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더 읽는자-44화 (44/553)

# 44

제44화

그리고 독의 마탑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레벨 업인데.’

필요한 경험치가 5배나 많고 하루 종일 사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엄청난 속도로 수혁은 80레벨을 찍었다. 그렇게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던 것은 상위 사냥터에서 사냥을 했었기 때문이다.

‘왜 마탑에는 고렙 사냥터가 없는 거야?’

마탑 도서관의 책을 전부 읽기 전까지 수혁은 마탑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마탑 주변에는 수혁의 레벨을 기준으로 상위 사냥터가 없다.

마탑 주변 최고 레벨의 사냥터는 불렘 산맥. 70~95레벨의 오크, 오우거, 트롤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100까지는 찍겠지만…….’

100까지는 수월하게 찍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될 것이다.

‘에이, 그래. 100 정도면 충분히 올린 거지.’

80레벨인 지금도 PK를 받아쳤다. 100레벨이면 충분할 것이다.

‘두 번째 문도 개방할 수 있으니까.’

거기다 100레벨이면 두 번째 문을 개방할 수 있다.

‘어떤 속성을 개방하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수혁은 고민했다. 첫 번째 속성은 고민 끝에 불로 개방했다. 다음 속성은 무엇으로 개방해야 될까?

‘조건을 보고 결정하는 게 나으려나?’

불의 문을 개방했을 때에는 처음이라 아무런 조건 없이 개방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문부터는 조건이 필요했다.

‘그래, 조건이 뭔지도 모르는데.’

지금 고민을 해 봤자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굳이 지금부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수혁은 고민을 접었다.

이내 수혁은 독의 마탑에 도착했다. 4층으로 올라간 수혁은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사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내가 있든 말든 중요한 건 아니었다. 수혁이 만날 이는 사내가 아닌 파비앙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계시나요?”

수혁은 여인에게 물었다. 지금 처음 온 게 아니다. 오전에 책을 읽고 점심을 먹은 뒤 사냥 시간이 되었을 때 독의 마탑에 들렀었다.

하지만 당시 파비앙은 자리를 비웠고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수혁은 저녁에 할 독서를 오후로 당겼다.

혹시나 사냥을 끝내고 왔는데도 파비앙이 없다면 독서 시간이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사냥 시간이 줄어드는 건 괜찮지만 독서 시간이 줄어드는 건 괜찮지 않았다.

“네, 지금은 계십니다.”

여인이 답했다.

‘다행이네.’

사냥 시간이 줄어드는 건 상관없다. 파비앙이 없다면 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던 수혁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여인의 뒤를 따라 파비앙의 방으로 향했다.

‘응?’

그리고 파비앙의 방 앞에 도착한 수혁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보이지 않았던 사내가 방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안 끝나셨나?”

여인이 사내에게 물었다.

“응.”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여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수혁에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선객이 있는 것 같았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네.”

수혁은 여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방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방에서 나온 이는 불의 마탑의 상징이 그려진 붉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수혁은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분이야?”

여인은 수혁을 보며 물었다. 당연히 수혁에게 물은 것은 아니었다. 여인의 물음에 답한 건 옆에 있던 사내였다.

“예.”

수혁은 사내의 답을 듣고 생각했다.

‘높은 사람인가 보네.’

사내 역시 높은 위치의 마법사였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존중을 받는다. 그런 사내가 존중하는 것을 보니 여인은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봐요!”

여인이 외쳤다.

“……아, 네.”

예상치 못한 여인의 외침에 수혁은 알았다고 답했다.

‘불의 마법사라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수혁은 자신을 흘깃흘깃 보며 지나쳐 가는 여인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불의 마법사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여인의 피부는 상당히 붉었다.

“수혁 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와!”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은 파비앙의 목소리에 여인에 대한 생각을 접고 방으로 들어갔다.

* * *

“그러면 아무런 말도 안 하신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 후계자 이야기만 안 했어. 후계자라고 말하기엔 시기가 아직 이른 것 같아서.”

브리니스의 말에 파비앙이 답했다.

“재능이야 어마어마하지만 그 재능이 꽃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이야기 했는데 마탑을 이끌 정도로 크지 못하면 괜한 혼란을 야기할 테고.”

“아…….”

파비앙의 말에 브리니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브리니스는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불의 마탑장인 브리니스가 독의 마탑에 온 이유는 파비앙의 부름 때문이었다. 물론 그냥 부른 것이라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측정불가의 재능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다면서요.”

바로 측정불가의 재능. 수혁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수혁에게 관심이 가득한 브리니스였다.

“일단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브리니스의 말에 파비앙이 답했다. 물론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브리니스와 마찬가지로 파비앙 역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날 왜 도운 거야?”

측정불가의 재능인 수혁이 독의 마탑으로 올 수 있게 도운 이유. 파비앙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 당연히…….”

브리니스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대로 말씀드려야겠죠?”

말끝을 흐리던 브리니스는 미묘한 미소로 파비앙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이유야?”

파비앙은 브리니스의 물음에 답했다.

“네, 아마도요.”

미묘했던 브리니스의 미소가 활짝으로 바뀌었다.

“그렇군.”

파비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는 파비앙에게 브리니스가 물었다.

“아아, 그것도 있고 겸사겸사.”

파비앙은 끄덕임을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보호 차원으로 수혁이한테 사람을 붙여 놨는데…….”

한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이내 대화가 끝나고 브리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다음에 보자고.”

대화는 만족스런 방향으로 끝났다. 그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파비앙은 미소를 지으며 브리니스를 배웅했다.

끼이익

브리니스가 문을 열고 나갔다.

“……?”

그리고 파비앙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브리니스가 걸음을 멈춘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그렇게 의아해하던 사이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수혁 님이 오셨습니다.”

‘아…….’

브리니스가 왜 멈췄는지 알 것 같았다. 파비앙은 피식 웃은 뒤 외쳤다.

“들어와!”

* * *

‘마비네.’

오늘 복용한 파비앙의 독은 마비였다.

[파비앙의 마나가 깃듭니다.]

[27분 동안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하, 매일매일 마비면 얼마나 좋을까.’

메시지를 보며 수혁은 생각했다. 파비앙의 독은 여러 종류가 있었다. 여태까지 겪은 특수 상태는 출혈, 마비, 오한, 실명뿐이지만 더 있다는 것을 수혁은 알고 있었다.

그 다양한 특수 상태 중 수혁은 마비를 가장 좋아했다. 다른 특수 상태보다 지속 시간이 짧기 때문이었다.

.

.

.

[파비앙의 마나가 깃듭니다.]

[1분 동안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메시지는 계속해서 나타났고 이내 마비의 지속 시간이 1분이 되었다. 그리고 1분이 지나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수혁은 옆에 열어 놨던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30일간의 여정>

독에 대한 면역력이 부족한 당신. 파비앙은 당신의 면역력을 키워 줄 생각이다. 하루에 한 번 파비앙이 주는 독을 복용하라!

[파비앙의 특제 독 복용 : 5 / 30]

퀘스트 보상 : 칭호 – 독의 대가

‘하…….’

앞으로 25일이나 더 독을 복용해야 된다는 사실에 수혁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끝나면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까.’

2일 전, 독을 복용할 때 파비앙이 말했다. 독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 시키는 이유와 이 작업이 끝난 후 마법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수혁은 퀘스트 창을 닫았다. 그리고 파비앙에게 물었다.

“내일은 계신가요?”

수혁은 혹시나 오늘처럼 파비앙이 자리를 비운다면 그 시간을 피해 올 생각이었다.

“응, 당분간은.”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파비앙의 답을 들은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인사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4시간 정도 사냥할 수 있겠네.’

수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로그아웃까지 남은 시간은 4시간 정도였다.

‘몇 레벨이나 업 할 수 있으려나.’

독의 마탑에서 나온 수혁은 불렘 산맥이 있는 북쪽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80 레벨인 지금은 경험치가 쭉쭉 오르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46.

[포만감이 5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아, 깜짝이야.”

방금 전 아딜로와의 PK 때문일까? 수혁은 메시지가 나타난 순간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줄 알았다.

수혁은 메시지를 보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꿀빵을 꺼냈다. 1개에 2골드로 꽤나 비싼 빵이었지만 사냥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수혁에게 그다지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었다. 거기다 2골드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빵이었다.

수혁은 꿀빵의 달달함을 음미하며 포만감이 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포만감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혁은 북쪽 성문에 도착했다.

“고블린 잡으러 가실 분!”

“오크 사냥 가실 분 구합니다!”

북쪽 성문 역시 동쪽, 서쪽 성문과 마찬가지로 유저들이 파티와 파티원을 구하고 있었다.

‘어제보다 더 줄었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동쪽, 서쪽과 비교해 유저들이 적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어제보다 더 적었다.

‘다 넘어가고 있어서 그런가.’

유저들이 적은 이유와 점점 줄어드는 이유를 수혁은 알고 있었다. 북쪽 사냥터에서 사냥을 할 정도의 레벨이라면 굳이 북쪽 사냥터에서 사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더 좋은 사냥터로 넘어가는 것이다.

거기다 마탑에선 파티 구성이 좋지 않다. 마법사들만 있기에. 하지만 다른 곳엔 전사나 도적 등 다른 직업들이 있다. 즉, 탄탄한 파티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여러모로 넘어가는 것이 나았다.

‘오늘도 편히 사냥하겠어.’

물론 파티나 파티원을 구할 필요가 없는 수혁에게는 괜찮은 상황이었다. 유저들이 별로 없어 많은 몬스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어제보다 적어진 유저들의 외침을 들으며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아이스 포그!”

“일렉트릭 스피어!”

“힐 좀 주세요!”

“힐!”

불렘 산맥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수혁이 처음 도착한 사냥터는 고블린 초원이었다. 20~40레벨의 고블린 궁수, 고블린 전사가 서식하는 곳이었다.

고블린 몬스터들이 장비 드랍률이 높은 데다가 사냥도 그리 힘들지 않아 인기가 많은 고블린 초원에는 다른 북쪽 사냥터에 비해 많은 유저들이 있었다.

그래서 수혁은 마법을 쓸 필요가 없었다. 고블린이 리젠되면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즉, 몬스터를 선점할 수가 없었다.

‘여기를 건너뛴 게 신의 한수였어.’

엄청난 경쟁에 수혁은 생각했다. 수혁은 고블린 초원에서 사냥을 하지 않았다. 비인기 사냥터인 죽은 나무 숲에서 레벨을 올렸다. 유저들의 경쟁을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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