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90)

머리 건조를 대강 끝내자 영호는 곧장 자기를 원했다. 좀 더 놀자고 툴툴거리며 누웠더니 집안의 모든 불이 소등되었다.

“이불에서 네 냄새 나.”

캄캄한 허공을 보며 영호에게 말을 걸었다.

“제 냄새가 무슨 냄새인데요. 그 이불 빨았어요.”

여름 이불인데 당연히 빨았겠지…. 

도웅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끈한 보일러 온기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코 골거나 그러진 않죠? 저 잠귀 밝아서 금방 깨요.”

“안 골걸? 근데 골았어도 누가 말해준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예에. 그럼 주무세요.”

“엉. 집이 좀 더럽긴 해도 재워줘서 고마워.”

“아니,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데 어느 세월에 치우고 살아요?”

억울한 하소연에 도웅은 눈을 깜박였다. 나는 잘 치우고 사는데…? 입에 맴돌았으나 역시 쫓겨날까 봐 말하지 않았다.

“너는… 그래도 꼬박꼬박 잘 쉬잖아. 쉴 때 치우면 되지.”

빙 돌려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쉬는 놈이 왜 집이 이 모양이야.

“저도 취미 생활해야죠.”

“…….”

휴일에는 맛집 탐방을 하느라 집을 정리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었다. 도웅은 그런가? 하고서 얇은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렸다.

“흐암. 잠 안 올 줄 알았는데 막상 누우니까 졸리다. 잘자.”

하품과 함께 눈을 감은 도웅은 이내 잠들 수 있었다. 집이 좀 더럽긴 해도 카페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그간 쌓였던 피로가 보일러에 스르륵 녹았다. 아침이 되면 터진 계란 노른자처럼 방바닥에 푹 퍼져있을지도 모른다.

“…….”

출근 시간까지 쭉 꿀잠을 잘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불행하게도 도웅은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깼다.

“드르릉, 큭!”

“…나보고 코 골지 말라면서 지가 고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일 놀려야지.

도웅은 눈을 감았다가 도로 일어났다. 

기왕 잠에서 깬 김에 화장실이라도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어젯밤 샤워 후에 습기가 빠지게끔 문을 열어놓는다는 집주인의 의견을 수렴해 삼 센티미터 정도 열어놓은 욕실 문을 활짝 밀어 열며 스위치를 딱, 켰다.

“……힉!”

그리고 도웅은 새끼발가락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 한 마리를 맞닥뜨렸다. 검은색에 가까운 진갈색의 바선생님은 샤샤샥 변기 뒤쪽으로 숨었다.

“오……, 영호야….”

집주인의 존함이 도웅의 입술 사이로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돌처럼 굳어버린 도웅은 눈을 두어 번 깜박인 후 그대로 욕실 문을 닫았다.

이럴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어떻게 얻은 보금자리인데, 고작 벌레 한 마리에 쫄면 안되는 거다.

아무것도 못 본 척 이불로 돌아가 누운 도웅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을 쳐다봤다. 들릴 리 없는 바퀴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옛날에 우연히 본 글에서 바퀴벌레는 살아있는 화석 같은 존재라고 했다. 공룡보다 더 오래된. 지금은 인간이 바퀴‘벌레’라고 지칭하고 있으니 벌레 칭호를 얻었으나 과거에 멸종했다면 멋진 이름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암모나이트처럼.

“후우.”

생긴 것만 따지면 암모나이트보다는 삼엽충이 더 비슷하지 않나? 

혐오스러운 형태가 눈에 어른거린다. 도웅은 오른쪽, 왼쪽으로 뒤척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영호가 알람 소리를 듣고 기상할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도웅은 드물게 피로 게이지가 최고치를 뚫었다. 이불을 반듯하게 접어 이부자리를 정리한 후 주섬주섬 짐을 먼저 챙겼다.

“어? 사장님 안 씻어요?”

칫솔을 물고서 묻는 영호를 아련하게 바라봤다.

“영호야……. 너 코 골더라….”

“정말요? 사장님 설마 제 코골이에 잠 못 잤어요? 눈 엄청 충혈됐는데.”

도웅은 어깨에 짐 가방을 메고서 마음씨만은 착한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영호야……. 너희 집에 바퀴벌레 있던데 봤어?”

“네? 네에?!”

얼굴에 고스란히 충격이 묻어나는 걸 봐서는 영호도 몰랐나 보다. 

하긴, 엄청 잽싸더라, 고놈. 

누운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곯아떨어진 영호가 바퀴벌레를 쉽게 목격할 리 없다.

“숙박료는 세스코로 퉁 쳐. 고마웠어.”

도어락을 해제하고 영호의 집을 나온 도웅은 이 길로 곧장 카페로 돌아가 오픈 준비만 마친 뒤 찜질방 혹은 호텔로 도피할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비어있는 본가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카페하고 너무 멀었다. 차를 타고 40분은 운전을 해야 했는데, 차가 막히면 1시간은 기본이었다. 하루가 지났으니 6일만 더 견디면 된다.

버스를 기다릴 힘도 없어 택시를 잡아탔다.

정류장을 빙빙 돌지 않고 도로를 질주한 택시는 십 분 만에 도웅을 카페 건너편으로 데려다주었다.

탁, 택시 문을 닫은 도웅은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로 향했다. 두툼한 기모 후드티를 입은 도웅은 가볍게 점프해 어깨에 멘 짐 가방을 추어올렸다. 신호가 얼른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별안간.

“…도웅 씨?”

이른 새벽, 거리에서 이름이 불렸다. 고개를 돌린 도웅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어어~ 어희 씨. 하이요.”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동네 주민이고 가끔 새벽에 돌아다니는 걸 자주 목격해서 그런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긴가민가했습니다. 차림이 좀 달라서.”

확실히 평소보다 후리하긴 하다. 도웅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를 뒤로 젖혀 벗었다.

“재료 사고 돌아오는 길이에요?”

“아뇨. 산책합니다. 도웅 씨는 출근합니까?”

“네. 그런데 오늘은 빵만 만들어 놓고 쉴 거예요. 어희 씨도 오늘 주문은 쉬는 게 어때요?”

신호가 바뀌었다. 어희가 자연스럽게 합류해 함께 발맞춰 횡단보도를 건넜다.

“글쎄요.”

“그러면 근처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주문 넣기 전에 전화 주시면 안 돼요?”

마지막 말이 약간 늘어지는 바람에 조르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도웅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이 걸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고 여긴 어희가 없었다. 어정쩡하게 몸을 돌리자 네 걸음 뒤에 우뚝 멈춰 선 어희가 보였다.

“안 와요?”

단 네 걸음. 그러나 도웅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았다. 요새 제대로 쉬지 못했더니 걸음이 무거웠다. 뚱하니 선 도웅은 양팔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동작이 컸다.

“무슨 일 있습니까?”

네 걸음이 두 걸음으로, 두 걸음이 반걸음 이내로 좁혀졌다. 도웅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눈을 크게 떴다.

있었다. 보금자리 후보가, 남아있었다.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희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저기, 어희 씨…. 제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예. 말해보세요.”

“저 좀 재워주세요.”

“…….”

“6일만.”

반듯하고 단정한 어희의 미간이 좁혀졌다. 내려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는데, 원래 그의 눈매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원래 그렇다’라고 넘기며 마음 쓰지 않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겠습니까?”

납득이 가지 않으면 재워주지 않을 분위기다. 도웅은 작게 외쳤다.

“도움!”

“…….”

“도움 필요하면 도와준다면서요. 나름 간절하게 도움이 필요해요.”

따뜻하지 않아도 이 한 몸 편히 누울 수 있는, 자고 일어나면 목이 건조하지 않는, 유리창이 얇아 감기 들 일이 없고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을 깨끗한 욕실이 딸린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도웅은,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눈앞에 모든 조건을 끼워 맞춘 듯 최적의 보금자리를 가진 남자가 있었다.

“…….”

“설명하자면 길어요. 긴데, 꼭 들어야겠어요?”

“예. ‘나름’ 간절하다는 게 얼마나 간절한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카페에서 말해도 돼요? 일해야…….”

하는데.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서 걷기 시작한 어희를 따라 도웅은 걸음을 옮겼다. 열쇠를 꺼내 카페 문을 열자 어희는 굉장히 익숙하게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지정석이다.

“마실 거 줄까요?”

“괜찮습니다.”

드물게 사양을 했다. 아니. 이런 적이 있었던가? 도웅이 기억하기로는 어희가 먹을 걸 사양한 적은 없었다. 양꼬치를 제외하고는.

팔을 걷어붙인 도웅은 주방에서 일하며 말문을 열었다.

“집이 공사 중이에요.”

“머물 곳도 마련하지 않고 덥석 공사를 진행한 겁니까?”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만약 질책하는 어조였다면 도웅은 억울해졌을 게 틀림없다.

“그러게요. 누가 알았겠어요. 어희 씨가 준 초콜릿 상자를 안고 귀가했더니 거실이 물바다가 되어있을 줄은….”

반죽을 오븐에 넣었다. 크루아상을 만들려다가 체력이 부족할 거 같아서 반죽을 바꿨다. 간단한 파이나 구워야지.

“침실은 멀쩡할 거 아닙니까.”

“집주인님이 이틀간 나가 있으랬어요. 뭐, 저도 엉망인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고요. 모르는 사람들 왔다 갔다 할 거 생각하면 신경 쓰여서 차라리 다 끝나고 들어가는 게 마음 편해요.”

“이틀은 이미 지났는데…?”

“생각보다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지 일주일로 연장됐어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뜻대로 안 되잖아요.”

파이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다른 반죽을 도로 꺼냈다. 체력이 부족해서 포기하다니, 왠지 지는 기분이다. 크루아상을 잔뜩 만들어야겠다.

“덕분에 지금까지 떠돌이 생활 중이에요.”

“그럼 그동안 어디서 살았습니까.”

“이틀은 카페 오늘은 직원이요. 원래 직원 집에서 계속 살려고 했는데, 생활 타입이 안 맞아서….”

영호야, 내가 너희 집 존엄성을 지켜줬어.

차마 바퀴벌레 한 마리 때문에 집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감췄다. 밀대로 반죽을 밀며 이 정도면 간절한지 물었다.

“제가 싫다고 하면 어디서 잘 생각인가요.”

왠지 어희는 거절할 거 같지 않다. 만약 거절한다면……. 예정대로 찜질방, 호텔 둘 중 하나다.

“카페요. 박스 세 겹 깔고 누우니까 괜찮더라고요.”

“하.”

어희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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