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을 벗고 팔을 걷어붙였다.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투샷 아메리카노?”
“괜찮아요. 지금은 커피 마실 때가 아니라서.”
허리에 앞치마를 둘렀다.
“뱅쇼는 바로 드릴 수 있는데.”
“정말로 괜……, 그럼 부탁드려요.”
마스크를 내린 손을 다소곳하게 테이블에 올려둔 3201호는 눈 밑이 거뭇한 게 피곤함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가 내 가게 안에 앉아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가방에서 뱅쇼를 꺼내 잔에 부어줬다. 작게 포장된 각설탕과 티스푼을 함께 챙겨 갖다줬더니.
“이것도 몽블랑 같은 건가요.”
몽블랑 같은 거? 서비스냐는 뜻인가?
냉장고에서 휴지시켜놓은 반죽을 꺼내며 맞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뱅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꿀꺽 삼킨 3201호가 각설탕 하나를 넣어 녹였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리는 걸로 보아 나쁘진 않나 보다.
“불합리해요.”
갑작스러운 불만 사항에 반죽을 오븐에 집어넣은 뒤 고개를 돌렸다.
“네?”
빈 잔을 손에 든 그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불합리해요.”
“뭐, 뭐가요?”
무려 2년 단골의 불만사항을 흘려들을 수 없다. 어쩌면 그가 리뷰를 남기지 않은 이유라도 알게 될까 싶어 수첩과 펜을 들고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
“…….”
그런데 어째서인지 불합리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꾹 닫아버리는 게 아닌가. 도웅은 턱으로 볼펜 뒷면을 눌러 딸깍였다.
“어떤 게 불합리해요?”
“네? 아아…….”
비스듬히 들고 있던 빈 잔을 내려놓은 그가 별 거 아니라는 것처럼 고개를 내저었으나 도웅은 손님의 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뿌리 깊은 단골의 소리라면 더더욱.
“얼른 말해주세요. 그래야 개선하든가 하죠.”
“몽블랑도 뱅쇼도……. 이렇게 맛있는 걸, 저는 어플 고객이란 이유로 몰랐다는 게 참 서운합니다.”
서운하다라는 말이 저 입에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냐면 그 감정은 2년간 눈앞의 남자에게서 도웅이 느꼈던 것이었다. 반대 입장이 되어보니까 기분이 참…… 좋았다.
“뱅쇼는 매장에서도 판매 안 하는 상품이에요.”
“몽블랑은요.”
“제 취향이 아니라서 아예 없애버리려 했는데 영호가 극구 반대해서 하루에 다섯 개만 팔기로 한 거고. 아! 영호는 휴가 간 직원이고요.”
수첩을 덮고 반죽기에서 반죽을 꺼내며 물었다.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보면 대답해주시나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있던 3201호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대답해드릴 수 있는 건 해드리죠. 그런데 제가 말이 느린 편이라, 답답할 수 있어요.”
“채식주의자이신가요?”
“음. 아니요.”
“리…….”
“리?”
리뷰는 왜 안 달아줘요?! 라는 말을 꿀꺽 삼켜냈다.
“우리 가게 디저트 먹을 만해요?”
“네.”
대답 참 간결하다. 반죽을 겹겹이 접기 시작했을 때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맛있습니다.”
“혹시 지난번에…… 제가 배달 갔을 때 부담스러우셨나요?”
“부담이라면 어떤……?”
“처음 몽블랑 드렸을 때요. 너무 죄송해서 드린 건데 굳이 돈까지 이체해주셔서 제가 부담스러웠는지 궁금했어요. 여태 다른 서비스는 그냥 받아주셨잖아요. 아!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돼요.”
느리다기보다는 느긋한 어조의 대답이 뚝 끊겼다. 내가 또 실수라도 저지른 건가 싶어 틀에 반죽을 끼워 넣으며 3201호를 쳐다보자 시선이 마주쳤다.
“서비스요?”
“네. 서비스.”
“무슨 서비스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는 걸 보고 나도 똑같이 눈을 깜박이며 줄줄이 읊어줬다. 기억을 못 하려야 못할 수 없을 텐데 맹랑하게 모른 척을 한다. 그렇다면 일일이 짚어주는 수밖에!
“커피라거나 마카롱, 치킨, 블루베리 푸딩, 수제 레몬청 등등?”
“치즈 케익?”
줬던 거 같다. 고개를 끄덕이자.
“윌넛 브라우니, 바크 초콜렛, 수제 캔디, 크로플?”
모두 서비스로 나갔던 것들이다. 다시 한번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많이.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끄덕!
“그거 잘못 온 줄 알고 배달원한테 돌려줬습니다. 서비스였구나…….”
“네?”
“주문한 거 외에 모두 돌려드렸어요. 아, 어제 포스트잇 붙은 쿠키는 받았어요.”
“네?”
“…….”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나는 돌려받은 게 없는데? 믿을 수 없어서 재차 확인했다.
“그, 그러면 혹시 지난번에 로맨스 파티도 돌려보냈나요…?”
“로맨스…… 뭐요?”
“이렇게 하트 모양으로 생겨서, 안에는 구운 아몬드랑 고소한 크림을 가득 채워 넣은…… 분홍색 초콜릿 코팅이 되어있는…… 미니 케익인데.”
“그것도 어플에는 없는 메뉴인가 보죠?”
남자의 미간이 약간 좁혀지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만들어냈으나 어플에 있는 메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메뉴판에도 없는 신메뉴였다고요!”
“아. 언제부터, 판매하나요.”
“……보류됐어요.”
당신이 리뷰를 안 써줘서. 뒷말은 꿀꺽 삼킨 도웅은 로맨스 파티보다 더 중요한 걸 물었다.
“여하간 받은 적도 없고 있으면 배달원한테 돌려줬다고요?”
“네.”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살뜰하게 챙겨줬던 서비스를 배달원에게 돌려줬다는 건 둘째치고 가게에서 음식을 들고 나간 배달원이 다시 돌아온 적은 거의 없었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럼 그게 다 어디 갔을까요……?”
“저야 모르죠. 뱅쇼 한 잔 더 부탁해도 됩니까.”
주방으로 넘어온 남자의 손에 들린 빈 잔에 뱅쇼를 가득 따라줬다. 남은 각설탕을 뱅쇼에 녹이면서 흡족한 미소를 띠는 단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서비스 먹튀…?
“왜…… 그런 눈으로 보시죠.”
“지금 제 눈이 어떤가요.”
“아, 음……. 뱅쇼값은 내고 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뺏어갈까 봐 팔로 잔을 가리는 2년 단골 남자보다 라이더가 더 의심스러웠다. 처음 배달 갔을 때만 하더라도 내용물을 확인하고 샐러드와 베이글을 그대로 반납하지 않았던가.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려면 증거가 필요했다. 라이더가 반납되는 음식을 홀랑 챙겼다는 증거.
“부탁이 있어요.”
“……후룹.”
3201호는 느긋하게 뱅쇼를 마시며 퀭한 눈을 깜박였다.
“주문 들어올 때마다 서비스……, 아니지. 주문 외 상품을 함께 보내드릴 건데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라이더에게 돌려주시겠어요?”
“……후룹.”
“손님은 평소처럼 행동하면 돼요.”
“……후룹.”
“대신 몽블랑 생산량을 늘릴게요.”
눈 깜박이는 거 좀 보라지. 마치 ‘내가 줄 서서 사가면 되는데?’라고 말하는 듯하다.
“요청사항에 몽블랑이라고 적어주면 특별히 배달도 해줄게요.”
“꽤 오랫동안 이용한 가게인데…… 들어 드릴게요.”
취향이 아닌 몽블랑을 만드는 건 여전히 귀찮았지만, 대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필요는 있었다. 파악만 되면 몽블랑을 하루에 여섯 개나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일주일. 다시 돌아온 서비스는 없었다. 단 하나도.
상황에 대해 따져 묻자 라이더는 돌려받은 게 없다며 억울한 목소리를 내었다. 어색하게 굳어진 얼굴에서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단골에게 전화를 걸어도 괜찮은지 시름하고 있을 때 옆에서 모든 자초지종을 들은 영호가 대뜸 가게 전화기를 들었다. 거침없이 열한 자리 숫자를 눌렀는데, 도웅도 잘 알고 있는 번호였다.
로얄 골드 펠리스 3201호.
“예, 디저트 웅입니다. 저희 사장님께서, 음.”
영호의 눈짓에 ‘한 마리는 초콜릿을, 두 마리는 아몬드 다섯 개를 안고 있는 아주 귀엽고 달콤한 곰돌이 쿠키.’라고 설명했더니.
“곰돌이 쿠키 세 마리를 입양 보냈다는데 받으셨는지 해서요. 예. 라이더분에게 돌려보냈다고요? 아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게 통화를 끝낸 영호를 쳐다봤다. 영호는 팔짱을 끼고 라이더를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몰라요? 손님은 그쪽한테 줬다는데?”
“모른다니까요?!”
“모르면 모르는 거지 왜 소리를 지르세요? 예?!”
라이더보다 더 크게 언성을 높이는 영호를 대신해 라이더에게 가까이 다가간 도웅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기. 나는 라이더님이 꿀꺽했다고 의심하지 않아요.”
“사장님이시죠? 저 진짜 아니거든요? 억울해요!”
“단순하게 생각하는 걸 좋아해서 아니라면 아닌 줄 알아요, 나는. 그런데 양쪽에서 둘 다 아니라고만 하니까 곰돌이 셋이서 서로 손잡고 알아서 도망쳤나, 라는 상상까지 들어요…….”
도웅의 눈살이 와락 구겨졌다.
“걔네는 내가 200, 17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노릇하게 구웠는데 어떻게 살아서 도망쳤을까요. 도망치려면, 우선 살아는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정도 온도에서는 사람도 죽을 텐데. 여하간 나는 내 곰돌이를 찾아야겠거든요.”
“…….”
“제가 단순한데 또 이상한 거에 집착이 강해서, 씨씨티비라도 돌려봐야겠어요. 당신은 여기서 바로 오토바이 타고 출발했으니까 곰돌이는 로얄 골드 펠리스에서 실종되었겠죠? 그런데 입주민도 아닌 제가 아파트 씨씨티비를 열람하려면 경찰을 대동해야 할 거 같아요. 라이더님은 아니라고 했으니 그래도 상관없겠죠? 영호야. 경찰서에 전화해 봐.”
경찰 이야기까지 나오자 라이더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 사장님. 굳이…….”
“시간 보상은 해드릴게요. 바쁜 분을 너무 붙잡아두……, 표정이 왜 그래요?”
“굳이, 일을 크게 벌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그거 얼만데요. 제가 그냥 보상을…….”
아니라길래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확신이 섰다. 이 새끼가 가져갔다. 내 곰돌이 세 마리.
“……내 곰돌이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