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90)

* * *

빳빳한 검은 정장 재킷을 벗어 손에 든 도웅은 목을 조인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고 끝내 타올에 얼굴을 묻고 끅끅거리며 울음을 쏟아 냈던 게 불과 나흘 전이다.

이미 수습이 끝난 시신을 양도받은 새벽에 겨우 도착한 도웅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보고 탈진할 정도로 목놓아 울었다. 장례를 치르고 공원묘지에 아버지를 묻을 때까지도 도웅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의료 사고를 의심하기도 했고 아무런 언질도 해주지 않은 어머니를 탓하기도 했으며 소식을 접하고 타국까지 와 준 사촌과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도웅의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장례식은 자연히 성당에서 치러졌다.

넓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찬송가가 무심하게 가슴을 후벼팠다. 헌금함에 달러 뭉치를 넣고서 초 한 자루를 밝힌 도웅은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했다. 살면서 기도라고는 해본 적이 없어 그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줄줄이 늘어놨다.

뒤따라 오겠다던 어희는 결국 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가 오고 말고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가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고 나오면 늦게라도 어희를 소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도 없게 됐다.

뒤따라 오겠다던 어희는 끝내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연락조차 없었다. 서운했지만 처음부터 내켜 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괜찮았다. 그땐 그저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걸지도 몰랐다.

결국 헤어졌다. 꿈처럼 달콤했던 시간은 이제 모두 끝나 버렸다. 평소였다면 성격상 어희에게 직접 물어보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었을 도웅이다. 그러나 나흘 만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고 지치고 지쳐서 이별이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지고 들기에는 너무 멀었고 너무 힘에 부쳤다.

“네 아빠가 그렇게 오자고 할 때는 싫어하더니.”

한국어에 도웅은 감은 눈을 뜨고 옆을 돌아봤다. 어머니가 양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오랜 시간 동안 기도했던 도웅과 달리 어머니는 비교적 짧게 기도를 끝냈다.

“한국으로는 언제 돌아갈 거니.”

“모르겠어요. 당분간은 여기에 있으려고요.”

“얼마나? 카페는 어쩌고.”

“잘 모르겠어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무거워서 모르겠어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도웅은 손바닥으로 눈가를 쓸어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면 시간 좀 내주렴.”

“…….”

“어렸을 적부터 어찌나 네 아빠하고만 붙어 다니는지, 엄마랑은 놀아주지도 않았잖니.”

공원묘지에 아버지를 묻을 때조차 어머니는 눈을 붉히기만 할 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었으니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훌쩍, 코를 한 번 먹은 도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 핸드폰 좀 사고요. 이틀 전에 잃어버렸어요.”

“조심하지. 사고서 집으로 오렴.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성당 앞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도웅은 적당히 쓸만한 핸드폰을 구매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남성이 집 앞을 서성이는 걸 발견했다. 의아해진 도웅이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키가 크고 검은 옷을 입은 게 얼핏 보면 어희 같아 내심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도웅을 향해 몸을 돌린 남자는 어희가 아니었다. 실망감을 숨기고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아버지의 사진과 우편물들을 보여주며 이곳에 사냐며 역으로 질문해왔다. 자신의 아버지라고 답하기 무섭게 반가운 기색으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놨다.

가만히 서서 그의 말을 들어보니 고아원에서 자란 그를 아버지가 후원해준 듯했다. 대학 졸업 후 무사히 취직까지 하게 되어 모레면 휴스턴으로 떠난다는 대서사시를 들었다. 꼭 얼굴을 보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는 그에게 공원묘지 번호를 일러주었다.

그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표정을 구긴 채 유감을 표했다. 도웅 역시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남자의 어깨를 한 번 토닥여준 후 집으로 들어갔다.

* * *

디저트 ㅇㅜㅇ.

한때 서초동을 대표하는 디저트 카페로 불리던 이곳은 개업 5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개업 때부터 매니저 격으로 일하고 있는 영호는 사실 도웅이 카페를 그만두던 2년 전부터 곧 닥칠 위기를 직감했다. ‘진짜’ 사장 도웅이 어느 날부터 연락이 두절 되더니 이주 만에 한 나이 지긋한 남성이 찾아와 카페를 정리한다는 통보 아닌 통보를 해왔을 때. 그때부터였다.

권리 위임장과 함께 사장 도웅의 대리인이라는 사람은 이미 건물주와 이야기를 끝낸 듯했다. 갑자기 잠적한 사장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이 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영호는 잘 굴러가지 않는 뻑뻑한 머리로 이런 경우에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때, 두 번째 사장이 나타났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전에 도웅의 친구라고 자주 카페를 찾아왔던 키가 크고 어딘지 우중충한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카페를 모두 인수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남자는 정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성사시켰다. 임대 계약과 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두 번째 사장의 아래에서 영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다. 모든 디저트가 도웅의 손을 거쳤던 전과는 달리 두 번째 사장은 베이커리의 ‘베’자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덤벙거리기까지 해 툭하면 그릇을 깬다거나 재료를 망가트렸다.

포스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두 번째 사장이 들어앉고 나서 디저트 웅은 매달이 적자였다. 이젠 어떻게 2년 동안 비싼 서초동의 건물 임대료를 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뿐이었다.

또한, 영호는 충신처럼 끊임없이 두 번째 사장에게 인력을 줄여야 한다고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웅이 있을 적에는 열 명을 쓰든, 스무 명을 쓰든 매출이 잘 나와서 타격이 없었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적자인데 열두 명이나 그대로 유지하는 건 낭비였다. 하지만 영호가 그 말을 할 때면 두 번째 사장은 미간을 좁히고는.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같은 대답을 했다.

빵 하나 굽지 못하는 두 번째 사장이 열심히 한들 사정이 나아질 게 뭐 있단 말인가. 

영호는 답답했다.

디저트 웅은 맛은 물론이고 계절, 시즌, 기념일 같은 날마다 출시되는 메뉴가 달랐다. 가끔 한정 메뉴가 나올 때면 별스타 셀럽이 직접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으나 2년 전 도웅이 그만둔 뒤로 카페의 명성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디저트 ㅇㅜㅇ에게 손님을 뺏길까 얼씬도 못하던 카페들이 주변에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였다. 간판을 내건 지 1년 만에 주변 카페를 모조리 잡아먹었던 디저트 웅이 배탈 났다는 시답잖은 소문도 들리고 있었다. 요거요 어플 별점조차 4.9에서 4.5로 내려갔으니 할 말이 없었다.

두 번째 사장을 맞이하고부터 영호는 더욱 도웅을 그리워했다. 차라리 그가 다른 지역에 카페를 냈다면 당장 그곳으로 옮기고 싶을 만큼.

“매니저니임. 사장님한테 이 카페 나한테 넘기라고 하면 안 돼요? 손님도 줄고 월세 내기 빠듯해 보이는데.”

이전에 함께 자몽 껍질을 깐 추억이 있는 스타 셰프이자 요식업 사업가인 나윤이 일 년 만에 놀러 와 카페를 넘겨받기를 열렬히 희망하는 말을 했다.

영호도 사실 그랬으면 좋겠다. 카페 구석에 앉아서 개인적인 업무를 보는 사장보다는 나윤이 일하는 게 더 나아 보였으니까.

“그걸 왜 저한테 말해요. 저쪽에 사장님 계신데 직접 말하세요.”

“아. 매니저님 모르는구나.”

“뭘 알려주질 않았으니까 모르죠.”

영호의 말에 나윤은 가까이 와보라며 손짓했다. 슬쩍 앞으로 상체를 기울자 나윤이 손으로 입 옆을 가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웅이 다시 여기로 오면 홀랑 넘겨주려고 존나 버티는 거처럼 보이잖아요. 나도 여기 갖고 싶은데.”

도웅 이 새끼는 장사 접을 거면 나한테 먼저 말해주라니까.

툴툴거리는 나윤의 말에 영호는 눈썹을 올렸다.

“사장님이, 그러니까 도웅 사장님이 언제 올 줄 알고 버텨요. 저기, 셰프님도 이제 그만 와요. 가뜩이나 손님 없어서 심란해 죽을 거 같아요.”

“얼레. 지금 이거 안 보여요? 내 손에 들린 이, 모카 라떼. 분명 칠천 원 주고 샀는데.”

손에 든 라떼를 흔들며 본인도 손님이라 주장하는 나윤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도웅의 주변에는 어째서 이런 이상한 사람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영호 자신도 도웅의 주변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잊기로 했다.

“근데 도웅이 언제 올 줄을 왜 몰라요?”

“갑자기 잠적했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셰프님도 모르시잖아요.”

영호의 말에 모카 라떼를 쭉 마신 나윤은 히죽, 웃었다. 눈 밑 애교살과 함께 올라온 눈물점이 도드라졌다.

“내가 왜 모를 거라 생각해요?”

영호는 눈을 끔벅였다.

“매니저님이 도웅 근황 모르는 줄 알았으면 미리 말해줄 걸 그랬나…. 도웅 걔 내 빵집에서 잠깐 일 도와줬었는데.”

“네?! 네에?! 도웅 사장님이 뭘 해요? 아니, 셰프님 우리 사장님 근황을 알고 있었어요?”

영호의 커다란 목청에 두 번째 사장이 벌떡 일어났다.

오더 테이블까지 성큼성큼 걸어온 두 번째 사장은 나윤과 영호 사이에 시선을 두고 물었다.

“도웅 씨가 어디 있었다고요?”

매니저와 사장의 시선을 받은 나윤은 갑자기 분위기 왜 이러냐며 너스레를 떨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보스턴이요. 한 8개월? 동안 일 맡겼었죠.”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도웅의 거처를 잘 아는 나윤을 보자 영호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 년 전에 물어볼 걸 그랬다.

“혹시 주소 모르십니까?”

두 번째 사장의 물음에 나윤은 고개를 저었다.

“주소까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핸드폰 번호라도…….”

간절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두 번째 사장의 모습에 나윤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지금쯤 핸드폰 번호도 바꿨을걸요. 예전에 유학 갈 때도 폰 번호 바꿨잖아요. 아주 상습범이야.”

나윤의 대꾸에 현 사장은 대놓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둘 다 왜 이래요? 나 좀 무섭네.”

영호는 제 가슴에 품은 이상적인 사장님이라 도웅이 보고 싶다고 대답했고 현 사장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 그러면 이것도 모르시겠네, 둘 다.”

아직 말할 게 남았는지 나윤은 말을 길게 끌며 아는 체를 했다. 다시금 집중된 시선 속에서 커피를 바닥까지 쭉, 쭉 빨아 마신 나윤은 빈 컵을 내밀며 새로운 주문을 했다.

“키위주스 한 잔 갈아주면 말해줄 수도 있고….”

나윤의 컵을 채간 건 현 사장이었고, 현 사장의 손에서 컵을 빼앗아 간 건 영호였다.

“사장님은 제발 가만히 계시라니까요.”

영호는 빠른 손놀림으로 생과일 키위주스를 갈아왔다. 나윤은 키위주스로 입을 한 번 축이고 입을 뗐다.

“도웅 걔 한국 들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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