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90)

외국인에게 간식도 사주고 차비까지 쥐여주다니.

한껏 축제를 즐기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도웅은 즉시 빌린 돈을 이체해주었다.

“그럼 잘 해결된 거 아닙니까?”

“결과는 좋았는데 막막함이 떠올라서 긴장됐나 봐요. 자요, 손.”

가슴이 떨리는 이유를 얼버무린 도웅이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희고 큰 손이 부드럽게 감쌌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악력이 느껴졌다.

“…….”

“…….”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악수의 구색을 갖추려 도웅은 마주 잡은 손을 서먹하게 위, 아래로 흔들었다.

“진짜 가야겠어요. 이러다 붕어빵 다 팔리겠네.”

오는 길에 힐끔 봤는데 붕어빵이 몇 개 남지 않았다. 심부름도 제대로 못하면 사장의 위엄이 하락할 게 분명하다.

“도웅 씨.”

그런데 가려면 이 손을 놔야 할 텐데 왠지 놓기가 싫다. 혹시 축제 날 어희가 내 지갑을 훔쳐간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악수를 위해 맞잡은 손의 악력은 이미 악수의 기준을 넘어섰다. 손에 땀이 밸 거 같이 서로 꽉 잡고 있었다. 어희는 특유의 나긋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붕어빵은 새로 만든 게 제일 맛있습니다. 다 팔릴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 가요.”

기다릴 거면 붕어빵 노점 앞에서 기다리는 게 제일 베스트라는 걸 알면서도 도웅은 설득당해버렸다.

“음. 앞으로 십 분 정도만 기다려볼게요.”

알면서도.

다 사정이 있음에도 남자 둘이서 붙잡은 손을 보기도 민망하고 괜히 어희를 쳐다보면 눈까지 마주칠 거 같아 더 민망하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시선이 봉착한 곳은 어희의 가슴 중앙부였다.

지난번 곰돌이 같은 극세사 잠옷은 어디 뒀는지 오늘은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반소매 검은 티를 입고 있었다.

검은 옷에 대조된 어희의 피부는 더욱 하얗게 보였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다른 손으로 목덜미를 쓸었다. 새끼손가락에 헬멧 특유의 딱딱한 플라스틱 감촉이 닿았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삼 분? 오 분 정도 되었으려나.

어희의 가슴이 시계를 보는 듯 슬쩍 움직였다. 그리고는 살짝 팽창했다가 가라앉았다.

“십 오 분. 이제 가셔야겠죠.”

손 씻고 가라며 집안으로 끌고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뭉그적거렸다. 지금 안 놓으면 십오 분이고 삼십 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쭉 잡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요.”

인사와 함께 먼저 손에서 힘을 빼자 어희도 아쉬움을 남기고 손을 놨다.

왼쪽 신발은 옆으로 눕혀 있었고 오른쪽 신발은 아예 뒤집혀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이렇게 급박한 신발 벗기는 처음이었다. 제대로 정리를 하고 발을 넣었다. 구두를 신으며 욕실 문 옆에 놓인 디저트 웅 종이 백을 발견하고서 눈을 크게 떴다.

아차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 어희 씨!”

당황한 나머지 이름을 크게 부르자 배웅하려던 어희가 눈에 띄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거 돌려줘요. 다시 갖다 드릴게요.”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가. 카페에 로스팅 기계까지 들일 정도로 지극 정성이었다. 그런 노력이 이렇게 어이없게 허물어질 줄은 몰랐다.

“왜요?”

영문을 모르고 종이 백을 가져오는 어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음 다 녹았겠다!”

비싼 제빙기에서 나온 얼음인 만큼 빨리 녹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최대한 최고의 얼음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야 만족한 어희가 리뷰를 써주든 뭘 하든 할 게 아닌가.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안심시켜주기 위해 얼음 잔을 든 어희다. 그러나 도웅은 보고야 말았다. 투명한 플라스틱 잔 아래에 깔린, 1mm도 안 되는 물기를.

“얼른, 얼른 줘요. 금방 새로 가져올 테니까.”

이십 분, 아니 십오 분이면 충분하다. 얼음 선별사 자격증이 있다면 이미 취득하고도 남았을 도웅이 뻗은 손에 적당한 온기가 잡혔다.

“1층까지 배웅해드릴게요.”

“아니…….”

신발장 한쪽에 놓인 슬리퍼를 신은 어희가 현관문을 열었다. 얼떨결에 디저트가 든 종이 백을 두고 나오게 된 도웅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현관문을 힐끔거렸다.

보지 말라는 양 잡힌 손이 꽉 붙잡혔다가, 느슨해지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에 타고 나서도 전전긍긍, 마음이 편치 않다.

차라리 몰래 가져올까? 

서비스인 척하면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을 거 같다.

“얼음이 녹았든 케익이 뭉개졌든, 괜찮으니까 또 가져오지 마세요.”

생각을 들킨 기분이다. 아니, 들켰다.

천천히 내려가는 층수를 보며 어희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도웅 씨 바쁘잖습니까. 저도 바쁘고.”

바쁜 거 맞았네! 

어제 흑미 빵 먹으면서 안 바쁜 척하더니 사실은 바쁜 모양이다.

비교적 한가하다고 할 수 있는 도웅은 어희를 대신해서 책임지고 최고의 얼음을 구해오겠다, 자신감에 찬 말을 꺼내려 할 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다음 어희둥둥, 기대할게요. 조심히 가요.”

공동 현관문을 나서자 도웅은 손이 허전해졌음을 느꼈다.

어쩌다 보니 예상보다 악수가 길어졌고 어쩌다 보니 1층까지 나란히 손을 잡고 내려왔다.

마음이 어수선하다. 전동 킥보드에 타고서 슬쩍 돌아봤더니 어희와 눈이 마주쳐 홱 앞을 똑바로 주시했다.

운전 중에 한눈을 팔다니. 위험하다, 위험해. 대로변에 있는 붕어빵 노점에 들려 팥과 슈크림 붕어빵을 종류별로 삼만 원어치 포장했다.

갓 만들어진 붕어빵 봉지를 킥보드 손잡이에 걸어 카페로 돌아왔다.

직원과 오순도순 붕어빵을 나눠 먹고 어희한테 러그 정보를 링크로 남겼다. 오전 내내 주방콕을 한 덕분에 남은 체력을 냉장창고를 청소하는 데에 썼다.

“사장님. 주말에 뭐해요?”

쌓인 서리를 가차 없이 박박 긁어내는 중 직원 영호가 문득 일정을 물어왔다.

주말, 주말이라…….

어희도 한동안 바쁠 듯하니 별다를 거 없이 일하지 않을까.

“일하겠지.”

별일 없으니까 평일, 공휴일 가리지 않고 출근하고 있지 않은가. 긁어모은 서리 조각을 버리고서 냉장창고를 나왔다.

“장갑 좀 끼시라니까. 그러다 손 다쳐요.”

더러워진 손을 닦고 있는데 쫄래쫄래 쫓아온 영호가 잔소리를 늘어놨다. 이후 요거요에 새로 등록된 리뷰를 보던 도중 어째서인지 영호가 곁을 떠나지 않는 걸 눈치챘다.

“왜? 할 말 있어?”

“주말에…….”

“주말, 뭐. 너 쉬어?”

쉴 거면 그냥 쉰다고 말하면 되지 왜 사람 뒤꽁무니를 계속 쫓아오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요….”

“응.”

“혹시… 정말로 혹시…….”

“…….”

답답해진 도웅은 테블릿pc 화면을 닫고 듬직한 직원을 쳐다봤다. 영호는 답지 않게 말하기를 꺼려하며 커다란 덩치를 베베 꼬고 있었다. 그 광경에 도웅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뭐 잘못했니…?”

“아…, 니요.”

“그럼 혹시 뭐…, 월급이 밀렸다거나? 아닌데, 그건 진짜 아닐 텐데. 기다려봐. 확인해볼게.”

핸드폰을 열어 은행 어플을 켜려는데 두툼하고 큼직한 영호의 손이 핸드폰을 그것을 막았다.

“그게 아니라, 에휴. 사장님 주말에 한가하시면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아까부터 주말, 주말, 주말. 운을 띄운 이유가 있었구나. 도웅은 잠시 생각할 겨를 없이 곧장 직설적으로 물었다.

“너 나 좋아해?”

언성이 그리 크지 않았음에도 다른 직원의 머리통이 하나, 둘씩 빼꼼히 튀어나와 안쪽 상황을 살폈다.

숨어서 엿들으려 하기보다는 대놓고 대기하고 있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오랜만에 시작된 ‘너 나 좋아하냐’ 식의 반응에 직원 영호는 반쯤 포기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혀요. 어쨌든 주말에 시간 못 내주겠다는 거죠? 알겠어요.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터덜터덜 돌아가는 뒷모습은 ‘그래도 한 번은 물어봐 주지’ 같은 쓸쓸함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직원 모두가 합심한 듯 영호한테 다시 가보라고 손짓하고 있었는데, 그게 도웅의 눈에 너무나 잘 보였다.

“일단 들어는 볼게. 무슨 일이야?”

모두가 모여서 어떤 작당인지 궁금했다. 생일은 이미 지났으니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는 아닐 테고.

“제 사촌 누나가 음식점을 준비 중이거든요.”

“축하 화환 보내야겠네.”

큼직하니 촌스러운 것보다는 예쁜 화분이나 인테리어 소품 같은 게 나을지도 모른다.

“화환은 괜찮아요. 아직 오픈 전인데,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어 해서요. 사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한 번 가주실 수 있는지…, 해서…….”

자신 없게 말끝을 흐린 영호의 눈치가 줄줄이 소세지처럼 붙어 있는 바깥의 직원에게 쏠렸다.

“냉정한 평가 같은 거 잘 못하는데, 난.”

“음식뿐 아니라 인테리어 같은 것도 봐주시면 좋죠. 사장님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뭐 그렇기야 한데 솔직히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도웅은 팔짱을 끼고서 “음, 으음~” 햄스터처럼 열심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냥 손님처럼 가셔서 감상평만 말해주시면 돼요.”

감상평이라……. 동질감이 들어서일까. 도웅의 마음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뭐 나야 좋지…. 그런데 너하고 내가 가버리면 일은 누가 해?”

사장과 직원.

카페에는 두 직급밖에 없었으나 오픈부터 함께한 영호는 거의 매니저 격이었다. 직원이 아무리 많아도 도웅이나 영호 둘 중 한 명은 카페를 지키는 게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지난 설 명절 때처럼 미리 시간을 비워놔야 한다면 늘 영호의 일정을 먼저 살펴본 후에 결정했다.

“제가 왜 사장님이랑 가요?”

영호는 황당해하며 물었고 마찬가지로 도웅도 황당해하며 대꾸했다.

“네 사촌 누나니까.”

“저는 일할 테니까 사장님 친구분이랑 다녀오세요. 명함은 여기요.”

미리 준비해놓은 양 앞치마 주머니에서 직사각형의 가게 명함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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