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제2화
‘여행이라.’
편지를 쓴 건 수혁의 엄마였다. 편지에는 이번 주말에 휴가를 냈으니 여행을 가자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수혁은 편지를 내려놓고 5만 원을 집어 지갑에 넣었다.
‘3권은 살 수 있겠어.’
5만 원의 용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고 싶은 책들이 한가득인 수혁이었다. 수혁은 물을 마신 후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수혁은 가방을 열어 안에 있던 책들을 꺼내 왼쪽에 있는 첫 번째 책장에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전부 넣고 수혁은 방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역시 1층만큼 넓었으나 전혀 넓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층에는 책장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서관, 2층은 작은 도서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책장과 책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흐.”
수혁은 책장에 가득 찬 책들을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2층에 올 때마다 느껴지는 안락함과 기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
하지만 이어 수혁은 미소를 지우며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 책들을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다시 걸음을 옮겨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2층과 달리 책이 단 한 권도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운동 기구뿐이었다. 그렇다. 2층이 작은 도서관이었다면 3층은 작은 헬스장이었다.
2.
수혁이 한숨을 내뱉으며 운동 기구로 가득 찬 3층에 올라온 이유, 그것은 바로 운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수혁은 원래 운동을 하지 않았다.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운동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 수혁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 그것은 바로 4년 전 얻었던 깨달음 때문이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수혁은 한 번 자리 잡으면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래서일까? 몸은 나날이 약해져 갔고 체력 역시 떨어졌다.
몸이 약해져 체력이 떨어지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체력이 되지 않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수혁은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할 시간에 책을 읽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운동을 하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역시 늘어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수혁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운동을 시작한 후 3달이 지나자 수혁은 전보다 오랜 시간 책을 읽을 수 있는 체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이후 수혁은 싫어도 운동을 꾸준히 했다. 오로지 책 읽을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수혁은 바로 러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몸을 풀기 위해 우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TV를 틀었다.
-크하하하핫! 인간들이여 어리석구나!
TV를 틀자마자 꽃미남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여자 여럿 홀릴 만한 뛰어난 외모의 사내가 나타났다.
-너희들의 힘으로 마왕인 나를 봉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크하하하하핫!
사내의 정체는 마왕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마왕을 봉인하기 위한 마법사, 용사, 사제 등 다양한 직업의 인간들이 모여 있었다.
“영화인가?”
정확한 스토리는 알 수 없었지만 마왕과 인간들이 나오는 것을 보니 영화인 것 같았다.
-이야, 양 팀장님 이게 정말 플레이 영상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수혁은 곧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 엄청나지 않습니까?
-스스로 금칠을 하시다니! 하지만 인정합니다. 그래픽이 아주 뛰어나네요. 여태껏 보았던 그 어떤 게임보다 뛰어난 그래픽입니다.
-그래픽만 뛰어난 게 아니죠! 저희가 자신 있는 건 솔직히 그래픽보다 스토리입니다. 스토리!
-오, 그러면 그래픽에 한 번 놀라고 스토리에 두 번 놀라는 겁니까?
-아니죠! 그래픽에 한 번 놀라고 스토리에 푹~ 빠지실 겁니다. 놀랄 틈이 없어요!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은 영화가 아닌 게임이었다.
“이야, 엄청 발전됐나 보네.”
수혁 역시 가상현실게임을 해보았다. FPS도 해보았고 RPG도 해보았다. 그러나 방금 전 나왔던 것처럼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들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수혁이 게임을 접은 사이 발전이 된 것 같았다.
-가장 힘드셨을 때는 언제셨나요?
리포터가 물었다.
-가장 힘들 때라…….
그리고 이어진 답변에 수혁은 러닝머신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서관을 만들 때인 것 같아요.
“도서관?”
도서관이라니? 수혁은 숨을 고르며 인터뷰에 집중했다.
-도서관이요?
-네, 도서관이요!
-당황스럽네요! 마법 구현이나 스토리 혹은 버그 같은 것을 고치실 때라고 할 줄 알았는데. 왜 도서관을 만드는 게 힘드셨던 거예요? 그냥 구현만 해두면 되는 거 아닌가요?
리포터의 물음에 양 팀장이 껄껄 웃으며 답했다.
-하하, 그렇죠. 건물 자체는 그냥 구현만 하면 되죠. 문제는 도서관을 채울 책들이었습니다.
“……!”
그리고 양 팀장의 답을 들은 순간 인터뷰에 집중하던 수혁의 눈이 커졌다.
* * *
“후우…… 후우…….”
수혁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스톱 버튼을 눌렀다. 러닝머신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멈췄다.
그제서야 수혁은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1층으로 내려와 샤워를 하며 땀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판게아라…….’
땀을 씻어내며 수혁은 운동할 때 보았던 게임 ‘판게아’를 떠올렸다.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했지.’
도서관의 책을 구현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던 판게아. 샤워를 마친 수혁은 곧장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판게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12월 31일이라…….’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간 수혁은 오픈 날짜를 볼 수 있었다. 오픈 날짜는 12월 31일이었다.
‘두 달 조금 넘게 남았네.’
오늘은 10월 15일, 앞으로 두 달하고도 보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오픈 날짜를 확인한 수혁은 그 외의 정보를 확인했다. 물론 정보라고 해봤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은 플레이에 필요한 캡슐 사양뿐이었다.
‘……사양이 장난 아닌데?’
판게아를 플레이하기 위해 필요한 캡슐의 사양을 확인한 수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캡슐로는 플레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긴 5년이나 됐는데.’
5년 전 구매한 캡슐이었다. 최신 게임을 돌리기에 무리가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용돈을 모을 수는 없고.’
판게아를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캡슐이 필요했다. 그러나 용돈을 모을 수는 없다. 용돈을 모은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금액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용돈을 모으게 되면 책을 살 수 없다.
판게아를 하려는 이유는 사냥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판타지 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도서관, 수혁이 판게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도서관에 있는 책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책들을 읽기 위해 책을 사지 않는다? 모순이었다.
‘말씀드려 볼까?’
수혁은 부모님을 떠올렸다. 현재 수혁이 캡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부모님이었다.
‘그래, 말씀드려 보자.’
결정을 내린 수혁은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모든 것, 오픈 시간과 캡슐 사양을 확인했다. 더 이상 확인할 게 없었다. 컴퓨터 앞에서 일어난 수혁은 책을 읽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 * *
“설치 끝났습니다. 이용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수혁은 캡슐 설치 기사의 말을 자르며 답했다.
“아, 예!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혹시 모르시는 것이 생기시면 여기 가이드북을 참고하시거나 센터로 전화주시면 바로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예, 감사합니다!”
캡슐 설치 기사를 보낸 수혁은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만족스런 미소로 방 한가운데 자리 잡은 캡슐을 보았다. 결국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최신형 캡슐을 구매할 수 있었다.
‘좋아하실 줄이야.’
혼이 날 각오도 했던 수혁이었다. 그러나 수혁의 생각과 달리 캡슐을 사달라는 수혁의 부탁에 부모님은 너무나도 좋아했다. ‘드디어 네가 게임도 하는구나!’라며 기뻐하던 아빠의 모습을 수혁은 잊을 수가 없었다.
캡슐을 보던 수혁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와 ‘과학’ 관련 도서들을 모아둔 네 번째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앞으로 5일.’
판게아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캡슐을 설치함으로 판게아를 플레이 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오픈만 기다리면 된다. 31일까지 남은 5일, 5일만 기다리면 판게아를 플레이 할 수 있다.
‘어떤 책들이 있으려나.’
수혁은 책을 펼치며 판게아의 도서관을 떠올렸다. 과연 도서관에 어떤 책들이 있을지 수혁은 너무나도 기대됐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판게아의 오픈 날인 12월 31일이 되었다.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10분.’
현재 시간은 11시 50분. 오픈 시간인 12시까지 10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앞으로 10분만 지나면 ‘판게아’에 접속할 수 있다.
‘홈페이지를 왜 더 늦게 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10분을 기다리며 수혁은 생각했다. 보통 게임이 오픈되기 전 홈페이지를 오픈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풀고 유저들의 관심을 이끈다.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판게아는 보통 게임이 아닌 것일까? 홈페이지를 오픈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홈페이지가 있긴 했지만 나와 있는 것은 오픈 시간과 캡슐 사양뿐이었다.
물론 영원히 홈페이지 상태가 이런 것은 아니었다. 판게아가 오픈된 후 1시간이 지나면 홈페이지에도 스토리 등 각종 정보가 올라온다. 판게아를 만든 그룹 ‘명경’에서 공식 발표한 것이니 확실했다.
‘1시간 뒤에 나와서 확인해야 되나?’
수혁은 고민했다. 12시가 되자마자 ‘판게아’에 접속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정보를 확인하자고 1시간 뒤에 나와야 될까?
‘아니지, 내가 사냥을 집중적으로 할 것도 아니고.’
고민 끝에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사냥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은 아니었다. 궁금했으니 해볼 생각이었다. 게임을 즐겨봐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디까지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사냥이지 사냥을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다. 수혁의 목적은 도서관이었다. 굳이 홈페이지에서 각종 정보들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삐빅삐빅!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알람이 울렸다. 수혁은 재빨리 알람을 끄고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캡슐로 들어갔다.
캡슐로 들어간 수혁은 미리 다운 받아두었던 ‘판게아’를 실행시켰다.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입력해 로그인을 한 수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야, 로그인을 하자 어둠으로 가득 찼던 주변 공간이 평야로 변했다. 영상으로 보았지만 직접 보니 놀라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와, 바람도 느껴지는구나.’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진짜 기술 발전 많이 됐네.’
몇 년 전에 했던 가상현실게임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전방에 보이는 집으로 이동해 주세요.]
수혁이 그래픽과 감각에 놀라고 있던 그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메시지를 본 수혁은 전방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그곳에는 전에 없던 집이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