

“…….”

적고 나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봉투를 바꿔 다시 또박또박 적어 종이 백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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