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더 읽는자-1화 (1/553)

# 1

제1화

<프롤로그>

활자중독자.

고등학교에 올라와 담임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담임의 말대로 활자중독자가 맞았으니까.

읽는 것이 좋았다.

무협? 판타지? 수필? 로맨스? 인문? 과학? 에세이? 장르는 상관없다. 그냥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 읽는 것 그 자체가 좋았다.

나는 활자중독자다.

1.

“또 읽냐?”

“…….”

수혁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을 알았지만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문 채 책을 읽을 뿐이었다.

운명이라고 해야 될까?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수혁과 연중은 항상 같은 반이었다.

그래서 연중은 수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수혁이 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털썩

연중은 수혁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수혁이 읽고 있는 책을 확인했다.

“오, 포스 마스터?”

책의 이름은 『포스 마스터』.

“이거 몇 달 전에 읽었던 거 아니냐?”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 달 전에 수혁이 보았던 소설인 것은 분명했다.

“24권으로 완결 났구나.”

연중이 그것을 기억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연중 역시 읽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19권까지 읽었던 연중은 수혁에게 물었다.

“가방에 있지?”

“어.”

이번에는 전과 달리 수혁이 답했다. 연중은 수혁의 답을 듣고 가방을 열었다.

“오케이, 딱 20권부터 있구만!”

가방에는 10권의 책이 있었다. 그 중 4권이 『포스 마스터』였다. 그리고 그 4권은 연중이 읽어야 될 20권부터 23권이었다.

“읽고 갖다 줄게!”

연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수혁에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띵동댕동~

시간이 흘러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흐음.”

책에 집중하고 있던 수혁은 아쉬운 표정으로 책을 덮었다. 그리고 서랍에 책을 넣고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

시간표를 확인한 수혁은 미소를 지었다. 문학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읽을거리가 많은 문학책이기에 이번 시간도 심심하지는 않겠다고 수혁은 생각하며 서랍에서 문학책을 꺼내 펼쳤다.

끼이익

“미안하다. 좀 늦었지?”

이내 문학 선생 이춘복이 도착했다. 문학책을 읽던 수혁은 이춘복이 도착하자 잠시 책 읽는 것을 멈췄다.

“강수혁.”

바로 출석 때문이었다. 출석번호 1번으로 출석 시 가장 먼저 이름이 호명되는 수혁이었다.

“네.”

수혁은 답을 함과 동시에 다시 문학책에 집중했다. 몇 번이고 읽은 문학책이지만 읽는 것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수혁의 눈빛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오늘 나갈 곳은 98페이지구나, 98페이지 펴.”

그사이 출석이 끝났고 이춘복이 수업을 시작했다. 물론 수혁은 수업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고 98페이지를 펴지도 않았다.

수혁이 문학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문학책에 읽을거리가 많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묵묵히 문학책을 읽어나갔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춘복이 수업을 끝냈다. 그리고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를 기다리며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스윽

수혁은 수업이 끝나자 곧장 문학책을 덮었다. 그리고 서랍에 넣어 둔 『포스 마스터』 24권을 꺼냈다. 읽는 것이 좋기는 했다. 그러나 여러 번 읽은 것보다 새로운 것을 읽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다.

띵동댕동~

이내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춘복이 나갔다.

“야야, 어제 그 영상 봤냐?”

“판게아?”

“어, 대박이지 않냐?”

“대박이더라. 올해 12월 31일 오픈이었지?”

“응, 할 거냐?”

“당연! 근데 네 캡슐로 돌아가? 안돌아 갈 것 같은데.”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졸라야지. 수시도 합격했는데 안 사주시겠냐? 뭐, 안 되면 이제 시간도 많으니 알바 죽어라 뛰어야지.”

“캬, 수시 합격 부럽.”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혁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책을 읽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집중하는 수혁의 눈빛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 * *

“이제 수능까지 한 달 남았다! 다들 헛짓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이상!”

현공 고등학교의 체육 선생이자 3학년 5반의 담임 김필교는 종례를 끝내고 곧장 반에서 나갔다.

“와, 인사도 안 받고 가네?”

연중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급해도 인사는 꼭 받았던 김필교였다. 인사를 받지 않은 것을 보니 매우 급한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중은 가방을 메고 책상 위에 올려둔 책 4권을 들었다. 오늘 아침 수혁에게 빌렸던 『포스 마스터』였다.

“잘 읽었다.”

책을 들고 수혁의 자리로 다가간 연중은 수혁에게 책을 건넸다. 가방을 열고 대기하고 있던 수혁은 그대로 책을 받아 가방에 넣은 뒤 입을 열었다.

“바로 갈 거냐?”

“넌 참 신기해.”

“……?”

수혁은 연중의 동문서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책 읽을 때는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데 책을 안 읽을 때는 정상이란 말이지.”

이어진 연중의 말에 수혁은 피식 웃으며 가방을 멨다.

“가자.”

가방을 멘 수혁은 앞장 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수혁의 뒤를 연중이 뒤따르며 말했다.

“야, 24권은 줘야지.”

연중은 23권까지 읽었다. 완결권인 24권은 읽지 못했다.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수혁이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에 수혁이 24권을 전부 읽고 다른 책을 꺼내는 것을 연중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도서관 가서 줄게.”

수혁은 연중의 말에 답했다.

“또 도서관 가?”

“응, 반납할 것도 있고 빌릴 것도 있고.”

대화를 나누며 수혁과 연중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 수혁아!”

“……?”

수혁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앞을 보았다. 그리고 수혁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볼 수 있었다.

“어디 가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도서관 사서 양지수였다. 양지수는 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기다 도서관에 있어야 할 양지수가 이곳에 있다는 건 무슨 일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응, 급히 회의가 잡혀서. 네가 부탁한 건 지율이한테 다 이야기 해놨으니까. 가서 빌리면 될 거야.”

“네, 감사합니다.”

“아니야,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빠르게 다가와 바람같이 사라지는 양지수에게 인사를 한 수혁과 연중은 다시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담임이 갔던 것도 회의 때문인가?”

“그런가 봐.”

걸음을 멈췄던 수혁과 연중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도서관에 도착했다.

“안녕.”

수혁과 연중이 들어오자 책을 정리하고 있던 지율이 다가왔다. 수혁은 지율의 인사에 답하며 가방을 열어 안에 있던 책 5권을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건 반납할 거고 선생님이 따로 빼놓으신 책 좀 대여해줘.”

“응.”

이미 양지수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지율은 자리에 앉아 반납 처리 후 옆에 양지수가 빼놓았던 책들을 대여 처리했다.

“근데 이것들은 왜 빌리는 거야?”

지율은 대여 처리 후 수혁에게 책들을 내밀며 물었다. 수혁이 빌린 책은 총 3권, 『스트레칭의 중요성』, 『중력이 없다면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문학이란?』으로 지율이 도서부에 들어 온 3년 동안 단 한 번도 대여가 되지 않았던 책들이었다.

3권의 책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수혁이 이 책들을 왜 빌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응? 당연히 읽으려고 빌리는 거지.”

수혁은 당연한 걸 묻는 지율에게 당연한 답을 해주며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포스 마스터 24권을 꺼내 연중에게 건넨 뒤 가방을 멨다.

“수고해~”

도서관에 온 목적을 달성한 수혁은 지율에게 인사하며 연중과 함께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게 다 읽히냐?”

수혁이 어떤 책을 빌렸는지 보았던 연중은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묻는 게 이해를 말하는 거면 아니지.”

연중의 물음에 수혁이 답했다. 서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각기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보통 천재가 아니다. 그러나 수혁은 천재가 아니었다. 이해하려 빌린 게 아니다. 그저 읽기 위해서 빌렸다.

“그냥 읽는 게 좋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것보다 이해가 되면서 재미까지 있는 책을 읽는 게 낫지 않아?”

수혁의 답에 연중이 재차 물었다. 읽는 게 재미있다면, 읽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보다 이해가 되며 재미마저 느낄 수 있는 책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야.”

연중의 물음에 수혁 역시 재차 답했다. 이해가 아예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처음 읽을 때에는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지만 수혁은 한 번만 읽고 끝내지 않는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다. 그렇게 읽다 보면 이해되지 않던 것도 이해가 되고는 했다.

“에휴, 이해할 수 없는 놈.”

수혁의 답에 연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수혁은 연중의 중얼거림에 피식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일 봐!”

그렇게 대화를 하며 하교를 하다가 이내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연중은 수혁에게 인사하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잘 가라.”

수혁 역시 연중의 인사를 받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연중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수혁은 달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집까지 달린다면 건강도 챙기고 시간도 아끼고 일석이조였다. 수혁은 빠르게 달리고 달려 곧 주택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택가에 도착한 수혁은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던 수혁은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수혁의 앞에는 3층의 단독주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띡띡띡

수혁은 자연스레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

집으로 들어온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맞벌이, 맞벌이로 인해 수혁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간다. 그렇다고 빨리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빨리 들어온다면 밤 10시였고 보통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12시에 들어온다.

수혁이 부모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늦은 밤뿐, 그것도 잠을 거부하고 늦게까지 버텨야 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보편적인 상황일 경우다. 수혁은 보편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홀로 지내야 된다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수혁 역시 인지하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부모님과의 사이가 멀지 않다는 점이 크게 차지했다. 수혁의 부모님은 자주 있지 못하기에 같이 있는 시간을 더욱 화목하게 보내려고 했다. 약간의 외로움이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수혁에게는 책이 있었다. 책만 있다면 외롭지 않았다.

‘5만 원이라.’

신발을 벗고 식탁을 확인한 수혁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5만 원과 편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수혁은 식탁으로 다가가 우선 편지를 확인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