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90)

옷 종류는 생일이 아니어도 해줄 수 있었고 액세서리는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어희가 번거로워할 거 같았다. 그렇다고 무난한 향수를 선물하기에는 어희에게서 나는 꽃 향이 묻힐 게 분명하다.

정장을 한 벌 해줄까, 싶다가도 맞춤 정장은 깜짝 선물이 불가능했다. 놀라게 해주고 싶은데, 어째서 검색해서 나오는 선물 종류는 다 고만고만한 걸까…. 도웅은 결국 뜨끈해진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눈 밑에 다크서클을 달고 출근한 도웅은 불이 켜진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계란을 까고 있을 줄 알았던 영호가 빗자루를 들고 있는 걸 보고서 도웅은 쩍, 하품을 내뱉었다.

“흐암. 갑자기 웬 청소?”

“사장님 어제 카페 오셨어요?”

“엉. 케익이랑 커피 좀 마시려고 들렸는데.”

“어쩐지.”

어쩐지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영호는 쓱싹쓱싹 비질을 이어갔다. 허리에 앞치마 끈을 조인 도웅은 구석구석 비질을 열심히 하는 영호를 타박했다.

“뭐야, 어제 청소 안 하고 갔어? 새벽부터 왜 청소를 해?”

“사장님이 어제 그릇 깨고 가셨잖아요.”

“…….”

“깼으면 대충 빗자루로 모아 놓기라도 하시지, 떼잉.”

기어이 혀 차는 소리까지 들렸다. 영문을 몰라, 도웅은 탁 트인 눈매를 여러 번 깜박였다.

“안 깼는데? 나 아냐.”

“그럼 멀쩡한 그릇이 절로 깨졌답니까.”

영호의 투정에 도웅은 어젯밤 테이블 구석에 밀어 놓고 간 그릇을 찾았다.

“야, 영호야. 어떤 그릇인데? 쓰레받기 좀 열어봐.”

움직일 때마다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연회색 쓰레기 받기를 살핀 도웅은 탄식을 질렀다. 어제 어희에게 케익을 담아 준 비싼 접시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거 비싼 건데!”

아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 도웅은 가게에 쥐가 있나,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그릇이 깨질 리 없지 않은가.

“쥐, 쥐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 생쥐가 내 방울토마토도 먹은 거야.”

카페에 쥐라니! 아주 끔찍하다!

혼비백산하며 세스코를 부르려던 도웅의 뇌리로 우연히, 정말 우연히 어제 어희가 사람을 본 거 같다는 귀여운 거짓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하, 하하…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카페에는 바퀴벌레처럼 몰래 숨어 살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직원 수도 많은데 한 명도 발견하지 못한 거면 정말 없는 거다. 그런데도 꺼림칙함을 숨길 수 없는지라, 도웅은 카페에 단 두 대뿐인 CCTV를 올려다봤다.

카페 입구부터 오더 테이블까지만 보이게끔 설치되어있었지만, 저거라도 확인해 볼까…….

“야, 영호야. CCTV 좀 보게 이리 와봐. 혼자 보기 무서워.”

“무서울 게 뭐 있어요.”

“나 공포영화 못 보잖아. 대충 쓸었으면 얼른 와.”

신문지에 유리 조각을 와르르 쏟아 꼼꼼하게 싼 뒤 처리한 영호가 도웅의 옆으로 다가왔다. 노트북으로 CCTV 보안 사이트에 접속한 도웅은 로그인을 했다. 마감 이후부터 3배속으로 쓱, 돌렸다.

“…….”

“…….”

어희와 도웅이 불 꺼진 카페에 들어오고 다시 나간 후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그릇이 깨진 곳은 바 테이블 옆이라,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진짜 쥐인가?”

“이 주에 한 번씩 소독하러 오는데 무슨 쥐예요. 아. 사장님 잠깐만요.”

갑자기 벌떡 일어난 영호는 화장실 옆, 다용도 창고로 쓰이고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철컥, 철컥 소리가 연이어 들리더니 별다른 수확 없이 돌아온 영호는 손을 털었다.

“혹시 쪽문이 열려있나 봤는데 잘 잠겨져 있는데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야.”

도웅은 혹시 몰라서 세스코 방문 예약을 잡고 CCTV 추가 설치를 의뢰했다.

점심시간의 직장인 파도까지 무사히 버틴 도웅은 영호와 함께 테이블에 늘어져 늦은 끼니를 챙겼다. 둘 다 기운 없이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먹으며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영호야…. 귀신이 있을까?”

도웅의 얼빠진 소리에 영호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햄 두 장이 뭐예요. 넉넉하게 넉 장 정도는 깔아주지.”

“귀신도 좋은 귀신이랑 안 좋은 귀신이 있다던데, 우리 카페는 안 좋은 귀신일 거야….”

“베이컨도 있던데 왜 안 넣어주셨어요?”

“그릇을 깨는 귀신은 절대 좋은 귀신이 아닐 테니까.”

둘은 서로 다른 대화를 하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때 영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운을 띄었다.

“그러고 보니까, 사장님 그거 알아요? 제리 기능사 떨어졌대요.”

“제빵? 아니면 제과?”

“둘 다요.”

“그 쉬운 걸 왜 떨어진대?”

“그러게요.”

“수빈이는 붙지 않았나?”

예전에 본인 쿠키도 어희에게 시험해 본다며 슬그머니 하트 쿠키를 넣었던 수빈이가 떠올랐다. 괘씸한 녀석….

“수빈이는 붙었죠.”

“제리 이번이 세 번째 아냐?”

그 쉬운 시험을 세 번이나 떨어지는 것도 재주다. 도웅은 위로금이라도 챙겨줘야 하는지 잠깐 망설였다.

“야, 야. 영호야 너 남….”

“남 뭐요?”

“여자친구 생일 때 선물 뭐 줬어?”

“흐음.”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도 대답이 없는 그를 봤다가 도웅은 깜짝 놀라 시선을 내렸다.

“크응.”

붉어진 눈시울로 코까지 먹은 영호의 분위기에 도웅은 괜한 걸 물었구나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에요.”

“뭐?”

“저 모솔이라고요.”

“…….”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모솔이란다. 도웅은 어이없는 숨을 내뱉었다.

“하하, 난 모솔이랑 밥 안 먹어.”

이미 샌드위치를 다 먹은 도웅은 작은 수첩을 들고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애인에게 받고 싶은 생일 선물 목록에서 제일 많은 득표를 차지한 건 편지였다.

가끔 명품 지갑이나 가방이 나왔지만, 빠지지 않고 편지가 등장했다. 도웅은 더 난감해졌다. 편지라니, 오글거리는 건 둘째치고 쓸만한 말도 없다.

명품이라. 역시 옷이 제일 무난한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도웅은 어제와 같은 번호로 전화가 온 걸 보고 냉큼 받았다.

“여보세요?”

-…….

“누구세요~”

딸깍. 전화가 끊겼다.

도웅은 과감하게 번호를 차단하고 어희 생일 선물에 대한 문제로 돌아갔다.

도웅의 고민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직원 모두가 퇴근하고서 혼자 남은 도웅은 오랜만에 차를 홀짝이며 여유를 만끽했다.

사실 집에 가는 길이 귀찮았다. 하늘은 지긋지긋하지도 않은지 어제부터 장맛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빗줄기가 약해지면 갈 생각으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 누군가 창문을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에 화들짝 놀란 도웅이 옆을 보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도우우우웅~”

한동안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대학 동기 나윤이었다. 파란색 장우산을 쓴 나윤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열심히 창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마지못해 일어난 도웅이 문을 열어주자 바로 카페 안으로 들어온 나윤은 문가에 우산을 세워뒀다.

“너 이 동네 살아? 자주 본다.”

“아니? 일 때문에 오가는 길. 너야말로 왜 이렇게 집에 안 가냐?”

“그냥…. 마실 거 줄까?”

“줄 거면 얼음물 주라.”

간단한 주문에 1분도 되지 않아서 얼음물 한 잔을 내온 도웅은 크게 하품을 했다. 저녁 시간에 구석에서 쪽잠을 자긴 했어도 피곤한 건 매한가지였다.

“뭔 비가 이렇게 온대냐. 이런 날은 파전이 딱인데. 이따 집 가서 파전이나 부쳐 먹어야겠다.”

하품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나윤도 도웅을 따라서 하품을 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요새 뭐 재미난 일 없냐?”

안부 묻기처럼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나윤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양 도웅이 씩 미소를 지었다.

“공적인 거랑 사적인 거. 둘 다 하나씩 있는데 뭐부터 들을래?”

“아무거나? 사실 그렇게 궁금하진 않은데, 심심해서 물어본 거였어.”

심드렁하게 대꾸한 나윤이 얼음물을 홀짝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웅은 진지한 분위기를 잡고서 입을 뗐다.

“내 카페에 귀신같은 게 있는 모양이야.”

도웅의 말에 나윤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진심이냐고 묻는 듯해 도웅은 고개를 저었다.

“방울토마토가 없어졌어.”

“뭔 토마토?”

“나 방울토마토 기르거든. 근데 네 개나 사라졌어.”

“누가 따먹었나 보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은 접시도 깨져있더라. 마지막으로 나간 사람이 나였는데. 에휴.”

접시가 깨져있었다는 말에 나윤은 그제야 관심이 생기는지 “흐음.” 하고 카페를 둘러봤다.

“CCTV 있네. 확인 안 해봤어?”

“해봤는데, 홀 전체를 잡는 게 아니라서. 더 설치하려고 업체에 예약해놨어.”

“저거 출입문까지는 보일 거 같은데.”

CCTV 거리를 가늠해보던 나윤의 말에 도웅은 차를 더 따랐다.

“엉. 근데 아무것도 안 잡히더라.”

“사람 짓 아니냐?”

“사람 짓이라고 생각하면 무서워서 귀신 짓이라고 여기는 중이야.”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다. 도웅의 태연한 태도에 나윤은 기가 찬 숨을 내뱉었다.

“야…, 누가 봐도 사람 짓인데 이 시간에 여기서 혼자 차 마시는 거 괜찮냐?”

걱정 반 농담 반. 나윤의 말에 괜히 으스스해지려는 찰나.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다.

“…….”

“…….”

도웅이 앉은 테이블의 뒷자리 채광창이 깨졌다. 놀라서 눈도 깜박이지 못하는 도웅과 달리 나윤은 자리를 박차고 카페를 뛰쳐나갔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 도웅은 창문을 깬 물건을 살폈다. 주먹만 한 돌멩이였다.

“이게 무슨 일이래….”

갑작스러운 테러에 뻣뻣하게 긴장한 몸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찾아 112에 전화를 걸었다. 곧 출동하겠다는 대답을 들은 뒤 통화를 끝내자마자, 누군가 벌컥 카페 문을 들어왔다.

“미친. 누구 본 거 같아서 존나 뛰어갔는데, 갑자기 사라졌네. 야 경찰 불렀어?”

“어, 어. 출동한대.”

나윤은 잡을 수 있었다며 연신 탄식을 뱉었다. 그러는 동안 도웅은 멍하니 서서 지난 대화를 떠올렸다.

“아뇨. 그게 아니라 퇴근 안 한 직원이 있습니까?”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왜요?”

“사람을 본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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