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다리 두 개를 모두 준다 해서 마음이 풀릴 거라 여긴다면 오산이다.
“이날 실망감이 너무 커서… 굳이 리뷰까지 썼을 겁니다.”
“하하…. 실망감…. 내가 너무 뛰어나서 리뷰를 받지 못한 거구나….”
어희의 손가락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아는 도웅은 허탈한 목소리로 수저를 들어 누룽지를 후룩, 떠먹었다. 고소하면서 따뜻한 누룽지가 도웅을 달래주는 듯했다.
“비싼 삼계탕을 시켜 먹을 만큼 처음으로 금전적인 여유가 생긴 날이었습니다. 리뷰를 쓴 날이.”
“그때는 혼자 와서 먹었어요?”
“예.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도웅은 관심 없는 척 식사를 이어가며 곁눈질로 어희를 살폈다.
6년 전이면 스물두 살 때다.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편하게 유학 생활을 한 도웅과 달리 혼자서 삼계탕을 먹고 돈을 아까워했을 어희를 떠올리자 허탈함은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쓸쓸했겠다.”
왠지 이 리뷰 한 줄이 외로워 보였다. 만약 같이 온 사람이 있었다면 리뷰에 남기지 않고 그 사람과 직접적으로 불만 사항을 떠들지 않았을까.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습니다.”
본인이 시킨 누룽지 삼계탕 절반 이상을 도웅의 그릇에 떠 준 어희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쓸쓸할 거 같습니다. 도웅 씨 없이 혼자 오게 되면.”
어희의 솔직한 대답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직원을 불러 메밀전병을 주문한 도웅은 받은 닭 다리를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앞으로 어희 씨는 리뷰 금지예요. 다른 가게에 꼭 달아주고 싶을 때는 저한테 허락받아요.”
인간관계가 아닌 리뷰를 단속하려는 도웅이다.
“알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도웅이 상체를 뒤로 젖혀 어희와 자연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곧 있을 어희의 생일 선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사진 찍을래요?”
도웅의 제안에 어희는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전환 후 어희의 옆자리로 옮겨갔다. 계곡 풍경이 뒤로 훤히 보이게끔 찰싹 붙어 사진을 두 장 찍고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어색하고 멋쩍은 어희의 풋풋한 분위기가 사진에 담겼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댔어요. 앞으로 사진 많이 찍어야지.”
어희 앨범 폴더를 따로 만든 도웅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즐거운 계곡 데이트를 마친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도웅은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책상에 앉아 오늘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며 노트북으로 옮겼다. 그러다 한 사진을 보고 웃음을 뱉었다.
“푸핫.”
저의 성화에 못 이겨 어색하게 브이를 하고 있는 귀여운 어희의 모습이었다.
도웅은 한참 동안 모니터 속의 어희를 바라보다가 나머지 사진들을 정리했다.
얼마 남지 않은 어희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계획도 꼼꼼하게 적어넣었다.
* * *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에서 깬 도웅은 이제 일과가 된 아버지의 전화도 그럭저럭 받아넘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게에 출근한 후에는 깨진 유리창도 새로 갈았고 CCTV도 홀 전체에 설치를 끝냈다.
영호가 쉬는 날이라, 혼자서 이른 새벽을 연 도웅은 케이크를 집중적으로 만들었다. 포근포근하고 엄청나게 달콤한 자허토르테부터 시작해서 모자를 닮은 샤를로트 프랑부아즈와 촉촉한 고구마 케익, 플레인 치즈 케익, 심플한 우유 케이크까지.
매일 어희에게 한 조각씩 먹여보고 어떤 게 제일 좋은지 물어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후한 감상을 들은 케이크를 생일 케이크로 만들어 줄 것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케이크 진열을 끝낸 도웅은 남은 자투리 시간에 다쿠아즈와 머핀, 에그타르트를 구웠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방울토마토 화분에 물을 주고 있을 때 누군가가 카페로 들어왔다.
주방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민 도웅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희 씨! 웬일이에요?”
자주색 폴라티 위에 얇은 검은색 겉옷을 걸친 어희가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평소와 달리 묶지 않은 머리칼은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머리도 말리지 않고 온 듯하다.
“아. 새벽에 혼자 일한다고 하셔서…, 걱정됐습니다.”
“마침 잘 왔어요. 케이크 좀 먹고 가요.”
아침부터 케익을 권한 도웅은 쇼케이스에서 케이크를 꺼내 잘랐다. 다섯 조각을 접시에 담아 커피와 함께 내주었다.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 잘 먹겠습니다.”
포크로 야금야금 케이크를 먹는 어희를 보며 도웅은 펜과 수첩을 꺼내 메모할 준비를 했다.
“어떤 게 제일 맛있어요?”
한 번에 여러 종류를 번갈아서 먹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케이크를 없앤 어희가 포크를 내려놓기 무섭게 도웅이 물어왔다.
커피를 마신 어희는 잠깐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플레인 치즈 케이크를 집었다.
차례대로 순번을 받아 적은 도웅은 볼펜 끝으로 옆통수를 긁적였다.
“자허토르테가 왜 꼴찌예요? 적어도 3위권은 차지할 줄 알았는데.”
“아…. 모두 일등으로 꼽을 만큼 맛있습니다. 자허토르테가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순번은 또 달라졌을 겁니다.”
도웅은 어희의 빈 접시와 수첩을 대조했다. 어희가 매긴 순번과 케익 순서가 일치하는 걸 보고서 수첩을 닫았다.
직원이 하나둘 출근하고서 어희는 떠났다. 영혼이 주인을 떠난 듯 도웅은 어희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손을 흔들었다.
“사장님, 사장님. 범인은 잡았대요?”
“나도 모르겠네. 아직 연락이 안 와서.”
좌우로 흔든 손을 내리고서 도웅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아버지에게 부재중 하나, 영호에게 메시지 두 통. 아버지의 용건은 안 봐도 뻔했기에 영호의 메시지를 먼저 확인했다.
[사장님 어제 바빠서 방토 물 못 줬어요]
[그리고 제리 출근했어요?]
제리, 제리….
도웅은 오늘 출근한 직원 얼굴을 떠올리며 영호한테 니은 두 개를 답장으로 보냈다.
그러고 보니 제리 이 녀석은 왜 연락도 되지 않고 며칠째 무단결근 중인 걸까?
도웅은 잠시 의아한 생각을 품었지만 이내 연달아 도착한 아버지의 메시지로 인해 금세 생각을 지웠다.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6월 5일 오후 열 시. 도웅은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양손에 커다란 쇼핑백을 두 개씩 들고서 로얄 골드 펠리스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집주인을 내보내고 깜짝파티를 해주고 싶었지만, 야밤에 어희를 내쫓으면 그는 현관문 앞에서 멀뚱히 기다리고 있을 걸 알기에 도웅은 당당하게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뀐 비밀번호는 도웅의 핸드폰 번호였다.
“…….”
“어희 씨 안녕하세요.”
물을 마시고 있었는지 머그컵을 들고 있는 어희와 눈이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인사한 도웅은 가득 짊어지고 온 쇼핑백을 내려놨다.
“파티해주려고 찾아왔어요. 저는 없는 사람인 셈 치고 하던 일 마저 해요.”
“아…. 네?”
해피버스데이 가랜드를 거실 벽에 붙인 도웅은 쇼핑백에 매단 채 들고 온 로즈골드 색상의 하트 풍선도 동동 띄워놨다. LED 줄램프를 가랜드에 맞춰서 벽에 거는 작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희는 뒤에서 도웅을 빤히 구경하고 있었다. 파티 준비를 모두 끝낸 도웅은 시간을 확인했다.
열 시 사십 분….
자정이 되려면 한 시간이 넘게 남았다. 고깔모자를 챙겨 쓰고 소파에 앉아서 구경하는 어희의 머리 위에도 고깔모자를 씌워주었다.
“한 시간 일찍 생일 파티해요.”
“아. 파티해주려고 일부러 와 준겁니까?”
“저기 해피버스데이가 떡하니 쓰여 있잖아요.”
기쁘다는 듯 환하게 미소 지은 어희의 뺨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고깔모자 고무줄 옆으로 정리해준 뒤 도웅은 가져온 생일 케이크를 꺼냈다. 역삼각형 모양의 조각을 깔끔하게 모아서 하나의 원형 케이크를 만든 뒤 위에 로맨스 파티를 얹은 2단 케이크였다.
“하루에 다 먹지 말고 며칠 동안 나눠 먹어요.”
어린아이에게나 할 법한 설교를 동갑내기 남자에게 하는 게 조금은 웃길지 몰라도 어희라면 하루 만에 바닥까지 삭삭 긁어먹을 게 분명했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입꼬리를 길게 올린 어희가 사근사근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 초를 꽂고서 가져온 성냥으로 불을 붙이자 어희가 벌떡 일어나서 거실 조명을 탁, 꺼버렸다.
“노래 불러줄까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뭐, 불러주신다면 사양은 않겠습니다.”
작은 웃음을 흘린 도웅은 짧은 생일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는 자신이 없는지라 마지막은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어느샌가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진 어희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촛불을 후, 불어 껐다.
거실 조명을 켜고서 도웅은 커다란 쇼핑백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이건 생일 선물이에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그냥 제 마음대로 가져왔어요.”
손수 포장한, 연한 분홍색 포장지에 짙은 파란색 리본을 달고 있는 선물을 보고서 어희는 눈을 천천히 깜박였다.
“지금 풀어봐도 됩니까?”
“네. 얼마든지요.”
어희의 반응이 궁금했기에 도웅은 흔쾌히 허락했다.
리본을 풀고서 접착 부분을 조심스럽게 떼어내 포장지를 벗긴 어희는 선물의 정체를 보고서 슬그머니 옆으로 기울어지려는 머리통을 바로 했다.
“…노트북입니까?”
“게임기는 아니겠죠. 그리고 선물 하나 더 있어요.”
도웅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선물을 꺼내 내밀었다.
노트북보다 작은 상자는 아예 포장도 되어있지 않았다. 흰색 상자 중앙에 떡하니 까만 카메라 사진이 떡하니 있는 걸 보고서 어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 안 기뻐요?”
“선물이 너무 커서…, 부담스럽습니다.”
노트북과 카메라까지 족히 몇백은 들었을 게 확실했기에 어희는 선뜻 기뻐할 수가 없었다.
“아. 일단 노트북부터 열어봐요.”
도웅의 말에 어희는 노트북을 열었다. 미리 켜놓았는지 포근한 하늘색의 인터넷 창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이게 진짜 선물이에요. 비밀번호는 0606.”
어희는 도웅이 알려준 네 개의 숫자를 천천히 입력했다. 몇 초간 로딩 시간이 지나고, 지난번 계곡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럽스타그램처럼 우리 사진이나 일상을 올리면 좋을 거 같아서요. 나중에 따로 책으로 만드는 것도 생각 중이에요.”
도웅은 그렇게 말하며 어희의 눈치를 살폈다. 감동해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나 싶었는데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