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제47화
컴퓨터가 부팅되자마자 수혁은 판게아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이어 인기 게시판을 확인했다.
“흐음…….”
인기 게시판의 글을 읽으며 수혁은 침음을 내뱉었다.
“랭커 이야기만 올라오네.”
침음을 내뱉은 이유, 그것은 인기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 전부 랭커 혹은 네임드 유저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인기 게시판을 나와 다른 게시판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게시판 역시 인기 게시판과 다를 바 없었다. 해당 게시판의 네임드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판캠 결제를 해야 되나…….”
판캠, 판게아 캠프라는 사이트의 줄임말로 각종 정보들이 올라오는 사이트였다. 정확히는 각종 정보들을 사고파는 유료 사이트였다.
“에이, 뭐 내가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정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혁에겐 여러 유산 퀘스트가 있었다. 필요한 정보는 있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수혁은 홈페이지를 닫고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만 읽고 자야겠다.”
시간을 확인한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으로 향했다.
* * *
도란은 시위를 당겼다.
“죽음의 화살.”
그리고 스킬 ‘죽음의 화살’을 시전했다. 쿨타임이 30분이나 되는 도란의 필살기라 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스아악
스킬을 시전하자 화살이 나타났다. 새까만 연기가 뭉실뭉실 흘러나오는 화살이었다. 도란은 그대로 시위를 놓았고 화살이 날아갔다.
퍽!
화살의 목적지는 전방에서 달려오는 오크의 가슴이었다. 가슴에 정확히 적중한 검은 화살은 그대로 오크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적중한 가슴을 기준으로 오크의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피부가 검은색으로 물드는 데에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모든 피부가 검은색으로 물든 순간.
펑!
오크가 폭발했다. 폭발의 범위는 어마어마했다. 근처에 있던 오크 수십 마리가 폭발에 휘말렸고 그대로 죽음을 맞았다. 그렇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대량의 오크들을 살상한 도란은 드랍 창을 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오크 사냥한다고 했는데…….”
부락에서 만났던 사내. 사내는 분명 오크를 사냥한다고 했었다.
“어디 계신 거야?”
도란은 벌써 2시간째 사내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설마 로그아웃 했나?”
문득 든 생각에 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일리가 있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아침도 점심도 아니다. 그렇다고 초저녁도 아니다. 새벽이 가까워지는 밤이었다. 많은 유저들이 로그아웃을 하는 시간인 것이다. 사내 역시 로그아웃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당분간이라고 했으니까.”
사내는 당분간 오크를 잡는다고 했다.
“돌아다니다 보면 만나겠지.”
오크를 잡다 보면 만나게 될 것이다.
“마침 칭호 작업도 해야 되니까.”
사내 때문에 트롤을 잡으러 갔던 것이지 도란 역시 오크를 잡아야 했다. 칭호를 아직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란은 드랍 된 아이템을 습득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 * *
-4주 뒤! 이제 27일이구나. 잊지 말구!
“예, 알았어요.”
-꼬박꼬박 연락하마!
“네, 잘 다녀오세요.”
수혁은 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띠리리리링!
책에 집중한 지 30분이 지나자 설정해 두었던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수혁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 이어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수혁은 스트레칭을 했다.
판게아에 접속하기 전 몸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수혁은 캡슐로 들어가 판게아에 접속했다.
스아악
판게아에 접속하자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내 복구되며 로그아웃을 했던 붉은 오크 부족의 부락으로 변했다.
로그아웃 했던 사이 리젠이 된 것일까? 텅 비어 있던 부락에 수많은 오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취익?
수혁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콧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오크와 눈이 마주쳤다.
“파이어 스톰.”
그리고 수혁은 바로 파이어 스톰을 시전했다. 파이어 스톰의 시전 시간은 15초였다. 물론 수혁에겐 스킬 ‘대마도사’가 있었고 10초가 감소해 5초만 기다리면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5초가 문제였다.
‘되려나?’
수혁은 빠르게 올라가는 눈앞의 캐스팅 바를 보며 생각했다. 5초 동안 공격을 받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취익! 인간이다! 취익!
고개를 갸웃거렸던 오크가 이내 몽둥이를 들고 수혁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었고 속도도 빨라 오크는 금방 수혁에게 도착했다.
-인간! 취익! 죽어라!
오크는 도착과 동시에 몽둥이를 휘둘렀고 수혁은 거의 끝에 다다른 캐스팅 바를 보며 간절히 바랐다.
스아악! 퍽!
캐스팅 바가 사라졌다. 물론 시전이 취소된 건 아니었다. 캐스팅 바가 사라진 건 몽둥이가 작렬하기 전이었다.
‘나이스.’
정말 간발의 차였다. 오크가 갸웃거림에 시간을 소비하지만 않았더라도 시전이 취소되었을 것이다.
화르륵!
수혁은 전방에 나타난 거대한 불의 회오리. 파이어 스톰을 보며 재차 몽둥이를 휘두르려는 오크에게 파이어 볼을 시전했다.
그리고 파이어 볼에 쓰러지는 오크를 보며 뒤로 돌아섰다. 전방은 파이어 스톰이 휩쓸고 있으니 신경을 쓸 필요 없었다. 신경 써야 될 곳은 파이어 스톰의 범위 밖인 뒤쪽이었다.
-무슨일이냐? 취익?
-취익! 인간이다!
-침입자다! 취익!
-죽여라! 취익!
파이어 스톰의 열기 때문일까? 아니면 파이어 스톰에 죽어나가는 수많은 오크들의 비명 때문일까? 뒤쪽에 있던 건물에서 오크들이 뛰쳐나왔고 이미 건물 밖에 있던 오크들과 함께 수혁에게 달려들었다.
“파이어볼, 매직미사일, 파이어 스피어, 불놀이.”
수혁은 다가오는 오크들에게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경고!]
[붉은 오크 부족의 족장, 카우소가 등장합니다.]
-취익!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취익!
마법을 난사하며 오크들을 학살하던 수혁은 메시지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에 입구를 바라보았다. 입구에 나타난 거대한 체구의 오크. 카우소가 양손에 몽둥이를 든 채 달려오기 시작했다.
“플레임.”
언제 나타날지 몰라 아끼고 있던 플레임. 수혁은 카우소에게 플레임을 시전 한 뒤 재빨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오크에게 마법을 날려 모든 마법이 쿨타임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직 미사일!”
물론 도망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직 미사일의 쿨타임이 끝났고 수혁은 곧장 매직 미사일을 시전했다.
쾅!
-취익…….
쿵!
도망다니던 시간 동안 플레임에 많은 생명력을 잃은 카우소는 매직 미사일 한 방에 쓰러지고 말았다.
[붉은 오크 부족의 족장, 카우소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10분간 붉은 오크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붉은 오크들이 혼란에 빠져 10분 동안 공격력이 50% 증가합니다.]
[붉은 오크들이 혼란에 빠져 10분 동안 방어력이 50% 감소합니다.]
메시지가 나타났고 수혁은 부락 내 오크들을 마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님!”
바로 그때였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남은 오크들을 정리하던 수혁은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수혁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도란?’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제 만났던 도란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롤 쪽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트롤 쪽으로 간다고 했던 도란이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수혁이 의아해하던 사이 도란이 외쳤다.
“찾고 있었어요!”
“저를요?”
수혁은 도란의 말에 반문하며 생각했다.
‘설마 PK?’
무슨 이유로 찾았단 말인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수혁은 도란을 주시했다. 그러나 이어진 도란의 말에 수혁은 경계를 풀 수 있었다.
“예, 혹시 저희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세요?”
“……네? 길드요?”
“네, 꼭 모시고 싶습니다.”
‘무슨…….’
길드라니? 너무나도 갑작스런 제안이었다.
“죄송합니다.”
수혁은 자신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도란에게 말했다.
“제가 친구 길드에 들어가기로 해서…….”
이미 들어갈 길드가 있었다. 바로 연중이 만든 길드 ‘리더’. 수혁은 리더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 역시 그러시구나.”
수혁의 답에 도란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어 수혁에게 말했다.
“그럼 혹시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친추라도 가능할까요?”
도란의 말에 수혁은 생각했다.
‘뭐지?’
갑작스런 길드 가입 권유도 당황스러운데 친구 추가라니? 같이 사냥을 했던 것도 아니고 한 번 마주쳤을 뿐이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거기다 도란은 수혁의 캐릭터명을 모른다. 도란과 달리 수혁은 자신의 캐릭터명을 밝히지 않았다. 캐릭터명도 모르는 사람에게 친구 추가를 부탁한다?
‘무슨 목적이 있는 건가?’
무슨 이유로 친구 추가를 하려는 것일까? 수혁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수혁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판게아는 인맥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수혁님과 친분을 맺고 싶습니다. 나중에 겸사겸사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구요.”
“아…….”
이어진 도란의 말에 수혁은 탄성을 내뱉었다.
“친추 가능할까요?”
그리고 탄성을 내뱉은 수혁에게 도란이 재차 물었다.
‘인맥이라.’
수혁은 다시 생각했다.
‘그래, 판게아는 인맥이라고 했지.’
연중이 말했다. 판게아는 개인의 힘도 중요하지만 인맥이 역시 중요하다고. 도란이 약한 것도 아니고 중간 보스를 한 방에 죽일 정도로 강하다. 안 좋은 일로 엮이는 것도 아니고 굳이 도란의 요청을 거절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 아니면 친삭해도 되니까.’
친구 삭제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영 아니다 싶을 때는 삭제하면 된다. 생각을 마친 수혁은 도란에게 답했다.
“네, 하죠.”
“감사합니다! 캐릭터명이 어떻게 되시죠?”
“수혁입니다.”
“잠시만요!”
수혁의 답에 도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요청 창이 나타났다. 수혁은 확인을 눌렀다. 그리고 친구 창을 열어 도란의 레벨을 확인했다.
‘……응?’
도란의 레벨을 확인한 수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321?’
321, 친구 창에 나와 있는 도란의 레벨은 분명 321이었다. 스텟이 아니다. 친구 창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레벨뿐이다. 즉, 321은 레벨이었다.
수혁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도란을 보았다. 도란 역시 당황스런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49.
* * *
“죽음의 화살.”
도란은 전방에 보이는 오우거에게 죽음의 화살을 날리며 생각했다.
‘그 레벨에 어떻게 그렇게 강한 거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공격력 말이 안 되는데.’
도란은 현재 수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신급 장비로 떡칠한 건가?’
아직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최고 등급인 ‘신’. 혹시 수혁이 ‘신’ 등급의 아이템을 다수 착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절대 90레벨 수준이 아닌데…….’
300, 도란은 수혁의 레벨을 300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90이었다. 도란은 친구 창을 열어 수혁의 레벨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 사이에 또 업을…….’
90이었던 수혁의 레벨이 92로 올라가 있었다.