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딱딱한 얼굴에서 그런 발음이 나올 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도웅이 몰래 히죽대자 어희가 불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하지만 표정과 달리 어조는 자상함이 묻어났다. 양고기 향에 괴로워하는 사람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크 흠흠. 아무것도 아니에요. 해물이라도 드세요.”
어희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해물 꼬치를 잘 먹었다. 도웅은 흡족한 얼굴로 어희를 바라봤다.
옳지. 잘 먹네. 거봐. 고작 양고기 하나로 기죽기에는 일렀잖아.
도웅은 금세 기세등등해져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도웅의 옆 접시에 노릇하게 구워진 양꼬치 세 개를 내려놓은 어희는 빈 물잔에 물까지 채워주는 세심함을 보였다.
“그만 지켜보고 사장님도 드시죠.”
“먹고 있어요.”
양꼬치는 모두 자신의 몫이 되어버렸으니 도웅은 양 갈비 대신 해물 꼬치와 다른 요리를 추가 주문했다. 다행히 어희는 그 음식들은 곧잘 먹었다.
다사다난해도 어쨌든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끝냈다. 계산대 앞에 선 도웅이 지갑을 꺼내려는데 한발 앞서 어희가 카드를 내밀었다.
“어? 이걸로 계산해주세요.”
도웅은 황급히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어희는 직원에게 카드를 밀어 넣었다.
“오늘 기다리게 했으니 제가 살게요.”
“양고기 먹지도 못한 양반이 사긴 뭘 사요? 앗. 양반은 저도 모르게 내적 친밀도가 올라가서 막 나온 말이에요.”
어떻게든 단골의 결제를 막으려는 찰나 직원이 가차 없이 어희의 카드를 긁어버렸다. 드르륵하고 영수증까지 출력되어 나오는 걸 보자 도웅은 심통이 났다. 허무함은 둘째치고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다.
“제가 사려 했어요.”
가게를 나와서도 영 마음이 찜찜해 도웅은 괜히 말을 덧붙였다. 혹 투정 부리는 걸로 보일세라 삐쭉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누가 계산을 했는지보다는 같이 저녁 식사를 한 게 중요하죠.”
“그렇긴 해도…….”
토를 달고 싶었으나 맞는 말인지라 반박할 거리가 없다. 도웅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감춘 어희를 힐끔 쳐다봤다. 어희가 물끄러미 눈을 마주쳤다. 도웅은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을 보았다. 그러나 한 블록을 걷는 내내 어희는 도웅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여태 모르고 걸었으면 신경 쓰이지 않았을 텐데 한 번 눈빛 교환을 한 터라 집요하고 꾸준한 시선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나…, 아고. 조심해요.”
앞을 보고 걸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엉뚱한 데 시선을 두고 걷느라 하마터면 과일 트럭에 부딪칠 뻔한 어희의 팔을 도웅이 잡아당겼다.
“조심, 조심.”
그제야 과일 트럭을 본 어희는 놀란 눈초리가 되었다. 많이 놀랐는지 앞을 봤다가, 붙잡혔던 팔을 내려다보기를 반복했다. 이후 별다른 말 없이 묵묵히 길을 걷는 어희의 심정이 궁금해졌다. 저 샤프한 머리통에 단추가 달려 있었더라면 도웅은 종일 그의 생각을 뒤적여 봤을 게 분명하다.
“어희 씨.”
“…예?”
그는 반 박자 늦은 대꾸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도웅은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고 히죽이며 장난기를 가득 담아 말을 던졌다.
“목숨을 빚진 기분은 어떤 기분인가요?”
거창하게 목숨이랄 것도 없다. 과일 트럭은 시동이 꺼져 있었고 부딪쳐 봤자 이마만 콩! 박고 끝날 수준이었다.
놀림 반 순수한 호기심 반으로 만들어진 질문에 어희는 “음.”하고 작게 목에서 소리를 내더니 제법 깊이 고민했다. 그러고는.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기분입니다. 커피 사주세요.”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커피를 사달라 요구한다.
놓친 밥 계산 타이밍을 아쉬워하는 나를 배려해주는 건가?
“투 샷 아이스 아메리카노….”
바람결에 스치듯 작은 어희의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고 들은 도웅은 확신했다. 배려가 아니라 정말로 마시고 싶어서 사달라는 거구나.
“그럼 내 가게 갈래요? 아니면 다른 카페?”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홉 시 사십 분. 영업은 끝나고 직원은 마감으로 분주할 시간이었다.
“사장님 카페로 가도 괜찮으면, 거기로 가죠.”
“그래요, 그럼.”
두 사람은 로얄 골드 펠리스를 가로질러서 정문으로 함께 걸었다.
시간이 늦었음에도 아파트 단지에는 산책하는 주민이 제법 눈에 띄었다. 고급 아파트라 그런지 몰라도 산책로는 잘 꾸며져 있었고 무엇보다 어둡지 않았다. 일정 간격으로 서 있는 조경 등과 기다란 야외 등이 환하게 아파트 단지를 비추었다.
이게 바로 관리비의 힘일까. 도웅은 혼자 살면서 큰 집은 필요 없다는 주의였기에 적당한 투룸에서 적당히 잘 지내는 중인데 잘 꾸며진 조경의 산책로는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
“어희 씨는 좋아하는 게 뭐에요? 음식 취향이라거나 취미 같은 거? 휴일에는 보통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흔히 하는 평범한 질문에도 어희는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장님은?”
그렇게 어려운 걸 물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어려워하던 어희는 결국 같은 질문을 도웅에게 떠넘겼다.
“싫어하는 걸 찾는 게 더 쉬울 만큼 다 좋아해요. 음식이든 노래든 안 가려요. 취미는 베이킹? 휴일은 있어 본적이 드물어서. 보통은 다음 출근을 준비하거나 새 메뉴 구상을 하곤 하죠.”
막힘 없이 술술 정보를 늘어놓는 도웅을 보며 어희는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질문 바꿔볼게요. 한식이 좋아요, 양식이 좋아요?”
“…요리사에 따라 다릅니다.”
“같은 요리사면요?”
“요리사가 제일 자신 있는 요리가 좋습니다.”
“둘 다 똑같이 자신 있으면요?”
“…한식?”
확신 없이 끝이 올라간 어조로 대꾸한 어희는 이내 둘 다 좋지도 싫지도 않다고 정정했다.
한국인이 한식에 대해서 이렇게 덤덤할 수 있다니. 다른 의미로 놀라운 남자가 아닌가.
“짜장면이 좋아요, 짬뽕이 좋아요?”
“같은 사람이 만든 겁니까?”
“그렇겠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
웬만한 사람이라면 진즉 답답해서 입을 다물었을 테지만, 도웅은 질리지도 않는지 꾸준히 물었다.
“영화 좋아해요?”
“아뇨.”
“미니어처는 언제부터 만들었어요?”
“제대로 만든 건 고등학생일 때?”
“휴일에는 뭐해요?”
“집에서 책 읽거나 작품 구상합니다.”
“밖에는 안 나가요?”
“웬만하면.”
산책로를 지나 정문을 나오는 내내 비슷한 질문과 비슷한 대답이 오갔다. 어희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더욱 모르겠다.
“음.”
마음 한구석 찜찜함이 쌓인 도웅은 질문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잘만 걷고 있는 어희의 단단한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툭, 툭 두들겼다.
영화도 싫어하고 먹는 거에도 그다지 미련이 없으며 집에서만 생활하는 당신. 살아있는 사람 맞아요?
옆에서 주먹질을 하든, 안마를 하든 어희는 앞만 보고 걸었다. 이따금 시선을 내리는 일은 있어도 고개를 돌린다거나 위로 향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이 설정값대로 움직이는 로봇 같기도 했다. 주변에 관심이 없어 보여 더욱 그렇게 보였던 걸지도 모른다.
“아~ 알겠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어떤 점이 신경 쓰이는지 가늠하지 못해, 찜찜함만 갖고 있던 도웅은 그제야 알아채고 시원하게 웃었다.
“친구 없죠?”
굉장히 무례한 말을 악의 없이 내뱉었다.
집에만 있으니 친구가 없지!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친구를 만들기 싫어서 집에만 있는 걸지도? 오늘 새벽 뉴스에서 대한민국 국민 중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31퍼센트라던데, 어쩌면 어희도 그 31퍼센트에 속해있을지도 모른다.
신경 쓰였던 원인을 찾아내자 앓던 이가 빠진 거처럼 속이 다 시원하다.
“아. 욕은 아니에요. 요즘 세상에 친구 없는 게 흠인가?”
대꾸가 없는 어희가 오해할세라 도웅은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친구 몇 없어요, 유학 갔거든요. 물론 고등학교 동창회 나오라고 연락이 오긴 하는데, 바쁘기도 하고 별로 친한 놈도 없어서 안 가요. 오랜만이라는 연락도 일일이 신경 쓰기 귀찮아서 핸드폰 번호까지 바꿨다니까요? 하하하.”
“…….”
아파트 단지 산책로를 세 바퀴나 돌았더니 이미 카페는 문이 닫혀있었다. 도웅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꽂아 넣고 돌리며 “잘 맞는 친구는 한두 명이면 충분하죠.”라고 말했다가 왠지 한두 명도 없을 거 같아서 “아예 없어도 상관없고.” 말을 정정했다.
“들어와요. 오늘이 두 번째네요. 아, 오픈 전에도 오셨으니 세 번째인가요?”
“아뇨. 네 번째.”
“어떻게 네 번……, 아.”
미니어처를 들고 와서 고백했었지, 참.
민망함에 겸연쩍은 표정이 절로 지어졌다. 뒤따라 가게로 들어온 어희는 기억을 되짚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작년 말에 고백하러 왔잖습니까.”
여느 때와 같은 어조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그새 까먹었냐, 꾸짖는 것처럼 들려 도웅은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까먹지 않았다, 반박하기도 민망하다.
지난번처럼 오픈 키친 앞의 바 형식 테이블에 앉은 어희는 코트를 벗어 왼편 의자에 걸쳐놨다.
“아메리카노 맞죠? 아이스?”
“예. 투 샷으로 부탁드립니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어희는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도웅은 그런 어희를 구경하며 잘 정돈된 커피머신을 켜고 갈린 원두를 받았다.
영업이 끝난 카페의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는 어희와 잘 어울렸다. 검은 목티와 목젖 아래에 검지를 넣은 어희는 퇴근 후 넥타이를 느슨하게 푸는 직장인처럼 가볍게 목 아래를 문질렀다.
“마셔요.”
어희가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내주고 도웅은 페퍼민트 티를 들고 그의 오른편에 앉았다.
“고등학생부터 미니어처를 만들었으면 부모님이 되게 자랑스러워하셨겠어요. 나는 고딩 때 놀기 바빴는데.”
“음.”
빨대를 손가락으로 옆으로 민 어희는 커피를 벌컥 세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제 부모님은 싫어했습니다.”
왜요? 이유를 물어볼 거를 예상했다는 양 뒷말이 이어졌다.
“학교를 안 갔거든요.”
“아….”
위로에 소질이 없는 도웅은 무슨 사정인지 캐묻기보다는 그저 그렇구나, 여기기로 했다. 은은하게 입안에 퍼지는 페퍼민트 향이 시원하면서도 상쾌해서 머금고 있으려니까.
“결국 출결이 모자라서 고등학교도 졸업 못 했습니다.”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