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희없어
띵동.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이제 부탁은 들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감사해서 손님 몫의 몽블랑은 당분간 계속 만들기로 했어요. 함께 넣어드린 생과일 쥬스는 서비스니까 그냥 받아주세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띵동.
“날씨가 참 좋네요. 점심은 드셨나요? 싱싱한 샐러드도 같이 넣었어요. 괜찮으시면 받아주세요. 드레싱도 직접 만든 거라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아요. 저…… 그런데, 앗. 아닙니다! 그럼 오늘도 힘찬 하루 보내세요!”
띵동.
“이제 슬슬 겨울인가 봐요. 이런 환절기에는 감기 조심하셔야 하는데. 아. 오늘은 꿀배찜을 만들어왔는데 드셔보세요. 감기 예방에 좋아요. 새벽에…… 외출 자제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띵동.
“안녕하세요? 조금 늦게 일어나셨나 봐요. 그럼 새벽에 눈 오는 것도 못 보셨겠다. 아주 잠깐 내렸거든요. 이건 예전에 말씀드린 신메뉴인데 드시고 평가 부탁드려요. 아쉽겠지만 몽블랑은 당분간 판매 자체를 중단할 계획이라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오붓한 하루 보내세요!”
띵동.
“안녕하세요! 혹시 품절 대란템이라고 아시나요? 이제 곧 쌓일 눈을 대비해서 오리 눈사람 집게를 선물로 가져왔어요. 이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그리고 신메뉴는……, 조금 더 고민해보기로 했어요. 대신 이 마카롱은 다를 거예요. 드셔보시고 후기 부탁드릴게요?”
띵동.
“안녕하……세요? 잠 못 주무셨어요? 굉장히 피곤해 보이시네요. 서비스로 그린 티 롤케익 챙겨왔는데 숙면에 도움 되는 차도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 커피, 괜찮으신 거 맞죠?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손님께서는 현명하게 대처하실 거라 믿어요. 포근한 하루 되세요!”
띵동.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올해도 집에서 보내시나 봐요. 그런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매번 이 많은 디저트를 혼자 다 드시나 해서요. 아~ 단 거 좋아하시는구나.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어요. 하하, 늘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서비스에요. 해피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띵동.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정 때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덧 디저트 웅이 개업한 지 3년째 되는 날이라서 단골 특별 이벤트 중이거든요. 설문 조사를 해주시면 무려 음료 한 잔이 무료! 아……. 괜찮으시다고요? 예에…. 화과자는 서비스입니다. 해피뉴이어!”
묵직한 종이백을 받아 들고 집안으로 들어선 어희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서너 달 동안 계속해서 사장이 직접 배달을 오고 있었는데, 부담도 이런 부담이 없다. 장황한 인사말부터 시작해, 신경이 쓰일 만큼 안겨주는 서비스는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종이백에서 주섬주섬 커피와 디저트를 꺼내, 진한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마셨다.
디저트 ㅇㅜㅇ. 2년, 아니 방금 사장의 말대로라면 3주년이라고 했으니 3년째 이용하고 있는 가게는 마음에 쏙 든다.
비가 주룩주룩 오던 첫 방문 때와 똑같이 그의 디저트는 늘 기분 색을 띠었고 맛도 좋다. 고소하면서 풍미 깊은 원두나 달짝지근하며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디저트는 모두 만족스럽다. 심지어 이곳은 얼음 모양까지 깨진 거 하나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너무 부담스러웠다.
애써 모른 척했지만, 새벽에 재료를 들고 지나칠 때마다 가게 창문 너머로 빤히 쳐다보는 사장과 사장의 감정. 과도한 서비스. 서비스만큼이나 과한 인사치레 등등…….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 짜증 나는 건 단걸 거르는 날은 반드시 하루가 재수 없는 징크스를 가진 어희 자신이었다. 게다가 디저트가 너무 맛있어서 가게를 옮기지도 못했다. 대체 그 사장의 손에는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건지 뭘 만들든 늘 최고다. 뱅쇼부터 샐러드, 꿀배찜 기타 다른 음식까지 심상치 않다.
“가게를 옮겨야 하나…….”
약 1년 전에는 배달 실수가 너무 잦았다. 주문한 음식이 아닌 다른 집 음식까지 섞여 있어서 몇 번 돌려주다가 귀찮아서 아예 다른 가게에 주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높아져 버린 기준치는 다른 가게를 허용하지 않았다.
적당히 맛없어도 어느 정도 타협하겠는데, 상태가 심각했다. 결국 패배자처럼 디저트 ㅇㅜㅇ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옮겨……?”
행동으로 실천했으면 벌써 서른 번은 옮겼다. 늘 말로만 옮긴다, 어쩐다 해놓고 오늘도 이렇게 디저트 웅에서 시키지 않았는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서비스로 받은 화과자를 집어 먹은 어희는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이런 미친.”
화과자까지 맛있다.
왜 맛있는 거야. 가게도 못 옮기게.
“하. 미치겠네.”
한숨을 내쉬며 죽을상으로 화과자를 연달아 먹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앙금은 어디서 구한 건지 아주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모양도 맛도 나무랄 데 없이 진짜…… 맛있다. 사장이 만든 게 확실한 이 화과자도 희망 비슷한 색을 띠고 있었다.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근래 밤샘 작업이 많아서 가뜩이나 수면 시간도 부족한데 사장까지 앞에서 부담을 주니까 죽을 맛이다. 당 징크스를 앓고 있는 어희는 애용하는 디저트 가게와 사이가 멀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알아야겠다. 사장이 자신에게 뭘 원하고 있는지.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의 부탁이면 들어준다. 도저히 들어주지 못할 부탁이면 이사 가야겠다. 새집에서 새 아이디로 배달 주문하면 된다. 디저트 가게를 포기하지 못하고 이사까지 염두에 두는 게 구질구질하다는 자각은 있었으나 어쩔 수 없다. 금은보화만큼이나 소중한 감정이다.
“음. 달콤해.”
기분 좋게 화과자를 먹으며 내일 사장에게 할 질문을 몇 가지 정리했다.
다음날. 어희는 어플로 주문을 끝마친 후 소파에 앉아 얌전히 사장을 기다렸다.
주문 접수부터 15분. 조금 늦어지면 20분. 평균 배달 시간이었다. 맛도 포장도 완벽한데 배달 속도까지 완벽하다. 깍지 낀 손을 배에 올려두고 짧은 낮잠을 잤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동 현관 호출 벨이 울렸고 잠에서 깬 어희는 문을 열어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까지 신발장 근처를 서성이며 어제 미리 준비해 둔 질문을 상기했다.
띵동.
왔다.
어희는 5초 동안 심호흡을 한 뒤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밝게 인사하려는 사장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시간 되시면 잠깐 안으로 들어오실래요?”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 사양 않고 냅다 들어올 줄 알았건만 사장은 반죽처럼 말랑한 얼굴로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왜……, 왜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얼굴에 얹어진 감정의 색은 약간의 불안.
잘못. 굳이 잘못한 게 있냐고 묻는다면 없다. 보통 때보다 친절하고 부담스러울 뿐이지 그걸 잘못이라고 말하기에는 오류가 있었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
“어…….”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다.
왜?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을 텐데. 내 착각이었나?
그렇다면 질문 하나를 지워야 한다.
“그러면, 들어가기 전에 잠깐 직원한테 문자 한 통 보낼게요. 늦게 오면 걱정할 거 같거든요.”
“예.”
들어와서 보내도 충분할 텐데 사장은 굳이, 정말 굳이 앞에 서서 장문의 메시지를 찍어냈다.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긴장을 한 거 같기도 하고……, 복도가 추워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손이며 귀며 코끝까지 빨갰다.
“아. 다 됐어요. 그러면 실례할게요.”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사장이 들어왔다. 내 집으로.
집에 누구를 들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마법의 손을 가진 사장이라면 괜찮다. 지난번 가게 앞에서 기다렸을 때도 느낀 건데 종일 디저트를 만들어서 그런지 온몸에서 단내를 폴폴 풍겼다.
“여기 앉으세요. 아. 뭐 마실 거라도 가져다드려야 하나.”
어희의 말에 사장이 소파에 앉았다. 어희는 사장이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 둔 손을 힐끔 쳐다봤다.
저 손으로 디저트를 만든다 이거지.
깔끔하게 정돈된 손톱도 마음에 든다. 흰 손에 어울리지 않는 흉터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오븐에 데인 상처 같았다.
“많이 마시고 와서 괜찮아요. 바로 물어보세요.”
종이 백에서 커피를 꺼내 빨대를 꽂았다. 사장은 안 마셔도 나는 좀 마셔야겠다. 피곤으로 돌아가지 않는 뻑뻑한 정신에 카페인칠을 해야 했다. 쭉, 빨아들이고 나서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맛있어.
“몽블랑은 언제 판매됩니까.”
“음. 아마 올해 가을 즈음? 생각하고 있어요. 그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고요.”
“예전에 갖다주신 신메뉴는 판매 예정일이 어떻게 되나요. 로맨스 파티?”
“다음 달 발렌타인데이요.”
“이건 진짜 중요한 질문인데, 저기……. 왜 자꾸 사장님이 오시나요…….”
“네?”
“그러니까, 배달이요. 계속 사장님이 직접 오시는 이유가 궁금해서요.”
처음으로 대답이 끊겼다.
아직 온기를 품고 있는 치즈 크루아상을 손으로 뜯어 먹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어……. 3주년 단골손님은 특별 서비스 대상이라서요.”
“계속 서비스를 챙겨주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네에.”
“다행이에요. 저는 사장님이 뭔가 바라는 거라도 있는 줄 알았어요.”
“네?!”
안심하려는 찰나 화들짝 놀라는 사장의 모습에 크루아상을 뜯던 손을 멈췄다.
말끔한 눈매 안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초조하게 무릎에 손을 닦는 행동이 허점이라도 찔린 모습이다. 덩달아 감정도 조금은 초조한 색으로 변했다.
“으음. 저기, 사장님. 나한테 할 말, 없습니까? 부탁할 거나?”
“제, 제, 제가요? 에, 헤이~ 없어요.”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다.
뜨뜻한 크루아상을 내려놓고 커피 한 모금을 충전했다.
“사장님.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주세요. 저 요새 부담스러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잡니다.”
일과 불면증의 콜라보였으나 어희는 가증스럽게 눈가를 비볐다.
그러자 사장이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저도 손님한테 여쭤봐도 될까요?”
“네.”
“실례되는 질문인데 저 너무 무서워서…….”
무서워?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인 집주인도 느끼지 않는 공포를 어째서 디저트 집 사장이 느끼고 있는 걸까…….
어희는 삐뚜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지,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
사장은 정말 뜬금없이 직업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