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제43화
어차피 마탑 주변이 아니라면 퀘스트를 깨기 힘들다. 아니, 깰 수 있더라도 깰 생각이 없는 수혁이었다.
마탑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기 전까지 수혁은 마탑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수혁은 왼쪽에 쌓아둔 하얀 책을 가져와 펼쳤다. 그렇게 수혁은 책에 빠져 들었다.
* * *
“그럼 이제 바람의 마탑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럴 것 같아요. 박 대리,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닙니다. 축하드립니다.”
김혁의 말에 답하며 아딜로는 생각했다.
‘기어코 특수 직업을 얻는구나.’
특수 직업 노래를 부르던 김혁이었다. 결국 김혁은 특수 직업을 얻게 되었다.
‘4등급 마법사라니.’
6등급 마법사로 시작한 아딜로는 200을 찍고 나서야 4등급 마법사가 되었다. 그런데 김혁은 시작이 4등급이었다.
‘역시 돈지랄을 하면 안 되는 게 없어…….’
돈의 힘을 여실히 느낀 아딜로였다.
“회사에서 봅시다.”
김혁이 말했다.
“옙!”
아딜로는 부러움을 달래며 답했다. 그리고 김혁이 사라지자 아딜로는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
한숨으로 부러움을 떨쳐 낸 아딜로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자유다.’
여태껏 아딜로는 김혁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김혁의 뒷바라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자유를 얻은 것이다.
자유를 되찾은 아딜로는 기쁨에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어 한 유저를 떠올렸다.
‘아직 도서관에 있을까?’
죽이려 했지만 오히려 죽임을 당했던 그날. 벌써 5일이 지났다. 과연 5일이 지난 지금도 도서관에 있을까?
‘한번 갔다 오자.’
어차피 이제 자유다. 아딜로는 도서관에 한번 들르기로 결정하고 걸음을 옮겼다. 자유를 찾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기대 때문일까? 아딜로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도대체 뭐였을까?’
경쾌한 발걸음으로 도서관에 가던 아딜로는 그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 그 독.’
수혁을 죽이려 했던 아딜로를 죽음으로 몰고 간 수많은 독들.
‘분명 그 녀석은 아니었어.’
수혁이 사용한 독은 아니었다. 수혁은 분명 초보자였다.
‘뒤를 봐주는 랭커가 있는 건가?’
혹시나 뒤를 봐주는 랭커가 있는 것일까?
‘아니야, 독 마법으로 뛰어난 유저는 없잖아.’
아딜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독 마법을 사용하는 유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독 마법으로 뛰어난 유저는 없다.
아무리 마법사라 생명력이 적다고 하지만 아딜로의 레벨은 200이다. 200인 아딜로를 독으로 죽일 정도라면 이미 유명해졌을 것이다.
‘하여튼 생각만 해도 개 같네.’
갑자기 분노가 치솟았다. 죽어서 레벨이 하락했다. 힘겹게 달성했던 200레벨이 다시 199가 되었다.
치열한 전투로 죽어서 레벨이 하락한 것이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죽음이라 화가 났다.
‘누군지는 몰라도 만나면 죽여 버릴…….’
멈칫!
복수를 다짐하며 걸음을 옮기던 아딜로는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아딜로는 전방에서 다가오는 사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진짜 있네?’
그날 이후 5일이나 지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와 본 것이다. 그런데 저 앞에서 사내 아니, 수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독 마탑 로브!’
아딜로는 수혁의 복장이 전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전에는 토끼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독의 마탑의 상징이 그려져 있는 로브를 말이다.
‘역시 저 녀석이랑 관련 있는 새끼였어!’
아딜로는 확신했다. 독을 사용한 존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혁과 관련 있는 인물이 분명했다.
스윽
수혁을 보던 아딜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지금도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없다.’
그러나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단숨에 끝내자.’
점점 가까워지는 수혁을 보며 아딜로는 생각했다. 전에는 수혁이 한 방에 죽을 줄 알고 공격을 한 뒤 기다렸다.
그러다가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단숨에 공격을 퍼부어 죽일 생각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
수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수혁이 당황스런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딜로는 수혁의 목소리와 눈빛에 수혁이 자신을 기억해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런 깽판을 부렸는데.’
도서관에서 수혁에게 행패를 부린 아딜로였다. 고작 5일이 지났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일렉트릭 볼.”
아딜로는 바로 일렉트릭 볼을 시전했다.
“매직 미사일!”
수혁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이라니? 우스웠다.
‘하긴 쓸 만한 독 마법은 못 배웠겠지.’
아직 수혁은 레벨이 낮아 제대로 된 독 마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매직 미사일을 쓸 수밖에 없는 수혁의 상황이 이해가 됐다. 물론 꾹 다문 입을 통해 웃음이 비집고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피할 필요도 없지.’
매직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 하지만 초보의 매직 미사일이다. 피할 필요가 없었다. 피할 시간에 마법을 날리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일렉트릭 스피어!”
아딜로는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을 보며 일렉트릭 스피어를 시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이어 스피어!”
“……?”
수혁의 외침에 아딜로는 순간 당황했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파이어 스피어라니?
‘더블!’
하지만 이어 모습을 드러낸 파이어 스피어를 보고 아딜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수혁은 단순한 독 마법사가 아니었다. 불과 독. 두 속성을 다루는 더블 마법사였다.
‘버그?’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파이어 스피어를 보며 아딜로는 생각했다. 파이어 스피어 역시 일렉트릭 스피어와 마찬가지로 시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먼저 시전을 한 아딜로보다 수혁의 파이어 스피어가 먼저 완성됐다. 아니, 수혁의 파이어 스피어는 완성된 채로 등장했다. 버그인 것일까?
[유저 ‘수혁’을 공격하셨습니다.]
[유저 ‘수혁’과 적대 상태가 됩니다.]
[범죄자 수치가 상승합니다.]
아딜로가 의아해하던 사이 일렉트릭 볼이 수혁에게 작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일렉트릭 스피어가 완성되어 수혁에게 날아갔다. 물론 수혁의 매직 미사일도 일렉트릭 스피어가 움직인 순간 도착했다.
[3초 동안 기절합니다.]
매직 미사일이 폭발하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 시발.’
절로 욕이 나왔다. 물론 기절 상태에 빠져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게 왜 터져?’
매직 미사일의 특수 효과인 기절. 확률이 낮기에 터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터져 버렸다.
‘못 피하겠는데.’
기절 상태에 빠진 지금 아딜로는 파이어 스피어를 피할 수 없었다.
‘얼마나 닳으려나.’
물론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매직 미사일과 파이어 스피어. 고레벨 유저가 사용한 것도 아닌데 걱정할 필요 없었다. 아딜로는 눈동자를 움직여 생명력을 확인했다.
‘……응?’
생명력을 확인한 순간 아딜로는 당황했다.
‘뭐야? 왜…….’
아딜로가 당황한 이유, 그것은 바로 생명력이 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딜로는 다시 눈동자를 움직여 전방을 보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파이어 스피어.
‘아닐 거야.’
파이어 스피어를 보며 아딜로는 생각했다.
쾅!
그리고 파이어 스피어가 작렬하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딜로는 메시지를 본 순간 이를 악물었다.
[사망하셨습니다.]
“시발!”
사망으로 인해 판게아에서 강제 로그아웃 된 아딜로 아니, 박경호는 캡슐에서 나오며 욕을 내뱉었다.
“뭐냐고!”
박경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갑자기! 시발!”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후우…… 후우…….”
박경호는 숨을 고르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분노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은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새끼 설마 초보자 코스프레였나?”
혹시나 초보자가 아니라 초보자 행세를 하는 고수가 아니었을까?
“내 생명력이 낮은 것도 아니고 두 방, 그것도 매직 미사일, 파이어 스피어로 죽인 걸 보면…….”
고레벨에 배울 수 있는 마법에 죽은 게 아니다. 매직 미사일, 파이어 스피어 같은 갓 전직 후 배울 수 있는 기본 마법에 죽었다.
“적어도 준랭커 수준이란 건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박경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시비를 걸지 않았던가?
‘좆됐다.’
45.
* * *
수혁은 발아래 시체를 보았다. 시체의 정체는 5일 전 도서관에 와 행패를 부렸던 유저 아딜로였다.
‘이 또라이가 또 왔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 이상의 또라이였다.
‘레벨 올리길 잘했어.’
그날의 PK 이후 레벨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혹시나 이런 일이 또 벌어질까 봐. 아딜로의 시체를 보니 레벨 올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레벨을 올리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파비앙도 없다. 즉,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뭐가 드랍 됐으려나.’
유저도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사망 시 아이템을 드랍한다. 몬스터와 한 가지 다른 점은 드랍 창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직접 습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수혁은 아딜로의 시체를 발로 밀었다. 드랍 된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였다.
‘반지?’
그리고 아딜로의 시체를 한 번 뒤집자 반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혁은 반지를 집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노을의 반지를 습득하셨습니다.]
메시지를 통해 반지의 이름을 알게 된 수혁은 이어 반지의 정보를 확인했다.
<노을의 반지[유물]>
제한 : 없음
힘 +10
민첩 +10
체력 +10
지혜 +10
“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 수혁은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괜찮은 옵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스텟 10?”
노을의 반지는 기본 스텟인 힘, 민첩, 체력, 지혜를 전부 10이나 올려준다. 총 40의 스텟을 올려주는 것이다.
“꽤 하는 놈이었네.”
수혁은 아이템 정보를 닫고 아딜로의 시체를 보았다. 이렇게 좋은 아이템을 쓰는데 초보일 리 없다. 아니, 초보가 쓸 가능성도 있지만 0에 가깝다.
“하긴 내 지혜에 그 정도 데미지가 들어왔으니.”
마법사로 전직하며 지혜 스텟이 강화 됐다. 지혜가 높을수록 마법 방어력도 높아진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들어왔었다. 초보는 절대 아니었다. 수혁은 노을의 반지를 착용한 뒤 캐릭터 창을 열었다.
직업 : 대마도사의 후예
레벨 : 80
경험치 : 31%
생명력 : 21800
마나 : 38200
포만감 : 53%
힘 : 30 (+10)
민첩 : 35 (+16)
체력 : 424 (+10)
지혜 : 1910 (+10)
스텟을 확인한 수혁은 생각했다.
‘이제 슬슬 지혜에 투자할까.’
5일간의 사냥으로 수혁은 10레벨에서 80레벨을 찍었다. 그 때문일까? 이제 책을 읽는다고 해도 쉽게 지혜가 오르지 않았다. 보통 두께의 책을 서너 권 읽어야 1이 오를 정도였다.
‘체력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벌써 생명력이 2만을 넘어섰다. 마법사 치고 어마어마하게 높은 생명력이었다. 더군다나 수혁의 레벨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과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수혁의 지혜가 높지 않았다면 누가 보아도 망캐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 이제 지혜 올리자.’
이 정도면 체력은 충분히 찍었다. 앞으로 수혁은 지혜에 보너스 스텟을 투자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캐릭터 창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