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받아 보지 못한 질문인 만큼 간단한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느리게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다, 의도하지 않은 퉁명스러운 답이 튀어나왔다.
“내 직업은 왜요.”
“새, 새벽마다 수상하게 큰 가방 옮기시는 거 봤거든요. 매일 집에 있으시고 밤에 움직이시는 거 같은데, 어둠의 세계에 몸담고 계시나 해서요…….”
어둠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설마하니 불법적인 일을 하며 피 묻은 돈을 버는,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집에 콕 박혀서 다른 사람과 말을 섞을 일이 드문 주제에 객관성을 따지기는 모호하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내 얼굴이 험악한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 테니까.
어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답했다.
“미니어처 만듭니다.”
“미니어처요? 제가 알고 있는 그 미니어처?”
“사장님이 알고 계신 미니어처가 매우 작고 아기자기한 거라면 맞겠지.”
영 믿기 어려워하는 사장을 두고 작업실로 들어가 완성해 놓은 파리의 토끼끼를 들고 나왔다.
“헐. 개귀여워.”
혼잣말인 게 분명한 사장의 말을 흘려듣고 탁자에 올려놨다.
“이런 거, 만듭니다.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건 재료 사러 가는 거예요. 시장이 새벽에만 열려서.”
“와 대박. 저 더 구경해도 되나요?”
방금까지 무섭다며 눈치를 보던 사장은 파리의 토끼끼를 보더니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주 반짝반짝하게.
작업실에 타인을 들인 적은 없었기에 작은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걸 들어줘야 본인도 원하는 걸 말하겠지.
“들어와요.”
작업실 문을 열어주자 조심히 발을 들여놓는 사장을 보고 어희는 뒤늦게 아차 싶었다.
따라다니면서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나? 이건 이런 작품이고 저건 저런 작품이다, 같이? 그런 데는 소질이 없는데.
뒤따라 들어와 혼자 발을 동동 굴렀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미니어처 하우스는 모두 어희의 마음을 고스란히 녹여낸 작품이었다.
“와. 우와. 미쳤다.”
진짜 미친 건 당신이 만드는 디저트야.
어희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와, 엄청난데……. 이거 사탕괴물 맞죠? 어렸을 때 재밌게 봤던 기억 나요.”
사탕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을 잡아서 사탕만 먹게 해주는데 왜 괴물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모를 애니메이션을 가리킨 사장의 감정은 봄처럼 물들었다. 반가움, 설렘이 섞인 색으로.
“운 좋게 콜라보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와. 진짜 멋있다. 여기 조명에 불도 들어와요?”
보고 싶다면 보여드려야지.
작업실 불을 끄고 미니어처에 달린 작은 버튼을 누르자 아늑한 주황색 조명이 켜졌다.
“우와. 저 너무 감탄만 하는 거 같은데 진짜 감탄밖에 안 나와요.”
나는 매일 당신이 내린 커피를 마시고 감탄하는데 뭘.
역시나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없었다. 연신 감탄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통통 튀는 감정 색이 어렸을 적 입에 달고 살았던 팝핀 캔디 같았다.
“여기 있는 캐릭터는 손님이 만든 캐릭터예요? 이름이 뭐예요?”
“토끼끼요.”
제과점 토끼끼, 오후의 토끼끼, 토끼끼 정글, 대저택을 일시불로 사들인 토끼끼, 크리스마스21 산타 주머니를 훔치는 토끼끼. 순서대로 조명을 켜줬더니 작업실 안이 금세 밝아졌다.
금처럼 주황색, 꽃처럼 연분홍색 조명 때문인지 작업실 자체가 거대한 트리처럼 느껴졌다. 나중에 트리에 갇힌 토끼끼도 만들어야지.
“하나같이 귀여운데 엄청 디테일해서 되게 멋있어요. 와……. 우리 단골손님 무척 멋진 일을 하고 계셨구나.”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쏟아지는 칭찬에 어희는 어색하고 수줍게 서 있었다. 기분이 좋긴 한데, 뭔가 아주 중요한 걸 잊은 찝찝한 기분도 함께여서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어? 이거 우리 가게랑 비슷하네요?”
아차차!
일일이 설명하는 일보다 디저트 ㅇㅜㅇ 미니어처를 해명하는 게 더 큰 일이었다. 매일 늦게 퇴근하는 거 같던데 피곤한 기색 하나 없는 말간 눈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절로 긴장이 돼서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아. 낯가리는 주제에 작업실에 괜히 들였다.
“그게……. 전에 갔을 때 가게 분위기가 좋길래.”
“흐음. 저도 손님으로 꽉 찬 가게보다 새벽이 더 좋긴 해요.”
“기억에 남아서 취미로 만든 거예요. 판매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셨으면 음, 죄송하고요.”
“어? 안 팔아요? 그러면 이거 제가 사면 안 되나요?”
이걸 왜 사?
요즘 미니어처가 아무리 대중화되었다 하더라도 어희가 만드는 건 매니아층을 위한 수집품이었다. 크기부터 디테일, 디자인까지. 같은 작품은 세 개 이상 만들지 않는 어희였기에 토끼끼는 미니어처 세계에서 네임밸류가 상당히 높았다.
“조명 켜봐도 돼요?”
대신 조명을 켜주자 오픈 키친이 환해졌다. 돌연 사장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저예요? 너무 귀여운데.”
오픈 키친 안에는 혼자 빵 반죽을 하는 토끼끼가 있었다.
“제가 사고 싶어요.”
“가게에 두기에는 고가일 텐데요.”
“헉. 그렇게 비싼가요? 가게에 두기보다는 집에 두고 싶어서요.”
“이 정도면 못 해도…… 사오백은 주셔야 되는데요.”
짬짬이 시간 날 때 취미로 만든 거라 이백, 아니 백만 원이면 충분했다. 그다지 공을 들이지도 않았고. 그런데 몽블랑 가격을 열 배로 후려친 게 생각나 답지 않게 농담을 던진 거였는데.
“그 정도면 살 수 있어요!”
잠시 잊고 있었다. 매일 내 집으로 배달을 오는 사람은 건물 한 채는 충분히 세웠을, 잘나가는 디저트 가게의 사장이라는 걸.
어희는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팔십……, 아니 오십이면 됩니다.”
지인 할인, 새해 깜짝 할인, 선예약 할인, 군필자 할인까지 붙여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생전 할인가로 팔려 본 적 없는 토끼끼는 현장에서 50퍼센트나 할인되었다.
“아직 완성 전이니까……. 완성되면 그때, 가져다드릴게요.”
“와! 고마워요. 입금은 바로 해드릴게요. 몽블랑 계좌로 보내드리면 되죠?”
몽블랑 계좌? 몽블랑 가격을 보낸 계좌를 말하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어희는 돈보다 중요한 걸 깨달았다.
로맨스 파티. 디저트 ㅇㅜㅇ의 신메뉴.
표면에 부드러운 초콜릿이 코팅된 고소함과 달콤함, 포근함을 모두 잡은. 입안을 로맨스가 휘젓는, 다다음 주에나 팔리는 그 신메뉴.
“잠깐. 로맨스 파티는 배달 주문 가능인가요?”
“갑자기요?”
“네. 저한테 중요한 문제에요.”
“으음. 배달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3년 단골손님이 원하신다면 특별히, 정말로 특별히 고려해볼게요.”
‘특별히’를 강조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힐끔거리며 은근히 묘한 얼굴을 한 사장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용기를 갖고 원한다고 말해볼까.
시선을 내렸다가 눈이 마주쳐버리는 바람에 황급히 천장을 노려봤다. 저 반짝이는 눈은 역시 부담스럽다.
“원하시나요?”
이제는 강요까지 한다. 산타 집에서 선물을 훔치는 토끼끼에 시선을 고정했다.
“네. 배달해주세요. 그리고 신메뉴 한 번 더 먹어 볼 수는 없습니까?”
“…….”
출시도 하지 않은 메뉴를 더 먹고 싶다는 건 역시 뻔뻔한 요구였나?
“사장님 말대로 저 3년 단골입니다. 물론 맨입으로 먹고 싶다고 억지 부리는 건 아니고요.”
“그럼요……?”
또다. 또 무언가를 기대하는 색.
“디저트 하우스 무료로 드릴게요.”
로맨스 파티 할인. 전액 무료.
“설마 그게 다인가요…….”
이걸 원하는 게 아니었나?
어희는 문득 작업실에 들어오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 사장이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가서 이야기할까요?”
작업실에 사장을 그대로 두고 먼저 빠져나온 어희는 황급히 치즈 크루아상을 뜯어 먹었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디저트가 들어가니까 흥분이 좀 가라앉았다.
흥분? 아니. 부담이 덜했다.
“우선 정리할게요. 디저트 미니어처, 무료로 드릴 테니까 로맨스 파티, 내일 또 주시면 안 됩니까? 가격 알려주시면 입금할게요.”
“아아……. 돈이요…….”
“물론 돈보다 중요한 게, 있을 거라 생각해요.”
돈보다 중요한 거. 또 또 눈 반짝이는 거 봐.
사장이 내게 원하는 건 돈이 아니다. 그렇다고 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미니어처를 원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 뭘까. 대체 뭘까. 내 직업도 오늘 처음 안 사장이 나한테 원하는 거…….
“로맨스……?”
미친. 사장이 나를 좋아하나 보다. 같은 남자인 나를. 좋아하나 보다.
왜? 그럴 만한 교류가 있었던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제야 눈치챈 게 더 이상했다. 일부러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주문 외 상품을 넣어 귀찮음을 유발한다거나, 몽블랑을 무료로 준다거나……, 한정 판매하는 상품인데 내 몫을 따로 만들어 준다. 심지어 직접 배달까지 한다. 바쁘신 사장님께서.
이렇게 특별 대우까지 받을 정도로 호의적인데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
그야 이유는 간단하다. 단내나 폴폴 풍기는 미친 손맛 디저트 집의 친절한 사장은 나와 같은 성별인 남성이기 때문에 아예 연애 대상에 포함될 수 없었다. 어쩌면 같은 성별이고 자시고 간에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 적이 없어서 늦게 눈치를 챘던 걸지도 모른다.
나를 왜…….
어희는 맞은편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았다.
징그럽게 키나 크고 매일 이어지는 밤샘 작업으로 깊어진 그윽한 눈매는 별 볼 일 없다. 입에 달고 사는 칼로리 높은 디저트를 떼어내기 위해 열심히 운동해봤자 우락부락한 근육도 얻지 못했다. 자질구레한 근육은 남자다움이 없지 않나? 그렇다고 빌어먹게 많은 돈을 내세우기에는 눈앞의 사장도 돈이 없진 않다.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을지도.
대 혼란을 겪고 있는 와중에 남의 속내도 모르고 사장은 주절주절 떠들고 있었다. 디저트 웅이 요거요 랭킹을 꽉 잡고 있다느니 어떤 잡지사에서는 인터뷰 요청을 했다느니.
열심히 본인을 어필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약간 유해지긴 한다. 저 따수운 감정 색 좀 보라지. 설렘으로 아주 가득하다. 보는 사람을 하여금 가슴 설레는 감정 외에도 솔직히……, 잘생기긴 했잖아. 그래서 더 불편하다. 내가 제일 불편한 게 잘생긴 사람인데. 그 잘생긴 사람이 디저트까지 잘 만들어? 금상첨화……. 아.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혼란스러워.
어희는 손을 내젓고 커피를 물 마시듯 마셨다. 평소처럼 향을 음미하지 않았다.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없던 걸로……. 아니. 있던 걸로 합시다.”
“네? 로맨스 파티요, 아니면 미니어처 구매요?”
“둘 다. 일단 사장님이 원하는 게 뭔지 알 거 같으니까……, 많이 고민해보겠습니다.”
“정말요? 제가 뭘 원하는지, 알아요?”
민들레 꽃씨가 날리는 것처럼, 설렘 가득한 감정 색이 사장 주변으로 동동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